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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은 장안산의 애칭(一云)일 뿐이다.

㉡ 지명과 유래

by 운해 2009. 4. 3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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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견임을 전제로 영취산의 유래와 위치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정리 하고자 한다.


-목차-

 

1.영취산의 유래

2.문헌으로 보는 영취산

3.고지도로 보는 영취산

4.현지도와 구글지도로 보는 영취산

5.결론

 

1. 영취산의 유래

 

 영취산은 원래 인도 마갈타국 왕사성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석가모니가  이 산에서 법화경과 무량수경을 설법 했다고 전해 져 오고 있다.

영취산은 "영산" 또는 "취산으로" 축약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신령스럽고 신비스러운 산이라 하여  신령(靈)과 수리(鷲)를 쓰는데 "靈자를 쓰는 산으로는 백두산의 영봉과 월악산의 영봉. 여수의 영취산이'이 유명하고  "鷲자를 쓰는 산으로는 영축산.영취산.취서산 등으로 혼합하여 쓰고 있는 영남알프스의 영취산과 고흥의 취령산.군산의 취성산 천안의 취암산 등이 있다.

 

1-2. 백두대간상에 위치하여 혼동이 되고 있는 영취산

 

전라북도와 경상도의 도계이며 전라북도 장수군과 경상남도 함양군의 군계를 나누는 백두대간상 마루금은 백운산에서 남덕유산의 서봉까지이다.

두 군의 경계를 이루는 마루금상 무룡고개(본월치)동쪽에 위치한 마루금에서 금남호남정맥이 분기하는데 분기점에다 최근에 들어 서부국토관리청에서

"영취산"이라는 정상석을 세워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문헌과 고지도를 살펴본 결과를 여기에 기록하여 보다 옳바르고 정확한 확인을 요구하고자 한다.

고문서는 "한국고전변역원"에서 변역한 신증공국여지승람 장수현과 안음현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고 원본은 장수현과 안음현의 읍지를 옮겼다.

고지도는 "서울대규장각"이 소유한 지도를 캡처하여 사용하였다.

현지도는 오만분의 1 랜덤하우스 지도를 사용하였고 위성지도를 구글을 편집하였다.

 

2.문헌으로 보는 영취산

 

※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읍지류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9권 전라도 장수현편

 

1-1)지리

동쪽으로 경상도 안음현(安陰縣) 경계까지 50리, 남으로 남원부(南原府) 경계까지 20리, 서쪽으로 남원부 경계까지 32리, 진안현(鎭安縣) 경계까지 32리,

 북으로 용담현(龍潭縣) 경계까지 47리, 서울로부터는 6백 68리 떨어져 있다.

 

1-2)건치연혁

본래는 백제의 우평현(雨坪縣)인데 신라 시대에는 고택(高澤)이라 하여 장계군(長溪郡)에 속하였고, 고려에 와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치고 남원부(南原府)

에 속하였다가 공양왕(恭讓王) 3년에는 장계(長溪)를 겸임하였다. 본조 태조(太祖) 원년에 다시 나누어 장수현으로 하고, 장계 감무(監務)를 겸하도록 하였

고, 태종(太宗) 14년에 예에 따라 현감(縣監)으로 고쳤다.

 

1-3 )산천

영취산(靈鷲山) 현의 동쪽 10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덕유산(德裕山) 현의 북쪽 50리에 있다. 성적산(聖迹山) 일명 성수(聖壽), 현의 서남방 15리에 있

다. 백화산(白華山) 장계현(長溪縣)에 있다. 육십현(六十峴) 현의 북쪽 40리, 경상도 안음현(安陰縣)의 경계에 있다.신라 시대로부터 요해지(要害地)로서

 행인이 이곳에 이르면 늘 도적에게 약탈을 당하므로 반드시 60명이 되어야만 지나가곤 했다. 이것이 이름이 되었다. 수분현(水分峴) 현의 남쪽 25리에 있

