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8년6월13일 음력(5/10)날씨:맑음
산행지:백두대간 34구간
산행자: 홀로 걸어가기
산행코스: 미시령~상봉~화암재~신선봉~새이령~마산봉~알프스리조트~진부령
산행거리:15.6km(셀파) , 산행시간:9시간44분
개요 이번 구간의 특징은 산 보다는 고개(령)에 의미를 두고 싶다. 간성과 속초를 인제와 연결시키는 이 번 구간은 미시령과 진부령이 있으며 지금은 사람의 발걸음이 끊어 졌지만 미시령과 진부령이 개통 되기 전 사람의 왕래가 빈번 했던 새이령(대간령)이 있다. 우선하여 미시령부터 살펴보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 하기를 예전에 길이 있었으나 페지하여 다니지 않다가 성종24년에 다시 길을 열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 당시 기록에는 미시파령(彌矢坡領)으로 쓰고 있는데 가파르고 넘어가기 힘든 고개라는 뜻이다. 문헌상 기록되어 있는 미시파령은 조선후기부터 “미시령”이라 부르고 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쓴 미시령이란 비석이 지금도 남아 있으며 6.25때 폐쇄하였던 도로를 1989년 재개통 하여 사용하다가 현재는 미시령 아래 4차선 터널이 개통되어 또 다시 역사속으로 묻혀가는 고개가 되고 있다. 새이령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문헌에는 “소파령”또는 “석파령”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고 일제시대에 대간령으로 명칭이 바뀌었으나 현지 주민들은 샛령으로 부르고 고시되어 있는 지명은 “새이령”이다. 샛령.새이령.대간령 들으로 불리는 이 고개는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는 고개란 뜻으로 사이(間)자를 넣은 지명을 사용하였고 1970년대 진부령과 미시령의 고개가 포장되기 전 까지는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았던 곳이다 간성사람들이 소금은 가져와 인제 사람들의 감자와 물물교환을 하던 곳이며 이곳에 남아 있는 집터의 흔적은 그 당시 상황을 잘 설명 해 주고 있다. 곳곳에 남아 있는 움막터는 주막집이라고 있었을 법 하고 샛령(마장터) 방향에 있는 샘터를 비롯한 민가터는 이승복어린이 사건 때 화전민촌 철거작업으로 모두 폐허가 되었으나 그 당시 남아 있던 두 가구의 집에는 현재도 사람이 살면서 산나물과 약초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진부령 진부령에 대한 뚜렷한 유래를 설명한 글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백두대간이 가로 막는 영서(간성과 인제)을 이어주는 오솔길이었던 진부령은 1632년 간성 현감이었던 택당 이식이 인근의 승려들을 동원 해 좁은 길을 넓혔다는 기록과 1930년 일제시대에 신작로를 내면서 차가 다니기 시작하고 1987년 2차선 포장도로가 되면서 각광받기 시작 했다는 정상마루의 표지석만이 유일한 근거자료일 뿐이었다.
그러나 사료의 의하여 해석 해 보면 진부령은 또다른 이름으로 "조쟁이"라 부른다. 영서의 곡식과 영동의 해산물이 고개(진부령)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장이 서게 되고.... 그러한 장터를 이 곳 사람들은 "조쟁이"라 불렀나 보다. 장터를 뜻하는 조쟁이를 "陳富嶺"으로 이두문자화 한 것으로 보인다.
진부령은 6,25전쟁 전 까지 북쪽의 땅이었다. 마을사람 상당수는 노동당원이었고 .. 전쟁당시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은 북으로 넘어가거나 경찰의 눈을 피해 뿔뿔히 흩어져갔고 ,,,세월이 지난 후 외지에서 흘러 들어 온 사람들이 진부에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가고 있다.
민족의 비극이 그대로 남아 있는 향로봉 전투 전적비와 진부령의 전적비는 우리를 아프게 한다. 진부령은 행정상 홀3리 이며 간성읍에 속한다.
새이령과 진부령사이에 마산봉이 우뚝하다.
마산봉은 금강산의 일반이천봉중 남한에 속한 제 2봉이다...
걸어간 길
산행글
민박집에서 하룻밤은 시냇물 흐르는 소리 자장가 되어 주지만 엉망이 되어 버린 전신에 전해 져 오는 통증으로 깊은 잠을 들 수 없었다.
뒤 집기를 반복하여 꿈 같은 시간을 고통속에 지새우고 이른 아침 민박집 사장님과 함께 미시령에 도착하니 새벽 5시를 가리킨다.
