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산행지 : 백두대간 23구간 (죽령~고치령)
산행자: 백두대간 꿈의 종주대
산행코스 : 죽령~연화봉~비로봉~국망봉~상월봉~신선봉갈림길~고치령
산행거리 : 24.83km , 산행시간 :11시간 26분
개요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1정간 13정맥을 분지시키며
하나의 산줄기와 물줄기로 연결하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수 놓는다
북쪽(북한지역)을 제외한 남쪽(남한)구간 산줄기는 9정맥과 지맥, 기맥 등을 거느리고 있어
거미줄처럼 얽혀진 것으로 보이지만 물줄기와 함께 달리며 실타래 풀리듯 모든 산줄기는 하나(백두산)로 연결 된다.
그렇기에 9정맥 중 7정맥를 뿌리 내리는 소백산(소백은 태백과 더불어 "二白"이라 하였다)의 위치는 참으로 주요하다 할 것이다
.
속리산에서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금북정맥 등 3정맥을 보내고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 호남정맥. 금남정맥 등 3정맥을 보내며
지리산에서 낙남정맥을 보내는 산파역을 하기 때문이다.
산경표가 편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매봉산에서 분지하는 낙동정맥과 태백산과 소백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현재) 사이에서
"어느 곳을 백두대간으로 하느냐"에 고심하였던 것 같다.
산경표가 나오기 전에 이중환은 택리지의 복거총론 산수편에 기록하기를 ...
....중략...
“태백산에서 백두대간의 줄기가 좌우로 나누어 져 왼쪽 지맥은 동해가를 따라갔고, 오른편 지맥은 소백산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동해가로 내려 간 산줄기와 비교가 안 된다"고 적고 있다.
왼쪽으로 흐르는 산줄기는 낙동정맥을 말함이고 오른쪽은 현재의 백두대간을 말함인데
이때까지만 하여도 낙동정맥과 백두대간에 대하여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여 두 개의 산줄기로 기록한 것으로 보이며
다만,“동해가로 내려간 산줄기와 소백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산줄기가 비교가 안 된다"고 적은 것으로 보아
소백산줄기에다 백두대간의 비중을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의 언급은 전문가들의 몫으로 돌리고 소백의 연봉에 대하여 살펴보면
죽령을 경계로 남쪽으로 백두대간 줄기에 우뚝 솟은 도솔봉과 북쪽 줄기의 시작을 알리는 연화봉, 소백의 주봉임을 알리는 비로봉이 있다.
소백산 대부분의 지명은 불교와 연관이 있는데 이 것은 불교가 번창했던 신라시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인 시비가 없기를 바라면서 대략적으로 봉우리들에 대한 뜻을 살펴보면
비로봉은 “비로나자”의 준말로 “부처를 나타내는 것이고 연화봉은 관음의 세계를 나타내며 도솔봉은 미륵의 세계를 나타내었다.
봄철에는 비로봉과 국망봉의 철쭉으로, 여름에는 천둥계곡. 어의계곡. 죽계구곡 등을 찾는 피서지로 가을에는 계곡의 단풍으로
겨울철에는 칼바람과 설경으로 유명한 소백산은 항상 우리들 옆에 있는 산이다.
진행도
산행글
3개월만인가?
고석수님이 동참 하신다.
회사와의 마찰로 차량을 운행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음아파 했는데 완벽한 해결은 아니지만
당신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 해 보인다.
이미 백두대간을 완주하신 고선배님의 거침없는 운전솜씨는 단양휴게소를 거쳐 죽령에 도착한다.
소백은 칼바람으로 유명하지만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오늘 산행이 쉽지 않을 것이란 예고편인데 그대로 적중하고 만다.
출발 전에 어김 없이 남기던 단체사진도 포기하고 움추러들게 하는 추위를 피해 이른 새벽
죽령매표소를 지나 철길을 건너니 03시 18분이다.
