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9년 11월14일 (음력:09/28) 날씨: 흐리고 강풍
산행지: 지리산(백무동~중산리)
산행자:백두사랑11팀17명대원과 감마로드회원 60여명
산행코스: 백무동~한신계곡~연하봉~장터목~천왕봉~법계사~중산리
도상거리:12km , 산행시간:8시간40분
개 요 :
지리산(地異山)
우리나라 남부지방을 동서로 나누는 백두대간의 끝머리에 크게 솟구친 지리산은 높이 1,915m, 국립공원 제1호로서 산세는 유순하나 산역(山域)의 둘레가 800여리에 달하고 행정구역상으로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함양·하동군 등 3도 5군에 걸쳐 있다.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35°27′에 위치한 거대한 이 산은 총면적이 438.9㎢이며, 전라북도에 107.8㎢, 전라남도에87.2㎢, 경상남도에 243.9㎢ 분포한다.
주능선 방향은 서남서∼동북동으로,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칠선봉(七仙峰, 1,576m)·덕평봉(德坪峰, 1,522m)·명선봉(明善峰, 1,586m)·토끼봉(1,534m)·반야봉(般若峰, 1,732m)·노고단(老姑壇, 1,507m) 등이, 동쪽으로는 중(1,875m)·하봉(1,781m)·써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또 주능선과 거의 수직방향으로 발달한 가지능선은 700∼1,300m의 고도를 나타내며, 종석대(鍾石臺, 1,356m)에서 북으로 고리봉(1,248m) ·만복대(萬福臺, 1,433m) 등의 연봉이 나타난다.
이 산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섬진강 지류들의 강력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고 산지 정상부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험준한 산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들 계곡이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의 주변에는 동쪽에 산청, 남쪽에 하동·광양, 서쪽에 구례, 북쪽에 남원·함양 등의 도시와 계곡에 마을이 발달하고 있어 원상(圓狀)을 이룬다.
지리산에는 이칭(異稱)과 별칭(別稱)이 많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리산을 그 음대로 지리산(地理山)이라 쓴 기록도 많다.
원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 말의 음사(音寫)일 뿐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인데, 두래는 달의 분음(分音)으로서 ‘두리’·’두류’ 등으로 변음하여 ‘頭流’·’豆流’·’頭留’·’斗星’·’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이 많다. 이 중 두류(頭流)는 백두산의 맥세(脈勢)가 흘러내려서 이루어진 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지리산(地理山)·두류산(頭流山) 등이 지리산의 이칭이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삼신산은 중국 전설의 발해만(渤海彎)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州山)으로, 이곳에 신선(神仙)과 불사약(不死藥)과 황금(黃金)·백은(白銀)으로 만든 궁궐이 있다는 《사기 史記》의 기록이 있는데 지리산은 이 중 방장산에 대비가 된다. 그밖에 봉래가 금강산, 영주가 한라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신산(四大神山)이라 하고, 그에 구월산을 합하여 5대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나 지리산을 신산(神山)으로 꼽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서산대사 휴정(休靜)은 지리산을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壯而不秀)고 표현하였다. 또《팔역지 八域志)》의 저자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산수론(山水論)에서 지리산을 조선의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에 해당되며 12종산(宗山)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호남읍지》, 신경준(申景濬)의《산수고 山水考》, 《대동지지 大東地志》 등에도 모두 지이산(智異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특히《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류산·방장산·지리산(地理山)·남악 등의 이칭이 소개되어 있고, 두류의 류(流)자는 백두산의 맥이 잠시 정류(停留)하였다 하여 류(留)로 씀이 옳다는 제안도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두류산(頭留山)이라는 이칭이 하나 더 추가된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간행/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32쪽 참조
진행도
산행글
2009년9월30일 아침 00재건축조합 130여세대의 개발이익을 위해 주민설명회 한번 없이 기습적(야간작업)으로 이전하려던 345천KV고압송전탑 반대시위에 참여하여 43일간의 단식시위로 체중이 13kg이나 줄다보니 구토와 하혈은 극심한 빈혈로 이어져 어지럼증에 걸어다니기조차 힘들게 하고~~
설상가상으로 철탑시위 문제로 3건이나 고소당하여 산행일 14시 부평경찰서에 출두하는 애기엄마의 안위가 걱정되여 산행에 참여가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으나, 사전 약속에 의한 것이니 내 걱정하지말고 다녀오라는 애기엄마의 말에 저하된 체력때문에 산행은 힘들더라도 축하는 해야 했기에 동행을 결정하였다. (오른쪽 구글지도참조)
금요일 저녁 21시30분경 부평역에서 이거종대장님 만나고 신림역에서 강타자님 만나서 사당으로 가니 출발시간 30여분 남아 있으므로 미처 저녁식사를 하지못한 이대장님에 맞추어 근처의 음식점에서 파전에 막걸리 마시고(나는 사이다)11시가 다 되어 출발장소에 도착하니 갱비님을 비롯하여 감마로드 회원님들이 반갑게 맞이 해 주신다.