다. 골짜기의 물이 한 줄기는 남원(南原)으로 향하고 한 줄기는 본현으로 들어와 남천(南川)이 되었다. 이것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남천(南川) 현의 남쪽 20리에 있다. 호천(狐川) 현의 북쪽 45리 지점에 있다. 남천(南川)과 백화산의 물이 합류하여 호천(狐川)이 되고, 북으로 흘러용담현

(龍潭縣) 경계로 흘러간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1권 경상도 안음현(安陰縣)편

 

1-1) 지리

안음현(安陰縣)은 동쪽으로 거창군 경계까지 21리이고, 서쪽으로 전라도 장수현(長水縣) 경계까지 57리이며, 남쪽으로 함양군 경계까지 5리이고, 북쪽으

로 거창군 경계까지 50리인데, 서울과의 거리는 7백 52리이다. -이하생략-

 

1-2) 건치연혁

이안현(利安縣)은 본래 신라 마리현(馬利縣)이다. 경덕왕이 이안현이라 고쳐서 천령군(天嶺郡) 속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현종 9년에는 합주에 이속시켰고,

 공양왕 때에는 감음(感陰)에 이속시켰다. 감응현(感應縣)은 본래 신라 남내현(南內縣)이다. 경덕왕이 여선(餘善)이라 고쳐서 거창군 속현으로 만들었다.

 

 

1-3) 산천

성산(城山) 현 서쪽 3리 지점에 있으며 진산이다. 지우산(智雨山) 현 북쪽 20리 지점에 있다. 황석산(黃石山) 현 서북쪽 15리 지점에 있다. 천왕점(天王岾)

현 서쪽 20리 지점에 있다. 영취산(靈鷲山) 현 서쪽 50리 지점에 있다. 백운산(白雲山) 현 서쪽 30리 지점에 있으며 함양군 경계이다. 덕유산(德裕山) 현 서

북쪽 60리 지점에 있으며, 전라도 금산군(錦山郡) 및 장수현(長水縣) 경계이다. 육십현(六十峴) 현 서쪽 60리 지점에 있으며 전라도 장수현 경계이다. 동천

(東川) 객관 동쪽에 있다. 덕유ㆍ지우 두 산 물이 현 북쪽에서 합치며, 남쪽으로 흘러서 함양군 남계(藍溪)로 된다.라고 기록하였다.

 

1-4 불우

영각사(靈覺寺) 덕유산(德裕山)에 있다. 극락암(極樂庵) 영취산(靈鷲山)에 있다. 장수사(長水寺) 지우산(智雨山)에 있다. 절 앞에 폭포가 있고, 그 밑에 용

추(龍湫)가 있다.

 

 

※ 읍지류에서

 

❷-:안의에서((安陰縣)

山水城山西三里旗泊山一云智雨山北二十里有長水寺寺前有瀑布其下有龍湫(松田四)鳳凰峯卽德裕山東支西北七十里金猿山北二十里下有鶴潭長安山西北六

十里長水界靈鷲山西五十里南原界白雲山西三十里咸陽界德裕山西北六十里茂朱長水界○靈覺寺扶田山長安山之南佛影峯德裕山南支月峯山北六十里花林洞

西北三十里尋眞洞北二十里猿鶴洞北三十里淸泉白石上下五十餘里愁送臺東北四十里猿川邊有瀑布點風臺在文廟南隅尋眞花林二水合于臺前


(성산은 서쪽 3리 지점에 있으며 진산이다. 기백산 일명:지우산은...생략...장안산은 서북쪽 육십리에 있으며 장수와 경계이다. 영취산은 서쪽 오십리에 있

으며 남원과 경계이다. 백운산은 서쪽 삽십리에 있으며 함양과 경계이다. 덕유산은 서북쪽 육십령에 있으며 무주.장수와 경계이다 ㅇ영각사.부전산 장안산

은 남쪽으로 이어지고...생략...(-운해譯-)

 

아래 거리환산표는 문헌과 고지도에 나타나는 거리(리)를 현지도를 이용하여 환산한 것이다.

