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7년09월 29일(음력 08/18) 날씨: 흐린 후 맑음 산행지: 백두대간 북진 20구간(하늘재~작은차갓재) 산행자: 백두대간 종주대 산행코스:계립령~베바우산~만수봉갈림길~꼭두바위봉~부리기재~대미산~문수봉갈림길~차갓재~작은차갓재~안생달 도상거리:18.21km , 접근거리:2km 산행거리:20.21km , 산행시간: 13시간16분 개요 고대국가가 형성된 시점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사람들의 애환과 文化 그리고 文物交換이 이루어진 하늘재(鷄立嶺)에서 백두대간 북진 20구간 산행을 시작한다. 하늘재에서 시작되는 포암산은 처음부터 오르기 힘들게 하는 너덜 길과 암등의 연속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많은 이름을 훈장처럼 가지고 있는데 순수 우리말이라 할 수 있는 베바우(삼베와 바위의 합성어이며 이것을 漢字로 뜻 옮긴 것이 포암(布+巖)산이다)산은 生과 死가 교차되는 우리네 삶을 가장 리얼하게 표현 해 내는 정점에 서 있다. 살아 있을 때 喜.怒.哀.樂도 죽음 앞에서는 無用之物이요. 죽어서는 삼베(麻)한필(衣)면 족하다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은 物質萬能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커다란 敎訓을 준다. 암반으로 이루어진 표피를 보고 삼베를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베바우(배바우)산으로 부르기고 하고 삼나무와 연관된 麻骨이나 麻木 또는 鷄立 등으로 한자화 하여 麻骨山이라 부르다 지금은 布巖山으로 이름이 바뀐 명산을 오른다는 것 만으로도 오늘 산행이 주는 가치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우리는 深夜에 오르기 때문에 사위를 분간할 수 없는 어둠속이지만 낮에 조망되는 산군은 북쪽으로 만수봉과 하설산, 동쪽으로 대미산과 운달산, 서쪽으로 칠보산과 보배산,남쪽으로 주흘산과 문경 시루봉이 압권이다. 관음재를 지나 서쪽방향의 가지줄기인 만수봉은 용암봉을 지나 충북의 명산 월악산을 낳고 동쪽으로 꺾이는 마루금은 마골치를 지나 1034봉에서 꾀꼬리봉을 낳는다. 1062봉으로 오르다 보면 왼쪽사면에 나타나는 너덜지대는 이곳을 지나간 선답자들의 쉼터이자 그들이 남겨놓은 돌탑들이 세워져 있으며 돌방석에 앉아서 월악산군들이 보여주는 하늘금의 신비를 조망하는 줄거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한다. 하늘재로부터 여기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너덜 길이 많음으로 산행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며 밖마을로 연결되는 부리기재에 이르기까지 오름과 내림의 경사가 제법 강하여 많은 체력소모를 요구한다. 버리기 재에서 잠시쉬어 대미산 오르는 길은 경사도를 느낄 수 없을 정도의 평탄한 길이지만 40여 분간 이어지는 등로는 갈참나무 숲으로 주변을 조망할 수 없어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구간이나 간혹 보여주는 야생화의 나풀거리는 화무에 빠지다 보면 어느 새 대미산 정상이다. 대미산은 문경의 조산(주산은 주흘산이다)이며 산경표나 문경현지에 대미산(黛眉山:검은 눈썹의 산=밋밋한 산이나 먼 곳에서 보면 정상부분만 눈썹처럼 솟아올랐다고 하여 “黛眉山”이라 함 )으로 적고 있으나 퇴계 이황선생에 의해 대미산(大美山=아름다운 산)이라 명명된 후 “대미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미산에서 운달지맥이 분기한다) 대미산에서 정북방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따라 1km정도를 진행하면 마루금아래 70여 미터 지점에 대간꾼들의 감로수인 눈물샘(산행 글에서 소개예정)이 있으며 1051봉에서 분지하는 등곡지맥은 (문수봉갈림길에서 등곡지맥이 분기한다) 1051봉에서 3시방 향으로 꺾여 동쪽방향으로 북진하는 마루금은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면서 도착하는 차갓재에는 백두대간 남한구간 중 중간지점을 알리는 안내 석이 서 있는데 차갓재와 눈물샘 사이에 또 다른 차갓재에서 816봉의 급사면에 올라서면 잣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등로를 따라 작은 차갓재에 도착하면 눈앞에 버티고 서 있는 거대한 묏등바위는 황장산 자락으로 다음에구간를 조심하라고 예고하듯 위세를 부린다. 작은 차갓재에서 계류를 따라가는 하산 길은 상류부분에서는 물줄기를 볼 수는 없지만 폐광 터가 있는 지점부터는 물줄기가 흐른다. 산행글 고구려와 신라가 대립하던 군사적 요충지요. 아달라왕8년 길이 열려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는 육로를 통한 가장 빠른 길...
