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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7회차(삽당령~백복령)9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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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해 2005. 8. 16.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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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5년 08월14일(음력:7/10(末伏)) 날씨 : 맑음(바람심함)


산행지:백두대간9회차(삽당령~백봉령)


산행자: 백두대간 종주팀(산벗모임)


산행코스 : 삽당령~두리봉~석병산~헬기장~가시잡목지대~노송지대~생계령~임계카스트르지형지대~백봉령


산행거리 : 18.5km. 어프로치 : 없음


산행시간 : 09시간13분

석병산(일월봉)에서 360각으로 조망 해 보는 우리의 산하!


 

개요


이번에 이어가는 백두대간 9구간은 강원도를 영서와 영동으로 가르는 대간의 마루금을 따라 오대산을 지나면서 청옥산과 두타산으로 이어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두리봉과 석병산 그리고 백봉령구간이다.


특히 이 구간에는 석고암으로 형성된 동굴들이 곳곳에 산재 해 있는데 이러한 지형을 카스트르 지형이라 한다.


1. 봄이면 철쭉으로 유명한 두리봉(두위봉이라고도 한다)은 삽당령과 석병산의 중간에 위치하며,  산의 모양이 두루뭉실 덕스럽다 하여 이러한 지명이 지어졌다 한다.


지형도상 한자표기는 두위봉(斗圍峰)으로 표기하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두리봉이라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아마도 발음상 “위”가 “리”로 발음되기에 자연스럽게 두리봉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두리봉의 등산로는 함백의 단곡계곡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등산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코스이며. 이것은 함백에서 열리는 두리봉 철쭉제와 연관이 있기도 하지만 비교적 산행길이 쉽기 때문일 것이다.


2.석병산은 백두대간 마루금이 두리봉에서 청옥산과 두타산을 향 해 남진하다가 동해의 절경에 반해 떨어뜨려 놓은 산으로 기암괴석과  동해바다의 수평선의 바라보는 경관이 일품인 산이다.


카스트로 지형인 석병산 아래의 안부(계곡)를 깎아지르듯  병풍처럼 둘러싸인 기암괴석의 절경에 석병산이란 이름이 지어졌다고 하는데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절경은 운악산의 병풍바위 못지않은 경치를 자랑한다.


석병산 정상에서면 야간 산행시 발 아래 펼쳐지는 강릉시의 야경은 동양의 나폴리를 연상할만한 황홀경의 극치를 자아내며, 주간 산행시 석고암으로 이루어진 산세와 곳곳의 동굴은 자연이 우리에게 선물한 무한한 신비에 한 없이 빨려들게 한다.


3.카스트르지형은 석회암지역에 발달하는 특수한 침식(용해침식,용식)지형의 총칭.

명칭은 유고슬아비아 북서부 카스트르 지방에 가장 전형적으로 발달되어 있는데서 유래한다.


용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지형은 특히 석회암지역에서 잘 나타나는데 이것은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탄산가스를 포함한 빗물이나 지하수에 용해되어 만들어지는 종유동,돌리네,우발라,폴리네,카렌펠트등의 특수한 지형을 말한다.


용식으로 인한 카스트르 지형은 석회암층이 얇거나, 한랭 건조한 지역에서는 발달하기 어렵다. 적당한 강수량이 있는 지역에서는 비가 석회암 속의 갈라진 틈으로 침투하여 서서히 석회암을 용해하여 땅 속에 물의 통로를 종횡으로 만든다. 이때부터 카스트르 지형의 일련의 계통적인 용식과정을 거친 지형변화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카스트르 윤회라고 한다.(야휴백과에서 인용)


4.카스트르 지형을 지나면 백두대간 9구간의 종착역인 백봉령에 다 다른다.

백복령은 복령(소나무 뿌리에서 야자처럼 둥글게  자라는 한약재)이라는 약초가 있는데 이중에서도 백복이 많이 자생한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 백복령이다.


