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산행지; 백두대간(조령에서~하늘재까지)북진19구간 산행자 : 백두대간 꿈의 종주대 산행코스:조령3관문~마역봉~북분~동문~부1봉~탄항산~평천재(월항)~하늘재(계립령)~미륵사지 도상거리:9.39km, 어프로치:4.4km 산행거리:12.43km, 산행시간07시간30분
개요 이 번 구간의 特徵은 새령(新嶺))으로 불리기도 하는 鳥嶺과 鷄立嶺으로 불렸던 하늘재이다. 古代에서부터 現在에 이르기까지 軍事的要衝地로서 漢陽과 嶺南의 文化를 交流하는 交通의 中心地로서 重要한 位置에 있었던 조령(새재)과 하늘재(계립령)는 옛날의 榮華는 사라진 지 오래이고 지금은 觀光客과 登山客들의 발걸음만이 고요한 정적을 깨우고 있으니 말을 타고 활을 쏘며 天下를 호령하던 군사들의 喊聲과 科擧길 오르던 선비들의 인적은 간데없고 흔적만이 남아 歲月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高麗史 世宗實錄地理志에서는 초점(草岾)으로, 輿地勝覽에는 조령(鳥嶺)으로, 이렇듯 군사적 요충지로서 또는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는 교통의 中心地로서 重要한 役割을 담당 하였던 조령(새재)에서 시작하는 산행은 군막터를 지나 急斜面의 암릉을 힘겹게 오르면 어사 마역봉에서 조망되는 부봉의 6개봉, 마패봉의 가지 줄기인 급사면의 마역봉을 내려서면 동화원(영남과 한양을 오고 가던 사람들이 하룻밤 묵어가는 현재의 여관과 같은 구실을 하였다)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 동문가는 길은 평지 길로 우람한 소나무가 반겨주지만 일제 때 송진을 채취하기 위 해 껍질을 베껴놓은 흔적들이 눈살 찌뿌리게 한다. 미륵사지와 조곡관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동문에서 부봉 제1봉의 7부 능선에서 급사면의 비탈을 따라 평천재에 내려서면 탄항산이 시작되는데 월항삼봉으로 불리기도 하는 탄항산은 조선초기부터 烽燧臺가 設置되어 있었다는 記錄으로 보아 軍事的 要衝地였음을 알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탄항산을 지나고 선바위(일명: 古代부터 있던 이 길은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아달라이사금3년 여름4월(서기156년)에 이 길을 열었다“고 했고 죽령은 ”아달라이사금 5년(서기158년)에 열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文獻에 나타나는 우리나라 最初의 고갯길로 보인다. 고대에 계립령.마골점. 마목현 등으로 불렸던 하늘재는 포암산(베바우산과 마골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것은 삼베를 짜는 삼나무(大麻)의 껍질을 베낀 겨릅(저릅)대를 세워놓은 형상과 흡사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함) 아래에 있는 고개라 하여 鷄立嶺(하늘재)라 불린다. 歷史的으로 가장 由來 깊은 이 길을 따라 佛敎文化가 新羅로 전해졌고 亡國의 한을 품은 麻衣太子와 德州公主가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미륵대원터와 德周寺(신라의 석굴사원 중 규모가 가장 큰 미륵대원터 石佛立像은 덕주공주가 송계계곡 암벽에 새긴 마애불과 마주보고 있어 亡國의 한을 달래야 했던 남매의 분노가 숨어있다)에 머물면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랬으며 民草들의 수 많은 哀歡이 스며있는 이 고개는 觀音세계에서 彌勒세계로 넘어 가는 고갯길로 象徵하여 민초들의 발걸음이 이어진 곳이라 하늘재를 境界로 충청북도 충주시 상모면에는 彌勒里 마을이 있고 경상도 문경시에는 觀音里 마을이 있어 불교문화의 交流를 전달한 이동로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鷄立嶺을 통하여 佛敎가 들어오기 전 까지 新羅에는 土俗信仰이 성행하였으나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정식으로 인정되면서 활화산처럼 번지기 시작한 佛敎信仰은 新羅人들의 凝集力으로 이어져 마침내 護國佛敎로 자리잡아 신라의 三國統一 대업을 達成하는데 牽引車役割을 하였다.
