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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東.西의 만남 -관악산에 핀 우정!

㉤ 일반산행 記

by 운해 2008. 3. 24.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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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08년 03월 22일(음력02/15) 날씨: 맑은 후 비

 

산행지:관악산

 

산행자. 동해시 묵호신협산악회 회원님들과 함께

 

산행코스: 과천종합청사~연주암~정상~자운암능선~공학관~서울대정문

 

산행거리:6.4km , 산행시간:5시간01분

 

  관악산 전경(과천방향)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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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은

음양오행상 화성(火星)에 속하며 경기오악 중 하나이다.


안성의 칠장산에서 분지하는 한남정맥은 김포의 문수산으로 뻗어 가면서 수원의 백운산에 이르러

 바라산과 청계산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산줄기를 분지한다.


이 산줄기는 청계산의 이수봉에서 응봉으로 이어지면서  인덕원에서 자세를 낮추었다 관악산을 일으킨 후

 631봉에서 삼성산 줄기를 보낸 후 남태령을 지나 우면산으로 나머지 산줄기를 이어 간다.

 

물줄기는 인원원고개를 경계로 하여 동쪽에는 관악산과 청계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양재천을 이루어

 탄천과 만나서 한강으로 흐르고 서쪽에는 관악의 산줄기를 경계로 하여 삼성산의 물줄기가 만나서

안양천을 이루어 한강으로 흘러간다.


관악산은 

경기오악(파주의 감악, 개성의 송악, 포천의 운악, 가평의 화악)의 하나이며 음양오행으로

화성(火山)에 속하는 산으로 생김 모양이 갓(冠)처럼 뾰족한 산이라 하여 “관악”이라 하였다.


관악은 날카로운 형세와 활화산처럼 보이는 산세로 인하여 쳐다보기조차 꺼렸던 옛날 사람들은

불산(火山)이라 하였고 관악과 마주하는 삼성산 역시 같은 취급을 하였던 것이다.


관악산은 지도상에 관악(冠岳)으로만 표기하는데 이것은 악(岳)자체가 뫼(山)를

뜻하기에 “관악“의 뒤에 ”山“자를 붙이는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경기오악 중 나머지 4악도 같은 뜻으로 보았다.


관악은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의 터를 잡을 때 정도전과 무학대사의 의견 대립으로도

유명하다.


무학대사가 말하기를

경복궁의 현무가 되는 북악산은 주산이 되는 관악보다 낮아 화기를 피할 수 없으니

인왕산 아래에 궁궐을 세워 화기를 피 하자고 제안한다.


만약 북악산 아래에 궁궐을 지으면 관악산을 정면으로 마주보고 있어 5세가 가지 못해

혁명이 일어나고 200년 만에 큰 난리가 일어나는 재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무학대사의 주장이었다.


정도전이 말하기를

한강물이 관악의 화기를 막아주니 관악을 바라보는 정남향으로 궁궐을 세워도 된다는 정도전의 주장을

 받아 드린 이성계는 지금의 경복궁터에 궁궐을 지었다.


결과는 

무학대사의 예언대로 피비린내 나는 왕자 난과  수양대군에 의한 왕위 찬탈이 생기고, 병자호란 때는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복궁은 잿더미로 변해 나라가 쑥밭이 되자

관악의 화기를 막을 비책으로 도성의 사대문 중 남쪽의 성문인 숭례문(崇禮門은 정도전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양녕대군의 글씨라 한다) 바로 앞에 남지(南池)라고 하는 연못을 만들었다


 

성문의 현액은 가로로 쓰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으나 오직 “崇禮門“만을 세로로 쓴 것은

관악의 화기를 막는다는 의미였는데 여기서 말하는 숭(崇)은 상형문자로 불꽃이 타 오르는 형상이고

 예(禮)는 오행으로 볼 때 화(火)에 속하고 오방(五方)으로 따지면 남(南)쪽에 해당하여 

관악방향으로 불을 지른다는 뜻이니 이를테면 맞불 작전이었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중앙일보 칼럼에서 (서울 도성의 정문인 남대문은 귀한 백성이 드나들게 되므로

서서 맞이함이 예절에 합당하다 하여 세워 달았다 한다, 타설에는 남방 화(火)에 해당되는 글씨인 까닭에

불이 타오르는 형상으로 세워 달았는데, 그것은 한강 건너 남쪽 조산(朝山)인 관악산의 불길을 불로 막아,

그 관악의 화기가 서울 도성을 범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적었다)

 

그밖에도 

 관악의 정상인 연주대 부근 여러 군데에 조선조 초기에 팠다는 못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 또한  관악산의 불기운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성계가 무학의 제안을 받아드려

 중창한 관악사(연주암)와 원각사, 궁궐 앞에 세운 해태 상 역시 화기를 피하기 위한 비방 책이었던 것이다.