전 날 공단 직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단속이 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터라 .. 만약 이른새벽부터 단속이 심하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였지만 다행히 우리가 먼저 왔나 보다.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에 민박집 주인과 작별인사 나우고 허둥지둥 나쁜짓 하다 들켜 쫒기는 놈 마냥 후게소 뒷쪽 담장문을 넘어 절개지 오르는데 무척이나 힘들다.
아직도 떨어지지 않은 혈압은 가쁜숨을 몰아쉬게 하지만 감시초소를 피할 때까지는 죽어라고 올라가야 한다.
05"09분 절개지를 지나고... 초소에서 멀어 질 무렵 들머리 사진 한 장 남길 여유없이 올라 온 미시령 휴게소를 담아 본다.
한 때는 문전성시를 이루던 미시령휴게소의 영화도 이제는 옛 말이 된 듯조용하기만 하다. (터널이 뜷려 이 곳의 향수를 느끼는 차량만이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용대리방향 운무가 자욱하다.
상봉 가는 길. 먼 저 지나간 한산님과 그대로님이 나를 위해 소주와 먹거리를 숨겨 놓은 곳이 근처인데.. 누가 캐어 먹었는지 찾을 수 없었다. 애석하다..
샘터.06:03 민박집에서 가져온 물을 버리고 이 곳의 샘물을 가득 채운다. 이 곳의 물을 마셔 본 사람들 누구나 공인하는 것이지만 참으로 물 맛이 좋다.
한 참을 머문다.
미시령 고갯 길
황철봉과 마등령이 연이여 져 있다.
상봉 오름길의 첫 너덜길. 가운데를 가로 지른다.
상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길 이 곳은 로프구간으로 우중산행 시 주의해야할 곳이다.
아담하고 이쁜 헬기장,
하늘의 정원
상봉.09:39분 여기서 백두대간 종주를 끝 내는 서울에 거주하시는 이광수씨를 만나 진부령까지 동행을 하게 된다. 이 분의 도움이 없었으면 나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 났을지....
바닥 난 체력과 혈압상승으로 오는 갈증. 반복되는 위경련과 사지 뒤틀림을 이 분의 도움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간혹 나누어 주시는 사과한 쪽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했다. 높은 혈압 때문에 어지러움 느껴 주저 않을 때 나누어 주는 사과 한쪽의 도움은 거짓말 같이 정신을 들게 하였고. 그 덕분에 진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언제 다시 만나면 고마움 마음 전하여 소주한 잔 나누고 싶다.
신선봉 남한에는 40여개의 신선봉이 있으나 그 중에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신선봉은 북설악의 신선봉이라 한다. 신선보은 미시령을 경계로 하여 상봉과 함께 금강산의 일만이천봉에 속했으나 지금은 설악산 국립공원에 들어 있다.
정상부는 두 개의 커다란 암릉으로 되어 있으며 이 곳에 오르면 금강산은 물론이고 설악의 대청봉과 동해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천계가 열리는 곳이라 하여 신선봉이 불렀을 것이다.
금마타리
곡예 하듯 로프를 타야하는 구간이기 때문에 걱정이 많지만 이 때도 이광수씨의 도움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화암재 상봉(1,244m)과 신선봉(1,214m)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화암재는 울산바위 맞은 편에 있는 화암사(禾岩寺)에서 온 이름이다.
꿩의다리
병풍바위로 이어지는 암릉
세금내고 가라 한다. 머리한 번 숙여 주었다.
쉼터 우리는 여기서 아침을 먹는데... 어젯밤 정성드려 싸주신 할머님의 성의도 무시한 채 넘어가질 않는다. 물 한모금에 밥알세어 먹듯이 그렇게 요기를 하고 다시 산행길 나서 보지만 육신은 만근이라 발걸음 옮기기가 겁난다.
신선봉에서 조망하는 마산
좌측의 큰바위와 신선봉
대청봉
신선봉08:04 함께 동행한 분인데 사진 찍히기를 싫어 하시는 분이라서...
새이령09:23 병사들의 철 기둥 옮기는 모습이 안스럽다.
곳 곳에 움막터 흔적이 남아 있다. 예전에는 주막집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동지도에는 홀리령(屹里嶺)이라 적혀 있으며 해방전까지만 하여도 인제군수와 양양군수가 이 곳에서 서냥제를 (당시에는 서냥당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올렸는데 황소를 잡아 제를 올릴만큼 큰 행사였다고 한다.