진행도(19소구간)
산행글
옛날에 과거보전 시절... 추풍령을 넘으면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으면 미끄러지지만.... 새재를 넘으면 장원급제 한다...
영남의 선비들이 먼 길을 돌고 돌아 문경세재를 넘었다는 정점에서 우리는 산행을 시작 할 것이다.
백두대간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충주시와 문경시를 경계로 하는 마루금.
희양산과 백화산이 봉황의 산세라면 6개의 봉으로 이루어진 백두대간의 가지줄기인 부봉은 봉황의 알이 될 것이다.
마루금은 제1봉의 7부능선에서 9시방향으로 껵여져 포암산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원형을 그린다.
11:13 도립공원이란 이름 아래 입장료(개인당2100원)를 징수하는데.... 대간길 가는데 통과할 수 없느냐고 애원 해 보지만 ..... 공염불 된 말들을 뒤로하고 마루금 100미터 못 미쳐 북쪽 사면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10여분의 오름짓 끝에 군막터에서 올라오는 마루금과 마추지는 묘지에 도착하니 이쁘게 생긴 살모사 한 마리가 우리는 반겨 주는데.......... 장미에 가시 있듯이 이 놈에게도 독기가 있으니 물리지 않게 조심 또 조심인데....
만남이 반가운지 도망갈 생각도 안하고 같이 놀자~한다. 에구~
가을인가 보다.
아직도 구절초와 쑥부쟁이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인데 조심스럽게 쑥부쟁이라 해 보자.
기도하는 대원과 파이팅 넘치는 여성대원들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표정을 달라도 생각은 같을 터!
마역봉 오르는 마지막 부분은 암을구간으로 로프에 의지 해야 한다. 무사히 산행 마무리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산행의 백미!
부봉줄기이다. 4봉은 여기에서 볼 수가 없고....
뒤 돌아 보는 지나온 길!
11:50 마역봉 정상. 마역봉에서 신선봉 줄기를 낳는다. 또 한 충주의 명산인 게명산으로 이어지는 계명지맥을 가지친다.
독도주의! 신선봉은 10방향이고 마루금은 3시방향임.
마역봉 아래 북분방향에서 조망하는 월악산
12:10 북문 동화원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나는 곳! 주변에는 멸가치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북문에서 동문에 이르기까지 약2.5km구간은 노송과 어울어진 00나무 숲으로 높낯이가 없는 등로는 산책길과 같아 성벽을 따라 걷는 발걸음 경쾌하고 임란 때 성벽을 지키던 병사들의 포효하는 소리가 들여오는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간혹 보여주는 꽃버섯을 채취하는 줄거움과 함께....
멸가치
일제가 남긴 것. 대간길 곳곳에 송진을 채취하느라 이러한 상흔이 남아있는 노송들이 많다. 이러한 모습은 황장산부근이 가장 심하다.
망태버섯 올해 보는 것은 마지막이 될 듯.
13:13 동문에 도착! 부봉을 오르기 위 해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호산자님의 맥주와 천태님의 황도캔을 안주삼아서... 이 구간의 신갈나무 군락지와 낙엽송의 미끈한 자태는 오랫동안 머물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한다.
※동문에서는 마루금을 크로스 하여 북쪽으로 미륵사지와 남쪽으로 조곡관으로 갈 수 있는 사거리 등로이다.
13:40 부봉 갈림길.
마루금은 9시방향으로 휘여지나 봉황을 알을 상징하는 부봉에 오르기로 한다. 이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고 선발대는 이미 이 곳에 도착한지 40여분이 되었다.
부봉제1봉에서 조망하는 포암산방향.
우측부터 959봉.영봉.주봉
부봉(제1봉)에서 조망하는 월악산
왼쪽과 오른쪽에서 담아본 사진!
