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동구 간석3동 중심지에 솟아있는 높이 187.1m의 만월산은 원래 이름이 주안산이다. 인천의 땅이름 가운데 하나인 주안이 바로 이 산 이름에서 나온 것으로 그 원래 위치도 지금의 주안이 아닌 이곳 간석동 일대를 가리키는 곳이었다. 조선 성종때 발간된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인천도호부 북쪽 11리 되는 곳에 주안산이 있다' 고 돼 있는데 이 주안산이 지금의 만월산이다. 주안산은 그 뒤 주안산으로 쓰이기도 해 김정호는 '대동여지도'에는 주안산으로 나타나 있으며, 근세에는 원통산 또는 선유산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이 산의 동쪽에는 고려가 건국될 때 왕명으로 새워졌다는 절 개국사가 있었다. 이 절과 같은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려 시대에는 늘 이곳에 1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고 있다해서 백인사라고도 했다. 또, 산 서쪽에는 조선 초에 주안사라는 절이 세워졌는데. 그 뒤 불교를 배척하는 풍토에 밀려 절은 결국 문을 닫고 수행하던 스님들도 뿔뿔이 흩어져 폐허거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 산의 서쪽 기슭에는 행가가 나는 돌 우물이 있어 조선조 세종 때에는 사람들을 보내어 물맛과 향기, 약효 등을 조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그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산이 만월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것은 1932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던 보월스님에 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다가 산정상에 올라서 보니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 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산세가 팔을 뻗어 시가지를 감싸 안은 듯한 모양을 갖추었기에 그 이듬해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게 하고 약사암이라 이름 하였다. 지금의 약사사보다 조금 더 산 위쪽이었는데, 사바세계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설법을 좀 더 쉽게 대할 수 있게 해주려는 뜻이었다. 보월스님은 그 뒤 오래지 않아 금강산으로 돌아갔고, 그를 이어 인천 해광사에서 수도 중이던 한능해 스님이 이곳을 지켰다. 그는 1960년대 들어 지금의 위치에 대웅전 등을 짓고, 약사암을 약사사로 높이어 오늘에 이르게 된다.
* 현존건물 - 대웅보전, 극락전, 약사전, 칠성각, 산신각, 미륵불, 독성각, 용국각, 조사당, 일주문 등
일주문은 '산문' 이라고도 하는데, 산사에 들어서면 맨 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써 절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다. 기둥이 일직선상의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고 하며 한마음(一心)을 의미 한다는 뜻도 담겨있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부산히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일주문은 어떠한 절에서나 일주삼간(一株三間)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뜻 하는 바는 법화경(法華經)에서 천명한 회삼귀일사상(會三歸一思想)이다. 중생의 바탕과 능력에 따라 성문(聲聞)-"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은 성자", 연각(緣覺)-"인과법과 12연기법에 의지하여 깨달은 성자", 보살(菩薩)-"육바라밀의 도를 닦아서 깨달은 성자"로 나뉘어진 불교의 여러 교법을 오직 성불을 지향하는 일불승(一佛乘)의 길로 향하게끔 한다는 사상적 의미가 담겨져 있으며, 이 문을 기준으로 세간과 출세간 승과 속의 경계가 이루어진다.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로 중생의 번뇌를 식힌다는 용왕(龍王)님을 모신 전각이다. 도교에서 비롯된 용신(龍神)사상은 가장 널리 신앙되는 수신(水神)이다. 통상 용왕신 또는 용왕님이라 일컬으며 용궁 또는 칠보궁전이라 한다.
약사사에서는 매년 음력 1월 13일날 용왕재를 모시며, 조선조때 산 아래 향기나는 돌우물이 있었다는 곳의 물 줄기를 찾아 약수터를 조성하였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많은 시민들이 물을 길어가고 있고, 넘치는 물은 아래 연못을 이루어 하얀 연꽃(수련)을 피우고 있다.
1권 1책. 670년 7월 중국 지상사(至相寺)에서 저술한 것이다. 의상의 저서 중에서 유일하게 전하는 책이기도 하다. 의상은 그냥 〈법계도〉라고 했으나 〈화엄일승법계도장〉·〈화엄법계도〉·〈일승법계도〉·〈법도장 法圖章〉·〈법성도 法性圖〉·〈해인도 海印圖〉 등으로도 불린다. 저자는 모든 것에 주인이 따로 있지 않음을 밝히기 위해 일부러 저자명을 기록하지 않는다고 하고 다만 향상대사(香象大師:의상의 스승인 智儼)라고만 밝혔다. 이때문에 이 책이 법장(法藏) 또는 현수(賢首)의 작품이라고 알려졌는데, 균여(均如)의 〈일승법계원통기〉·〈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저자가 의상임이 분명하다.
