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나는 산경표를 이렇게 본다.(월간 山 200508)
산경표는 생활권을 구분하는 산줄기다"
강과 바다를 고려하지 않으면 예외가 많은 산줄기 체계
사람들은 바다나 강에 붙어살았고, 강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면서 강의 세력이 커 가는 만큼 붙어사는 사람 또한 많았다.
산을 넘어 갈만한 교통수단이 없었던 옛날에는 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산의 세력이 약해지거나 바다에 이르러서야만 이웃 물줄기를 따라 내려온 사람들과 만나게 됐다. 만이 형성된 뱃길은 만의 꼭지에서 만의 중심으로 모이고, 만의 꼭지는 먼 바다를 어렵게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또한 이웃 바다와 경계가 된다.
그래서 육지에서는 강은 생활의 중심이요, 그 강을 가르는 산줄기는 생활의 경계가 됐다. 해안가에서는 먼 바다를 돌아가는 곳이 생활의 경계가 됐다.
산경표는 이렇게 형성된 생활권의 경계를 따르는 주된 산줄기를 중심으로 하여 그 가지들을 나열한 표다.
산경표는 선조가 물려준 위대한 유산이다. 우리들이 이 산경표를 유용하게 쓰기 위해서는 그 내용을 좀 더 깊이 살펴봄으로써 우수성을 확실히 깨닫고, 아울러 지금도 그대로 사용해야 할 것이지, 아니면 다소의 손질이 불가피한 것이지를 생각해 봐야할 것이다.
산경표는 강을 위주로 산줄기를 구분했다.
산경표의 정맥은 10대강중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낙동강. 금강등 7개의 강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 섬진강 산줄기는 호남정맥이라 하고, 두만강의 남쪽 산줄기는 장백정간이라 했으며, 압록강 남쪽 산줄기는 청북정맥이라 하여 10대강의 산줄기를 근간으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지도 위에 10대강 유역의 경계가 되는 산줄기를 그린 다음 그 산줄기들을 따라 북쪽의 중앙인 백두산에서 남해안의 중앙으로 향하는 산줄기를 이어보면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거쳐 하동의 금오산에 이르게 되며 이 산줄기가 나라의 중심산줄기가 된다(위 그림)
북쪽을 백두산에서 시작하는 것은 이곳이 물을 건너지 않고 아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라의 중심이 되는 하나의 산줄기를 만들면 산자분수령의 원리에 따라 물은 양쪽으로 나뉘게 된다. 강이나 바다를 양쪽으로 나눈다면 시작인 백두산이 북쪽 육지의 중앙이듯이 남쪽의 끝 또한 남해바다의 중앙이 되어야할 것이다. |
이렇게 만들어진 중심산줄기는 청천강과 예성강을 제외한 8개강의 산줄기들을 모두 연결하고 있다. 즉 이 중심산줄기는 8개강의 울타리고 되고 있으며(달리 표현하면 8개강 산줄기들의 대표들로 구성되었으며) ‘산경표’는 이 중심산줄기에 닿지 못한 청천강과 예성강 산줄기를 중심산줄기가 가지를 내어 참여케 하였으며 (오른쪽 그림 참조), 생활경계선을 따라 그 일부를 조정했다. 그런 다음 산 이름, 강 이름, 지방 이름을 따서 그 산줄기에 이름을 붙였다.
[위그림] 10대강의 산줄기. 붉은 테두리를 한 산줄기는 대륙으로 이어지는 관문이며, 북쪽의 중앙인 백두산에서 이 산줄기들을 따라 남해안의 중앙으로 내려서는 나라의 척량산줄기다.
[오른쪽 그림] 10대강의 산줄기 개념도. 산경표상의 산줄기 개념도다. 위 그림의 척량산줄기에 포함되지 못한 청천강과 예성강 산줄기는 대간이 가지를 내어 이어주고 있다.
생활권에 따라 일부 산줄기에 변화를 주었다.
산경표의 주요산줄기는 10대강의 산줄기를 기본으로 한 생활권의 경계선이다. 강의 경계선과 생활권의 경계선이 다를 때에는 산줄기가 끝나는 경우에는 생활권의 경계선을 따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따랐다.
예를 들면 호남지방에 속하는 남원시 운봉읍, 아영면, 인월면, 산내면은 백두대간의 동쪽에 있다. 이들은 조선시대에도 남원도호부에 속한 운봉현 이었다. 운봉은 400m가 넘는 고원지대라서 평지나 다름없는 백두대간의 여원재를 지나서 내려가면 남원에 이르게 되어 자연스럽게 남원에 속하게 되었다.