하늘재를 넘어서 남한강 물줄기 따라 한강의 마포나루까지 뱃길을 이용 해 단번에 갈수 있었던 나루뱃길.......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강화도에서 한강과 남한강을 따라 하늘재를 넘어 해인사로 옮겨진 길.... 계립현과 죽령을 되찾기 전에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하고 떠났던 온달장군은 아차산에서 전사하여 어여쁜 평강공주 홀로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외로이 떠난 길.....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넘었던 통한의 길.... 길손들의 숱한 애환을 안고 있는 하늘재(계립령.계립현.마목현. 마골현.대원령 등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다양하게 불려오다 오늘날에는 하늘재로 불린다)에서 우리는 심야산행을 시작할 것이다.
삼라만상도 고요히 잠들어 있는 깊은 밤 중에 산에 오른다는 것! 어쩌면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루금을 찾아 가는 꾼들의 노력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 있다 오늘도 그랬다.
하늘재에 도착하여 주변을 돌아 보고 있는데 빈 택시 한 대가 버스옆으로 다가오고 있다. 순간적으로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우리처럼 산행을 해야 하는 동병상린의 산우로 생각 하였다.
그런데 번뜩이는 눈 빛이 기사님은 아닌듯 하고.. 내 앞에 멈추더니 던지는 말이.....
"이른 시간인데 산에 가시나요?" 하고 물어 온다
"예 산행코스가 길어서 일찍 출발 해 볼까 합니다" "어느쪽으로 산행합니까?"
이 때 찰라적으로 스치는 생각에 소름 돋치는데 무심결에 반대 방향으로 말해 준다.
" 이화령까지 가려고 하는데요?" " 저도 예전에 그 쪽으로 산행 해 봤는데 지금 출발하면 해 지기전에 충분히 갈 수 있을겁니다" 기사분이 대답하는데 다소 실망하는 눈치이다.
" 아! 그랬습니까? 그런데 밤중에 빈차로 오셨네요?예약한 사람이 있나보죠?" 나 역시 의중을 떠 보려고 이렇게 물어보니
" 그게 아니고 저도 산행 하려고 왔습니다" " 그래요? 같은 방향이면 함께 하였으면 좋겠네요?"
기사가 다시 물어 본다. 그럴까요?" 그런데 어디로 간다고 했죠?"
또 한번 소름이 돋고... " 이화령까지 가는데 가다가 힘들면 조령까지만 진행하려고 합니다" " 이화령까지 충분히 갈 수 있을 겁니다" " 방향이 같으면 같이 산행 하시죠" "예"
이렇게 대화를 끝내고.... 산행준비 하려 주차하나 보다 생각했는데 왔던 길을 횡하니 되돌아 가 버린다. 무슨 조화인가?
새벽을 알리는 닭 울름소리마저 없는 야심한 밤에 빈차로 올라와 산행길 묻고 떠나는 저 양반의 속셈은!
정말로 영업용 택시를 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기사로 위장한 공원의 직원일까? 하는 의구심은 관음재를 지날 때 까지 긴장감만 더 해진다 ...
추석전 날 딸 아이부터 시작 해 아들놈, 하필이면 산행 떠 나는 날 나에게까지 릴레이되는 장염은 휴게소에서... 하늘재에 도착하여 또 한번의 수도꼭지 틀고 보니 이미 기진맥진인데 기사님과 대화가 더욱 신경 쓰이게 하여 포암산을 오르는 중간지점에서 등로 놓치고...
토하기를 몇 번!!! 마시는 물 까지 토해내는 구토는 창자가 끊어지는 통증을 동반하게 하여 이미 탈진상태로 접어들어 산행을 포기해야 하는데 하늘재에서 기사와 대화가 신경쓰여 관음재까지는 산행을 이끌어야 겠다는 마음으로 포암산 암등을 초죽음 되어 오른다.
출발부터 포기해야 했던 산행이었지만 리더로서 책임감때문에 시작하였던 산행은 하산 후 뒷 풀이까지 물 한모금 마시지 못하는 사투였다. 계속 된 비 때문에 미끄러운 너덜길과 암등을 오르기 힘들게 하였지만 대원들 모두 무사히 정상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람 불어 줘 몽롱 해 지던 정신 돌아오게 하지만 관음재 가는 길 놓치고 포암리 내려가는 주민들 길 따르니 오늘은 대원님들이 리더다.