백복령은 3개 시,군에 걸쳐있는 삼각점으로 동해바다를 조망할 수 있지만 00시멘트회사에서 원료채취를 위 해 동해안쪽의 산자락을 중턱까지 파들어간 대간의 맥이 잘라지는 아픔을 보게 되는데 관계당국과 시멘트 원료채취회사에서는 하루빨리 대간의 맥을 이어 우리나라의 정기를 바로 세웠으면 하는 것이 대간을 하고 있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의 바램이다.

입체지도(마이너님제공)

 

고도표!

 

산행전

 

일주일을 해답 없는 업무(재판)에 시달리고 2년 전 성화에 못 이겨 가족회의 결과 아파트로 옮기기로 하여(개인적으로는 단독주택은 선호하지만) 분양받은 아파트로 이사를 하다 보니 어느 새  일주일 되어 무박으로  대간 길 떠나는 토요일이다.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 동안 일어난 사건들 중에  별의 별 일들이 다 있지만,

전철이 지나는 철로변이라 항공기 이착륙 때 들리는 공항주변에 버금가는 소음에 적응하려면  2~3개월의 세월이 지나야 한다는 동변상린의 아픔을 겪고 있는 분들의 충고에 공감하면서 아직도 사욕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한심한 작태를 보면 절로 한숨만 나올 뿐이다.


이에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자 산행준비하면서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 나 여기에 옮겨보고자 함에 따지 걸고 나오는 사람들 있을까?

심히 걱정되지만 중이 절 싫어 떠나는 마음으로 인용 해 보고자 한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 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요포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 뿐 이오”


마하트라 간디가 1931년 9월 런던에서 열린 제2차 원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도중 마르세유 세관원에게 소지품을 펼쳐 보이면서 한 말이다.<k.크리팔라니가 엮은 간디 어록을 읽다가 이 구절을 보고 나는 몹시 부끄러웠다. 내가 가진 것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지금의 내 분수로는>


사실, 이 세상에 처음 태여 날 때 나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었다.

 살 만큼 살다가 이 지상의 호적에서 사라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것저것 내 몫이 생기게 된 것이다.

물론 일상에 소요되는 물건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꼭 요긴한 것 들 만일까?

 살펴볼수록 없어도 좋을 만한 것 들이 적지 않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 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중략-


간디는 또 이런 말도 하고 있다.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 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 한다는 것. 그러나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는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한다.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 볼 새 없이 들뜨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 한 번은 빈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이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떠나갈 것이다. 하고많은 물량(物量)일지라도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 해 볼 교훈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이 글을 되 새겨 보며 지난 봄 강화도 고려산 산행을 하면서 일만 성철용 선생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다른 카페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서 산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게 하시면 어떻겠느냐? 는 질문에 “마무리 되어 가는 인생길에 서서히 족적을 지워가는 중이라 지금까지 활동에 만족하며 자신의 뜻을 감사히 받아 준 인터넷 동호인에게 감사 하노라고.........

 

산행글

 

지난 7월 점봉산행에서 마루금 밟아 보지도 못하고 가리봉으로 빠져 밤새 내리는 비 때문에 허리의 통증이 재발하여 대간길에 동행하지 못하던 요물님이 이 번 산행에 동행 하기로 하여 모처럼 버스정원을 채운 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접어 들어 강를방향으로 출발을 하지만 막바지 휴가와 13일부터 이어지는 황금의 휴일에 정체된 고속도로는 좀 처럼 숨통을 열여주지를 않습니다.

 

03:22

평소에 3시간 30분이면 족하던 길이 5시간20여분만에 산행의 목적지인 삽당령에 도착하고.....

03:29

단체사진을 찰영한 후 어둠속의 대간길로 접어 드는 시간입니다.

이 번 구간은 비교적 산행 거리가 짧기 때문에 모두들 쉽게 생각 하지만 글세요?

대간길이 쉽게 산행을 마치도록 허락 해 줄지 아직은 모릅니다.

04:16

두리봉 방향의 들머리를 찾아 잠시 오르다보면 곧 바로 임도가 나타나는데 야간산행의 특성 상 좁은 시야 때문에 무심결에 임도를 따라 오르면 알바를 하게 되지요?

 

들머리에서 임도를 만나면 곧바로 크로스 횡단하여 들머리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여시서부터 된비알이 약15분동안 지속 되는데 처음부터 맞이하는 된비알이라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감수해야 합니다.

