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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승지]우복동천 환종주

㉣ 십승지를 찾아서

by 운해 2009. 9. 1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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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9년9월12~13일(음력7월27~28일) 날씨:12일(비) 13일:맑음

 

산행지: 우복동천 환종주

 

산행자:홀로산행

 

산행코스: 사우정(내서3교)~시루봉~청화산~늘재~밤티재~속리산~갈령삼거리~갈령~도장산~사우정(내서3교)

 

산행거리와 산행시간:첫 째날(27.6km=16시간)+둘 째날(9.5km=5시간20분) =(37.1km=21시간 20분)

 


 

개요

 

牛腹東川 還縱走 山行길은

조선시대 豫言書인 南師古秘訣(남사고는 조선 명종 때(서기 1509∼1571년) 천문지리(天文地理)에 능통한 사람이었다)와 鄭鑑錄(조선 중기 이후 백성들 속에 유포된, 나라의 운명과 백성의 안위에 관하여 풍수지리에 입각한 예언서로 이심(李沁)과 정감(鄭鑑)의 문답을 기록한 책이라 하나 이본이 많아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등에서 유래하여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에 의해 정리된 십승지 중 한 곳으로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 일대 병천(川)의 물줄기를 감싸고 있는 원형의 산줄기를 말한다.

 

이 산줄기는 병천(쌍룡계곡)의 수문이라 할 수 있는 문경시 농암면 내서리 쌍룡마을(내서3교)을 기점으로 시루봉.천화산.늘재,문장대.천왕봉.형제봉.갈령.도장산.사우정을 지나 내서3교로 原點回歸하는 還縱走路 37km에 이른다.

 

十勝地는 유교사상이 꽃 피운 풍수지리에서 접근 해 보면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연지(延地)라 할 수 있다 (즉, 延命을 위해 自給自足할 수 있는 吉地의 땅(地)을 이름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꿈 속의 이상향일 뿐!

당시의 사람들은 疊疊山中 찾아들어 난리를 피하고 후손을 생산하여 代를 이어가기 위해 草根木皮하며 살아야 했던 고난의 피난처였다.

 

십승지는 산악신앙에서 유래하고 풍수지리사상에 의해 延地를 찾았는데 우복동은 북쪽에 있는 시루봉(청화산)을 현무(玄武)고 속리산을 우백호(白虎), 도장산을 좌(靑龍), 봉황산을 주작(朱雀)으로 보아 화북면 일대를 길지로 보았다.(이것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의한 우복동에만 해당 됨을 밝혀둔다)

 

그러나,넓은 의미에서 속리산군의 십승지는 괴산군과 보은군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전국적으로 수 많은 십승지가 있으나. 대표적인 십승지는 열(十)곳으로 정리되고 있으며 우복동은 그 중의 하나이다.

 

고서에 기록된 십승지의 현무(주산)이라 할 수 있는 속리산군에 있는 시루봉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북쪽에 있는 시루봉.

2.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남쪽에 있는 시루봉.

3.문경시 농암면 화산리 북쪽에 있는 시루봉.

4.보은군 마로면 적암리 동쪽에 있는 시루봉

이름하여 속리산 四甑이라 한다

 

따라서

괴산군에서는 내선유동이 십승지에 포함되고 보은군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사증팔항으로 설명 하고 있는데 구병리 일대는 보은군에 속하는  네 개의 십승지중 하나이다,참고하여 보은문화원에서 발췌한 보은지명가(報恩地名歌)에 나오는 내용 중 일부를 여기에 옮겨 십승지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였으면 한다.

 

□ 보은지명가(報恩地名歌) -내용 중 일부 발췌-

 

郡廳報恩(군청보은) 舊號三山(구호삼산) 군 이름 보은이니 옛날에는 삼산이라 부르던 고을

山曰俗離(산왈속리) 一名廣霞(일명광하) 속리산은 일명 광하산이라고도 부른다.