"운해대장님 이 쪽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대원님들 뒤따라 가는 쫄병이 되었다. 관음재를 지나고 ... 기온이 5도이다.
이 곳은 벌써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낙엽이 뒹글고 있다. 만수봉 갈림길
중요한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가지내린 만수봉은 월악산군의 주봉으로 용암봉을 지나 우뚝솟은 영봉을 비롯 해 덕주봉 중봉 등 동양화처럼 아름다운 산군들을 거느리고 있다. 대간길은 3시방향으로 꺾여진다.(지도상 동쪽)
아직도 쏟아낼 것이 남았는지... 대원들 먼 저 보내고 혼자 남는다. 바지를 내리고 이 생각~저생깍 떠 올려본다.
여기서 탈축할까! 말까!! 유혹을 한다. 결론이 안 난다. 그렇다면 가야지. 산 좋아 하는 놈이 산에서 죽는 것도 최고의 영광이겠지........ 그래! 가는거다!!! 937봉인 "마골치" 이다 메밀봉으로 내려 가는 등로와 갈라지는 삼거리이다.
독도주의! 대간는 6시방향( 지도상 남쪽)이다 937봉에서 앵글에 담아 본다. 여기서 관음리 하산길 까지는 가파른 내림길인데 어려운 구간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힘들다.
어지럼증이 동반되어 평소에 안하던 스틱을 꺼내 본다.. 비틀거리던 걸음이 안정되어 간다. 관음재로 내려가는 안부 돌탑이 있다. 바위 주변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데...
843봉을 내려와 안부를 지난 넓다란 바위에서 식사를 하기로 한다. 우리의 무박대간길 식사는 보통 아침 8시를 전후 해 단체로 하는데 오늘은 8시에 식사를 한다. 처음으로 합류하신 황바람님.카리스마님.여운님.킬표범님.솔향님 등과 함께. (황바람님은 1차 산행 때 참여하였던 분인데 일행분들과 함께 우리팀에 합류하기로 하였다) 9시까지 식사시간을 정했지만 기온 때문에 8시30분에 출발하기로 한다. 843봉 내려서는 암릉구간이다. 젖어 있는 차돌성분의 미끄러운 암반이라 로프를 이용하지만 조심스럽다. 1034봉인 꾀꼬리봉 갈림길에 있는 너널지대에서 담아 본다. 맨 앞에는 메밀봉이다. 하늘재도 담아 본다. 너덜지대이다.
이 곳에는 선답자들이 세워놓은 돌들이 하나 둘 모여 돌탑 사원을 만들었다. 우리도 하나 만들고 돌위에 앉아 먼 산을 응시하며 한참을 쉬어 가기로 한다.
아니다! 쉬어가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나를 위한 배려이다.
문수봉 오른쪽 아래 안부에서 동쪽 방향으로 꺾기는 마루금을 따라가기 위해 대미산을 경우해야 한다.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내가 찍은 사진은 촛점이 흐려 산과스키님 사진을 도용 하였다. 아래에 있는 물매화 사진도 함께. 참! 단체사진도 그랬다. 눈물샘 사진도...
나 중에 산과 스키님께 소주한 잔 사야겠다. 사지가 뒤 틀리는데 사진이 제대로 나올리 없었소! 10:30 1062봉 정상이다.
이 쪽의 산군들은 밋밋(높 낮이가 업는 편)하다. 아마도 월악의 명산을 만들어 내기 위한 산고인 것 같다.
(둘산악회에서 붙여진 각 봉의 표시는 대간꾼들에게는 독도에 많은 도움이 된다)
11;07 부리기재
왜 부리기재인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버리미기재가 "벌어먹이다"의 경북 내륙지방의 사투리에서 왔듯이 이곳도 그런 뜻이거나 숯이나 도자기를 만드는 가마를 뜻 하는 버리(부리)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늘재 오는 길에 현대식 도요지가 많은 것으로 보아 부리기재를 넘나들 던 상인들이 부르던 명칭이 현재의 부리기재로 보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오는 길 내내 보았다.