03:18
죽령에서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까지 중계소 도로를 따라 어둠속을 헤친다.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은 대원들간 대화까지 침묵하게 만들고...
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의 잔치는 간혹 떨어지는 유성별에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죽령에서 출발하여 중계소 삼거리까지 가는 길은 북두칠성이 동행 해 주었다.
05:00
중계소삼거리
야간산행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이 곳에서 연화봉 가는 길은 10시방향이며 12시방향은 중계소로 가는 길이다.
중계소 삼거리에서(제1연화봉 정상에는 중계소가 있어 좌회하여야 한다)왼쪽사면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르면 전망대가 있는 헬기장이 나오며 이 곳을 지나 200 여미터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샘터가 있다.
샘터를 지나서 계속하여 임도를 따르면 천문대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두 갈래로 길이 나누어진다.
탐방로로 가는 길과 희방사로 가는 길인데 어느 곳으로 진행하여도 비로봉으로 갈 수 있지만 희방사2.4km이정표를 따르면 연화봉 정상석이 있는 연화봉에 오를 수 있다.
연화봉 정상(정상석있음)에서 오른쪽 길은 희방사로 가는 길이니 반드시 확인하여 왼쪽에 있는 비로봉 가는 이정표를 보고 등로를 잡아야 한다.
주간 산행에는 알바가 없는 구간이지만 오늘처럼 1미터 전방도 안보이는 날에는 등로잡기가 까다로운 곳이다.
(우리는 탐방로길로 우회 하였다)
제1연화봉 가는 계단길
여기까지 오는 동안 1m앞도 안 보이는 안개와 어둠 그리고 칼바람추위와 싸워야 했다.
초목은 바람에 나풀거리고
20도의 강추위속에 피어나기 시작하는 상고대는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
06:39
천문대와 연화봉의 정상석을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제1연화봉의 이정표를 남긴다.
여기서 물병을 꺼내 보지만 이미 얼어 버린지 오래인가 보다.
연화봉은 도솔봉에서 바라보면 이슬을 머금고 막 피어나는 연꽃을 연상시킨다.
그 모습 보려 했으나 허락하지 않는다
고릴라 처럼 보인다.
상고대 피어 오르고..
겨울의 시작을 알린다..
설화로 다시 피어난 억새가 눈 부시다
비로봉 가는 길은 외길이기에 별도로 길잡이에 대한 성명은 없어도 될 것이다.
다만,
천둥계곡 갈림길과 비로사(비로봉)갈림길, 초암사(국망봉)갈림길, 어의곡리갈림길, 늦은맥이재에서 을전 갈림길 등이 있으나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크게 염려할 바는 아니다.
어수리 씨방?
비로봉 가는 길에서...
주목
작년 식목일날 여기를 넘어올 때 글을 남겼었다
.............................................................................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사는 너 에게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이
어찌
세월의 무상함과
인고의 세월을
알겠느냐고....
07;26
천둥계곡 갈림길
안개낄 때 독도주의구간!
강한 바람에 춤 추는 마른 잎들의 공연이 우리를 줄겁게 한다.
상고대는 더욱 화려 해 지고..
현재 기온이 영하 20도이다.
(강한 바람 때문에 기온이 더 내련간 듯)
07:30
"시인마을"이라 이름 붙여진 주목관리사무소에서 우리는 아침식사를 한다.
지리산에서 첫 발을 내 디딜 때 대원들의 베낭은 먹거리로 가득 차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절제되어 음식으로 가득찼던 베낭들이 비상식으로 바뀌고 장비들로 채워져
이제는 어디에 가도 자랑할 수 있는 산꾼들이 되었다.
비로봉 가는 길
08:33
비로봉은 소백산의 주봉을 말한다.
비로는 비로나자의 준말이며 부처를 뜻 한다.
부처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대동하여 삼존불이라 한다
부처는 미륵과 관음도 함께 한다.
1.소백산은
미륵이 주도하는 도솔봉(천)과 비로나자불(부처)이 주도하는 비로봉이 있으며 그 사이에 연화봉이 있다.