 

東有朣甑(동유동증) 西有西甑(서유서증) 동쪽에는 동시루봉(東甑)이 있고 서쪽에는 서시루봉(西甑)이 있고

南有南甑(남유남증) 北有北甑(북유북증) 남쪽에는 남시루봉(南甑)이  있고 북쪽에는 북시루봉(北甑)이 있으니

是謂四甑(시위사증) 이른 바 4시루봉 일세.

 

東有駕項佛項葛項鐵項(동유가항불항갈항철항) 동쪽에는 멍에목. 불목. 갈목 .무수목. 있고

西有銅項鵲項九項盤項(서유동항작항구항반항) 서쪽에 구리목. 까치목. 비둘기목. 반목이 있으니

是謂八項(시위팔항) 이른 바 여덟 항이다.

 

우복동천 환종주도(牛腹東川還縱走圖)            - 클릭하면 커짐 -


 

 산행글

 

넋두리

이번 산행을 하기 위한 계획으로부터 무려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남사고의 예언서.정감록.이지함의 토정비결과 택리지를  탐독하고 나름대로 산행에 대한 도움을 얻고자 하는 노력 끝에 우복동 코스를 개발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지척임에도(처가가 상주임으로 일년이면 두~서러차례 지나가는 곳)불구하고 짬~나지 않아 장거리산행의 개척자클럽인 "J3클럽"에 답사를 의뢰 했었다.

 

그리하여 김광윤님을 비롯한 여러분들에 의해 답사되었으나, 인기를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어 사장되어 오다,상주시에서 새로운 코스로 패러디 하였으니.이른 바 회란석(쌍룡터널)을 기점으로  회귀하는 코스이다.

 

그러나 상주시에서 개발한 코스는 상주시계를 연결하여  산줄기의 끝자락 부분을 잘라버리고  축소시킴으로서 그들은 원형의 산줄기를 무시해 버린 결과를 초래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늦지 안했으니 문헌과 고지도를 통한  깊이 있게 연구하고  보다 정확한 등로를 개척하여 우복동을 사랑하고 찾아오는 분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우복동천 환종주로는 산줄기가 병천의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면서 끝 맺음 하는 내서3교가 되어야할 것이다.

(창작과 개발은 뼈를 깍는 고통이 따르나 모방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법이다)

 

 

이제!

 

넋두리는 접고~~

눌루랄라~~산행 길 떠나 보자.............

 

 백두사랑11팀 차량에 무임승차하여 상주에서 조반으로 순대국에 막걸리 한 사발~~~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

 

문경에서 들머리까지 택시비 삼만원(미터요금은  37.000인데 새벽이라고 기사님이 7천원 감 하여 주더이다) 주려니 고래심줄 같은 돈에 마음이 짠~하더이다. (한 달치 소주 값 날아가는 순간이닷!)

 

04시30분 사우정에 도착하여 산행준비 하지만, 어라~지도가 없네(비박할까? 하여 준비하였다 한 방에 끝 낼 욕심으로 베낭바꾸면서 지도는 챙기지 않고~~요즘 매사가 이렇다)~~  순전히 백두사랑11팀 때문이다. 그 들은 하룻밤 100km가는데 내는 37km 못가랴~ 싶었다.ㅎㅎ

 

상념을 뒤로하고 첫 걸음 나서보지만 어둠이 짓게 깔린 새벽이라 육신은 가지말자 하고~~

사실적으로 초행길을 지도없이 간 다는 것도 무리일 것 같아~~포기할까? 생각 해 보지만 택시비 아깝고~~

상주까지 태워 다 준 백두사랑11팀의 성의를 무시한 것도 같고~~

그래서 가기로 마음 다져 잡지만 지도가 없으니  들머리 찾기가 힘드네~~

되 돌아서 원 위치하고 동트기 기다렸다 재차 시도하니 05시30분이다.