우리는 오늘 세 개를 땃고 송이 한 개 표고버섯은 조금 많이.. 산행 후 뒷풀이에서 오리탕에 넣어 끓였는데 나는 먹지 못했다. 장염으로 배 아픈 것 보다 더 아팟다~~ 좋아하던 소주도 못 마셨으니...ㅠㅠ
한산님 상황버섯 발견 축하드리오! 11:52 여기에 오는 길은 사방 어디에서 올라도 높 낮이가 없는 밋밋한 길로 다소 지루함을 느끼게 만드는 산이다.
1899년 발간된 문경현지에는 대미산(黛眉=검푸른눈썹)으로 적고 문경의 조산이라 기록 되었으나, 조선환여승람에서는 퇴계선생이 대미산(大美=크게 아름다운)이라 지명하였다고 적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황장산. 남쪽으로 운장산.서쪽으로 포암산.북쪽으로 문수봉이 자리잡고 있어 대미산을 문경의 조산(할아버지산)이라 했나 보다.
★ 대미산에서 운달지맥이 분지된다 남쪽방향으로 이어지는 운달지맥은 운달산을 주봉으로 하여 영강과 금천사이에 솟아올라 천마산에서 낙동강으로 꼬리 내린다.
또한 북쪽으로는 문수봉을 주봉으로 하여 등곡지맥이 분지하여 충주호 주변의 명산들인 하설봉.매두막.제비봉.어래산.아미산 등곡산. 황학산 들을 거느리고 남한강(충주호)로 꼬리 내린다.
※ 사방으로 산군을 거느리고 있는 대미산을 문경의 조산으로 보는데는 이러한 산군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간 산줄기를 따라서 8개시 군이 방향을 따라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어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산과 강 그 사이에 고을이 있어 팔괘를 완성시킨다. 산과 강 그리고 고을 모두가 대미산을 방향으로 팔각을 이루고 있다
풍수지리와 복지는 이러한 지형에서 발달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터에 군집을 이루게 하였다. 대야산을 왜 문경이 조산이라 하였는지 대원들이 알아두기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한다.
그들과 함께 하기에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황장산에서 보면 매의 부리를 닮은 산이라 "매봉"으로 부르기도 한댜. 눈물샘 대미산정상에서 만수봉방향1.5km지점에 있다
★ 호남금남 정맥이 지나는 서구리재와 성수산 사이에 천상데미산이 있고 그 아래 골짜기에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는데 "천상"아래에 있다고 하여 데미샘이라 한다. ("데미"는 봉우리의 전라도 방언으로 섬진강이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눈물샘도 대미산이 검은눈썹의 산이라 했으니 같은 맥락이리라. 지방의 사투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어도 방법에 있어서는 같을 것이다.
예: 무더기-무데기 또는 더미-데미-대미 등.... 12:34 문수봉 갈림길에서 대간길은 3시방향으로 흐른다. 이 곳에서 분지하는 가지줄기는 등곡지맥으로 문수봉으로 이어 가다 문수봉에서 하설봉.제비봉 아미산 등으로 나누어 져 남한강으로 스며든다. 문수봉 갈림길에서 대간길로 접어드는 헬리포터에서... 알고 보니 3명이 땅벌에 쏘였는데 쏘인 부위가 제 각각이다.
울어야 할지 ... 웃어야 할지... 표정관리 곤란하다.
내 역시 아픈주제에...
사지에 쥐나고... 뱃속은 뒷틀리고... 손가락은 굳어 버리고.. 임파선을 타고 올라오는 통증은 다리를 뻣뻣하게 굳어 버리게 한다..
끊어질듯 한 통증을 참아내기 위해 호산자님의 매실주을 혼자서 동낸다. 남들이 보면 필히 꾀병으로 보일 것이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물까지도 토해버리는데... 매실주는 통증을 없애주고 안정감은 주었으니... 앞으로 비상으로 가지고 다녀야겠다.
14:04 평택의 산악회에서 세워놓은 위치와 문경의 산악회에서 세워놓은 백두대간 중간지점 위치가 서로 다르다. 여산회에서 세운지점은 포항셀파의 실측거리를 참고로 한 것이고 문경에서 세운 것은 차갓재를 상징으로 한 것인데....
나는 아직까지는 포할셀파의 측정지점을 믿고 싶다. 그 들은 연인원750여명을 투입하여 50m간격으로 손 수 줄자로 재었으니 정확도면에서 믿고 싶다는 것이다.
15:09 차갓재에 도착한다. 백두대장군과 백두여장군의 장승사이에 대장군은 없고 여장군들만 있다. 절반을 넘어 진부령으로 진군하는 여장군들은 여유가 넘쳐 흐른다. 15:23 대간길 어느 곳이나 만만한 곳이 없듯이 여기서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하는 818봉의 된비알이 힘들게 한다.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넘고 보니 잣나무 숲 내음이 상쾌함을 주지만 다리는 풀려 흐느적 거린다.
