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7년 10월15일(음력09/05) 날씨; 맑음
산행지: 황산 (황산 가는길)
산행자:단독산행
산행코스: 매요마을~유치재~방현고개갈림길~사치재~방현고개갈림길~명석재~황산초입~황산대첩비
도상거리:6km , 산행시간: 03시간20분
이성계의 사자후가 들리는 황산을 가다.
1.황산은
임천강(경호강의 지류)을 정점으로 하여 운봉고원을 원형으로 감싸고 돌아가는 산줄기의 끝 부분으로 반대쪽의 덕두산 자락과 함께 협곡을 만들고 있다.
고려의 장수 이성계가 왜적과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장소로 유명한 곳이며
이 곳에서 승리로 병권을 장악하여 조선개국의 기세를 잡는데 성공한 역사적인 현장이다.
고려 말 우왕3년 8월 500여척의 선단으로 무장하여 침입을 시도한 왜적은 경상도를 비롯하여 충정도 전라도를 유린하고
아지발도를 수장으로 한 왜군은 운봉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오지만 황산에서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에 섬멸 당한다.
이 전투를 황산대첩이라 한다.
(백제의 계백장군과 신라의 관창 설화로 유명한 황산벌 전투는 지금의 논산과 연무대를 무대로 하는 황산벌을 일컫는다
.(많은 사람들이 황산전투와 황산벌전투를 혼동하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여기에 나열하였다)
1-2.황산은
운봉고원의 젓줄인 임천강을 사이에 두고 덕두산 줄기와 마주보는 협곡으로 수문역할을 하는 천혜의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리산 만복대에서 발원하는 임천강의 물줄기를 따라 고원지대를 형성한 운봉 땅을 원형으로 감싸고 돌아가는 산줄기는
지리산의 서북능선(덕두산.바래봉.세걸산 고리봉)과 백두대간(고촌리.수정봉.여원재.고남산.유치재)의 일부구간을 지나서
628봉 안부에서 방현고개와 명석재를 따라 암봉으로 이루어진 황산을 그려내고 있다.
황산의 중요성을 설명하려면 운봉의 지리적 여건과 끊임없이 소용돌이친 역동적인 삶을 살아야 했던 민초들의 애환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3.최초의 민중혁명이라 할 수 있는 동학군이 민관의 힘을 합친 토포군에게 패한 곳도 운봉이며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한이 서려있는 곳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십승지 중의 하나로 구한말까지 판소리 동편제에 매료된 전국 한량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4. 함양과 남원 땅을 오고가기 위해서 운봉고원을 지나는 유일한 출구는 여원재 였다.
왜구의 노리개가 될 수 없다고 하여 젓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한 여인네가 이성계의 황산전투 때 나타나 도움을
주어 승리하게 하였다는 전설이 스며 있는 곳이 여원재며 제비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 주었다고 하는 곳도
여원재(흥부전에는 “연재”로 나온다)다.
이 밖에 운봉고원을 넘나들던 고개로 유치재와 사치재가가 있으나 교통이 불편하던 그 시기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5.판소리 동편제의 탄생지 또 한 운봉이다.
서편제(발성이 가볍고 소리를 길게 뽑아내는 판소리로 섬진강 줄기로 발전되었다)와 구별되는
동편제(발성이 무겁고 호쾌하며 운봉을 배경으로 발전되었다)는 흔히 소프라노와 바리톤에 비교된다.
운봉이 낳은 조선시대의 가왕(歌王) 송홍록과 국창(國唱) 박초월이 태여 난 곳이며 그들에 의해 체계화 된 동편제는 지금까지 계승발전 되고 있다.
(박초월은 지금은 옥계저수지에 수몰된 옥계폭포에서 득음하였다)
산행기와 관계없는 글을 나열한 것은 황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함이다.
운봉고원 환주도
물줄기가 빠져 나가는 곳은 임천강이 유일하다.
진행도
백두대간의 일부 구간인 유치재와 사치재 사이 628봉 자락에서 가지내리는 황산은 방현고개와 명석재를 지나 임천강에서 그 맥을 다한다.
산행글
2007년10월 12일밤 백두대간 북진21구간(작은차갓재~저수령)을 이어가기 위 해 집을 나선다.