 거리환산표(식:00 km×10 ÷4 = 거리)

 

❶-장수에서

 

沿革本百濟雨坪新羅景德王十六年改高澤爲壁谿郡領縣高麗太祖二十三年改長水顯宗九年屬南原恭讓王三年以長溪監務來兼 本朝 太祖元年復析爲長水縣兼

任長溪 太宗十三年改縣監邑號長川官員縣監兼南原鎭管兵馬節制都尉一員 古長水西七里古邑長溪北三十里本百濟伯海新羅景德王十六年改壁溪郡領縣二高

澤鎭安隸全州高麗太祖二三年改長溪顯宗九年屬南原恭讓王三年置監務兼任長水 本祖太祖元年析置長水縣來屬坊面邑內終十身南南初五終三十身西西初二

十終三十身北北初十終三十水內自邑終十五任縣內北初三十終四十任南北初十五終三十五任北北初四十終六十右三面長澤古縣 陽岳所北六十里 天蠶所北十

五○梨方所北三十福興所西二十山水靈鷲山一云長安山東二十里盤據南原安義本邑界德裕山北五十里山北茂朱界山南長水安義界聖壽山一云聖迹山西南十五

里鎭安任實兩邑界○雲岾寺新羅眞平王時重修○


(이방소는 북쪽삽십리 이고, 복흥소는 서쪽이십리 이다, 영취산 일명:장안산은 동쪽이십리이며 진산(山水)이다. 반거는 남원.안의. 본(本)읍과 경계이다.

이다. 덕유산은 북쪽오십리에 있는 산이다. 북쪽은 무주와 경이이며 산 남쪽은 장수.안의와 경계이다. 성수산 일명: 성적산은 서남쪽 십오리 이며

진안.임실 양(兩)읍과 경계이다.ㅇ운점사(팔성암)은 신라증평왕 때 중수했다ㅇ (-譯-)

 

3.고지도로 보는 영취산

 

 ※ 아래의 고지도는 규장각 소유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장수현편과 안음현편 지도를 이어 붙이는 형식으로 편집했다.

 대동방여도와 대동여지도(목판본)

위 지도에서는 장안산을 깃대봉(현재 서부국토관리청에 의해 구시봉으로 바뀌었다)에 표기하였다.

 여지도(필사본)

장수현편에서는 장안산를 영취산으로 표기하였고 무룡고개에다 본월치라 표기하였으나 안음현 지도에는 장수계와 남원계만 표기되어 있다.

 조선팔도지도(필사본)

장수현편에서는 영취산과 장안산을 다르게 표기하였으나 안음현편에서는 덕유산과 육십현만 표기되어 있다.

천왕점(괘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백운산이 표기되어 있다.(참고: 천왕점은 천왕봉의 정상을 말하는 것으로 경상도 지방의 산에 나타나고 있다)

 지승(필사본):

 장수현과 서상면 일대를 그린 지도이다

장수현쪽에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뚜렷하고 본월치와 중치.육십령 등이 기록되어 있으나, 안음현쪽 지도에는 장수계와 남원계로만 표기하였다.

그러나 영각사와 부전산.극락암 등을  기록하였는데 읍지류 안의에서 살펴보면 극락암이 영취산에 위치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청구도와 청구요람(필사본)

정상기의 지도로 본월치만 표기되어 있다.

영취사는  분기점에서 백운산으로 이어가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상 헬기장이 있는 1066봉이나 제산봉 북사면으로 추측된다.

 팔도지도(필사와 목판)

이 지도는 현지도와 매우 흡사하다.

영취산을 장안산에 표기하였고 본월치 윗쪽(분기봉) 본월산으로 표기하였다. 안으쪽 지도에는 본월치로 표시하였다.

 팔도분도(필사본)

장수편 지도에는 백두대간 왼쪽(무룡고개)에 영취산을 표기하였으나 안의편 지도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동여도(필사본)

부전산은 현재의 덕운봉을 일컫는다.