혼날 소리이지만 "연화봉은 관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연화봉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2.소백산은
다른 이름으로 이백(二白), 또는 백산(白山)으로 불린다.
"이백"은 산경표가 나타나기 전까지 태백산과 하나의 산군으로 보아 (태백과 소맥을 합친 말 뜻) "이백"이라 하였고
"백산"은 밝다.깨끗하다 으뜸이다. 라는 뜻으로 가장 높거 정기가 맑은 산에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이해를 돕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 "동성 주막(東城 酒幕)" 에서 옮겨 온 글이다-
태백산 소백산이 산세도 장하구나
달리던 용의 머리 여기에서 수그려
북쪽으로 통한 시내 황간으로 달려가고
서쪽으로 뻗은 산은 적상산을 에워쌌네
봉마다 우뚝우뚝 성벽은 쌓았다만
이 재가 요새란 걸 어느 누가 안단 말고
청주 고을 큰 들판 천리에 트였으니
추풍령 빼앗기면 멱살을 잡히리라
二白飛騰脊勢强
神龍於此地中藏
溪通北地趨黃澗
山出西枝繞赤裳
每向高峯增塹壘
誰知平陸是關防
淸州大野開千里
一據秋風便·
-<다산시문집>
소백산과 태백산을 이백(二白)으로 풀어
옛 사람들은 소백산과 태백산을 한 형제 산으로 보았거나,두 덩어리를 묶어 ‘이백(二白)’이라 하여
하나의 커다란 산무리로 본 것도 같다.
이백은 동남방으로 달려가 있어
형세가 자루 연한 쇠뇌 같으며
二白馳巽維
勢若連臂弩
-<다산시문집> 귀전시초(歸田詩草) 일부
이백의 산세가 강하다는 뜻의 다산의 이 싯구는
소백과 태백을 별개의 산무리로 보지 않았음을 말해 준다.
돌 탑에 핀 상고대가 신비스럽다.
국망봉 가는 계단길에서...
매서운 바람은 잠시도 멈추 질 않는다.
아직도 운무가 가득하다.
국망봉 가는 길의 철쭉지대
상고대
천리행군 중인 특전사 대원들과 동행 산행하게 되다.
연 이는 400km의 행군의 마지막 종착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그들에게 부상자가 많아 보인다.
우리 대원님들 중에서도 군대에 보낸 아들 생각에 눈시울 적시며 베낭에 남아 있던 비상식량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느껴본다.
국망봉300m 전
암릉을 돌아서니
외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혹독한 겨울을 날 것이다.
09:57
국망봉
나라잃은 슬픔에 개골산(금강산)으로 가던 중 왕궁이 있던 경주를 바라보며 통곡을 하였다는 마의태자의 울부짓음이 들려오는 듯 귓가에 스치는 바람소리 소름 돋게 한다.
살풀이 하는 무당의 춤사위를 보 듯 현란하기 그지 없더이다.
11:00
상월봉 지나 늦은맥이 아래에 있는 이정표.
을전이나 어의곡리로 갈 수 있다.
천리행군 막바지에 다른 병사들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고 ...
우리들 갈길은 멀기만 하고...
할 수 없어
상월봉을 좌회하였다.
여기에 못미쳐 고치령에서 죽령으로 산행중인 산하사랑 안동댕님 일행과 우연히 조우한다.
얼마 전 낙동정맥을 끝내신 분인데 워낙 말씀이 없는 분이라서...
안동댐님과 쨍~하였던 안동소주에 마른감 안주 기막히게 좋았다.
신선봉 갈림길
가던 길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13:59
늦은맥이에서 형제봉 갈림길까지 신라시대에 쌓은 것으로 보이는 성터가 있는데 발굴 보전되지 않아
원시적인 상태로 있다.
더 훼손되기 전에 복원되기를 바란다.
문헌에 나타난 기록은 찾을 수 없었으나..