14:48 부봉( 제1봉) 부봉의 6개봉 중 제 2봉이 가장 높지만 두 번째로 높은 1봉을 주봉으로 한 것에 대하여 말들이 많은 모양이다. 상식적으로 제일 높은 2봉을 주봉으로 해야 하는 의견에 동의하지만 백두대간 마루금의 가지 줄기인 부봉의 6개봉 중 가장 근접거리에 있는 제1봉을 부봉의 주봉으로 한 것은 백두대간 줄기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제2봉을 주봉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분들의 이해가 필요할 것으로 본다.
천길 벼랑에 뿌리내린 소나무 하얀 뭉게구름과 산들의 하늘금이 조화를 이룬다.
15:55 주흘산 갈림길 마루금은 9방향으로 휘여진다. 이 곳에서 탄항재 내려가는 급사면은 미끄럼에 주의해야 할 곳이며 탄항재(펑천재) 중간지점에서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마루금은 왼 쪽 길이다.
오른 쪽 길은 탄항재 근처에서 계류를 건너게 되므로 왼쪽길로 가야 하지만 대 부분의 산님들이 오른쪽으로 내려가 마루금을 착각하게 하는 곳이다.
반드시 왼 쪽길로 내려서야 한다. 평천재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소슬바람에 땀방울 식히면서....
16:50 탄항산 정상.
빌려온 글
이의 본래 이름 달항은 아마도 ‘큰 목’이라는 의미에서 일컫던 큰 고개의 목이 되는 곳, 곧 평천재(월항재) 부근 959m 안부에서 한 줄기는 백두대간 줄기로서 서쪽으로 뻗어가고, 또 한 줄기는 남쪽으로 뻗어가 주흘산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 크고 중요한 산줄기의 목을 지칭하던 땅이름으로 추측된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김윤우 전문위원님 글 중에서-
주흘산 왼 쪽의 주봉과 오른 쪽의 영봉이 멋진 대칭을 이루고 있다. 주흘산은 문경의 진산이다.
주산은 대야산이고....
선바위 대 다수 분들이 남근석이라 칭하지만.. 따라가기님의 선바위 호칭에 따라가기로 한다. 내심으로는 탄항산의 입석바위로 부르고 싶지만...
주봉과 영봉을 더 가까이서....
근육질이 아름답다. 언젠가 갈비 뜯으로 가야 할낀데...
흰 구름 아래 고사목과 주봉을 바라보는 줄거움이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선바위를 뒤로하고 하늘재로 내려서는 길목에 만나는 삼각점은 두 개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침판과 동일한 북방화살표는 아래 것이 맞는데... 맞춰보는 줄거움도 대간길의 일과이다.
포암산
우측사면을 보고 선조님들은 베바우(겨릅)산이라 했나보다. 가까이서 보면 세로방향으로 굴곡되어진 모습이 삼나무 껍질을 벗겨 낸 겨릅(저릅)을 닮았다.
17:43 하늘재의 날머리와 들머리
이 곳에 서는 순간! 나는 삼존불이 되어 본다 관음과 미륵을 양 쪽에 거느리고 가운데 서 있으니..부처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두 가지가 서운하다. 부산(부산까지 3시간 30분 걸린다고 한다)에서 왔다는 "낙동산악회" 차량이 부럽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륵리로 2.5km를 더 걸어야 하니까!!!
다른 한 가지는
선녀님을 만나지 못하고 간다는 것이다. 대간꾼들을 위 해 헌신을 다하는 귀농부부를 만나지 못하고 간다는 사실이다. 외출을 하였는지 라듸오 소리만 들리고 사람은 보이지 않으니.. 외출 하였나 보다!
미륵리까지 가려면 주유를 해야 하는디....