 

이와 같이 표기한 고지도의 대해 1872년에 그려진 팔도지도 장수현도에는 거리와 함께 현재의 지명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이 지도가 그려진지는 137년 전이므로 현재의 지명과 동일하다.

 

그런데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천지가 개벽 된 것일까?

1872년 지방도 전라도편 장수현지도 (서울대규장각소유 그리고 해설)

 

장수현지도 長水縣地圖, 장수현은 지금의 전북 장수군 장수읍, 천천면, 계남면, 장계면, 계북면 지역에 해당하며, 읍치는 장수읍 장수리 일대에 있었다. 백두대간의 서쪽 사면 고지대에 위치한 궁벽진 고을로 금강 상류인 장계천이 북쪽으로 흘러나가고 있다.원래 이 지역에는 조선초기까지 長溪縣과 長水縣 두 고을이 있었는데, 1414년(태종 14)에 장계현을 병합하여장수현으로 만들었다. 지도에서도 水內, 水西, 水南 등은 장수현에 속했던 지역이고, 溪北, 溪內, 溪南 등은 장계현에 속했던 지역이다. 지형적으로도 두 지역이 분지의 형태로 뚜렷하게 구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을의 동쪽에 우뚝 솟아있는 靈鷲山이 고을의 진산인데 무주의 덕유산에 뻗어온 산줄기이다. 그 위쪽에는 백두대간을 넘어 경상도 안의로 이어지는 六十嶺이 보인다. 육십령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 간요해처로서 이후 도적이 많아 행인 60명이 모여야만 안전하게 넘어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읍치 서쪽의 新光寺는 지금의 천천면 와룡리 신광마을 서쪽에 있는 것으로 신라 흥덕왕 5년(831) 무량국사가 창건하였고, 1849년(헌종 15) 당시 장수현감 조능하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또한 읍치의 서남쪽에는 合米城古址가 표시되어 있는데, 합미성은 후백제 때 축성된 것으로 전하는 성이다. 

說:장수현도로 영취산이 크게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에서 중요한 부분은 "장안동"으로 영취산 아래 "영취고허" 와 장안동.괴목.노치가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장안동의 동(洞)은 사람이 사는 계곡을 뜻 하는 것으로 마을의 뒷 산은 자연스럽게 "장안산"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취산은 신비스러럽고 영험한 산으로 보아 장안산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고.....

하여튼! 현대지도를 고지도들과 비교 해 보았다.

 

4.현대지도와 구글로 보는 영취산

 

랜덤하우스 5만분의1 지도이다.

 이 지도는 계곡선과 주곡선 따라서 산줄기 긋고~~물줄기 긋고~~고지도에 나타나는 지명과 현재의 지명을 비교분석하여 자판기 두드리고 그렇게 하여아둔한 머리로 보름 걸렸다.

 .........................................

그리고 나 처럼 눈 나쁜사람들 쉽게 보라고 양파껍질 벗기고 햐앟게 속살 드러내 놓고 보니 아래와 같다.(전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백지도

중앙에 "?"는 금남호남정맥이 장안산에서 밀목치를 향해 가다가 북쪽으로 꺽여지는 꼭지점인데 그 꼭지점에서 노치를 지나고 싸리재를 지나 법화산으로 이어지는 한 줄기 낳아 놓는데 그 지점을 조선팔도지도에서는 "영취산"으로 표기 해 놓았다.(참고: 이 곳을 찾았던 어느 산님이 점잖게 "백운산"이라 쓴 표지기를 걸어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착각하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삼각고지라 하지만 . 나는 "?"가 영취산이든 이름없는 무명봉이든 간에 관심이 없어 아래의 같이 구글지도를 만들어 보았다. 

 구글지도

 

5.결론

 

이제 결론을 내릴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영취산의 위치에 대해 서부국토관리청에서 정상석을 세워놓은 금남호남 분기점이 "영취산"인가?