오늘 나서는 산행은 13일 백두대간,14일,영남알프스 신월산에서 있는 한국의산하 추계산행,14일 지금 산행글에 적고 있는 황산산행
16일 뱀사골과 피앗골을 있는 계곡 트레킹을 목적으로 계획하여 출발 하였으나 마지막 산행은 독충에 물려 병원신세를 지느라 포기를
해야만 했다.
신불산에서 오랫만에 만나는 산하 가족들과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두타행님과 함께 전주로 이동하였다.
전주 터미널에 마중나와 있는 후배와 함께 소주한 잔 나누고 후배가 마련 해 주는 따듯한 보일러방에 하룻밤 묵어 가기로 한다.
다음날 관촌에 있는 한의원에 들려 침을 맞고 산행을 떠날 생각으로 이른아침부터 채비를 서두른다
(요즘 흔히 말하는 오십견으로 고생하고 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나를 바라보는 후배는 내 모습이 안스러운지 한참을 쳐다 보지만 애써 못 본체 해 버리고
관촌행 527번 시내버스를 탄다.
예전에는 시외버스가 다녔는데 시내버스로 바뀌면서 교통이 더 불편 해 진것 같다.
가는 길에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농촌에 사람이 없어서란다.
한의원에 들린 후 임실로 가는 시외버스(남원행 직행버스를 타려면 임실로 이동해야 한다)를 타려고 11:25분발 버스를 예약 해 놓고
서성거리고 있는데 우연찮게 전북도청에 근무하시다 정년퇴직하신 이철순 선배님은 만난다.
(이 곳으로 고추를 사러 오신 모양이다)
오랫만에 해후라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지만 가야할 시간 때문에 서로가 전화번호만 남겨준 채 작별을 고하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30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의아한 생각에 매표원에게 물어보지 버스는 이미 떠났다고 하니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승차장 바로 옆에 서 있었고 전주로 떠나는 버스는 확인하였지만 임실행 버스는 보지를 못했는데 이게 왠 일인가!
아무리 추리를 해 보아도 답이 안 나온다.
이미 떠났다는 매표원과 입씨름 해 본들 나만 미친놈이라...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1.000원이면 갈 수 있는 임실까지 6000원의 택시비를 지불해야하는 내 마음은
"6000원이면 소주가 두 병인데" 하고너털웃음으로 털어 버린다.
임실에서 부터는 일사천리로 교통시간이 맞아 떨어진다.
도착하자마자 곧 바로 연결된 남원행 직행버스와 남원에 내려서 하루게 네 번 밖에 다니지 않는다는 매요마을 시내버를 2분도 채
기다리지 않아 타고 가는 호강을 누린다.
덕분에 점심을 먹지 못해 매요리 휴계소에서 할머니한테 막걸리 한 병으로 해결해야 햇지만 산행 내내
독사떼에 놀라고..돼지에 놀라고 ..고라니 뛰는 소리에..독충에 물린 것은 뱀사골에 도착해서야 알게된 고생길의 서곡이 될줄이야....
13:30
매요후계소에 도착하여 막걸리 한 잔 하고 있으려니 고남산을 넘어오는 거창에 거주하시는 대간꾼을 만난다.
단독종주 중 데 마시던 막걸리 한 사발 가득 따라주니 단숨에 비워버린다.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다 쉬어가시라 인사하고 유치마을로 진행하던 중 밤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밤톨이 떨어져 떨어져 머리를 때린다.
괘씸한 놈 같으니라고...
뱃 속에서 소화된 지 오래 되었다.
ㅎㅎ
유치삼거리에 서 있는 백두대간 안내도!
유치삼거리에서 조망하는 황산의 모습.
뒷 쪽으로 삼봉산이 머리를 내민다.
유치삼거리
산경표에도 기록되어 있는 유치재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컨테이너박스 오른쪽으로 백두대간 마루금은 이어지는데 황산 가는 길은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르다 628봉을 지난 안부에서
3시방향의 방현고개로 내려서야 한다.
유치재에서 사치재까지 백두대간 마루금은 개인적으로 땜빵(구간별로 진행할 때 중간에 빼놓은 구간) 구간이다.