 반석위에 집.(산행 후 들머리 확인하기 위해 다시 촬영함)

 

들머리 찾기

민박집 좌측으로 30여미터  이동하면 농장(빗장 걸어 놓고 CCTV 있다고 경고함?)으로 가는 길과 공터로 오르는 삼거리 나타 나는데 여기서 공터에 오르고 창고 쪽 방향따라 오르면 수로 나온다.수로 따라 조금 오르면 임도 나오고 묘지 만나는데 묘지 오른 쪽 너덜지대 따라가면 마루금에 이른다.(밝을 때 걸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듯)

 

후답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정성 드렸다 ~헤헤~~

05:30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리지만 혼자 걸어가야 하는 이 길은 쓸슬하다~쓸쓸 해~~

어느 시인이 쓴 싯귀에 가을은 쓸쓸한 남성의 계절이라 했는데~~그래서일까?

사위가 어둠이라 더 하네~~그랴~~~~

고독함이 묻어 나오는데 빗물에 소슬바람 불어오니 마눌아 생각까지 나네~ 그려~~

 15분 오름 짓 하여 마루금 안착!

 

그러나 지도가 없다 보니 한 시간 가까이 알바를 하게된다.(지도의 빨간선 부분)

청화산 방향은 북쪽인데  리본은 남쪽 방향으로 걸려 있어 처음부터  믿어 따라 온 것이라 의심없이 따라 갔으나, 콘도로 내려가는 길이였다 그~말여!!!

 

얼마나 된 비알인지 내려갈 때 15분 걸리고 올라올 때 40분 걸려서~~정상 못 미쳐 좌측 7부능선 트래버스길 따르니 김광윤선배 표시기 보여 옳바르게 왔나보다 했다. 그리고! 그만 할까? 생각했다. 비오고 ~~신발 안에서는 개구리 울고~~춥고~~이빨은 피아노 치고~~뭐! 그러더라.....

 

다음부터는 두~세갈래 길 마구 나타 나지만 무조건 오른 쪽길 따르면 알바 없다~~

영구다~~

 07:23 J3클럽 리본 만나니 반갑고~~

 

다시 오시라? ~~

제삼리 떠나 타관객지 맴도는 고향사람들~~

마을주민들은 언제나 그대들을 기다린다오!

요즘 시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향이 좋은 것이여!

 08:02 비치재

큰 고개로 생각 했는데 사람이 다니지는 않은 길로 여겨짐...희미한 등로 있고~~콘도로 내려가는 길은 뚜렷...

08:19 연암산 갈림길 이정표

연암산 이쁜데~~운무로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어~~

도석재인가 보다.

 한참을 생각 했다.잠시 하늘이 열리니 오른 쪽 마루금 보이고~~

그래서 그 길 따라가니 알바 없었다.

 시루봉 전위에 있는 전방바위

여기서 연암산과 시루봉을 볼 수 있을까? 하여 오랫동안 머물러 보지만. 산신령님 노했는지 보여주지 않더라..

그냥 가는 수 밖에~~

 아주 쬐끔은 보여주는데.....기세가 만만치 않네~~

 시루봉 오르기

 08:58 시루봉정상 삼각점

 정상부(3개의 연봉으로 이루어 져 있다)

 진행방향 반대쪽에서 촬영(원적사로 가는 길)

10:38 백두대간 마루금과 만남!

 우복동천길(청화산)은 왼 쪽으로 ....오늘밤! 백두사랑팀은 여기를 통과할 것이다.

 바위채송화

10:52 아무도 없으니 베낭을 증명으로 하야~~

 

청화산(화산)

동국여지승람 문경조와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문경조에 의하면 17세기까지는 화산(華山)으로 불렸으나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조에 청화산이라 하였고 대동지지 문경조에 화산의 일명으로서 청화산이라 기록된 것으로 보면 18세기부터 청화산으로 불려온 것으로 보인다.

 11:51 전망바위와 정국기원단

속리산은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 이런 곳을 臺 또는 岬이라 한다.