맨 마지막으로 합류하는 지리산(네살박이 막내와 함께)님 도착하여 대전으로 이동, 이정훈과 천사총무님 합류하고 금산휴게소에서 육계장과 순부부로 때 이른 아침(02시경)을 먹고 성삼재(04:30분)에 도착하니 매서운 바람속에도 대구와 전국에서 온 산님들 기다리고 있어 반갑게 인사 나눈 후 곧바로 산행길 접어드나 나는 함께 할 수 없으니 마음깊이 찾아드는 쓸쓸함은 어쩔 수가 없구나.
그래도 자칭 산꾼이라 중간지점에서라도 출발하여 천왕봉에 도착하는 대간사랑11팀은 맞이해야겟기에 백무동에서 출발하기로 하고 마음씨 좋은 여사랑님께 백무동에 내려달라고 부탁하니 군소리없이 태워다 준다(고맙소이다)
백무동에 도착하니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이라 가로등불빛 반짝거리는 주차장에서 산행을 준비하는데 세차게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은 오늘산행의 어려움을 알려주려는 서곡인가?
가네소폭포를 지나 연하봉과 새석으로 나누어지는 삼거리에 도착할 때 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 하였으나........
다음부터는 조릿대를 스쳐 지날 때 마다 옷깃에 젖어드는 이슬과 싸움으로 장터목에 도착할 때 까지 저체온과 싸워야 하는
악전고투의 연속이였다.
04:45분 성삼재를 시작으로 마지막 구간을 위하여 천왕봉으로 가고 나는 백무동으로 가야했다.
05:50백무동에 도착 산행준비하다.
백무동의 유래
한신계곡을 따라 상.중.하백무동으로 이어지는 전체를 백무동이라 한다.
백무동의 백무는 百巫. .百霧.百武 등으로 부르지만 현재 행정지명은 百武洞이다.
百巫 :그 옛날 천신의 딸 마고가 지리산에 내려와 반야도사와 혼인하여 백 명의 딸을 낳아 모두 무당으로 길러 세상에 보냈는데
이들 백 명의 무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百巫(당골)洞이란 說과 백명의 무당이 있어 “백무동”이라 했다는 說
白霧:높은 지대에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마을이라 하여 白霧(안개골)洞이라 했다.
百武:백 명의 무인들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百武(무사골)洞 등 여러 가지가 있다
06:03하동바위와 한신계곡 갈림길
한신계곡( 寒新溪谷)의 유래
1.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물이 차갑고 늘 신선하다는 의미로 寒新溪谷
2.중국의 한신장군이 잠시 피신했던 곳 또는 漢나라 장수 韓信을 모시던 무당들이 수도를 했던 곳에서 韓信溪谷이라는 說이 있다.
첫나들이폭포
한신계곡은 금요일 내린 비로 인하여 여름철의 수량에 못지않은 장관을 연출하였다.
바람폭포
07:03 가내소폭포
傳說
옛날 한 도인(道人)이 이곳에서 수행한 지 12년이 되던 어느 날, 마지막 수행으로 이곳 ‘가네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 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도인은 ‘예잇! 나의 도(道)는 실패하고 말았네. 나는 이제 그만 가네.” 하며 이곳을 떠났습니다. 이후에 이 사실이 회자(膾炙)되었고 사람들은 이 소(沼)를 ‘가네소’라 불리게 되었습니다.(가네소폭포 안내글에서)
소(沼)
오층(련)폭포
설악의 흘림골의 십이폭포처럼 오층으로 되어 있어 "오층폭포"라 한다.
07:36가네소 폭포를 지나 안부에 도착하면 연하봉과 세석으로 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삼거리 나타나고....
어디로갈까? 망설이다 주저없이 연하봉길을 선택한다.