 

된비알을 치고올라 주 능선에 올라서면 숨을 고를사이 없이 두 갈래 길을 만나는데  여기에서 생각없이 산행을 진행하면 삽당령으로 다시 내려가게 됩니다.

 

대간의 마루금은 왼쪽으로 90각으로 꺾여 있으니 알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팀의 후미조도 20여분 알바를 하였습니다)

 

05:17

공터에서 두리봉 오르는 1시간은 철쭉길과 산죽길이 우리를 반겨 줍니다.

이 구간의 흐름은 비교적 평지길이지만 키를 넘기는 산죽이 양 어깨를 스치는 소리와 철쭉나무의 터널이 마음을 한 없이 포근하게 해 주기 때문에 야간산행의 고독을 잊게 해 주는 환상의 코스입니다.

 

두리봉 정상에는 표지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초라해 보이지만, 언제나 포근하게 다가오는 표언복 교수님의 표지판이 지나온 길과 가야할길의 안내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일출이 조금은 이른 시간이기에 부지런히 가면 석병산에서 볼 수 있을것 같아 요물님을 독촉하여 발걸음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 합니다.

05:51

석병산이 바라다 보이는 안부에 도착을 하니 카메라 앵글을 잡기도 힘들게 불어오는 바람이 약간의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

 

그래도 석병산의 아름다운 암릉을 볼 수 있게 구름을 거두어 간 바람이 반갑게 느껴집니다.

대간을 하면서 아직 한 번도 일출을 보지 못했기에 오늘은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마져 들지만..

06:02

석벽산 정상인 일월봉에 오릅니다.

구름에 가려 일출은 볼 수 없지만 정상에서 360각으로 조망 해 보는 우리의 산하는 정말로 아릅답습니다.

 

서 있기도 힘든 세찬 바람이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산하를 볼 수 있다는 감동에 모든 시름을 잊어 봅니다.

두리봉과 석병산을 감싸고 돌아서 거대한 카스트로 지형의 계곡을 형성한 단애로 이렇게 멋진 암릉을 만나 보지만 마루금에 벗어나 있기에 오르지는 못하고 사진으로 한 컷 남겨 봅니다.

마루금 방향의 암릉에 오르진는 못하지만 애처롭게 피어 있는 야생화의 향연이 내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06:10

가야할길이 멀기에

06:14

구름속으로 비쳐주는 햇살을 담아서 마루금을 이어 갑니다.

06:34

먼저 이 곳에 도착하여 간식을 들고 계시는 중간팀을 만나서 주목님이 따라주시는 양주한 잔에 무심님의 포도를 안주삼아 목을 축이고 나침판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다음길을 이어 갑니다.

07:05

헬기장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합니다.

07:42

멧 돼지가 지나간 자리에는 잡초만 무성합니다.(아마도 2~3년은 지난듯한 자리입니다)

07:47

아!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자병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지만. 산 허리가 동강나 버린 현실앞에 말문이 막혀 버립니다.

 

대간길을 우회하게 되어 있고 자병산자락으로 이어지던 대간길은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08:12

지나 온 석병산

08:28

다른 각도에서 잡아봅니다.

09:28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다음에 별도로 시간내어서 이 곳에 다시올것을 혼자만의 약속으로 남깁니다.

이 구간의 마루금에 대하여 말들이 많은데 (실제로 대간의 지도에 보면 두 개의 코스로 되어 있으며 다녀 온 사람마다 해석이 틀리는 구간이기도 함)원점 산행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진행한 반대쪽의(임계쪽) 능선입니다.

소나무 숲

함몰지를 지나

마지막 헬기장터로 보이는 이 곳에서 숨이 턱에 찰 정도의 된비알의 오름이 시작되는 구간입니다.

 

함께하던 일행중에 여성분이 갑자기 통중을 호소하기 시작하는데 고소에서 오는 기운과 체내의 기온이 충돌하여 기혈이 막힌듯 합니다.

 

일단은 요가요법과 수지침으로 엄지손가락 손톱윗부문에 침을 놓으니 시커먼 피가 나오고..