신라시대에 고치령 아래에 대궐터를 짓기 위 해 이 고개를 넘나들 때 古峙(옛 고개)라는
문헌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대궐과 연관이 있었거나 국경선 방위를 목적으로 축성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산불지역
형제봉 갈림길에서 고치령까지 광범위하다.
14:44
고치령
국토지리원 자료에 古峙(옛 고개)로 기록 되어 있는 이 재를 양백지간(兩白之間) 또는 "고치재"로 부르기도 한다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가로 지르는 고치령은 조선중엽 때 까지만 하더라도 죽령 다음으로 중요한 고개였던 것으로 보이나 세조에 의해 유배당한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던 이 곳 사람들의 노력이 발각되어 폐쇄되었다는 설도 있는 곳이다.
양백지간이라 하는 이 곳에는 영월로 유배된 단종과 순흥으로 유배된 금성대군(단종의 삼촌으로 단종의 복위를 꿈꾸다 사사당한다)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것이라 하는데 전하여 내려오는 전설은 이렇다.
영월땅으로 유배되었던 단종이 어느 날 하얀 도포차림에 말을 타고 고치령을 넘어 가고 있었다.
단종대왕에게
"어디를 가느냐"
물어보는 백성들에게 단종이 답하기를...
"태백산"에 놀러간다고 하였다.
이 날 오후 단종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단종의 혼백이 태백산으로 들어 태백의 산신이 되었고 그의 신하였던 금성대군은 소백의 산신이 되었다고 믿어왔던 사람들은 혼령이 되어 만나는 조카와 삼촌(단종은 금성대군의 조카이다)을 위해 양백지간인 고치재에다 산신각를 짓고 매년 정월14일에는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고치재에서 소백산 입구에 서 있는 장승.
소백지장은 소백산을 지키는 장군을 말한다.
고치재에서 태백산을 바라보며 서 있는 장승
태백천장은
태백산을 지키는 장군을 말한다.
단종대왕과 금성대군을 모시는 산신각(고치령에 있음)
가운데에
산신각(山神閣)이라 �고 좌. 우에 있는 주련에는 아래와 같이 �다.
왼쪽에는
차산국내지령지성(此山局內至靈至聖)
"산이 모두 영역이 모두 지극하게 성령스럽고 성스러웠으면 한다"라고 쓰고
오른쪽에는
만덕고승성개한적(萬德高勝性皆閒寂)
수만 가지 덕이 높고 번성해서 모든 사람의 본성이 여유로우면서 고요하기를 바란다" 고 써 있다.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격언이 될 만한 글이다.
산신각 옆에 방치된 소주병과 잿더미
산신제를 지낸 후 태운 것인지?
놀러온 사람들이 태운 것인지?
약초꾼들이 태운 것인지?
생각 하기도 싫지만 산꾼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며
산을 오르는 모두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대간꾼들에게 어프로치는 魔의 구간이다.
우리는 트럭을 이용 해 산행을 종료하였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후기
죽령에서 출발할 때
하늘에는 수 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했었다.
일출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은 중계소 삼거리에서 산산히 부서져 버렸다.
북두칠성 따라서 진행한 산행길은 유성별 따라 꿈 많던 어린 시절을 회상 해 주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물 밀듯이 밀려오는 반백의 세월이 회한으로 다가 온다.
상념에서 깨어나니
갑자기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는 안개는 어둠과 동반하여 한치 앞을 볼 수 없게하고
무섭게 휘몰아 치는 칼바람은 살갓을 파고 든다.
그래도
꽁꽁 얼어버린 손으로 나누어 먹었던 음식은 서로의 마음을 훈훈하게 달구어 나머지 구간
편하게 진행할 수 있었고 천리행군 중이던 특전사대원들과 함께 걸었던 국망봉에서 늦은맥이까지와
상월봉 아래에서 우연히 조우한 안동댐과 만남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함께 한 대원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당신들이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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