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의 고찰
※ 이 글은 산경표를 접하면서 가졌던 속리산과 봉황산 사이에 있는 九奉山의 위치는 어디일까? 하는 우문(愚門)에서 출발하였다.
本文의 내용이 현답( 賢答)일 수 있으나, 개인의 연구이므로 사견(私見)임을 전제로 한다.
1.속리산의 이해
2. 문헌과 산경표에 나타나는 속리산과 구봉산
3. 고지도에 나타나는 속리산과 구봉산
4. 구글지도로 보는 속리산과 구봉산
5. 결론
동국여지승람(출처: 한국고전번역원)
1.속리산의 이해
속리산은 보은, 괴산, 상주, 3 개군의 경계에 걸쳐 있다.
속리산은 예로부터 광명산(光明山), 지명산(智明山), 구봉산(九峰山), 미지산(彌智山), 형제산(兄弟山), 소금강산(小金剛山),
하산(紫霞山), 속리산(俗離山)등으로 불려져 오다 " 속리산"으로 지적고시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에서...
속리산(俗離山) 고을 동쪽 44리에 있다. 봉우리 아홉이 뾰족하게 일어섰기 때문에 구봉산(九峯山)이라고도 한다.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 하고 중사(中祀)에 올렸다. 산마루에 문장대(文藏臺)가 있는데, 층이 쌓인 것이 천연으로 이루어져 높게 공중에 솟았고, 그 높이가 몇 길인지 알지 못한다.
그 넓이는 사람 3천 명이 앉을 만하고, 대(臺) 위에 구덩이가 가마솥 만한 것이 있어 그 속에서 물이 흘러나와서 가물어도 줄지 않고 비가 와도 더 불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세 줄기로 나뉘어서 반공(半空)으로 쏟아져 내리는데, 한 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낙동강이 되고, 한 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錦江)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가서 달천(達川)이 되어 김천(金遷)으로 들어 갔다.
○ 산 아래에 8교(橋)와 9요(遙)의 이름이 있는데, 산 양쪽 언덕이 빙빙 둘러 넓어져서 이쪽에서 저쪽을 바라다 보면 멀고 멀어서 마치 땅이 끝인 것처럼 의심스럽다가 거기까지 가서 바라보면 또 멀고 멀어서 이렇게 아홉 번 구불어지다가 비로소 법주사(法住寺)에 닿기 때문에 이름을 9요(遙)라고 한다.
9요 속에 물 한 줄기가 돌고 돌아 굽이쳐 꺾이는데, 한 굽이마다 다리가 있어 그 다리가 도합 여덟이기 때문에 이름하여 팔교(八橋)라고 했다. 맨 첫다리는 수정교(水精橋)이니, 다리 위에 비각(飛閣)이 있어 사람들이 이 각(閣) 속으로 다녔는데, 지금은 각은 무너지고 다리만 남아 있다.
※ 본문 중 "신라 때는 속리악(俗離岳)이라고 하고 중사(中祀)에 올렸다"에서
악(岳 또는 嶽)은?
큰 산을 뜻 하는 것으로 月岳 . 雉岳 . 雲岳 . 母岳 . 華岳 . 百岳 . 三岳山 등. "岳"자를 써 나타내기도 하고 黃嶽 . 雪嶽山 처럼 "嶽"자를 서 나타내기도 한다.
"岳 과 嶽"의 사전적 풀이
㉠ 악(岳) 8획
풀이: 1.큰 산, 2.벼슬.이름 (산 위에 작은 산 또는 언덕이 있는 큰 산의 뜻)
㉡ 악(嶽) 17획
풀이:1.큰 산. 2.긴뿔모양, 3 조종(祖宗),4.제후(諸候),5대신(大信)=각(角)을 나타내는 옥(獄)☞嶽은 獄의 변은으로 이우어진 큰산을 뜻함.