 

청화산에서 정국기원단 내려 가는 길에 백두대간 북진중인 멋쟁이분 만나서 산줄기에 대해 10여분 대화 나누고~~

곧 이어 군산의 산님들과 부산의 산님들 연 이어져 올라 오시는데 모두가 힘들어 한다. 이들은 늘재에서 시작하여 청화산과 시루봉 경유하여 회란석으로 갈 예정이라고~~

 12:11 성황당(아래 글은 성황당 유래비에서 옮겨적음)

 

백두대간의 정기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혼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 때는 횡액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난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신앙으로 승화되어 당(堂)도 지지(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史實)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落漢)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 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長程)의 기점이며, 고대에 라제(羅濟)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鄭起龍)장군의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온천을 비롯하여 고승(高僧)과 명장(名將)이 수련한 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 후에 의사(義士)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대장 이강년(李康秊)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늘티에 전상석(全相錫)처사가 우국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이하생략- 

 음나무(수령350년)

 거창하네~~

 늘재(늘티마을에서 온 지명) 12시14분 여기를 떠 난다

 참취

 청화산

 

동국여지승람 문경조와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문경조에 의하면 17세기까지는 화산(華山)으로 불렸으나 이중환의 택리지 복거총론 산수조에 청화산이라 하였고 대동지지 문경조에 화산의 일명으로서 청화산이라 기록된 것으로 보면 18세기부터 청화산으로 불려온 것으로 보인다.

 696.2봉을 지나 밤티재 가는 길은 산꾼들이 소위 말하는 개구멍을 지나야 한다.

 개구멍 지나니 갑자지 쏟아지는 폭우와  강풍은 서 있기도 힘들게 하고~~

근처에 있는 바위를 지붕 삼아 낙숫물 소리에 옛 추억 회상 해 보지만~~

내가 지금 무슨 짓 하고 있는 것이여! 집에 있으면 편할낀데~~혼란스럽다.

늙어가나 보다~~

 밤티재(14:16분)

 예전에 없던 동물이동통로를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합성사진 중 왼 쪽은 절개지 표면이다.

사람의 발걸음으로는 도저히 오를 수 없는 90도에 가까운 급경사이다.(횡단을 준 것은 절개지의 붕괴를 위한 토목학적 공사이지 동물이동을 위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음)

 

네 발 달린 동물이라 해도 곡예가 아닌 이상 절대로 오갈 수 없을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정! 제대로 해! 이 것들아~~

 문장대 방향은 운무로 자욱하다.

 시어동 견훤산성터에서 올라오는 길목과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마추치는 지점에 있다.

음택으로 현무(토지지신)에 해당하고~~거북이상 있으니 이 보다 더한 명당은 없을 터(基) ..

그 아래 누워 있는 분이 부럽네 그려~~

 도장산과 병천(쌍룡계곡)

 

원형을 이루는 청계산과 속리산 자락의 내경으로 흐르는 물줄기들은 화북에서 만나 병천을 이루고 영강을 만들어 낙동강에 합수된다.물 흐르는 계곡은 기암괴석의 협곡을 이루고 그 곳에 청룡과 황룡이 살았다고 하여 쌍용계곡이라 한다.

 

또 한 명주실 한 타래 들어갈 깊이 있는 용소가 있어 달 밝은 밤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 와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에 장단 맞추어 목욕을 즐겼다고 전해진다.

 밤티재에서 문장대 오르는 능선은 세 개의 동굴을 통과해야 한다.

 남성미.

 000님 삼각팬티 입은 모습과 똑 같네~~^^

언젠가 목욕탕에서 보니까~~

 

15:04분 문장대에 도착!

 백두대간 주능선(문장대에서 밤티재방향)

 칠형제봉

 문장대

 문장대 휴게소를 철거하고 나니 까마귀(烏)의 안식처가 생기고~~

 속리산 주능선

 신선대

 

주막집에 들리니 주인장은 상주에 가시고 아들님 만나서 막걸리 두시기 시켰는데 8.000원이라~~

주인장 계셨으면 반갑다고 한 잔은 얻어 마셧을 것이고 잠자리도 얻었을 것이나 부인과 아드님 뿐이니~~

양반체면에 같이 잘 수도 없고~~ 갈령까지 가기로 하여 늦은 길 서두른다.

 남쪽하늘은 몽환적이라~~

낮이여~~밤이여?

길손은 나 뿐이였으니~~

 석문도 통과하고

 나뭇 잎 사이로 비추는 지는 해의 햇살은 황홀하지만  갈 길 멀어 사진으로 남겨두었다가 시간날 때 감상 해 보련다.