책은 총 210자의 법계도와 이를 해석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 책을 지은 목적은 '이름에만 집착하는 무리들에게 무명(無名)의 참된 원천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제로 의상은 이 법계도를 공부가 다 된 제자들에게 일종의 증명으로 수여했다고 한다. 법계도는 7언 30구로 구성되는데, 일반 문장과 달리 연속된 구가자를 4개의 '回'자 모양을 이루는 모양으로 배열했다. 그것은 게송의 내용과 도형의 모습 모두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법계도의 모양과 문구 모두를 해설했다.
일례로 게송이 모두 한 줄로 연결되어 있는 것은 여래(如來)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고, 이 선이 굴곡을 이루는 것은 중생의 욕망이 같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또 이 법계도의 모양이 시작과 끝이 없고 '回'자의 도형으로 표시된 것은, 여래의 선교방법에는 특정한 방법이 없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항상 돌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글은 곧 〈화엄경〉의 근본정신과 깨달음의 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화엄경〉의 정신을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 명저로 손꼽힌다. 이 글의 주석서로는 의상의 제자들이 편찬한 〈화엄일승법계도기총수록〉,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 등 여러 권이 전하는데 이들도 화엄경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 된다.
약사사 미륵불은 속리산 법주사 미륵불을 조성한 (故)신상균씨가 1950년대 중반에 조성하였다.
미륵불은 미래의 부처님이다. 석가모니부처님 뒤를 이어 이 사바세계를 교화할 부처님으로 미래불이라는 수기(授記)를 받고 도솔천에 계시면서 그곳에서 천인(天人)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뒤 56억 7천만년이 지나면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부처가 된다.
그 분이 미륵불(彌勒佛)이다. 도솔천에 계시는 동안 미륵보살의 곁에 태어나기를 희망하는 상생신앙(上生信仰)과, 미륵보살이 하강하여 제도하여 주기를 바라는 하생신앙(下生信仰)이 있다.
국토의 7할 이상이 산으로 이루어진 나라이기에 산에 대한 숭배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 강렬하였다. 산신은 원래 불교와 아무 관계가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착신앙 이었으나 불교가 재래 신앙을 수용하면서 산신은 부처님을 지키는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되었다.
그러다가 후대에 이르러 불교 안에서 지금처럼 본래의 모습을 찾아 독립된 전각을 지어 모시게 되었다.
산의 정기를 믿고 산신령을 믿으면서 산신을 섬기게 된 것인데 산신은 탱화에 노인으로 표현되고, 호랑이는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 늘 산신 옆에 배치되어 있다. 산신은 불전(佛典)에 그 근거가 없으므로 산신전(山神殿)이라 하지 않고 한층 격을 낮추어 산신각(山神閣)이라고 한다.
현재 산신각에서는 자식을 원하는 사람과 재산이 일기를 기원하는 신도들의 산신기도가 많이 행해지며 대부분의 사찰에는 한 칸 남짓한 목조 산신각이 있다.
나반존자(那般尊者)라는 독성님을 모신 당우로 나한(羅漢)중에 한 사람으로 연기(緣起)의 이치나 육바라밀의 이치를 혼자서 스승없이 자기 힘만으로 모든 진리를 깨친 성자(聖者)이다. 나반존자는 홀로 천태산(天台山)에 들어가서 해가 뜨고 지는 것, 철따라 잎이 변화하는것을 보고 깨달음을 이룬 것이다.
머리가 희고, 긴 눈썹을 가진 노인상으로 모시는데 개인적으로 독성각에서 불공을 드리는 경우가 많다.
약사사에는 나반존자가 천태산에 들어 깨달음을 이루어 편액을 천태각(天台閣)이라 하였고 능해스님(창건주)께서 임진왜란 당시 대승(大乘)적 견지에서 승병(僧兵)을 이끌어 의병(義兵)활동으로 유명하신 서산대사(청허당 휴정대사)의 영정을 모셨다.
부처님의 자세한 명호는 약사유리광(藥師琉璃光)여래이고, 혹은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계시는 세계는 동방만월세계(東方滿月世界)인데, 정유리(淨琉璃)세계라고도 하며, 12대원을 세워 모든중생의 몸과 마음의 질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시키며, 생활을 풍족하게 하시어 중생의 병고 뿐 만 아니라 현실세계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부처님이다.