따라서 영남과 호남의 생활경계선은 운봉현의 동쪽 경계를 따라 연비산, 삼봉산, 백운산을 지나 남강의 지류인 임천을 건너서 삼정산을 오른 후 삼각고지를 지나 날라리봉(삼도봉)에 이르지만, 도중에 강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이 생활경계선을 무시하고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따랐다.
[오른쪽 그림] 대동여지도 남원도호부 운봉현 부근. 강의 경계선과 생활권의 경계선이 다를 때에는 산줄기가 끝나는 경우 생활권의 경계선을 따르고, 그렇지 않은 경우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따랐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선은 운봉현의 동쪽이지만 도중에 임천을 건너게 되므로 백두 대간은 물을 건너지 않고 지리산에 이르는 운봉현의 서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산줄기가 끝나는 곳에서의 변화는 아래와 같다.
해상교통과 관련한 산줄기 변화를 보자.
서해바다는 장산곶을 경계로 서한만 권의 북부지방과 경기만 권의 중부지방으로 구분된다. 장산곶에 이르는 산줄기는 해서정맥과 이어지므로 해서정맥의 끝이 대동강하구의 남쪽이 아닌 장산곶으로 갔다.
태안반도를 경계로 경기만 권의 중부지방과 그 이남의 남부지방이 구분되고, 태안반도의 안흥에 이르는 산줄기는 금북정맥과 이어지므로 금북정맥의 끝도 금강 하구의 북쪽이 아닌 안흥진으로 갔다.
서해남부지방과 남해해안지방은 다도해로 연결되어 생활경계가 없다.
몰운대를 경계로 동해해안지방과 남해해안지방이 구분되지만 낙동정맥의 끝이 이를 담당하고 있다.
[왼쪽 그림] 서해의 서한만과 경기만 부근. 서해안은 장산곶을 경계로 서한만권의 북부지방과 경기만권의 중부지방으로 구분되고, 태안반도의 안흥진을 경계로 중부지방과 차령이남의 남부지방으로 구분된다.
남부지방의 산줄기 변화를 보자
안흥진에서 이어지는 금북정맥과 속리산에서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이남은 남부지방이다. 이곳은 백두대간이 중앙을 지나고 있어 이를 경계로 차령 이남지방과 영남지방이 구분되고, 또한 삼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어 내륙지방과 해안지방으로 구분이 되며, 해안지방은 낙동정맥의 끝 몰운대를 경계로 남부해안평야지방과 동해해안지방으로 구분된다.
내륙지방과 남부해안평야지방의 경계는 안흥진에서 백월산까지의 금북정맥과 백월산에서 조공산을 지나는 짧은 지맥이 부여의 금강변에 이르고, 금강 건너편 부소산에서 계룡산을 거쳐 호남정맥과 이어져 백운산에 이른 다음, 백운산에서 화개 맞은편의 섬진강변에 이른다.
[오른쪽 그림] 남부지방의 생활 경계. 남부지방은 서천들, 논산평야, 호남평야, 나주평야, 김해평야로 이어지는 해안평야지방과 동해 해안지방, 그리고 내륙지방으로 구분된다.
화개에서 불무장등 능선을 따라 날라리봉(삼도봉)에 올라 낙남정맥을 따라 용지봉에 이르러 낙동강 건너 몰운대를 마주보는 산줄기를 버리고 김해평야 위를 지나는 산줄기를 따라 낙동강 변으로 가다가 가락국의 시조 수로왕이 하강하였다는 구지봉에서 마감한다.
문헌비고 여지고 산천총설1에서는 낙남정맥의 본줄기는 구지봉에서 끝을 맺고, 그 가지들을 기재하면서 분산이 구지봉 남쪽에 있다고 했다. 그러나 표에서는 구지봉 다음에 표기할 지명이 없기 때문에 분산을 가지줄기로 기재할 수 없어 본줄기에 이어서 기재를 한 다음 구지봉을 난외에 별도로 표기하고 ‘남쪽으로 몰운대를 마주 본다’ 고 문헌비고와 똑 같은 내용을 부기했다.
[위 왼쪽 그림 ] 증보문헌비고의 구지봉. 지리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낙남정맥)가 구지봉에서 끝나고, 여기서 남으로 몰운대를 마주본다고 하였으며, 분산를 구지봉의 가지줄기로 표기하고 있다.