(결과는 무학대사가 정도전에게 한판승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비방의 효험이 없었는지 궁궐의 암투는 끝이 없었고 오랑캐와 왜놈의 침입으로 나라는 나약해져

일제36년의 치욕과 동족상잔의 아픔은 오늘날 까지 이어 져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진행도

   

산행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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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참으로 소중한 날이다.

 

산을 다니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선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르듯 부드러운 미소가 끊이지 않은 좋은 분들이지만

아무런  연고도 없이 인테넷이란 괴상한 상자속에서 글로서 교류를 하고 사진으로 인사나누고 산길에서 만나

몇 십년지기 지인을 만나듯 반가운 마음에 포응하며 기쁨으로 맞이하는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오늘도 관악산에서 그러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날이니 어찌 기쁘다 아니 할까!

운해의산방  회원님이자 백두대간을 단독산행 하고  있고 동해시에 거주하고 계시는

"동해바다"님께서 산악회 회원님들과 함께 관악산으로 원정산행 오시는 날이다.

 

"동해묵호신협산악회"에서 산행대장을 하고 계시는 분이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라

첫 선의 느낌은 언제나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서서히 달아 오르기 시작한다.

 

전화상으로 육봉능선을 경우 해 사당역으로 날머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고

동해팀과 함께 할 우정산행을 위해 산방에 공지하니 "백두대간 꿈의종주대"산사랑님과 그대로님

 동행하기로 하고....

 

걷는돌님께 함께 하자고 연락하니 선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시겠다고 하니

 고마운 마음 비할 데 없다.

 

 오늘 산행에 참여 하시는 42명의 회원님들께 관악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산행안내를 할 것 같아

기쁨마음 앞서고 출발지인 과천의 종합청사역에 도착하니 같은 전철로 오신 산사랑님과

또 한분 동행 하시는데 "한국의산천" 산정님이시다.

 

수인사 나누고 먼저 도착 해 기다리고 계시는 걷는돌님과 친구분, 길손님과 합류하여 주차장에

이르니 동해에서 오신 회원님들 산행준비 완료하여 그대로님과 함께 기다리고 계신다.

 

사진으로 안면은 익혀 둔 뒤라서 동해바다님 바로 알아보고 짙은 포응으로 인사 나누니

 십년지기 친구를 만난 듯 이 보다 더 반가울까?

 

우리는 그렇게 회원님들과 단체로 인사 나눈 후 곧 바로 산행길로 접어든다.

우정산행팀이 7명이나 참석하여 육봉에 오르기로 사전 멘트 하였으나, 초보자 몇분이

 계신다는 동해바다님의 말씀에 의해  등로를 수정하여 산사랑님의 리딩으로  자하동계곡 

좌측능선을 택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10:13

종합청사 주차장에서 반가운 만남

왼 쪽에 스카프를 쓰신 분이 "한국의 산천" 산정님이시고 맨 앞쪽 어르신은 74세이신데

암릉길을 오를 때 학이 춤을 추듯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우신지.....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메마른 산 길을 오르기 시작하여 첫 번째 쉼터에 도착 한다.

 산사랑님의 일거리 하나 생겼다.

15년 째 낙서 지우기를 하고 계시는 산사랑님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졌을까?

 암릉 내려서기

 일명: 케이블카 능선

 누에바위

 청계산 전경

여기에서 말하는 응봉은 새를 나타내는 매(鷹)봉이 아닌 "뫼"에서 전음 된 "매봉"이다.(뫼=매)

이 것을 이두문자화 할 때 "매"를 매응(鷹)을 써 한자식으로 응봉이 되었다.

 

이러한 지명은 전국에 걸쳐 수십 개가 있어 헷갈리게 하는데

새를 뜻하는 "매"와 산을 뜻한는(뫼)를 구분하여 이두문자화 되기 전 구전으로 전해 져 온 지명들이

재 탄생 되어야 할 것이다.

 코뿔소바위

 기상대

 연주암 갈림길 안부에서

좌로부터 산사랑님.동해바다 대장님. 산정님.

