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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 일반산행 記

by 운해 2008. 11. 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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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6일(음력:10/19)날씨:맑음

 

산행지: 소요산(동두천)

 

산행자:집사람과 동행

 

산행코스: 소요산역~일주문~자재암~하.중.상백운대~칼바위~나한대~의상대~공주봉~일주문~소요산역

 

도상거리:8.19km , 어프로치:3km(소요산역~매표소 왕복)

 

산행거리:11.9km , 산행시간:5시간 50분

 

소요산의 산줄기와 지명유래

 

①산줄기

한북정맥 축성령에서 분기하는 왕방지맥은 왕방산을 모산으로 국사봉.하늘봉.개미산을 이어주며 영평천까지 37km을 이어간다.

37km로 이어지는 왕방지맥의 중간지점이라 할 수 있는 국사봉에서 서북방향으로 연꽃을 닮은 원형의 산봉우리 낳으니 소요산이라 한다.

 

②지명

요산의 유래는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과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逍遙: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③유래(전설)

 

요석공주를 위한 원효대사의 노래

 

誰許沒柯斧(자루 없는 도끼를 누가 준다면)

 

斫我支天柱(하늘 버틸 기둥을 내가 깎으리)

 

신라 무열왕 김춘추(金春秋, 604-661)의 차녀인 요석공주(瑤石公主)에 대한 흠모의 정을 노래한 詩로 잘 알려져 있다.

 

경북 경산시 압량군 자인면 불지촌에 태여 난 원효는 태여 나자마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불운 속에 성장하면서 儒.佛道에 심취하여

 黃龍寺에 출가를 하게 되는데 그가 幼年期를 보내던 때는 고구려와 백제와의 잦은 戰爭으로 고통 받던 시대였다.

 

황룡사의 승려로 불도에 정진하고 있을 때 백제와의 전투에서 요석공주의 남편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전재들은 원효는

요석공주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노래를 민중에 퍼뜨리고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나 이미 알려진 내용대로

해골 안에 고여 있던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결하나 날이 밝으면서 자신이 마신 물그릇이 해골이었다는 것을 안 원효는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다“라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깨달음을 얻고

유학길을 포기하고 돌아와 귀족불교에서 민중불교를 포교하는데 정진하게 된다.

 

그 시기에 요석공주의 아버지인 무열왕은 원효의 노래를 전해 듣고 원효가 요석공주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신하로 하여금 원효를 요석공주에게 인도하는데 요석궁으로 향하던 원효는 문천교(蚊川橋)에서 이르러 물에 빠지는 연극을 연출한다.

 

물에 젖은 옷을 말려야 한다는 빌미를 마련한 원효은 요석공주가 머물고 있는 요석궁에 도착하여 3일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요석공주와 불타는 사랑을 나누는데 되고 그 열매는 한문을 우리말식으로 해석한 이두문자를 창시한 大儒學者이며 신라 十賢의 한 사람인 설총을 잉태한다.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잃고 자루 없는 도끼를 품어 안고 살아가야 했던 요석공주를 위해 도끼자루 되어 달래주었던 원효와 요석의 애틋한 사랑은

오늘날까지 심금을 울리며 민가에 전해 져 오고 있지만 바람처럼 살아야 했던 원효는 소요산에서 수도하며 말년을 보내면서 그를 찾아 온

요석공주과 설총을 위해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거처를 마련 해 주고 의상대와 마주보며 달덩이처럼 둥글게 솟아있는 봉우리를

 “공주봉”이라 이름하여 주었을 뿐이다.

 

 

 

 원점회귀

 

산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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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산 가기로 하였으나 소요산행 때마침 타는 전철이 소요산행이라

그 곳에 가기로 한다.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전철속 풍경은  도봉산으로 가는 사람들과 소요산으로 가는 사람들로 나누어 지지만

경로우대로 소요산행 가는분들 대 부분이 연세지극하신 분들이라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MP3에서 흘러 나오는 김영님의 정선아리랑 가락에 눈을 감고 10년 후를 생각 해 보면서..

 

 요석공원 앞

 일주문 옆에서

 원효폭포 상단부

 원효폭포

 백운선원

 나한전

 청량폭포(옥류폭포)

 나한전

 삼성각

 나한대와 의상대

 칼바위능선

 하백운대 오름길 전망대에서 조망

 

잠자는 코알라

자재암에서 하백운대 오름길을 치악산의 그것이라....

힘든가 보다.

 자재암

 535.6봉 갈림길

 

중백운대를 지나고 상백운대 가는 길은 우측으로..

 선녀탕 하산로

급경사길이므로 겨울산행시는 피하는게 상책

 칼바위 능선

 

소요산 회기산행에서 가장 스릴있는 등로

 칼바위능선

 칼바위

 갈림길

 선녀탕으로 이어지는 두번 째 하산로.

겨울산행시 이 길을 이용하면 비교적 안전함

 

금송굴 가는 길

 선녀탕으로 이어지는 세번 째 하산로

 칼바위봉

 국사봉으로 연결되는 능선

 나한대

 국사봉 너머에 또 국사봉

 

앞에 국사봉은 왕방지맥의 국사봉이고 뒷 쪽은 한북정맥의 국사봉

한북정맥의 국사봉 우측은 죽엽산

 의상대

서북방향 능선으로 절터로 가는 하산길 있으나 암릉구간이므로 주의해야할 곳!

 의상대에서 서북방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한북정맥 국사봉

의상대 

 신천

한북정맥 한강봉에서 발원하는 신천의 물줄기는 한북정맥 장바위산에서 발원하는 한탄강에 합류되어 임진강의 지류를 이룬다.

신천의 길이는 35.50km이다

 공주봉에서 구절터로 하산하는 중간지점에 넓다란 마당바위 있고...

원형으로 되어 있는 소요산의 조망이 압권이다.

 칼바위능선

 단애

 의상대

 기도터

 계류

 구절터

 일주문

 진입로

 진입로의 단풍

 마차산

소요산역에서 노조파업으로 지연되고 있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秋風落葉

 

 후기

 

오랫만에 집사람과 함께 하는 동행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줄거움이 있었다.

 

인천에서 출발할 때 수리산 가기로 하엿으나 소요산행 전철을 타게되니 소요산으로 행로를 바꾸기로 의기투합한다.

30여년만에 찾게 되는 묘한 흥분과 함께....

 

전혀 낮설게 느껴지는 풍경은 열차를 이용했던 그 시절과는 판이하게 느껴지고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 선 음식점들의 모습을 옛 시절의 정취를 앗아가 버린 것 같아 조금은 아쉽다.

 

옛 기억을 더듬어보니 일주문에 들어서서야 조금씩 되 살아나는 추억속에 하백운대 오름길 왜 그렇게 힘들던지..

오늘은 집 사람이 힘들어 했다.

 

그 때는 지금처럼 철계단 설치가 없어 로프를 이용해야 했기에 공주봉 돌아 오는 길이 10시간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나고 무척이나 고생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오는 길에 묵무침에 막걸리 한 잔은 삼십년전 그 때를 돌이키보면

혼자만의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 때

함께 하였던 그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백만송이 장미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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