2. 문헌과 산경표에 나타나는 속리산과 구봉산
㉠ 동국여지승람 산천에서
속리산(俗離山) 고을 동쪽 44리에 있다-중략 내용은 상위 본문 내용임- 함림산(含林山) 고을 북쪽 10리에 있다. 구봉산은 보은현 동쪽 43리에 있다.
사산(蛇山)ㆍ와산(蛙山)ㆍ서산(鼠山) 모두 고을 안에 있다. 금적산(金積山) 고을 남쪽 25리에 있다. (한국고전번역본에서 인용함)
㉡ 산경표 백두대간 26쪽에서
속리산은 상주 서쪽 70리에 있고 보은 동쪽 42리에 있다(분 2기한다)
구봉산은 상주 서쪽 60리에 있고 보은 동쪽 42리에 있다(분 2기한다)
㉢ 산경표한남금북정맥 73쪽에서.
속리산은 견상 26항과 같다.
회유치는 서쪽에 있으며 구치 연지는 보은 서.남쪽 방향이며 분2기 한다.
※ 요점정리
동국여지승람에서는 속리산은 보은 동쪽44리에 있고 구봉산은 보은
동쪽 43리로 표기되어 있다.
산경표에서는 속리산은 상주 서쪽 70리에 있고 구봉산은 상주 서쪽 60리에 있으며 보은에서는 동쪽 42리로 함께 표기하였다.
이 기록을 비교 해 보면 속리산은 천황봉이 기준점이며, 구봉산은 형제봉이 기준점임을 알 수 있다.(참고: 천황봉과 형제봉의 거리는 4.9km(12리)이다.
3. 고지도에 나타나는 속리산과 구봉산
(아래 고지도는 서울대 규장각 소유임)
조선지도 보은현
속리산에서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뚜렷하다.
구병산 우측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는 갈령으로 이어지는 작약지맥이다.
마로면 부분이 구병산이며 귀암산(龜岩山) 시루봉으로 팔음산으로 이어진다.
※귀암산(龜岩山)은 시루봉과 동일하다.
조선지도 상주편
상주편에 지도에도 백두대간 마루금 뚜렷하고 구병산과 귀암산이 표기되어 있어 두 지도를 비교하여 보았다.
두 지도의 꼭지점들을 연결하여 구봉산의 위치를 찾고자 하였다.
청구요람
보은현의 경계와 하천의 표시가 뚜렷하고 당시의 도로를 표기 해 놓은 지도이다.
귀암산에 팔음산 천택산으로 이어지는 팔음지맥이 뚜렷하고 천택산과 팔음산 사이에 그어 져 있는 선이 당시의 교통로이다.
당시에는 화령재(율현)으로 넘어오는 길이 아니라 청산을 거쳐 원암으로 오는 길이 교통로 였으며 고려 공양왕이 넘어 온 길도
이 길(왕래치)이었다.
동여도
이 지도에서는 증항과 왕래(원) 및 회유치(回踰峙)에 대해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회유치(回踰峙)
수태극를 대표하는 지형으로 볼 수 있는데 한남금북정맥을 따라 동.남쪽으로 흐르던 물줄기가 서.북방향으로 회유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왕래(원)王來(院)
고려31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서 상주를 거쳐 청주로 갈 때 하룻밤 묵어간 곳이라 하여 왕래원이라 한다.
왕래원과 공민왕에 얽힌 설화..
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피난하였던 공민왕은 정세운과 이방운의 노력으로 난을 평정하자 상주와 청주를 거쳐 개경으로 귀환하던 중에 정세운의 전공을 시기한 "김용"이란 자가 그들을 죽이고 반란을 이르켰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마로면 관기리에서 3개월을 머물게 된다.
왕은 이곳에 머물면서 앞 산에 곡식을 저장할 창고도 짓고 성도 쌓도록 하여 세간살이를 시작한다
3월의 세월이 흐르던 어느 날 반란이 진정되었다는 소식를 전해 들은 공민완은 개성을 향 해 출발을 하게되고....