조금은 괜찮은 듯 하였지만 본인의 입장에서는 엄청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3km이상이 남아있는 하산길에 이대로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판초우의를 깔아 여성분을 눕혀 드리고 신발을 벗게하여 엄지발가락에 수지침을 놓아 드리고 남편분에게 발바닥 맛사지를 해 드리게 하고 요물님이 가져온 미숫가루에 목축임을 합니다.

 

 

11:25

임도를 만나는 이 곳에 선두팀은 09:00에 지난 표적을 발견하지만 우리가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합니다.

 

임도를 따라 오르다가 다시 마루금으로 접어들어 처음 만나는 철탑까지의 된비알을 오르는 여성분의 힘들어 하시는 모습에 어쩔 수 없이 비상수단을 쓰게 됩니다.

 

언제 닦칠지도 모르는 릿지 구간을 대비하여 가지고 다니는 안전확보줄을 풀어 팔목에 걸게 하고 앞에서 영차를 외치며 된비알을 치고 오르니 함게하던 분들이 뒤에서 밀어주고 하여 철탑가지 무사히 도착 합니다.

 

그 동안 산벗모임회장님께서 선두팀에게 무전으로 연락을 취하여 유가대장님께서 올라 오시고 닉네임이 기억 나지는 않지만 비상약까지 가지고 오신 분의 도움으로 복용가지 시키고 나니 내 임무는 끝 난 듯 합니다.

 

뒷 일은 유가 대장님게 인수하고 본연의 임무인 야생화를 찍어가며 모처럼만의 홀가분한 기분을 느껴 봅니다.

첫 번째 만나는 45번철탑!

12:19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오간데 없고.....

자병산의 마루금이 이미 없어져 버리고 계곡물이 흐르는 우측으로 나 있는 임시방편의 마루금을 밟아가야하는 우리의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개발도 좋고 먹고 사는 것도 좋지만 보전해야 하는 길은 보전해야하지 않을까요?)

12:35

자병산 자락의 마루금은 이미 없어져 있지만 44번 철탑을 지나고  00시멘트 후문에 있는 경비실입구에서 백복령으로 향하는 소나무숲 마져 가지 못하게 가로 막는 경비원(당신이 무슨죄가 있겠습니까)과 씨름 할 기운마져 없기에 강릉방향 도로를 따라 다음에 이어가야하는 청옥 두타의 들머리에 도착 합니다.

선두와 2시간30분이 넘는 도착시간에도 불고하고 한 사람의 불평도 없는 대간을 이어가는 동료들의 너그러운 마음과  집행부에서 준비해 주는 점심식사에 막걸리 한 잔 곁드리는 순간은 이러한 훈훈한 정이 있기에 대간길은 결코 고독과의 싸움이 아니고 모두가함께 더 불어 살아가는 사회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끼는 교육의 장이기도 합니다.

 

산행후기

 

새롭게 한 살로 태여나셨다는 산신령님의 회갑!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산에서 급조된 회갑상 차림에 나누어 먹은 케익 한조각과 샴페인 한 잔은 어떤 상차림보다 훌륭하였습니다.

 

언제나 뒤에서 말 없이 묵묵히 지켜 주시는 선배님들이 계시기에 우리의 산행길은 더욱 편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후배들을 아껴주시는 마음 고이 간직할 것이고 저 역시 선배님 연세될 때 쯤이면 발자취 따라서 인품까지 닮아 가도록 하겟습니다.

 

건강 하시고 평안한 조국의 산하!

마음것 누리시길 바랍니다.

 

산행에서 뜻 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 고생하신 이름 모르는 여성분께서도 원기 회복하시길 바라며 후미조에서 끝까지 동행하여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또 한 환자를 위해 44번철탑까지 구급약과 함께 달려 오신 유가선두대장님과 에코치산님 그리고 이름모르는 분께 감사한 마음 전 해 드리며 이 번 산행 기록을 접습니다.

 

동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하루였기에 감사합니다.

 

야생화 사진은 아래를 클릭하여 보세요?

 

삽당령에서 백복령까지의 야생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