작은차갓재에서 후미를 위해 산그림자 대장님 대기하기로 하고 나는 대원들과 함께 먼저 계류를 따라 하산은 한다.
안생달마을로 내려간다.
폐광굴을 이용 해 저장고로 사용하나보다.. 황장산자락이다. 안생달 마을 양조장 옆 어느 가정집 화단에 핀 애기범부채 대미산에서 주문 해 놓은 오리탕에다 산에서 채취한 송이.노루궁뎅이.표고버섯 놓고 진수성찬 벌이지만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 내는 산행 때 고통보다 더 심하더라.ㅎㅎ
사장님 누님께서 손수 제조하신 순도100% 오미자원액 1.8리터 한 병 대원님들과 나누어 마시라고 주셨지만 이마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참고:작년에 홀로 백두대간 남진할 때 차갓재에 20시가 다 되어 도착했는데 갈데도 없고... 막연하여 넋을 놓고 있을 때 내 옆을 지나가던 포터 트럭이 되 돌아 와 어데까지 나느냐고 물어오더라. 이 곳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산행 이어야 한다고 했더니 차에 타라고 한다.
차 안에서 대화 나누니 동로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젊은 분이었는데 간혹 나 처럼 늦게 내려오는 사람들 길(숙소 등) 안내 해 준다고 한다. 우리고장 좋게 선전 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장님댁에 들려서 하룻밤 기거할 곳 물어 보기도 하더니만 맨 마지막에 안내 해 준 곳이 여기 송원정이었다.
오랫동안 문경산악회에서 활동하신 사장님의 배려로 밤 늦게까지 대화 나누다보니 10년지기나 된 듯 친해졌고 사모님의 따뜻한 접대와 산 길을 홀로 다니는 놈 얼굴이나 보자고 새벽녁 출발하는 나에게 조심해서 가라고 걱정 하시던 노모님의 정성에 다시 오겟노라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들렸다.
동로면 새마을마을 옆에 있는 송원정은 된장찌게와 삼겹살과 오리탕이 전문으로 숙박이 가능하여 전화로 연락 하면 사장님이 차량으로 모셔오니 이용하고자 하는 분들은 산행끝나기 전 1시간쯤에 연락하면 된다.(송원정 전화번호: 017-511-5668,054-553-0665)
후기
재미없는 글을 여기까지 읽어오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산행은 나름대로 고행이었다 생각하다 보니 쓸데없이 길어 졌습니다.
하늘재에 도착하기 전 이미 기진하여 산행을 포기할 생각이었지만 이 구간은 대간꾼들에게는 숨박꼭질을 해야하는 구간이기에 관음재를 벗어나는 지점까지만 산행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리더가 산행을 포기한다면 대원들에게는 사기저하를 불러올것이기에)
하늘재에서 만났던 택시 때문에 긴장감이 더 해 졌는지 포암산 오르는 구간에서 모든 것을 토해 버리고 물을 마셔 보지만 그 것마저 받아주지 않은 육신은 이미 탈진되어가고 있었지만 뒤에서 묵묵히 격려 해 주시는 호산자님이 있어 마음만은 평온 했습니다.
포암산 정상에 올랐을 때는 몽롱한 정신상태가 방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이제는 각 자 산행을 해도 길 찾기에 어려움이 없는 대원들이 리더가 되어 오늘 산행을 이끌었습니다.
물론 산그림자 대장님이 있고 두 번째 대간중이신 호산자님 계시고 부상에서 회복되어 3개월만에 합류한 출발님(에베레스트 등정예정에 있음)이 있기에 초보산꾼으로 돌아간 나는 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차갓재에 도착할 때까지 함께 해 준 한산님의 배려와 낙서지우기에 바쁘신 산사랑님이 있었기에 끝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산행이었습니다.
사진은 비몽사몽 찍어서 지도에 나오는 지형과 대조하여 편집했는데 대 부분 흔들려서 산과스키님 사진 몇장 도용했습니다.
뒷 풀이 후 귀향할 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고 그 후부터는 정상으로 돌와왔으니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마치 꾀병을 부린듯)
산행글을 쓰다보니 마치 무용담을 써 내린듯 하여 쑥쓰럽지만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기에 나의 경험담을 솔직하게 기술 하였습니다.
산우님들에게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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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꿈! 저수령에서 죽령까지 -북진22구간- (0) | 2007.1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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