넋두리.. 문경에서 하늘재를 넘으면 수로를 통 해 한양으로 곧 바로 진입할 수 있으니 옛날 사람들이 여기를선호했나보다. 요즘 대선에 출마한 어떤이가 4대강을 연결하여 전국토를 운하로 만든다고 하는데 하늘재만 뚫으면 낙동강과 한강을 바로 연결할 수 있으니 기발한 생각이지만 산맥이 잘려지는 것은 어떻게 하라고......???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 해 주는 중요한 고개이다. 다음에는 만수봉을 경우 해 덕주사나 다녀올까 보다..
하늘재에 서 있다..
안내석을 양보한 충주시가 아릅답다. 도경계나 군경계선에서 간혹 만나는 표지석이 두 개씩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서로가 자기지역을 알리기 위한 영역다툼으로 보여 눈살 찌뿌리게 한다.
남원 수지에 있는 견두산의 표지석이 그렇고 영남알프스 간월산에 있는 표지석 등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입 빠른 소리하다 " 니 잘났다고 욕먹을지 모르지만" 요즘 입이 근질근질 하다. 잘 난 사람들만 있고 못난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수 많은 사람들이 넘고 넘었을 고갯길 따라 계천이 흐르고... 흔들어지게 피어 있는 여뀌와 며느리배꼽 그리고 물봉선.
산에서 주었다는 밤 한톨 나누어 먹는 정에 우리팀은 다정한 남매들 맞다.
미륵대원터 앞이다.
지금은 계립령을 하늘재라 부르고 수안보 넘어가는 고개를 지릅재로 부르는 걸으로 보아 표지석이 뜻하는 역사적 의미를 알듯 모를 듯 복잡하기만 하다.
좀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져 문화적 가치로서 중요한 위치로 선점 받기를 생각 해 본다. 근데 여기도 조계종땅이다. 18:28 덕주사의 마애불과 마주보고 있는 석불입상은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어 망국의 한을 품고 개골산(금강산)으로 가다 잠시 머무렀던 마의태자의 한이 표현되어 나오는 듯 하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북향은 좌향이라 하고 공망이라 하여 집터나 묘터를 잡을 때 절대로 피하는 것인데 이 곳의 구조물은 모두 북향으로 되어 있다.
신라 제일의 석굴사원터인 이 곳이 폐허가 되어 있는 것은 우연일까? 하는 상념은 울분을 토해내듯 뇌리를 때리는 마의태자의 사자후에 정신차리고 보니 알바를 하고 있더라.
산행 후
점말로 가야하는 하산길이 미륵대원터와 덕주사의 마애불에 얽힌 사연에 몰두하다 미륵교로 하산하여 점말로 되 돌아 가는 알바를 하게 되어 쓴 웃음 지었는데......
00 뭣 인가! 하는 식당에서 막걸리 한 잔의 목 축임은 안주로 이어지는 김치맛 (구릿내 나는 음식물을 파는 주인의 배포에 놀라고)에 정나미 떨어졌지만... 늦은 하산으로 시간이 없어 여기에서 식사를 하자는 것에 동의하여 된장찌게 값 물어보니 1인 육천원이라 수안보로 이동하기로 한다.
수안보에 도착하여 오천원(우리는 일만칠천원 벌었다)짜리 된장찌개에 담근주(동동주?) 한 잔! 그리고 귀향길은 ..
오늘처럼 힘들게 하는 운전을 처음이었다는 기사님의 투정에 마음 편하지 않더라....
기름값 절약하시라고 미륵리로 하산 했는데.....
|
백두대간의 꿈! 작은차갓재에서 저수령까지 -북진21구간- (0) | 2007.10.18 |
---|---|
[스크랩] 백두대간의 꿈! 계립령에서 작은차갓재까지 -북진20구간- (0) | 2007.10.04 |
백두대간의 꿈! 이화령에서 조령3관문까지 -북진18구간- (0) | 2007.08.31 |
[스크랩] 백두대간의 꿈!지름티재에서~이화령까지 -북진17구간- (0) | 2007.08.22 |
[스크랩] 백두대간의 꿈! 버리미기재에서 지름티재까지 -북진16구간- (0) | 2007.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