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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꼴뚜바위와 선바위

㉢ 문화유적을 찾아서

by 운해 2009. 1. 15.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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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답사와 사진촬영 해 주신 하산님께 감사드립니다.

영월군 상동읍(上東邑)지역은 영월읍을 기준으로 동(東)쪽의 위(上)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상동읍은 백운산과 두위봉 등 높은 산이 솟아 있어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여살기 힘든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지역의 특성상 마늘, 깨, 감자, 옥수수 등 밭농사와 고랭지 채소 재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일예로 상동읍에 속해있는 구래리(九來里)는 한자의 풀이대로하면 ‘아홉 번을 찾아 왔다’는 뜻을 지닌 지역으로

자장법사와 관련한 유래가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자장법사는 선덕여왕 5년인 636년 당나라에 들어가 8년간 고행수도를 마치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지니고 귀국하였다고 한다.

 

자장법사는 국내에 진신사리를 봉안할 곳을 찾기 위해 태백산 갈반지(葛蟠地)를 찾던 중

영월군 상동을 ‘아홉 번이나 다녀갔다’고 해서 구래리(九來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구래리는 1932년 일본인들에 의해 상동중석광산이 개광되면서 심산유곡이었던 이곳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고 하는데 송강 정철은 몇 백년 후에 일어날 이와 같은 일을 이미 예견하였다고 한다.

 꼴뚜바위(겨울) -하산님 촬영-

꼴뚜바위에 대한 전설(1)

현재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에 있는 대한중석 영월광업소 현관 바로 뒤(상동광업소가 있는 지역의 우측)로

골짜기가 하나 있는데, 그 곳에는 화강암으로 된 큰 바위가 하나 있다. 바닥의 넓이는 천 여평이 넘고 높이는

 15층 정도의 고층빌딩 높이와 견줄 만큼 웅장한 벼랑에 치솟아 있는 이 바위는 ‘고두암’이라 하는데,

속칭 ‘꼴두바위’라 부르고 있다.

 

꼴뚜바위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송강 정철과 관련한 이야기로 조선 선조 때

강원감사로 재직하던 송강 정철이 이곳을 지나다 꼴두바위를보고 넙죽 절을 하면서 이 큰 바위로 인하여

‘이 곳 심산유곡에 수 만명이 모여 들어 이 바위를 우러러 볼 것이다’고 예언을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수 백 년이 지난 1930년 일제 강점기 때 맹씨 성을 가진 한국인이 중석을 발견하고 채굴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본인 고바야시의 손을 거쳐 지금은 대한중석 상동광업소가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한다.

 

구래리가 중석광산으로 한창 번성할 때에는 방이 없어 2층에 다락방으로 만든 쪽방조차 얻기 힘들 정도였다고 하나

대한중석이 폐광된 후에는 대부분의 광부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타지로 터나버려

지금은 썰렁한 기운이 감돌정도라고 한다.

 꼴두바위(여름)

 

꼴뚜바위에 대한 전설(2)

고두암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또 다른 이야기는 과부가 된 어느 여인의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옛날 남편을 일찍 여의고 청상과부가 된 여인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꼴두바위 밑에 주막을 내어 장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 갔다고 한다.

 

주막은 삼척과 서울을 오가는 길목으로 장사가 잘 되서 몇 년 만에 많은 돈을 모울 수 있게 되었는데,

어느 날이 저물 무렵 노승이 주막을 찾아왔다고 한다. 여인은 시어머니 몰래 노승을 극진하게 대접하고

자신의 신세 한탄을 하며 자식을 하나 두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노승은 과부의 애절한 사연을 듣고는 ‘아무도 모르게 고두암 바위머리를 깨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일러 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난 여인은 노승의 말대로 아무도 모르게 고두암바위 머리돌을 깨버렸는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 주막을 찾는 손님의 발길이 끊겨 한가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를 이상히 여긴 시어머니가 추궁한 끝에 며느리의 소행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이를 괴씸하게 여겨 며느리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끼니마져 주지 않아 며느리는

 아들을 낳아 보겠다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지 못 한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인의 삶을 가엽게 여긴 하늘-신(神)-에서 여인의 소망을 대신해서 고두암을 잉태하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고두암이 바로 여인이 애타게 소원하던 아들을 중석생산으로 대신하여 생남(生男)의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후세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참고자료 : 강원향토대관 / 횡성군》

 

 선바위(하심님촬영)

 

 
영월군 상동읍 구래2리에 위치한 선바위산 내에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바위로, 마치 선사시대 돌칼의 모양을 닮았다.
소원바위는 '옛날에 자손이 귀한 부부가 소원바위에 백일동안 정성스럽게 기도를 드린 뒤 아들을 얻어 선바우라고 부르고, 몇 해 후 다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예쁜 딸을 낳아 선녀라 이름을 지었다'는 유래에서 비롯됐다. 지금도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곳에서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나타난다고 믿고 있어 지형이 험해 오르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주 소원 바위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대학입시를 앞둔 외지 학부모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산세가 험해 오르기 어려움에도 바위를 찾아 간절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정성에 하늘도 감복한 것이 아닐까.

 

("아름다운상동이야기"에서 발췌)

 

출처 : 운해의산방
글쓴이 : 운 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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