관기를 떠나 청주로 가던 중 삼승면 원남에서 비를 만나게 되자 하루밤 머물고 가게 되는데 그때 왕을 따르던 염제신(廉梯臣), 이암(李岩)등 일곱 원로대신들이 모여 앉아 웃고 이야기하며 시를 짓고 놀적에 대장군 김하적(金何赤)은 피리를 불고 장군 김사혁(金斯革)은 비파를 타고 대산 황석기(黃石寄)가 부르는 시에 모두 따라 화답시를 지었다고 한다.
(생각 해 보라. 백발을 휘날리며 가무를 하면서 왕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노력하는 눈물겨운 신하들의 임금 섬김을......이당 저당 옮겨 다니며 단물만 빨아먹는 철새들은 그 들의 반에 반이나 따라갈까?)
"푸른 옥잔은 깊고 술맛은 아름답구나.
거문고 소리는 느린데 피리소리 길다.
그중에 가느다란 노래소리 들리니
일곱 늙은이 서로 즐기는데
수염은 서리같네"
㉢ 증항(甑峯)
※ 증항(甑峯)은 시루봉 또는 시루목(甑項)을 뜻 하기도 하지만 현재는 시루봉이다.
정감록에(감결,鑑訣)
報恩 俗離山 四甑項 延地 當亂藏身 萬無一傷(보은 속리산 사증항 연지 당란장신 만무일상)이라 했다.
보은속리산 사증항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시루봉은 유교사상이 꽃 피운 풍수지리사상에서 보면
사람이 가장 살기좋은 이상향으로 일컬어지는 (연지)延地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증항은 보은에 있는 사증팔항(四甑八項) 중 우두머리인 셈 이다.
증항의 정확한 위치파악은 안 되고 있지만 견훤의 전설이 스며있는 못지(구병산 분기봉)가 있는 봉이 아닐 까? 추측 해 본다.
그 아래 동관음이 있고 윗쪽에 피앗재와 대목골 아래에 만수동이 있는데 만수동(가야산 만수동 등)은 고려와 관계가 있는 지명이다.
만수동은 고려충신 두분동72인이 은거하건 광덕산 아래 만수동을 말하는 것으로 (그 들은 조선조정에 등원을 요청하는 이성계의 요청에" 不事以君"을 외치며 영조의 사면이 있기까지 127년 동안을 산속으로 숨어들어 살아야 했다.) 이성계의 칼날을 피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 은거하고 살던 곳을 만수동(십승지에 나타나는 이상향의 땅에 최초로 사람이 살기 시작한 최초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이라 하며 그 주변에는 "목이(고개)"에 해당하는 지명들이 현재에도 많이 남아 있다.
따라서 만수동은 택리지나 남사고비결. 정감록 등에서 말하는 이상향으로 볼 수 있는 천혜의 길지이지만 속세와 등지고 백이숙제처럼 고사리를 캐어 먹으며 살아야 했던 고려인들의 처절한 아픔이 배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여기에 십승지와 만수동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역사속에 사라진 구봉산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대동여지도
여기서는 한남금북정맥과 작약지맥 팔음지맥 백두대간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산줄기를 근거로 하여 구병산의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지도 상 마천 위 쪽 산줄기가 구병산이다.
문수산도 있고 도솔봉도 있고 천택산 받쳐주고 용천에서 청산으로 흐르는 물줄기 있으니 보은현은 천혜의 요소로다.
보은현지도
여기에서는 천황봉과 소천황봉이 구분되어 있고 구병산이 입체적으로 그려 져 있다.
소천황봉은 한남금북정맥 상 867.3봉으로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보은에는 4개의 시루봉(甑峯)과 팔항(八項)이 있다.
※ 보은현 지도에서 파란색 점으로 표시함
㉠ 4증(四甑)
동증(東甑) 마로면 적암리에 있는 시루봉으로 높이가 417m이다.