 비로봉.

건너 편은 장각동으로 하산길인데~~?

탈출하고픈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다음에 다시 올라올 생각을 하니? 어휴!

끔찍하여 그냥 진행하기로 한다.(갈령까지는 많이 다녔던 길이라 지도 없이도 갈 수 있으니까?)

 백두대간 마루금과 갈령으로 이어지는 우복동천의 마루금은 저기 중앙부 쯤에서 나누어 지고~~

 등산로 뻔한 길이기에 설명은 생략....

08:55분 천왕봉이다

정상석 철거된 자리에 않자서 석양을 촬영하러 온 사진작가에게 부탁했더니 자기 것이 아니라 그런지 내 보다 실력이 부족하더라~~ 그래도 증명을 한 장 건졌으니 고맙수다...

 

※ 여기에서 보은쪽으로 또 다른 십승지가 있다.

 

서원리를 통과하는 삼가천을 감싸고 있는 산줄기가 그것인데 이 산줄기는 구병산과 형제봉을 지나고 속리산 천왕봉 아래에서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서원리로 환원하는 산줄기로 각종 문헌과 고지도에 구봉산으로 기록하고 있어 속리산을 달리 부르는 두 개의 구봉산(구병산과 다르고 현재의 구병산은  구봉산에서 제외된다) 중 하나이다.

 

이곳에서는 십승지의 주산이 되는 시루봉은  만수동의 뒷 산인 형제봉으로 추측된다.

(만수동은 십승지의 대표적인 길지로 가야산 만수동과 개성의 광덕산 만수동이 대표적이다)

 

-개요란에서 보은지명가 참고바람-

 

삼가천환종주도(십승지) 

 출입금지라 되어 있는 한남금북 분기점에 서서 옛 일을 회상하고 어두워 지기 시작하는 내 갈길 어서  가야지~~

비 내린 후라 자갈밭 길은 미끄럽기 그지없어 넘어지기 몇번인가?

자켓도 찢어지고 속살도 함께~~상처입고~~

 17:38 형제봉 못미쳐 전망바위~~

 

2006년 3차 백두대간 북진 때 찍어 두었던 사진과 대조를 해 보니!!!

그 때는 젊어 보이네~~

 

이렇게 하여 갈령삼거리에서 대간길과 헤여져 갈령에  도착하니 21시 되어가고~~

지도가 없으니 더 진행하는 것은 무리라 판단하여 다음 날 지도 구하여 나머지 구간 하기로 하고 산행을 정리한다.

 

그후

대간팀에 전화하니 천사총무님 가라사대...

백숙에 포식하고 야간산행 시작하려 하고 있다고~~내는 배고파 죽겟다~~아우야~~

대간팀 출발하는거 보고 나 데리고 오겠다는 여사랑님 전화받고 기다리고 있으니  지나는 트럭 스스로 멈추어 어디로 가십니까?

물어 오길래~

 

화북으로 간다고 하니까~~자기는 상오리까지만 간다고 하여~~그래도 갈령에 혼자 있는 것 보다 마을입구에서 기다리는 것이

낳을 것 같아 동행하여 상오리에 도착! 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여사랑님 오시고~~

 

화북에 들리지만 늦은 시간이라 밥먹을 곳이 없네 그랴~~

여사랑님 기지를 발휘하여 차 안에 있는 냄비 가지고 와 순대국 받아들고 슈퍼에서 소주 사고 늘재로 이동하여 차안에서 버너에 끓이고 하여 하룻 밤 차안에서 기숙하고 다음 날 아침 도착하는 대간사람팀 맞이 하였다.

 

둘 째날(갈령~사우정구간)일정

2009년09월 13일 07시49분

그 후로 밤티재까지 진행하는 대간팀 보내고 밤티마을에 들려 마을의 유래와 주변을 둘러보고 있으려니 늘재를 떠난 대간팀들!!

한 시간도 안 되어 밤재에 도착했다고 전화오는데~~이 사람들 축지법 쓰는 것인지 모르겠네?

전 날에 나는 두 시간이나 걸렸구만.

