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위치 : 부산시 금정구 금정산
화엄종 10찰(刹)의 하나이며 일제 강점기 31교구의 본산 중 하나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18년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
범어사의 가람 배치는 미륵전.대장전.비로전.천주신전.유성전.종루.강전.식당.목욕원, 철당등이 별처럼 늘어서고 계곡 주변으로 360여채의 요사채를 배치 했으며 사원에 딸린 토지가 360결이고 소속된 노비가 100여 호에 이르는 대 명찰이라 하였는데 상당 기간에 걸쳐 이루어 진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버린 후 10여년간 페허로 있다가 선조 35년 중건 하엿으나 또 다시 화재를 당하였고 광해군5년 고승들의 협력으로 중창하여 요전. 불상과 시왕상,필요한 집기등을 갖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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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입구
범어사 당간지주 [梵魚寺幢竿支柱] 부산광역시유형문화재 제15호
함홍당(含弘堂) 아래의 송림 속에 있으며, 간석(竿石)과 기단부(基壇部)는 없어졌다.
지주는 좌우기둥 모두 가로 50cm, 세로 87cm에 높이가 4.5m이고, 양쪽 기둥의 간격은 79cm이다.
당간지주는 당간을 세우기 위하여 좌우에 당간이 지탱할 수 있게 세운 기둥이다. 당간은 당(幢)을 달아매는 장대이고 지주는 돌로 만들었는데 당간은 돌이나 쇠, 나무로 만들었다.
당이란 절의 문 앞에 꽂는 기(旗)인데, 이것을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 걸기 위하여 당간과 당간지주로 제작되었는데 통일신라시대부터 행하여졌다고 전해진다.
범어사에 있는 당간지주는 지금 지주만 남아 있는데, 지주의 상단 안쪽에는 직사각형의 간구(杆溝)가 있어 당간을 고정시켰다.
지주 위쪽 머리는 약간의 원호(圓弧)를 이루고, 지주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지 않다. 돌 다듬기가 고르지 않아 둔중한 느낌을 주는데 장식이 전혀 없어 검소하고 소박해 보인다.
일주문(보물 제1461)
일주문은 만법(萬法)이 갖추어져 일체(一切)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 있는 문으로 사찰 기본 배치에서 사찰 경내에 들어갈 때 가장 먼저 지나야 하는 문이다.
삼해탈문(三解脫門)이라고도 한다.
광해군6년에 묘전화상(妙全和尙)이 사찰 안에 여러 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1718년(숙종 44)에 명흡대사(明洽大師)가 석주(石柱)로 바꾸고 1781년(정조 5) 백암선사(白岩禪師)가 지금의 건물로 중수하였다고 전해진다.
사각 지둥에 세운 다른 일주문들에 비해 4 개의 石지주를 한 줄로 나란히 하여 세운 독특한 건축물이다.
종루
보제루 북쪽에 있다.
아침저녁에 거행하는 예불이나 의식에 사용하는 사물(四物), 곧 범종(梵鍾)·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를 봉안한 2층의 누각 건물이다.
이 종루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669년(숙종 25) 명학 스님이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러나 당시의 종루는 지금의 위치가 아니라 삼층석탑 맞은편에 있었다. 1910년대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구조는 2층의 누각에 앞면과 옆면 각 3칸의 규모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이다. 전에는 1층이 개방된 공간이었으나,
지금은 기둥사이를 막아 문을 가설하여 기념품 판매점으로 사용하고 있다
삼층석탑
지붕선의 곡선미는 우리 건축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기와의 멋이다.
독성전
세칸으로 나우어진 한 건물의 중앙에 위취한 타원형의 이 곳은 나반존자를 모시고 있다.
(독성전=나반존자는 같은 표현으로 천태산에서 홀로 도를 깨우침을 이른말. 즉,천태산에서 해가 뜨고 지는 것, 봄에 꽃이 피는 것.
가을에 열매를 맺는것 등 변함없이 운행되는 우주의 법칙은 깨달음)
범어사에 있는 문화재와 보물 등이다.
삼국유사(보물 제319-3호))
백의관음도(부산시지정 유형문화재 제153호)
동원년명 범어사금고(부산시지정 문화재자료 제5호)
나한전
16나한을 모시고 있다.
(현세에서 정법을 지키는 1아라한을 일컫는 말이다. 현장이 번역한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가" 에
이들의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금정산성 북문 가는길
북문
샘터
북문 근처에 있다.
금정산성(삼국시대)
사적 제215호. 길이 1만 7336m, 면적 21만 6429평. 동래온천장의 북서쪽 801m의 금정산정에 있는 한국 최대의 산성이었으나, 현재는 약 4km의 성벽만이 남아 있다.
산성의 위치 ·규모로 보아, 신라 때 왜적을 막기 위하여 축조된 것으로 보이지만 확인할 수는 없다.
"증보문헌비고"와 "동래읍지"에는 1703년(숙종 29) 경상감사 조태동(趙泰東)이 석축으로 개축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가 수축하였고, 1808년(순조 8) 부사 오한원(吳翰源)이 동문(東門)을 신축하고 성을 보수하였으며, 1824년 부사 이규현(李奎鉉)이 성내에 건물을 짓고 진장(鎭將)을 배치하였다.
1970년에 4 개 성문 중 동 ·서 ·남문이 복원되었다.
-네이버에서 인용-
금샘
한 마리의 금빛 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하늘범(梵)물고기어(漁)을 써 범어사(梵漁寺)라 했다고 한다.
범어사 창건사적에도 금샘에 대한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라의 왕이 의상대사와 함께 금샘아래에서 칠일밤낮을 화엄경을 독송하며 왜적10만병선을 물리치고 범어사를 지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여행정보
범어사와 연계하는 산행코스는 여러개가 있으나 범어사로 원전회귀할 수 있는 산행코스만 정리한다.
범어사입~북문~고담봉~금생~안부~범어사
산행거리:7.3km ,산행시간 : 4시간
교통
부산까지는 자유스럽게 이동하여 부산지하철3호선 이용
범어사역 하차한 후 5번이나 7번출구로 나와서 대로따라 2분여 동래쪽으로 내려와
90번 시내버스 이용(범어사행)
버스 승차후 5분후면 범어사 입구에 도착...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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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산행기
금정산과 범어사행! -송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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