지난 번 유치재에서 유정마을로 하산을 한 후 다음 구간 때 지리산 휴게소에서 시작한 관계로 2.9km구간은 하지못했었다.
빠진 구간을 이어가지 간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도 있으나 대간꾼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유치삼거리에 있는 이정표
벌목지대에서 조망하는 임천강의 협곡
좌측으로 황산이며 우측은 덕두산이다.
황산 뒷 쪽으로 삼봉산과 지리산 명성봉줄기에서 가지 내리는 삼성산이 보인다.
이 계곡의 물줄기는 경호강과 만나 진주 남강으로 합수된다.
운봉고원과 지리산 서북능선
서북능선은 인월의 덕두산에서 시작하여 바래봉. 세걸산. 고리봉.정령치,만복대를 지나 성삼재 까지를 말한다.
여기서 바라보는 황산은 점잖은 선비 갓을 쓴 모양이다.
그러나 저 곳은 수 많은 영웅호걸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곳이다.
동화리의 속금산 뒷 쪽으로 보이는 뾰쭉한 산은 금남호남정맥줄기 중 팔공산에서 분지하여 남원의 고리봉까지 이어가는 계동지맥에 속하는 천황산이다.
유정마을 한옥단지
88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부터 한옥마을로 조성되어 있었다.
백두대간 우회로가 지나는 곳이다.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우측은 사지채
628봉
정상에 묘 한기 있는데 그늘에 가린다고 하여 소나무를 잘랐다.
마루금은 10시 방향이다.
방
방현마을 가는 안부에 내려서기 전 만나는 너덜길.
약100여미터 구간이다.
고남산과 천황산
가운데 있는 산은 장구순 번암면에 있는 대성산이다.
장수군의 4대명산 중 하나(팔공산.영취산.대성산.백운산)이다
팔공산방향
금남호남정맥의 마루금
방현마을
황산이 지척에 있지만 저 곳에 가기 위해서 고생께나 해야 했다.
여기서 사치재까지는 500여터이나,나는 대간길 땜빵을 위 해 사치재인 88고속도로 지하통로까지 왕복을 해야 했다.
지난 겨울 이 곳을 지나 봉화산 가는 길에 대원들은 식사를 하지 못했고 그 후휴증으로 대원 중 4명이 복성이재에서 중도포기해야 했던 아픔이 있는 곳이다.
사치재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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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8봉
사치재 가는 길에 남겨 본다.
사치재 100미터를 남겨두고..
88고속도로가 지나는 사치재이다.
이 길을 수 많은 사람이 넘었으며 최근에도. 산사랑밤님부부.따라가기님. 원호님, 진맹익님부부.백두장군님.등이 지나갔다.
고속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위험없이 대간길 이으려면 지하통롤를 이용해야 한다.
도로 가장자리 둔덕 아래에 있다.
되 돌아 가는 길에
유치재에서 사치재구간에서 만나는 야생화를 한 장에 담았다.
백두대간길과 방현고개 가는 길이 나누어 지는 안부이다.
여기에 묘가 1기 있으며 우측으로 마을이 보이기 때문에 독도에는 어려움이 없다.
이제부터는 20여년 전 부터 길이 없어 졌다는 오지산행에 접어든다.
지금까지 달려온 고속도로와 같은 길은 오늘산행에서는 사치였다.
방현고개로 내려서는 지점에 KT송신탑을 바라보며 도로를 따르면 방현고개에 쉽게 도착할 수 있다.
방현고개까지는 약 150m이다.
가는 길에 감 하나 따먹고...
밭에서 일하고 계시는 아주머니 허락을 받는 것은 물론이다.
홍시를 땄는데 까치와 입맞춤 했다
윗 사진에서 이어지는 도로이다.
맞은 편 아스팔트도로를 건너서 밭 언저리를 따라 좌측의 산으로 접어들면 되는데 ..
여기에서 방현마을 촌로을 만나 황산에 대해 물어 보니 20여년전 부더 사람의 발길이 끊긴 무서운 곳을 왜 가느냐?고
참말고 얄구짓네(전라도사투리)하신다.
덧 붙이는 말씀에 맷돼지도 있고 독사 천국인데 절대로 가지말라고 신신당부말씀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 있지만
황산을 가기 위해서 인천에서 문경땅을 거치고 밀양과 전주를 돌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하고 싶지 않더라..
