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17년02월04일, 날씨:맑음
산행지+남한산성
산행코스: 마천역~성불사~연주봉(웅성)~서문~남문~동문~북문~서문~마천역
산행거리=14.2km,. 산행시간=5시간30분
소모칼로리=3461kcal
남한산성(南漢山城)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한산성 [南漢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수어장대(守禦將臺)
1972년 5월 4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1층 면적 105.08㎡, 2층 면적 43.29㎡이다.
1624년(인조 2)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지은 4개의 수어장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중요한 건물이며, 수어청의 장관(將官)들이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다. 하부 구조는 자연석을 허튼층으로 쌓은 낮은 축대 위에 한 단 높여 다듬은 돌로 기단을 마련하고, 맨 바깥 둘레에는 8모뿔대 주춧돌을 세우고 안두리기둥 밑에는 그보다 낮은 반구형(半球形)의 주춧돌을 받쳤다.
기둥은 모두 민흘림 둥근 기둥이고, 1층은 초익공, 2층은 2익공으로 되어 있다. 가구(架構)는 5량가(五樑架)로서 고주(高柱) 위에 대들보를 건너지르고 그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마루보를 받쳤다. 지붕마루는 모두 양성바름을 하였고 기와골 끝에는 막새를 사용하였다.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아래층 내진의 북동쪽 칸에 설치되어 있으며, 단청은 모로단청이다. 바깥 정면에 ‘守禦將臺’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무망루(無忘樓)’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수어장대 [守禦將臺] (두산백과)
남문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남문(南門)이다.
남한산성 서남쪽 해발 370m 지점에 있다. 선조 때 남문·동문 등을 수축(修築)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그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산성의 사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산성으로 피신할 때 이 문을 통과하였다.
정조 3년(1779년) 성곽을 개축하면서부터 지화문이라 불렀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75m·폭 3.35m·길이 8.6m이며 홍예기석 위에 17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홍예문 좌우 성벽은 자연석을 수평줄에 맞춰 막돌 쌓기로 축조한 것이다. 1976년 복원된 문루는 정면 3칸·측면 3칸 규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한산성 지화문 [南漢山城至和門] (두산백과)
동문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동문(東門)이다.
남한산성 남동쪽에 있으며 남문(南門)인 지화문과 함께 사용빈도가 가장 높았던 성문이다. 조선 선조 때와 인조 2년(1624)에 수축(修築)하였으며 정조 3년(1799) 성곽을 개축한 후부터 좌익문(左翼門)이라 불렀다. 성문은 홍예문으로, 높이 4m·폭 3.1m이며 홍예기석 위에 9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들었다.
낮은 지대에 있어 성문을 지면에서 높여 계단을 구축하였기 때문에 우마차를 이용한 물자수송이 불가능하였다. 문루는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로 홑처마를 두른 팔작지붕 양식이며 용머리는 망와로 마감하고 연등천정으로 꾸몄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한산성 좌익문 [南漢山城左翼門] (두산백과)
장경사(長慶寺)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남한산성(南漢山城) 안에 있는 절.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5호.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남한산성 축성 때 팔도의 역승(役僧)들의 숙식을 위하여 창건한 사찰로, 그 당시에 있던 9개 사찰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사찰이다.
축성 당시 나라에서는 각성(覺性)을 도총섭(都摠攝)으로 삼고 전국의 승려를 번갈아 징집하여 사역(使役)을 돕게 하였는데, 각성은 1638년(인조 16)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 효종이 북벌(北伐)을 계획하였을 때에는 이 절에 총섭을 두어 승군(僧軍)을 훈련시키는 한편, 성내의 8개 사찰뿐 아니라 전국의 승군을 지휘하는 국방사찰(國防寺刹)의 소임을 담당하였다.
그 뒤 고종 때까지 250년 동안 북한산성과 함께 남한산성에도 전국에서 뽑은 270명의 승려들로 교체하면서 항상 번승(番僧)을 상주입번(常駐立番)하게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 승병들의 국방활동의 일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당우로는 동향한 정면 3칸의 대웅전을 비롯하여 진남루(鎭南樓)·칠성각·대방(大房)·요사채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장경사 [長慶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북문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북문(北門)이다.
남한산성 북쪽 해발 365m 지점에 있는 북문으로, 이 문을 통해 세곡을 운반하였다. 인조 2년(1624)에 신축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한 후 전승문(全勝門)이라 이름 붙였다. 현재 편액은 걸려 있지 않다.
성문은 홍예기석 위에 10개의 홍예석을 쌓아 만든 홍예문으로 높이 3.65m·폭 3.25m이다. 성벽의 두께는 7.1m에 이른다. 단층의 문루는 정면 4칸·측면 2칸 규모이며 겹처마를 두른 팔작지붕을 올렸고, 주심포 양식의 민흘림 기둥을 세웠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한산성 전승문 [南漢山城全勝門] (두산백과)
서문
서문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에 있는 남한산성의 서문(西門)이다.
남한산성을 처음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정조 3년(1799)에 개축하여 우익문(右翼門)이라 부른다. 1637년 1월 30일 인조가 세자와 함께 청나라 진영으로 들어가 항복할 때 이 문을 통과했다고 한다.
서쪽 경사면이 가파르기 때문에 물자를 이송하기는 힘들지만 서울 광나루와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성문은 반원형 홍예문이며 높이 2.5m·폭 2.1m로 작고 좁다. 문 안쪽에는 2짝의 목재 판문이 있다. 정면 3칸·측면 1칸의 문루는 겹처마의 팔작지붕 양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남한산성 우익문 [南漢山城右翼門] (두산백과)
도심권 산행에 있어 가장 편하고 쉬운 산행코스 중 하나인 남한산성길을 가기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선다.
백운역에서 05시19분 전철타고 신도림에서 내려 교대역까지 2호선 이용하고~
교대역에서 오금역까지 3호선 그리고 오금역에서 5호선으로 바꾸타고 마천역에 내려 산행 준비하니
07시 10분이라~~
성불사 가는 길을 따라 산길에 접어든다.
연주봉 오름길에 만나는 무당집 옆 약수터를 지나 연주봉에 오르니 정상에는 커라단 옹성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성벽을 따르는 산행은 서문을 지나고 청량산 정상에 자리잡고 있는 수어장대에 도착!
한 참을 머물다~~~
남문을 지나고 검단산을 조망할 수 있는 성벽을 따라도니 어느 새 동문에 이른다.
동문을 출발하여 장경사에 들려 경내를 둘러보고 남한산에 도착!
벌봉(750m거리)을 돌아올까?
망설이다
날씨도 춥고 컨시션도 별로 좋지 않아 곧 바로 북문으로 진행하였다.
북문에 도착하니 행궁방향에서 올라온 수 많은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그들과 함께 서문으로 향했다.
서문을 통과하여 성골로 하산길 택하여 마천역에 도착!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