서증(西甑)수한면 광촌리와 옥천군 안내면 방하목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84m
남증(南甑) 시루봉(甑峯)마로면 갈전리, 변둔리에 걸쳐있는 산, 높이 505m,
북증(北甑)내북면 적음리와 두평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482m,
㉡ 팔항(八項)
1.멍에목이.2 불목이.3갈목이.4무수목이.5구리목이.6까치목이.7.비둘목이. 8.반목이 등을 8팔항이라 한다.
목덜미항(項)은 " 고개를 뜻 하는 말로 대표적인 것으로 "노루목이"가 있다.(노루목이=張項)
※ 참고: 속리산군에는 넓은 의미의 사증항이 있는 데 다음과 같다.
1.괴산군 청천면 송면리 북쪽에 있는 시루봉.
2.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남쪽에 있는 시루봉.
3.문경시 농암면 화산리 북쪽에 있는 시루봉.
4.보은군 마로면 적암리 동쪽에 있는 시루봉.등 4개의 시루봉으로 속리산(동.서.남.북)의 균형을 맞추었다.
4. 구글지도로 보는 속리산과 구봉산
지금까지 문헌과 고지도를 비교 분석하여 속리산에 있는 두 개의 구봉산을 구글지도에 표현하여 보았다
구글지도에 나타내 본 두 개의 구봉산.
천황봉을 기점으로 양 쪽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결론
문헌과 고지도를 비교하여 본 결과 구봉산의 위치를 구글지도에 표시 해 보았다.
( 이 부분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보다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개인의 사견임을 전제로 정리한 것임을 밝혀둔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속리산을 원주민들은 구병산(제1구봉산지역)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천황봉에서 상학봉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의 아홉개 봉우리를 말한다.
그러나 산경표에 나타난 구봉산에 대한 위치는 백두대간을 하였던 분들을 비롯 해 정확한 위치를 표기한 자료를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 구병산을 구봉산으로 보는 시각이 있어 산경표 상 구봉산을 찾아본 결과 "제2구봉산지역"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산경표에 나나타는 백두대간의 산줄기 중 속리산~구봉산~봉황산으로 이어지는 구봉산은 천황봉에서 비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라 할 수 있으며 구병산은 시루봉(못지)에서 분기하는 가지줄기로서 백두대간의 구봉산과는 별개의 산이다.
구병산(九屛山)은 시루봉(못지)에서 분기하는 가지줄기로 서원리에서 삼가천을 만나면서 산줄기를 내린다.
구봉산은 외속리에서 보게되면 한남금북정맥과 백두대간 배재까지 원형으로 감싸는 산줄기로 아홉개의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
구봉산이라 부르게 된 연유는 찾을 수 없었으나 당시의 시대상으로 보아 강화도의 고려궁과 북한산성의 행궁터처럼 본궁을 축소하여 옮기려 했던 역사를 되 집어보면 고려공민왕이 원암(관기)에서 3개월 동안 머물 때 남겨놓은 흔적로 연결 시키는 것은 무리일까?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보너스(히든)
한남금북정맥 일부구간과 백두대간 그리고 충북알프스 일부구간을 연결시키니 구봉산과 구병산의 멋진 조화가 이루어 지네요..
여기에다 사증팔항의 십승지에다 삼가천의 물줄기와 저수지까지~~거기에 출입금지도 없으니 가을에는 단풍과 어울려지는
환상종주코스가 될 것 같습니다.
백두대간 지명의 유래와 변천사 [本文] (0) | 2009.07.02 |
---|---|
산경표에 나타나는 백두대간의 수다산과 백병산의 現 지명과 옛 지명 ! (0) | 2009.06.23 |
운문산의 고찰! (0) | 2009.05.14 |
영남알프스상에 있는 천황산은 산악신앙과 관계된 고유지명이다. (0) | 2009.05.07 |
영취산은 장안산의 애칭(一云)일 뿐이다. (0) | 2009.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