방형고개에 있는 정좌.
(여기에 앉아 흥부가나 뽑아댈것을)
참고: 운봉 환종주를 하시는 분들께서는 이 곳에서 도로를 따라서 국악성지까지 진행한 후 뒷 쪽 능선을 이용 해 황산에 오르기를 권장한다.
왜냐하면 산행지도에 표기된 코스를 따라서는 절대로 황산으로 갈 수가 없다.
겨울이면 몰라도...
산으로 오르는 나를 처다보는 리어카를 끄는 촌로의 모습에서 길 가는 나그네의 안부를 위한 따뜻함이 전해온다.
속으론 "고맙습니다" 했다.
아뿔사!
산 길에 접어들자마자 이 것은 아니다.
길이 없다.
오직 나침판에 의지해 길을 만들어 가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그래도 가는 길에 만나는 입석바위가 황산에 온 것을 축하라도 해 주듯 반갑게 맞이 해 준다.
여기에 입석불 새겨두면 하는 바램을 안고....
명석재로 이어지는 안부인데 독도가 잘못되어 여기까지 흘러 온 것까지는 좋은데...
후다닥 도망가는 집채만한 맷돼지가 혼까지 빼앗아 버린다.
모두가 느끼는 것이지만 길 잃고 당황할 때 짐승에게 놀라면 더욱 혼비백산 하는데...
하는 수 없이 오는 길 돌아 가자....
이 번에는 고라니 두 마리 도망간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進退兩難 이다
명석재 아래
탈출할 생각으로 안부에 내려서니 남양방씨 묘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 잠시 심호흡 하며 가야할지 멈춰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면서 오는 길에 주었던 밤알 한 톨 깨물어 본다.
생각끝에 명석재로 곧 바로 올라가기로 하였으나 길의 흔적이 없는 곳이다.
왠만하면 산짐승들 다니는 길이라도 있으련만 오직,가시덤불과 보리수나무. 잡풀들로 도저히 진행할 수 없어
오던길을 되 돌아 가기로 한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묘까지 오는 길은 약간의 흔적이 있으나 이 곳으로 내려서면 지리산 휴게소로 가야하기 때문에 원래 방향하고 반대방향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다.
가까이서 본 황산은 두 개의 봉으로 되어 있지만 양 봉우리 사이에 물줄기가 흐르기 때문에 왼쪽 봉우리는 포기하기로 한다.
지리산 휴게소방향
내가 가는길은 첩첩이라 부러운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니 저 곳의 농촌풍경이 한가롭다.
저곳은 갈계리마을로 연비지맥이 지나는 곳이다.
여기가 명석재.
전체가 가시덤불로 덮혀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던 길목이라는데..
"산천은 유구하지만 인걸은 간데 없다"는 싯귀가 생각나게 한다.
명석재 바로아래에 있는 초옥.
사람은 없었다.
맷돼지와 고라니에 놀란 가슴 여기서 쓸어 내린다.
사투 끝에 이 곳에서 쉬면서 긴장이 풀어지는데 온 몸이 가렵다.
이 때까지만 해도 가시덤불이 옷 속으로 들러가서 그러려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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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옥에서 바라보는 황산의 전경사진!
길 찾기 하다 왼 쪽에 있는 철탑 방향으로 진행 해 보니 계류가 흐른다.
초옥에서 휴식을 취한 후 농로길 따라서 황산의 초입에 서니 개간을 위해 소나무와 잡목들 잘라 놓은 넓다란 장소 나오는데
황산에 오르는 길이 없어 이 곳 저곳 찾아 헤메는데 스쓰~쓱하는 소리에 직감적으로 뱀이구나!
느끼고 걸음 멈추고 주위를 살며보니 이 것은 중대병력이다.
뱀꾼들도 떼거리로 지나는 독사떼를 만나면 겁이나 피한다고 하는데 파충류를 제일 싫어하는 내가
10여마리 넘게 떼를 지어 지나가는 독사떼를 만났으니 온 갖 정네미 다 떨어진다.