약사사에는 약사전 바로 우측에 칠성각을 배치하였는데 이를 약사신앙의 근본경전인 [약사경]을 살펴보면 신라때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약사신앙과 칠성신앙이 성립 초기에 변화 수용 되었음을 알 수 있고 또한 칠성신앙의 가장 초점이 되고있는 수명 연장의 기능을 약사여래가 맡고 계시다는 점을 고려하여 칠성각(七星閣)이라 하지 않고 금륜보전(金輪寶殿)이라하여 한층 격상 시켜 약사전과 나란히 전각을 모신 것 같다.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칠성(북두칠성)을 봉안한 전각으로 북두각(北斗閣)이라고도 한다. 수명을 연장해주고 병을 고쳐주며, 특히 어린이의 수명장수를 주관하며, 재물을 늘려주고, 재능을 돋우어준다.
사찰에 칠성을 모시게 된 것은 중국의 도교사상이 불교와 융합되어 나타난 현상이며 도교에서는 "칠원성군"을 불교에서는 "칠성여래"를 모시고 있다. 또한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유의 전각이다. 칠성각 내에는 삼존불, 칠여래, 도교의 칠성신 등이 함께 봉안되어있다.
약사사 칠성각 편액(扁額)에는 금륜보전(金輪寶殿)이라고 했는데 주불이신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께서 관장하는 곳이 금륜보계(金輪寶界)이기 때문이다. 주불은 치성광여래이며 좌우로 일광, 월광보살을 모시고 칠원성군과 태상노군을 모셨다.
대웅전은 도력(道力)과 법력(法力)으로 이 세상을 밝힌 대영웅(大英雄)을 모신 법당이란 뜻이다. 자연히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천님이 봉안의 주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과 좌우 보처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셔놓은 법당을 대웅전이라 하고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왼쪽에 동방만월세계의 약사여래부처님과 오른쪽에 서방정토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을 삼존불로 모시고 대웅보전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부처님들은 공간적으로 3세계를 대표하므로 삼세불 이라 부르는데, 조선시대에 조성된 큰 사찰중에 대웅보전 내에 삼세불상과 삼세불화(삼불회도)를 봉안 한 하동쌍계사, 구례화엄사, 해남대흥사등이 있다. (과거-연등불, 현재-석가모니불, 미래-미륵불을 조성하기도 함)
약사사 대웅보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좌보처로 지혜(智慧)를 상징하는 문수보살과 행원(行願)을 상징하는 보현보살을 협시하여, 모든 구도자들이 지혜와 행원에 의지하여 해탈의 길로 나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또한 부처님을 중심으로 돌면서 염불을 할 수 있도록 전통 건축양식으로 조성되었다.
다불전형(多佛殿形)사찰인 약사사는 대웅보전(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약사전(약사여래불)을 오른쪽으로는 극락전(아미타불)을 모셔 특이하게 각 전각으로 삼세불을 모신 대가람이다.
약사사 범종은 인간문화재 112호인 성종사 대표 원광식씨가 주조(鑄造)하였다. 범종각은 범종을 달아 놓은 보호각 기능을 한다. 범종을 달아 맬 수 있도록 가구를 튼튼히 짜고 바닥에는 음이 공명(共鳴)하도록 구멍을 만들어 둔다.
규모가 큰 사찰에는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제도하는 범종(梵鐘),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으로 불변의 진리로 중생의 마음을 울려 일심을 깨우친다는 의미가 담긴 법고(法鼓),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 할 수 있다는 운판(雲板),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고 배부분을 파내어 막대기로 두드려 소리를 내어 물 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목어(木魚)등의 '불전사물'을 함께 놓기도 한다.
극락정토의 주재자이신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이다.
성불(成佛)전에는 법장비구(法藏比丘)로서 여래의 덕을 칭송하고 온갖 행을 닦아 중생을 제도하려는 서원(48大願)을 세웠으며, 마침내 아미타불이 되었다. 아미타불은 그 광명이 끝이 없어 백천억 불국토를 비추고(光明無量), 그 수명이 한량없이 백천억 겁으로 셀 수 없다.(壽命無量)
따라서 극락전을 무량수전(無量壽殿), 또는 주불의 이름을 따라 미타전(아미타전) 이라고도 한다.
약사사 극락전에는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시고 왼쪽에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중생의 근기에 따라 갖가지 모습으로 나투시는 관세음보살을, 오른쪽에는 지혜의 빛으로 중생을 삼악도(三惡道)에서 건지시는 대세지보살을 모셨다.
좌우에는 순금으로 도금한 만년위패를 계속 안치하고 있으며, 위패를 모신 영가들의 왕생극락(往生極樂)을 기원하며 대중스님들의 독경소리가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