 대간팀과 밤티재에서 재 합류하여 아침식사 하던 집.

화북에 가시거던 이 집에 들려보시기를...

주인장의 넉넉한 인품에 맛 또한 일품이라~~(순대국밥)

 

11시 문장대로 떠 나는 대간팀과 상주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

여사랑님 차 타고 갈령으로 간다.

 갈령

 

지난 밤 카메라 렌즈에 습기가 끼었던지 사진들이 엉망이라(전망바위부터 갈령까지 사진은 모두 엉망) 도장산 가는 길에 다시 촬영하였다.

 11:50분

비재로 가는 최석태님과 여사랑님의 전송을 받으며 산행길 나선다.

 12:07

헬기장 도착하여 지난 밤 지나온 갈령방향과 오늘 가야할 방향을 조망 해 본다.

오른 쪽은 남산으로 이어지는 작약지맥과 대권터산 방향이고  왼 쪽 능선이 우복동천 길이다.

 헬기장에서 조망하는 화북의 연지와 청화산방향

 속리산의 주능선

 형제봉

 봉황산

 우복동천과 작약지맥 갈림길

 12:18

작약지맥과 대궐터산아! 안녕?

나는 왼 쪽으로 가야 하니 다음에 또 보자꾸나~~

 옥녀봉으로 가는 길에 두 곳의 로프구간 만나는데 쬐금 조심해야할 곳!

 때로는 트래버스 구간도 있지만 등로는 외길이므로 알바염려 없음.

 어수리

 천왕봉 뚜렷하고!!

백두사람팀! 이 시간이면 문장대에 도착 했을려나???

만원경으로 봐도 안 보이네^^

 나쁜 놈들이다.

 

차라리 베어버릴 것이지~~껍질만 벗겨갔다.

 두류봉은 청룡산으로 부르기도 하고~~

 13:28

서재에 도착하여 옥녀봉 가는 길 따라 오르는데 커다란 꽃뱀에 놀라고~누룩뱀에 놀라고~참으로 큰 놈들이다...

 바위에 꽃 피워 나플거리는 산부추와 구절초의 유혹에 빠져 잠시 머무른다.

늘재에서 천사님에게 하나 얻는 자두와 포도즙 마시면서~~

 그렇게 길 떠나며 구절초 환영을 받는다.

 갑자기 나타나는 커다란 암릉!

너가 옥녀봉이로구나...

쉽게 넘어갈 수 있게 좀 도와주렴~내가 지금 체력이 말이 아니다....

 도장산 주능선

 옥녀봉 내려오시는 7순 어르신 만나는데 조심하라 하신다.

 로프구간으로 조심들 하삼....

 

옥녀봉을 지나 화북으로 내려 가는 삼거리 지나고 20여미터 지점에 있는 도장산에 도착하는데 이 때 시간이 15:01분이라...

때 맞추어 전주에서 만수후배 전화오고~~

두타행님하고도 여기에서 통화 했던가 보다!! 설악산 갈거냐고??

도장산(道藏山827.9m)

 

 뜻 그대로 道가 감추어(臧)진 山이어서인지 주변의 취락지대를 둘러싼 산세가 소의 뱃속처럼 아늑한 요새를 이루어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이상향의 터로 여겼다.

 

 시루봉

조령산과 대야산이 첩첩으로 겹쳐져 보인다.

 

심원사

도장산에 있는 사찰로 신라무열왕5년(655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道藏菴이라 했으며, 현재 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로 비구니스님들이 지키고 있다.

 

임란 때 모두 불 탔으나 1729년(영조 5) 낙빈대사가 옛터에 중창하여 심원사로 개칭하고 이름 있는 절로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1958년 실화로 전소되었으며, 1964년 법당과 요사채를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심원사와 회란석.쌍룡터널 가는 길(독도주의) 16:25분에 통과

사우정 길은 1시방향으로 희미하게 보임. 

 파묘을 지나 사우정으로 가는 능선은 마을사람들이 이용하여 지금까지 걸어 온 길보다는 못하지만 산행하는데 지장은 없을만큼 양호한 편이다.