장안산의 또 다른 명칭이 "영취산'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나의 소견임은 전제로 결론을 내려야  한다.

 

※ 답은?

금남호남분기점은 무명봉일 뿐이며 영취산은 장안산(一云)과 동일할 뿐이다.

 

풀이....

 

1. 문헌  상 나타나는 영취산의 위치에 대해 안의쪽에서 보면 금남호남 분기점을 영취산으로 볼 수 있다.

   (서상에서 바라보는 분기점과 1066봉은 기세가 대단하여 신령스러운 산으로 보일 수 있다)

 

2.그러나 안의편 고지도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영취산에 대한 표기를 찾아볼 수 없다.

 

3.장수편 고지도에서는 영취산이나 장안산 그리고 본월치를 표기 해 놓아 영취산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게 하였다.

 

4.신증동국여지승람과 장수현 읍지류에 영취산은 일명 장안산(山水靈鷲山一云長安山東二十里=영취산은 일명 장안산이며 읍치로부터 이십리 지점에 있다) 이라 기록 해 놓았다.

 

이와 같은 근거에 의해  영취산은 장수군에 속한 장안산의 다른(애칭) 이름(이는 영남알프스에 있는 영취산이 취서산. 영축산 등으로 불려지는 것과 동일하다)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금남호남정맥이 지나는 백두대간상 분기점에 굳이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면 고지도상에 나타나는 본월치에 갈음하여 "본월산"이 되어야 한다.

 

분기점(1076.5봉)은 선바위고개 안부를 지나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상 1066봉(헬기장)과 쌍봉을 이루고 있는데(현지사람들은 "형제봉"이라 부른다) 이것은 백두대간상의 마루금일 뿐이고 전라북도와 경상남도 또는 장수군과 함양군의 경계에 있을 뿐이다.

 

넋두리... 

 

장안산(영취산)은 충청남도와 전라도 일원에 있는 모든 산줄기를 거느리고 있는 종산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강원도 태백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영남과 경기일원의 젖줄이 되듯이 장안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 역시 금강과 섬진강의 젖줄을 이루어

호남평야의 대 정맥을 이루어 놓는다.

 

장안산은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도가 다르겠지만 덕유산이나 백운산.팔공산에 서서 구름위에 나타나는 장안산의 정상부를 바라보면 구름위를 비행하는 독수리처럼 신비스럽게 보일게다.

 

따라서 금남호남 분기점이 장안산을 연결하는 이음새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취산의 시작점은 될 수 있을지언정 장안산과 일운하는 영취산의 정상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조선조 중종의 명으로 쓰여진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고지도의 집약체라 할 수 있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역시 현지를 답사하지 않고 기존의 자료나 구술에 의해 목판했을 것이고 이러한 표현방법은 지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사람들이야 입으로 듣고 상상으로 창작하고 그렸을 것이니 무릉도원이었을 것이고 책자나 그림에 나타나는 신비스러운 세계였을 것이다.그래서 우리나라엔 서시가 빨래 했다는 "약야계"도 있도 물줄기가 길고 아늑하다는 "장안"도 있고 백운도 있고 영취도 있다.

 

엣 날에 양반이 갓 쓰고 산에 가는 것 상상만 해 봐도 거짓말일게야~~

그 당시에는 호환이 무서워 어둡기가 무섭게 자빠졌을게고~~

에~헴 했것지~~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 해 살아가기도 힘드는데....

새 것(지명) 다 좋은 것은 아녀!  옛 것이 좋은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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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云~~ 영취산이나 장안산이나 같은 말이여~~

 

아버지나 아빠나 같은 말이고 ~~~

 

그런데 마누라와 애인은 틀린말여~~

 

착각하지말어~~

 

어떻게 분기봉이 영취산이 될 수 있어!

 

정신들 차려!


사견임을 전제로...........

금남호남분기점은 청구도에 표기된 본월치와 팔도지도에 표기된 "본월산(本月山)로 불려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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