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1975∼79년 4년 동안 폴 포트의 급진 공산주의 정권 크메르루주가 양민 200만 명을 학살한 20세기 최악의 사건 중 하나
1975년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이던 크메르루주(붉은 크메르) 정권이 론 놀 정권을 무너뜨린 후 1979년까지 노동자와 농민의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명분 아래 최대 200만 명에 이르는 지식인과 부유층을 학살한 사건이다.
크메르루주의 지도자 폴 포트는 1975년 4월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함에 따라 약화된 캄보디아의 친미 론 놀 정권을 몰아냈다. 당시 폴 포트가 정권을 잡자 론 놀 정권의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국민들은 환영하였다. 그러나 폴 포트는 새로운 농민천국을 구현한다며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이주시키고, 화폐와 사유재산, 종교를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과거 론 놀 정권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국민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00여만 명을 살해하였다. 그리고 크메르루주 정권은 1979년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에 의해 전복되었다.
이들의 만행은 캄보디아 뉴욕타임스 특파원 시드니 쉔버그의 글, '디스프란의 생과 사(한 캄보디아인의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글은 1980년 뉴욕타임스에 실렸고 쉔버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하였다. 이를 토대로 학살된 양민이 매장된 곳을 뜻하는 <킬링필드>라는 제목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한편 2011년 11월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가 공동설립한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는 크메르루주 2인자였던 누온 체아 등 크메르루주 정권의 핵심인사 4명에 대한 재판을 시작했다. 이들은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 학살, 고문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2010년 7월 투올슬랭 교도소 소장이었던 카잉 구엑 에바브는 징역 30년형을 받아 전범에 대한 단죄가 시작된 바 있다. 그러나 크메르루주 정권 1인자인 폴 포트는 앞서 1998년 재판을 받지 않고,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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