 연주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고문서에 관악사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페허가 된 사찰을 이성계가 무학대사의 청을 받아드려 의상대와 관악사를 중수하여

조선의 번창을 기원하는 기도를 드리고 연주암으로 개명하였다.

 장독대

 요사채?

 12:09

B팀은 헬기장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A팀은 정상에서 하고....

 연주봉

관악산의 주봉이다.

 509봉

한남정맥 백운산에서 분지하는 관악지맥은 산태극(S)를 그리면서 509봉을 지나고 남태령을 넘어서

우면산으로 이어진다.

 

 연주대

의상대사가 창건하여 초기에는 "의상대"로 불렀으나.

무학의 권유를 받아드린 이성계는  의상대 자리에다 석축을 쌓아  암자를 짓고 나라번영을 기도 했다.

후에 충녕에게 보위를 양보한 양녕과 효령이 이 곳에 머물면서 "연주대" 로 개명하였다.

 

다른 견해는 고려의 충신이었던 강득용,서견.남을진 등이 송도를 바라보면 통곡을 하였는데

"주인을 그리워 한다"는 의미로 "연주대(戀主臺)"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 져 온다.

 

 뽀쪽바위

끝 부분이 남근을 닮아 여인들의 심금을 울린다.

 13:11

연주봉

지리산 장터목에 장이 서면 이랬을까?

연주봉이 "인산인해" 이다

 대장님은 인원파악 중.

42명 중 1명이 부족하여...

자운암능선 초입 철구조헬기장 근처에서 다시 파악을 하는데 역시 41명이다...

한 명이 어디갈을꼬???

 

해답은 엉뚱한데 있다.

한 분은

 

아~예!

 산행을 않햇으니까?

..........

그게 답이었다 ㅋㅋ

 자하동계곡.

자하동 계곡은 네 곳이 있다.

여기는 과천쪽 자하동(또는"자하동천"이라 한다)이다.

대장님은 다시 인원파악 중

 뭐가?

잘못 됐느냐는 걷는돌님의 심각한 표정!

 개스로 인해 서울시가의 조망이 흐릿하다.

 관악의 서쪽

 왕관봉

 왕관봉(국기봉이라 부르기도 한다)에 오르다.

 

관악산에는 국기봉이 14개가 있다고 하기도 하고

16개가 있다고 하기도 하는데 국기봉이 이렇게 많은 것은

별다른 뜻은 없다고 한다....

 

아무튼

"대한민국 만세" 다

동해바다님!

 

 깨끗하고 고운심정!

 푸른솔처럼 영원하시길 바랍니다.

 돌비알

 

관악은 화산답게 괴상망측한 돌(石)들의 백화점이다.

 암릉내려오기

 무너미고개

삼성산과 관악을 이어주는 안부이다.

 서울대학교 전경.

관악을 갓(冠)에 비유 해 "관악"이라 했는데 학문의 요람 서울대학교에서 해마다 수 많은 박사들을 배출 해 내고

있으니 산 이름에 걸 맞아 보인다.

 자운암 능선에서 이탈하여 암릉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우측의 계곡은 서자하동이다.

 토끼와 불독

 13:14

서울대 정문 앞

전원 무사히 하산 완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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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동해에서 공수되어 온 횟감과 푸짐한 안주(?)와 함께 하산주 이어지고~~~

다음을 기약하며 東.西(동해와 인천)의 짧은시간 아쉬운 만남의 작별을 한다.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우리는 그렇게 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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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산행 지원팀은

서울대 입구역 근처 생맥주 집에서 한 잔 더 !!

   모두들 고생 많으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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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친하지 않으면 홀짝 거리기만 하고

친하면 링거 맞을 정도로 마시고

정말 친하면 위에서 피가 나도록 마셔라"

 

중국의 인문학자 "샤먼대" 이중텐 교수의 저서

"중국인을 말하다"에 나오는 글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똑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을 수 없이 만나고 헤여진다.

그 중에는 평생을 같이할 지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헤여지는 사람이 99%이다.

 

 진흙탕에서 진주를 발견 하듯이

남아 있는 사람은 한 두사람일  뿐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 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링거맞을 정도로 마셔댔다.

그러는 사이 나를 떠 나는 사람도 있었고....

남아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이 제는 홀짝거리는 것과 위장에 피가 나도록 마시는 두 가지를 선택 하려고 한다.

 

오늘 같은 날은

위장에 피가 나도록 마셔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좋은 분들과 함께 했으니...

 
출처 : 운해의산방
글쓴이 : 운 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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