[아래 왼쪽 그림] 산경표의 구지봉. 표의 구성상 구지봉 다음에 분산을 기재한 다음 난외에 별도로 구지봉을 기재하고 여기서 남으로 몰운대를 마주본다고 하여 구지봉이 낙남정맥의 끝임을 나타내고 있다.
[아래 오른쪽 그림] 낙남정맥의 끝 부분. 낙남정맥은 남부 해안평야지방인 김해평야의 위를 지나 김수로왕이 하강하였다는 구지봉에서 끝을 맺는다.
논산평야와 호남평야 사이의 아주 낮은 구릉지대인 금강의 남쪽산줄기 일부는 통행의 장애물이 아니라 통행이나 생활의 이용수단(농로 또는 수로 등)이 되고 있어 생활의 경계가 되지 못하고 대신, 논산평야 뒤의 논산천산줄기가 해안평야지방과 내륙지방의 경계가 되고 있으며, 붉은 점선은 금북정맥의 가지줄기로서 표의 구성상 주요산줄기로 구분할 수가 없는 산줄기다.
녹색의 점선부분은 금강의 남쪽산줄기이나 해발 30~50m로 아주 낮은 지대다.
[오른쪽그림] 논산평야와 금남정맥. 금남정맥은 서천들, 논산평야, 호남평야로 이어지는 남부 해안평야지방과 남부 내륙지방의 경계를 이룬다.
남부 해안지방의 영호남의 경계는 산줄기가 아닌 강줄기(섬진강)가 맡고 있다. 그래서 백두대간은 영호남을 가르는 소임을 남부 내륙지방의 끝인 화개에서 마치고 있다. 즉 백두대간의 끝은 지리산이나 이를 정확히 표현한다면 지리산천왕봉은 아니고 날라리봉에서 이어지는 불무장등 능선이 끝나는 화개의 섬진강변이다.
이것은 호남정맥이 백운산에서 망덕리까지의 약 29km에 이르는 산줄기를 무시해 버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산경표의 다른 정간이나 정맥들은 산줄기 끝의 산에 속하는 한 능선이 바다나 강에 이르는 경우(한북정맥의 장명산. 한남정맥의 문수산성 등) 를 제외하고는 그 끝의 명칭(금북정맥의 안흥진, 낙동정맥의 몰운대 등)을 기재하였으나, 호남정맥의 끝은 백운산에 속하는 한 능선이 화개에 이르기 때문에 본줄기에 더 이상 기재할 지명이 없어 망덕으로 이어지는 가지줄기를 표에 기재하게 되면 그 가지줄기가 본줄기에 이어져 기재되고, 결과적으로 본줄기가 망덕까지 이어지게 됨으로 이를 생략해버리고 백운산에서 ‘섬진강을 건너 지리산을 마주 본다’라고 부기하고 있다.
[그림] 백두 대간과 호남정맥의 끝. 백두 대간과 호남정맥은 화개의 섬진강으로 내려서서 끝이난다. 즉 백두 대간의 끝은 지리산이되 천왕봉이 아니라 삼도봉에서 화개로 내려서는 산줄기다. 백두 대간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나누는 임무를 화개에서 끝내고, 그 다음은 섬진강에 넘겼다.
(위는 대동여지도. 아래는 현 지도)
도읍지의 산줄기도 예외의 경우다.
산경표의 바탕인 증보문헌비고의 여지고 산천 총설1에서 보면 맨 처음에 시작하는 산줄기는 삼각산에서 시작해 서해쪽으로 그 줄기 들을 마친 다음 백두산에서부터 산줄기가 다시 시작한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가다가 분수령에서 가지 친 산줄
기는 도봉산을 지나 삼각산에서 끝을 맺고서 다음은 위를 보라고 했다. 왕궁이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산줄기를 우선적으로 기재한 것이다.
산경표는 표의 구성상 백두산에서부터 시작은 했지만, 이 뜻을 따라 한북정맥이 한강과 임진강을 가르는 오두산으로 가지 않고 이 삼각산 산줄기를 따라간 것으로 보인다.
[그림] 한북정맥의 끝부분. 문헌비고의 산천총설은 왕궁이 있는 삼각산 줄기를 기재한 다음 백두산에서부터 기재하고 있다. 산경표도 한강과 임진강을 나누는 산줄기 대신 왕궁이 있는 곳의 산줄기를 따라갔다.