 

파묘(破墓)에서 산행로 바로잡아(1시방향) 30분 내려서면 사우정 1km 못 미치는 지점에 넓다란 안부에 도착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마루금은 9시방향으로 꺾여지는 트래버스 구간이다. 오던길을 직진하는 것은 아니므로 주의해야 하며 사실적으로 길이 없는 곳이므로 조금만 신경쓰면 쉽게 진행할 수 있다.

 트래버스하여 능선에 복귀하고 조금 내려서면 헐벗은 쌍묘(雙墓)가 나타나고 여기를 지나면 곧 바로 조릿대(산죽)구간이 나타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왼쪽과 오른쪽으로 희미하지만 뚜렷한 길 있으므로 어느 곳으로 가나 사우정으로 향한다.

다만 오른 쪽길은 조릿대경계선 따라서 내려서면 아래사진에 나오는 그림처럼 움푹한 곳 나오는데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잡풀에

가려진 길 찾아 진행하면  외 딴집 나타나니 다음은 포장도로 따라 사우정에 갈 수 있다.

 

왼 쪽길 역시 조릿대경계를 따라서 내려서면 사우정 뒷쪽으로 곧 바로 내려설 수 있다.

 산죽지대는 원형으로 이루어진 좁은 군락이므로 경계선을 따르면 된다.

외딴집과 사우정 뒷쪽에서 오르는 길이나 사우정 지나 외딴집 뒷편으로 오르면 된다.(17:15분 산행종료)

 

사우정

옛 날 다정한 네 명의 선비가 명승지를 찾아 산천유람하다 이곳에 오니 주변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영원히 변치않을 우정을 다짐하고 정자를 세우고 사우정이라 명명하였다.(우리도 이러한 우정으로 살면 좋을텐데..요즘 일말의 사태를 지켜보는 심기가 불편하다)

 

사우정의 사우(四友)는 고산(高山).유수(流水).명월(明月). 청풍(淸風)이다.

 봉황산(버스안에서)

 화령의 석양

 

산행 후 화북에서 상주행 버스가 18시에 있으므로(막차) 이 차를 타기 위해 서둘러 지나는 트럭 히치하니 인천분이시네~~

아침먹던 집(시루봉식당)에 들려  하산길에 채집한 버섯을 보여주며 물어보니 먹버섯으로 식용 가능하다고...

막걸리 한 통시켜 마시고 계산하려 하니 그냥 가시라 한다.(고맙수다)

 

상주행 막차 타고 처가집에 들리니 장모님만 계신지라 용돈 쬐끔 드리고 목욕탕에 들리고 PC방에서 시간 보내고 하여,비재까지 산행을 끝내고 찜질방에서 목욕까지 끝내고 나오는  대간팀과  합류하여 夕食식으로 국밥에  한 잔!

 

인천에 도착하니 월요일 새벽이네!!

이거종 대장님과 캔으로 마지막까지 한 잔~

집에 오니 아들 놈 학교 갈  준비마치고 아침먹고 있더라..........

06시 30분이던가?


후기:

 

산행 길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간혹 나타나는 암릉구간이 긴장감을 불어 넣지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구간으로 보인다.

 

청화산에서 갈령까지 이어지는 우복동천 환종주길은 백두대간과 중복되는 구간으로 밤티재에서 문장대까지 암릉구간은 출입통제 되어 있는 곳이다.

 

이 구간이 어떤 이유에서 금지되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역적인 배려(산나물과 버섯)나 위험하다 하여 통제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구간을 산행 하면서 등산객을 가장한 송이 채취꾼들을 볼 수 있었다(실제로 대구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밤재~문장대 구간을 제외한 우복동천길은 산행로가 비교적 잘 정돈되어 있으나 들머리와 날머리 부분 찾는데 문제가 있으나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장거리 산행을 위주로 하는 사람들은 20여시간에 걸친 한 구간의 산행으로 즐길 수 있으며 단거리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은 3구간에 나누어 진행하면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지도참조바람)

 

끝으로

이 길이 정통코스로 옳바르게 인식 되어 져 등산메니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기 바라는 마음으로  산행글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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