"물지만 말아다오:다
부들거리는 다리를 지탱하며 꼼짝않고 서 있다 뱀들이 지나간 것을 확인한 후 황산 가는 길 포기하여 초옥으로 되 돌아 오는데
발걸음 떨어지지 않더라.
초옥으로 돌아와 놀란 가슴 진정시키고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좌측으로 벌을 키우는 곳이 잇어 그 곳에 가보기로 한다.
혹시 황산 오르는 길이 있을까? 하여.
모닥불 연기가 아직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있어 보이지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이 곳을 지나다 잘못하면 도둑으로 몰릴까 하여 되돌아서 나오기로 한다.
오는 길 또 다른 목재공장 만나게 되고 ...
황산을 바라보니 분명한 길이 있을 듯 하여 그 곳으로 가 보지만 아래의 사진처럼 경표판 붙어있다.
마침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던 주인장에게 황산에 갈 수 없느냐? 하니 개인소유라서 갈 수가 없댄다.
이런 젠장에 .....
희양산에서도 그랬고...
여기서도..
이러다 우리나라 땅 모두
개인소유라고 철조망 치고 못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황산 가는 길 아예 접어 버리고
황산대첩비가 있는 사당에다 가 보련다.
임도를 따른다.
요거이 그 문제의 목재공장이다.
젊은 친구 같은데 요지부동입디다.
오는 길에 만나는 열녀비.
비문은 풍진에 날아간 듯 읽을 수 가 없더이다.
황산
오르지 못한 기념으로 시커멓게 처리하엿다.
덕두산
황산대첩비와 송홍록.박초월의 생가터를 복원해 놓은 유적지.
다음에는 꼭 가봐야 할텐데...
참고로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별로더라...
국악성지
임천강
이 물이 흘러 산청의 경호강과 만나서 진주의 남강과 합류한다.
발원지는 만복대이다.
황산대첩비가 있는 사당
한 번쯤은 지난는 길에 들려볼 곳!
왜구에 의해 파괴된 황산 대첩비는 그 조각을 모아 파비각에 보관되어 있다.
황산대첩은 세종실록 "용비어천가"에도 기록되어 있다,
가왕 송홍록 선생의 생가
국창 박초월 선생의 생가
산행 후
이 곳을 지나가던 산내중학교 체육선생님의 차량에 동승하여 뱀사골에 도착하니 상가 사람들 여수로 갈치낚시 가
철시가 된 듯 조용하여 적막감마져 드는 밤이 깊어 가고 있다.
거기시식장 제주씨 끓여주는 고로쇠된장찌개에 소주한 잔 기우리고 조금 있으려니 털보동생 도착하여 이야기 나누는데
명석재 초옥에서 잠깐동안 가려웠던 증세가 서서히 나타난다.
흔하게 나타나는 증세라 생각하였지만 사람에게는 예감이라는 것이 있는지 다음날 뱀사골에서 피앗골로 트레킹 예정 되었던
산행을 포기하고 전주로 이동하여 인천행 버스에 오른다.
이 틀 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온 몸의 반점은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통증을 동반하고...
병원에 가 보라는 산거북이님 충고로 진찰 받으니 유행성은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전신에 꽃버섯이 피었었다)
그래도 주사맞고 약 먹고 열흘이 지난 지금도 조그만한 반점들은 남아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게 아니다.
후 기
짧은 산행 시간에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얻게 하였다.
산행 전 해발 607m의 낮은 산이라 우습게 보앗다가 큰 코 다치는 산행길이 되었다,
어쩌면 독충에 물린 것 때문에 황천길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낮은 산이라 우습게 생각했던 오만심에 경종을 울리는 그러한 산행길이었다.
역사속으로 묻혀버린 황산의 절규는 들을 수 없을지라도 우리에게 던져주는 수 많은 전설과 영웅호걸들의
질풍노도와 같았던 포효와 절규, 구한말 전국의 한량들의 질펀한 무대가 되었던 운봉 땅에도 이제는 평화가 찾아 왔다.
역사의 아픔은 여원재 넘어로 지는 석양을 따라 치유될 것이며 십승지의 옛 명성을 되 찾아
황산 자락에 자리한 국악성지에서 울려 퍼지는 묵직한 동편제 소리에 태평성대를 구가할 것이다.
황산 가는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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