산경표는 10대강의 산줄기를 기본으로 하여 대간을 구분한 다음, 이 대간에서 나뉘어나간 산줄기를 정간과 정맥으로 했으며 그 끝은 반드시 그 강을 따라가서 바다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그 강을 떠나서 바다에 이르기도 하고, 생활권의 경계를 따라 강가에 이르기도 한다. 이는 산세를 따른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높은 산이 교통의 장애물로 생활권의 경계가 되어 이를 따른 것이 마치 산세를 따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백두대간은 대간답게 꼬리가 없이 내륙의 지리산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화개의 섬진강변에서 물을 만나 끝나고 있는 것이다. 하루에 전국을 돌아버릴 수 있는 지금에도 굳이 육상교통 수단이 없던 때의 생활경계선을 따르는 것 보다는 초등학생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대간은 남북을 잇는 척량산줄기로서 나라의 모든 물을 동서로 구분하고 정맥은 대간과 함께 큰 강의 울타리가 되는 산줄기다’라고 위의 '산경표는 강을 위주로 산줄기를 구분했다'의 내용만으로 간단.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산경표를 고쳐 쓴다면 위 '생활권에 따라 일부 산줄기에 변화를 주었다'는 설명은 원 산경표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하게 될 것이다.
산줄기의 이름은 이렇게 붙였다.
산경표는 구분된 산줄기들을 중심 산줄기는 아버지이고, 나머지는 아들들인 한 가족으로 보고 이름을 붙였다. 아버지는 큰 대(大)로 하고 그 격을 간(幹)으로 하여 ‘대간’이라 하고, 아들은 바를 정(正)으로 하고 그 격은 맥(脈)으로 하여 ‘정맥’이라 했다.
다만 산줄기 그림을 백두산이 아래로 향하도록 돌려놓고 보면 두만강 산줄기는 그 끝이 아래로 향하여 대간의 버팀목 구실을 하고 있고, 또한 첫 번째로 나뉘는 산줄기라서 아들이 많은 집안의 장남이 아버지 맞잡이라 하듯이 여기서도 아버지에 준하는 대접을 받고 있다. 즉 두만강 산줄기는 아들인 정(正)에 아버지 격인 간(幹)을 붙여 정간이라 했다.
개별 이름은 간(幹)은 산 이름을, 그리고 맥(脈)은 강이나 지방이름을 따서 붙였다. 아버지인 대간은 산줄기의 첫머리에 시작하는 백두산의 이름을 따서 백두대간으로 했다. 장남인 정간도 산줄기의 첫머리에 시작하는 장백산의 이름을 따서 장백정간으로 하고 장남이므로 분가를 시키지 않았다(분가를 시키지 않았다는 것은 산경표가 백두대간에서 그 산줄기를 떼어서 쪽을 달리하여 따로 기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둘째와 셋째는 청천강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까지 데리고 가서 청북(청천강의 북쪽), 청남(청천강의 남쪽)이라고 이름 붙여 분가시켰다(데리고 갔다고 하는 것은 대간의 줄기가 그곳까지 이르게 했다는 뜻이다)
넷째와 다섯째는 예성강 산줄기가 시작되는 곳까지 데리고 가서 해서(해서지방), 임진북예성남(임진강의 북쪽이며 예성강의 남쪽)이라고 이름 붙여 분가시켰다.
여섯째는 한북(한강의 북쪽)이라고 이름 붙여 분가시켰다.
일곱째는 낙동(낙동강의 동쪽)이라고 이름 붙여 분가시켰다.
여덟째와 아홉째는 한남(한강의 남쪽), 금북(금강의 북쪽)이라고 이름 붙여 같이 분가시키면서 산줄기가 갈리는 곳에서 각자 헤어지도록 하였다
열째와 열한번째는 금남(금강의 남쪽), 호남(호남지방)이라고 이름 붙여 같이 분가시키면서 산줄기가 갈리는 곳에서 각자 헤어지도록 하였다
열두번째인 막내는 낙남(낙동강의 남쪽)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분가를 시키지 않았다. 대간이 끝나는 곳에서 이어가므로 굳이 잘라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청천강과 예성강은 10대강에 포함되므로 그 곳까지 데리고 가서 분가를 시킴으로써 청천강과 예성강 산줄기가 대간에 직접 이어지고 있다고 확인한 것이고 안성천. 삽교천이나 만경강. 동진강은 10대강에 포함되지 않아 대간이 직접 확인할 필요가 없으므로 바로 분가를 시킨 것이다. (10대강의 산줄기 개념도 참고)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산경표의 산줄기가 몇 개인가 하는 것이다. 위의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보면 산줄기는 대간 1개와 정간과 정맥 12개로서 모두 13개이다. 그런데 산경표는 명칭을 붙여 구분해 놓은 산줄기가 대간 1개, 정간 1개, 그리고 정맥 13개이다. 그래서 산줄기의 숫자를 15개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 당시와 현재의 산줄기를 보는 시각차를 무시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항공사진으로 만들어진 지형도를 가지고 산줄기를 그려도 보고 직접 답사도 한다. 그러다 보니 산줄기는 장애물인 벽이 아니라 통행하는 길이다. 그러나 그 당시 산줄기는 통행의 장애물인 벽으로 인식을 하고 있을 따름이다. 즉 지금은 3차원의 시각이고 옛날은 2차원의 시각이다.