마장터방향 10여분 내려가면 샘터가 있고 마장터가 있으며 현재 두 가구에 주민 2명이 거주하고 있다. 약초와 산나물이 그 들의 생계수단이다.
박새가 꽃을 피웠다.
병풍바위11:37
마산
신선봉과 상봉
병풍바위와 마산 사이 안부에 샛령이란 표시기가 달려 있다.
아마 이 곳도 재를 넘나들던 고개였는지 ... 화전민이 거주하던 화전터 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마산 삼거리 마산은 백두대간 마루금(등로)에서 50여미터 벗어나 있다 마산봉에 오른 후 헬기장 방향으로 알바하기 쉬운 곳이므로 독도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마산봉정상12:27
스키장 슬로프가 있는 곳 까지 등로는 비교적 부드럽게 이어지지만 스키장 내려가는 비탈은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특히 야간산행시 길이 미끄럽다.
13;28 스키장 산책로인 낙엽송 숲을 지나고... 콘도에 내려서면 이제는 만나지 않아도 될 무시무시한 출입금지 표지판 보지 안해도 되는 기쁨이 기다리고 있다.
스키장 부도로 중단 되었던 영업이 올 겨울에는 재개 된다고 하니 우선 반가운 소식이다.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면 모두 이렇게 어렵게 된다.
비어있는 집들로 을씨년스러운 지역을 벗어나 도로를 건너서 임도로 접어 든다. 임도길 따라 한 참을 진행하면 물을 가두어 놓은 방죽이 나타나고 둑을 따라 군부대로 이어지는 마루금 나타난다.
비닐하우스 앞에서 9시방향으로 진행. 우리는 비닐하우스를 돌와 왔으나 이 길과 만나게 되었다.
군부대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동(정문쪽으로)
우측 계단이 보이는 철조망 따라서 진행하면 오솔길 나오고...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오는데 이 때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진부령으로 갈 수 있다.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오솔길 내려서서 포장도로 방향이 아닌 왼쪽으로 접어 들어야 마루금 이어갈 수 있으나 길 찾기 조금 예매한 곳이다.
포장도로 따르다 한일목장 간판 보이는 곳에어 우측으로 들어 마루금에 들어설 수 있으며 첫 번째 철탑으로 내려서면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게 된다.
나는 도로따라 진행하였고 함께 하였던 이광수씨는 마지막 마루금을 밟아가기 위해 산 길로 접어들었다.
첫 번째 철탑에서 내려서는 길.
'도로를 건너면 곧 바로 북사면을 따라 내려가는 길 있으나 도로를 따라 우회 하기로 한다.
나의 상태는 이미 탈진상태로 접어 들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의 종주자들을 위한 공원
여기에 각 단체의 종주기념 비석들이 세워 져 있다.
나도 나중에 아들놈에게 세워달라고 할까~~ㅎㅎ
KT송신소를 지나 진부령이다.
14:44
여기서 백두대간 길 종주를 마감한다.
내일은 보너스 산행으로 향로봉에까지 진행할 것이고....
홀로 마치는 외로운 종주길이 될 줄 알았는데...
도움까지 받아가며 상봉에서부터 동행하여 주신 이광수님과 함께 풍미식당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자축하며
유난히도 힘들고 어려웠던 3차 백두대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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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계획에 없던 3차 대간길은 친구따라 강남갔다가 엉겹결에 진부령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도 내가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나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튼 나는 해 냈고...
내일이면
내친김에 향로봉까지 가려고 한다.
그 동안 대간 길 끝 내고 편하게 쉬고 있는 한산님 불 지피고 이거종님이 태우고...
그대로님과 동해바다님 그리고 동해신협총무님 격려를 받아서 부산갈매기님의 흐름산악회팀과 함께
활화산 되어 향로봉에 오를 것이다.
그러기 위해 진부령 민박집에서 하룻밤 더 머물며 내일을 준비하는데
체력적인 부담이 너무나 크다.
경련과 뒤틀림 현상은 많이 없어 졌지만 이제는 걸을수 조차 없이 전해 져 오는 통증은 절로 소리지르게 하지만
마지막에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하룻밤 깊어 가는데...
자정무렵 되어 동해바다님이 세꼬시 무침하여 도착하고 ...
이어서 이거종님 운전으로 한산님과 그대로님 도착!
진부령완주를 자축하면서 잠시동안이라도 깊은 잠 들을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동료들이 옆에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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