이 쪽의 산줄기 중 유일하게 오르지 못했던 가지능선이기에 마음은 설레임으로 출렁거리나 언덕배기를 10여미터만 올라도 턱 밑까지 차 오르는 가쁜 숨 몰아쉬기 십지않아 조금은 망설였으나 성삼재를 출발한 백두사랑11팀과 감마로드회원들의 장터목대피소 도착시간을 어림잡으니 14시경쯤 될 것 같아 쉬엄 쉬엄 오르다 보면 내가 먼저 도착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섰기 때문에 감행하기로 하었다.
그러나
발목을 붙들어 매는 물기에 젖는 낙엽의 미끄러움과 조릿대의 이슬의 촉촉함은 머지 않아 신발을 젖게 만들더니 개구리 울음소리 들려오고 ... 바람은 어찌나 차갑던지 저체온 오지 않을까? 걱정되어 체온유지를 위해 적당이 속도조절 해 보지만 가쁘게 차오르는 숨소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케 하는 악전고투의 연속이더라.
한신계곡
능선의 전망바위에 올라 조망 해 보는 백무동(먹구름으로 인하여 조망이 좋지않다)
10:00연하봉(煙霞峰)
명성봉 아래로 흐르는 연하천과 동떨어져 있는 煙霞峰은 1970년대초 지리산산악회의 전신인 연하반산악회의 “연하반”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그 이전에는 지명이 없는 무명봉(無名峰)이었다.
지리10경(지리10경은 1.노고단의 구름바다 2.피아골 단풍 3.반야봉의 해지는 경관 4세석 철쭉, 5.불일폭포, 6.벽소령의 밝은 달 7.연하선경(煙霞仙景) 8.천왕봉 일출 9.섬진강 청류(淸流) 10.칠선계곡 등이다)중 .제7경인 연하봉의 주변의 연하선경은 고사목의 전시장이다.
민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현장이었던 이 곳은 제석봉과 함께 고사목지대로 유명한 곳(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불을 놓아다고 전해지고 있음)인데 살아서 "천년.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나무와 기타 수목들이 불타 앙상한 뼈만를 드러내고 있어 이 곳을 찾는 수 많은 이들에게 자기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같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연하봉에서 한신계곡 가내소폭포로 이어지는 지능선일대는 원시림과 조릿대 지대로 제멋대로 자란 아름들이 나무들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수명이 다해 고사(枯死)되어 넘어져 있는 놈이나 서 있는 놈들의 모습은 마치 태고적(太古的) 神秘를 느끼게 한다.
연하봉(煙霞峰)
살아 천 년 ! 죽어 천 년!
삶과 죽음이 다를 것 무엇인가?
우리네 생확속에 공존하는 것을...
이제는 실리보다 명예를 소중히 해야 할 지천명!
인간의 끝 없는 사욕은 자신을 무너뜨릴 뿐 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으니
아낌 없이 주련다....
10:14
장터목대피소에 도착하니 취사장은 장터를 방불케 하지만 나는 먹을게 없으니....
구름할배님이 백무동에서 올라오신다는 이야기 들었는데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여 포기하였지만
거짓말처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우리는 기쁜 마음에 대간팀의 전갈이 오기까지 4시간 15분동안 대피소에 머물면서 그 동안 나누지 못했던 회포도 풀고 하면서
산행팀 기다리고 있는데 비파님과 달려님 그리고 양구봉님 선두로 도착하고 한참을 기다리자 드디어! 대간팀의 천사님으로부터 전갈이 온다.
감마로드팀은 날씨관계로 장터목에서 곧장 중산리로 하산하기로 하고 대간팀만 천왕봉으로 진행하기로 결정 했다는 것이다.
날씨도 춥거니와 국림공원은 일몰전에 하산을 완료해야하기 때문에 14시 이후에는 천왕봉 오르는 것은 통제(기상악화로 한시간 앞당김)가 되므로 모두가 오를 수는 없으니 대간팀만 진행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다. 현명한 결정이다. 대간졸업은 해야하니까...
그러나 저들의 발걸음은 천왕봉까지 40분이면 충분할 것이고 나는 1시간30분은 족히 걸려야 할 것이기에 먼저 출발해야겠다고 결정하니 구름할배님 동행 해 주신다.
가는 길 내내 피어오르는 상고대는 얼마나 이쁜지...자연의 신비는 이 처럼 오묘하다.마루금을 사이에 두고 왼 쪽은 백색의 천국이요.오른쪽은 낙엽지고 앙상한 갈참나무들 사이로 靑綠을 뽐내는 주목나무와 소나무의 싱그러움이 강풍으로 굳어져 가는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하다.
