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華嚴寺)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화엄사는 통일신라 경덕왕(재위 742∼765) 때 승려 연기가 처음 지은 절이다.
그 후 신라말 도선에 의해 크게 확장되었으나,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다.
조선 인조 8년(1630)에 승려 각성이 다시 짓기 시작하여 7년 만인 인조 14년(1636)에
대웅전을 비롯한 약간의 건물을 완성하였고, 그 다음해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되었다.
건물들은 각성이 다시 지은 17세기 이후의 것이다.
일주문(一柱門)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의 서자 義昌君 李珖(의창군 이광:1589~1645)이 1636년에 쓴 글씨로
‘皇明崇禎九年 歲舍丙子仲秋 義昌君 珖書‘란 관지가 있다.
사대천왕문(四大天王門)
1.동방 지국천왕
수미산의 동방(동승신주)을 수호하고 백성을 편안케하며 나라를 잘 다스리고 지키는 천왕.
2.서방 광목천왕
수미산의 서방(서구야니주)을 수호하고 위엄으로 나쁜것을 물리치고 넓고 큰 눈으로 국토를 바르게 지키고
중생을 이익되게해주는 천왕.
3남방 증장천왕
수미산의 남방(남섬부주)을 수호하고 항상 염부제 중생을 관찰하고 더욱 길고 넓게 중생의 이익을 증장시켜 주는 천왕.
4.북방 다문천왕
수미산의 북방(북구로주)을 수호하고 재복부귀를 맡고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고 설법을 많이 들으며
불법을 옹호하는 천왕.
보제루(普濟樓)
법요식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강당건물이다. 앞면 7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대웅전 앞 한단 낮은 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웅전 쪽 창문은 7칸 모두 큰 두짝의 빗살문을 달고 그 반대쪽 5칸은 널판지문을 달았으며
좌우 양칸은 문을 생략하였다.
당간지주(幢竿支柱)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도선국사가 화엄사 형세를 풍수지리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니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커다란 배 같아서 돗대를 상징하는 당간을 이 곳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는 반야용선으로 불법을 전하여 중생을 피안으로 이끄는 깃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라선덕여왕 5년에 도의선사가 선종을 전하면서 시작되었다.
본 당간지주는 단층으로 된 아름다운 기단부 위로 두 개의 돌기둥을 세워 상.하 두군데 구멍을 파서 나무를 끼워
당간을 고정한 흔적과 양쪽 돌기둥사이에 간주를 받치는 원형으로 된 간대가 있다..
"당"은 "번"이라고 하며 긴 장대에 메달은 기(旗)로 "깃대"라고 도 한다.
당간은 "당"인 깃발을 달아두는 것이라 하여 "찰간" , 사찰 중앙에 위치하여 멀리서도 절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하여
"찰주"라고 도 한다.
당간지주는 두 쪽의 돌기둥 사이에 기둥을 세워 깃대 끝에는 깃발을 달아 부처님이나 선지식 스님이
거처하는 것을 알리거나 큰법회나 기도를 알리기 위한 성보이다.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299호.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에 있는 불전의 하나. 목조 건물로 원래의 건물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각황전(覺皇殿)국보 제67호)
규묘나 아름다음으로 보나 화엄사의 대표적인 건물은 "각황전"이다.
우리나라에 전해 져 내려오는 불전 중 가장 규묘가 크다.
원래는 석가여래를 모신 장록전이었으나, 다시 지으면서 각황전이 되었다.
이름은 숙종이 지어 내렸다고 전해 져 오며 내부에는 목조칠존상이 모셔져 있는이 이 엿기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이다.
내부에 둘러져 있는 화엄석경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과 적묵당(寂墨堂)
대웅전
화엄사의 대웅전은 특별한 대웅전이다.
대개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지만 여기에는 비로나자불이 모셔져 있다.
그래서 "대적광전"이라 해야하나 중건당시 인조의 숙부인 의창군이 써서 내려준 현판을 그대로 사용 해 "대웅전"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전란이후 어려워진 여건 때문에 웅장하게 짓지는 못했지만 대신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은 더욱 돈독해진
신앙심의 표현이라 한다.
화엄사에서 가장 오래 된 건물이다.
사자탑(獅子塔)보물 제300호)
아래 기단의 연석에 버팀기둥이 없는 불단 형식으로 몸통은 네모난 기둥처럼 우뚝하게 길며
감 면에는 사천왕상이 얇게 새겨져 있다.
이 탑은 "노주"라고도 부르는데 그 성격은 확실하지 않다.
석등(石燈)국보 제12호와 영신정
이 석등은 전해 져 내려오는 우리나라 석등 중 가장 규묘가 크다.
간주석은 통일신라 석등의 팔각기둥과는 달리 북처럼 재가 불른 형태이다.
각황전(覺皇殿)과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
12지신과 여덟무리의 신들, 사천왕이 함께 새겨진 보기드문 에로서 1955년 보수작업 때 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유물 47점인 탐곳에서 발견 되었다.
동오층석탑(우측 상단은 원동전과 영전)
탑의 표면에 아무런 조각 장식이 없고 기단도 단층으로 이루어 져 있다.
1999년 보수작업 때 사리 장엄구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탐속에서 발굴 되었다.
우물(石井)
운고각
범종각
1층에 범종을 설치하고 2층에 북이 있는 누각을 설치하는 것이 일반사찰의 방식인데 비하여 화엄사는 특이하게
보제루를 중심을 오른쪽에 운고각을 세우고 왼쪽에 범종각을 세웠다.
예불의식
예불의식을 마친 후 불공을 위해 각황전으로향하는 스님들의 의식행렬
에필로그
화엄사는 전국 어느 곳에서나 당일로 여행이 가는 하며 주변에 온천과 먹거리 등이 풍부하며
계곡을 다라 하는 트레킹 코스와 노고단으로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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