옛날에는 한강 생활권의 남쪽 벽을 보면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칠장산을 거쳐 문수산으로 이어지고 금강 생활권의 북쪽 벽을 보면 백두대간 속리산에서 칠장산을 거쳐 안흥진으로 이어진다는 사실만 표현하면 될 뿐이지 한강권의 경계이기도 하고 금강권의 경계이기도 한 속리산에서 칠장산까지를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서술식이라면 ‘한남정맥은 속리산에서 문수산까지이고 금북정맥은 속리산에서 안흥진까지다’ 라고 하면 되지만, 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속리산에서 문수산까지의 산 들을 나열하고 속리산에서 안흥진까지의 산들을 따로 나열하면 속리산에서 칠장산까지의 산들이 양쪽에 각각 기재되어 하나의 산이 각기 다른 두 개의 산으로 표기되어 결과적으로 잘못된 표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중복되는 것을 어느 한쪽에서 기재를 생략해 버리면 그 생략해버린 산줄기는 생략을 하지 않은 산줄기의 가지줄기가 돼 버린다.
그래서 산경표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중복되는 산줄기를 따로 표기해 둘의 이름을 붙여 한남금북정맥으로 하고, 한남정맥을 볼 때는 한남정맥에 붙여보도록 하고, 금북정맥을 볼 때는 금북정맥에 붙여 보도록 한 것이다. 금남호남정맥도 마찬가지다.
산줄기는 바다나 강 즉 물을 만나야만 끝이 나는 것이다. 산경표가 이런 점을 간과했다고 보는 것은 그렇게 보는 사람의 자기 견해일 뿐이다.
백두대간이 가지를 낸 청남. 청북정맥과 해서. 임진북예성남정맥이나 하나의 산줄기에 한남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과 같이 두 개의 정맥을 표기하는 방법 모두 옛날의 2차원적 시각에서는 문제가 없겠으나 현재의 3차원적 시각에서는 다르다. 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기의 순서를 우선한다면 대간에서 나뉜 산줄기가 다시 나뉘는 경우에 둘 중 하나는 정맥에서 제외하여 하위 산줄기 명칭을 만들어 붙여야 할 것이고, 산줄기를 우선한다면 도로 분류체계와 같이 역할에 따르면 될 것이다. 즉 일반국도로 정한 도로는 고속국도에서 분기하던 일반국도에서 분기하던 일반국도이듯이 큰 강을 구획하는 산줄기로서 일단 정맥으로 분류된 산줄기는 대간에서 분기해도 정맥이고 그 정맥에서 분기해도 정맥이라고 하는 방안이다.
덧붙여 분기점에 관한 것도 살펴보자 . 직접 산줄기를 찾아나서는 현재에는 분기점의 의미가 크다. 분기점은 거리계산의 시작점이고, 직접 답사를 할 때에는 이곳을 지나치면 목적지에 갈 수가 없다.
그러나 산경표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분기점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별 의미가 없었다.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이 갈리는 곳이 마이산으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마이산 정상에서 산줄기가 나뉜다는 것이 아니고 마이산의 어느 부분이나 마이산을 지나서 산줄기가 나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마이산(또는 마이산을 지난 어느 곳)에서 시작한 금남정맥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주줄산(혹은 주화산)이 분기점의 명칭으로 사용 될 수는 없다. 대동여지도나 산경표는 당시의 눈으로 보아야한다. 대동여지도에 전주. 고산. 용담. 진안에서 가장 높은 산이 주줄산으로 표기되어 있고, 현대 지도에서 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은 운장산이므로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의 주줄산은 지금의 운장산이다. 분기점의 명칭이 꼭 필요하다면 산경표 밖에서 이름을 찾아 붙여야 할 것이다. 또한 대동여지도의 영취산은 지금의 장안산이다. 그래서 금남호남정맥의 분기점을 영취산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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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성태<신 산경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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