장터목의유래
.장터목은 옛 날에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주민과 북쪽 기슭의 마천 주민들이 이곳에서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하는 장터를 형성하면서 온 지명이다. "목"은 제석봉과 연하봉 사이 안부에 속하는 고갯마루(백무동과 중산리를 넘나드는 고개)에서 왔다(장터+목)
14:30분 장터목을 떠 난다. 제석봉 가는 길에서..
언제나 웃음이 떠나지 않은 인자하신 구름할배님.
김장 잘 하셨습니까?
통천문 가는 길에서...
통천문 가는 길에서....
통천문 가는 길에서...
통천문 가는 길에서...
통천문 가는 길에서...
통천문 가는 길에서...
15:03 통천문
시인 고은의 詩에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천왕봉 오름길에서 조망하는 북사면.
천왕봉 가는 길에서...
천왕봉 가는 길에서...
천왕봉 가는 길에서...
천왕봉 가는 길에서...
요즘 케이블카 설치 반대 단독시위 중이다.
오랫만에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건강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성부 시인의 "지리산에 가거든" 시한 편 고마웠습니다.
천왕봉 빙암(氷巖)
천왕봉 (김일손)
흰 구름이 산골짜기에 자욱하니 푸른 바다 물결은 포구를 이루었고
흰 파도가 눈을 몰아내니 산뜻한 섬이 되어 점점이 깔린 듯 하다.
돌담에 몸을 기대고 위 아래를 바라보니 정신도 마음도 한 가지로 막막하여
몸이 태초의 공간에 안긴채 하늘과 땅과 더불어 흘러가는 듯 했다.'
15:23 천왕봉 정상에 도착한다.
04:06
대간사랑팀!
드디어 천왕봉에 도착하다.
그러나 체감온도 -30도에 달하는 추위와 강풍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한 채 기념사진만 남기고 중산리에서 만나기로 한다.
에필로그:대간팀의 후미그룹이 장터목에 도착한 시간이 15시가 가까워오자 공단측에서 하산을 종용했나보다
사정하여 천왕봉에 가기를 원하자 배낭은 대피소에 내려놓고 다녀오라고 하였던가 보다.
하여! 베낭을 맨 선두팀은 법계사로 하산하고 후미팀은 천왕봉에서 장터목으로 백업하여 베낭챙겨서 칼바위골로 하산하게 되었다.
계획에 없던 이별이네~~
16:53분 법계사를 지나고
17:45분 포장도로와 만나는 날머리 지점에 이르니 법계사 셔틀버스 기다리고 있어 1000원 보시(갱비님이 7명의 교통비 지불)하고 중산리주차장까지 편하게 갈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20:17 그 후로 칼바위골로 내려오는 대간팀과 합류하여 진주로 이동하고 갤러리아백화점 근처에 있는"금강산식당"에서 감마로드 탄생과백두사랑11팀의 축하연(감마로드선포과 종주패전달식)이 함께 열렸다(메뉴는 꼼장어와 해물탕에 소주와 맥주)
선물:산여울님께서 손수 수작업하여 선물하신 수공예품과 지리산님의 머풀러도 선물받고...(땡큐)
행사는10시가 넘어서야 끝나고~~~
남해의 백두사라11팀 해단식
감마로드회원들과 헤여진 대간팀은 남해로 이동!
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김선희님의 싱싱한 횟감에 곁드린 김선희님의 도라지주 환상의 궁합이더라.
그런데 난! 마시지 못하니 안주나 축낼 수 밖에~~
이거종 대장님의 선언으로 백두사랑11팀 공식해체하다.
우는 사람도 있더라~~
소호산과 남해바다
다음날 아침! 우럭매운탕에 해장으로~~캬~
처음으로 한 잔 해 부럿다.
민박집
대구로 가는 길에 창선휴게소에서 또 한잔!
07:48 와룡산
11:02 창선대교에서 조망하는 사천시
15:58 대구 평리동에 있는 뽈찜식당
대구로 이동하여 뽈찜(대구)에 또 한잔!
그리고 대전에 들려 이정훈님과 천사님 내려주고 서울의 사당에 도착!
16:52 오는 길에 잡아 본 구미 금오산
11월15일21:33분 서울에 도착!
헤여지기 아쉬워 ~~
사당역 사거리에 있는 새마을 식당에서 돼지껍질에 또 한잔!
그리고 43일간 머물렀던 그 자리(철탑)으로 돌아가니~~
12:20분을 지나고 있더라!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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