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광사(寶光寺)는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 천마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봉선사의 말사이다. 남양주 천마산에 자리한 보광사는 1천 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지만 많은 전란으로 인해 온전하게 지켜오지를 못했다.
고려 시대인 서기 10세기에 혜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혜거는 경기도 이천시의 영원사도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승려이나 '혜거국사'라는 명칭 외에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다. 고려 시대 국사 중 혜거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다.
이 절 아랫마을인 가오실(가곡리)에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이 살았는데 그가 이 절을 중창했다. 거부였던 이유원은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운동의 초석을 놓은 이회영 형제의 둘째 이석영의 양아버지이기도 하다. 이석영은 이유원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해 신흥무관학교의 자금을 마련했다.
이후 조선 후기에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이 고승 화담경화를 위해 절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았다. 고종 31년인 1894년에 중수되었다.
사찰이 번성할라치면 전란이 있어 폐허가 되기를 몇 번, 지금의 모습으로 가꾸어진 것은 근래 10여 년의 일이다. 혼란한 격변기를 지나오는 동안 보광사의 사역은 어느 틈엔가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가 있어, 사찰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 앞의 등잔불 마냥 위태로웠다.
화담당 유덕(和潭堂 攸德) 스님의 노력으로 보광사는 잃어버린 사역을 일부분 되찾고 중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후 화담 스님의 유지를 이은 선우(善友) 스님은 두 팔을 걷어 부치고 직접 굴삭기를 운전하며 사찰의 재건에 나섰다.
1851년(조선 철종 2) 판부사(判府事) 이유원(李裕元)이 화담(華潭) 경화(敬和:1786∼1848)를 위하여 창건하고, 1894년(고종 31) 봉성(鳳城)이 중수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학산(鶴山)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삼신각, 요사채 2동이 있고, 특별한 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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