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7년 02월 11일,음력12/24) 날씨:흐림
산행지: 백두대간5구간
산행자: 백두대간 종주대
산행코스:중기마을~중치~중고개재~백운산~금남호남정맥분기점~깃대봉~육십령
도상거리:18km,어프로치:1.54km = 산행거리 19.54km
산행시간:10시간30분
개요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몇이나 알겠는가!
전투에서 죽은 수 많은 군경과 공비들에게 너희는 왜 죽었느냐고 물었을 때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었다고 대답할 자 몇이나 될 것인가! 이 판에 무엇이 공이랄게 있는가, 멀리 중국땅에서 독립운동할 때가 영광스러웠다. 이 싸움은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모든게 드러날 것이다"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을 사살한 서남지구 전투경찰사령부 2연대장 차일혁 총경의 글이다-
제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눌 수 없다며 제주4.3민중항쟁 진압을 거부하고 반란군이 되었던 여수14연대.
"조국통일! 인민해방! 사회주의 낙원건설!" 구호를 방패삼고 남쪽 동족의 가슴에 총뿌리를 겨누었던 또 다른 그들. 국방군과 경찰대의 마냉에 가가운 횡포에 치를 떨며 어쩔 수 없이 혹은 기꺼이 산으로 들었던 산골 사람들. 그리고 먼 저 산사람이 된 지아비를 쫒아 산에 올랐던 지어미들... 북은 그들을 버렸고 남은 그들을 저주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산을 떠 돌며 총 맞아 죽고 꿂어 죽고 얼어 죽고 못 먹어 죽었다. 덕유산을 등지고 지리산으로 가는 길 금남호남정맥이 갈라져 나가는 무령고개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백두대간 사람들에서_
여.순사건의 봉기를 이르킨 세력들은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항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지리산을 중심으로 산악지대로 들어가 진지를 구축하였는데 그 중 일부는 구례.곡성. 남원 등으로 북상하면서 2천명이 넘는 무장세력을 지리산과 백운산 등에 거점을 확보하고 무장투쟁의 근거지를 확보한 지리산 중심의 빨치산부대는 점차 인근지역으로 활동역역을 넓혀 나가기 시작 하였는데 .6.25전쟁 이전부터 중요 거점으로 알려진 백운산과 지지계곡은 이 들의 활동무대가 된 곳이다.-지리산 유격전구안에서는 인민위원회가 부활되어 부분적으로 토지개혁이 일부나마 실시 되었다 -네이버백과사전-
산행기에 왠 빨치산 이야기냐고 의아해 할 것이지만
동족에게 총뿌리를 겨누고 싸워야 했던 역사의 현장인 백두대간5구간은 우리민족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안겨준 곳이기에 이 곳을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친다면 공산주의가 무엇이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된 수 많은 동족의 비극적인 종말을 잊어 버리는 愚를 범하게 되어 귀천을 떠 도는 영혼을 슬프게 할 것이다.
여성빨치산"오양수"와 국방군 김대위의 애틋한 사랑이 빨치산을 빼돌렸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복귀하는 김대위와 빨치산이었던 오여인의 자살로 비극적인 종말로 끝 나는 지지계곡의 아픔은 오늘날 무령고개로 이어지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건설로 포크레인 등의 굉음만이 지지계곡의 아픔을 집어 삼키고 있다.
그 밖에 이야기는 산행글에서 하기로 하고 산줄기에 대해 적어 보고자 한다.
지지리 사람들이 산에서 채취한 산추열매와 약초등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방아(쌀이나 보리 등)와 물품을 사기 위해 넘나들던 중고개재를 지나 백운산 오름길은 두 시간에 걸친 힘든 산행이 되나,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 조망되는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과 팔공산 동쪽으로 전개되는 서래봉 . 황석산. 거망산. 월봉산이 조망되며 그 너머에 금원산. 기백산이 다소곳이 머리를 내 밀어 준다.
또 한 남쪽으로 중봉과 끝봉의 산줄기를 따라 손에 잡힐 듯 다가서는 지리산의 주능선는 곧 바로 하늘금이며 하늘금에 걸린 파란하늘과 흰 뭉게구름이 전해주는 감동을 어떻게 필설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탄사만 연발하게 할 것이다.
깃대봉을 지나 덕유산까지 유유히 뻗어가는 마루금 따라서 백두대간의 8대종산이자,호남의 진산이며
금강과 섬진강 물줄기를 가르는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진산(모산)이 되는 장안산은 영취산에서 분지하는데 백두대간 마루금에 선 영취산을 장안산의 한 자락으로 보기도 하는 것은 고개를 중심으로 산이름을 지었던 우리의 잣대에 비추어볼 때 무령고개를 경계로 하여 장안산과 영취산으로 나누어 놓은 것 같다(장수군지에서 인용)
위에서 언급한 지지계곡은 북쪽으로 전개되는 백두대간의 마루금과 서쪽으로 전개되는 금남호남정맥
마루금 사이에 백운천 따라 이어 져 있으며 영취산과 장안산을 나누어 놓은 무령고개에서 시작하여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까지 20여km로 이어진다.
이 밖에 관광명소로는 장수방향에는 논개의 생가와 인근에 있는 방화동가족휴양촌이 있으며
"안의"에는 남덕유산에서 발원하는 계류를 따라 팔담팔정(여덟 정자와 못를 말한다)이 있어 정자문화로 유명한 안의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그 중 제일은 달을 희롱한다는 뜻을 가진 "농월정"이다.
진행도
산행글 중재에서 육십령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북진5구간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알려져 지리산과 백운산을 중요 거점지역으로 남침의 계획을 세웠던 김일성의 야망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낳았고~~ 국방군과 빨치산의 이름아래 동족끼리 총칼을 겨누고 싸워야 했던 이 아픔의 현장에서 영혼이 되어 구천을 떠 도는 수 많은 사상자들의 억울함을 느껴보고자 걸어가는 이.. 우리들이요... 이 곳을 지나가는 길손들에게 억울한 죽음에 말 없는 하소연을 하는 당신들의 숭고한 뜻을 우리는 알지어니... 이제는 원귀의 한을 풀고 천국에 올라 극락장생 하소서!
04:48 산행길 준비하여 중치에 도착 해 후미조 기다렷다 힘찬 발걸음 내 딛는 시간은 언제나 줄거움을 동반한 흥분이 함께 한다.
어둠속에 살포시 얼굴을 내 밀어 가는 길에 축복의 미소를 보내는 상고대는 오늘따라 더욱 멋 있는 산행길 되라 한다.
05:27 조금은 빠르게 진행된 첫 번째 쉬어가는 구간인 중재는 아직도 어둠에서 깨어나지 못 하고 있고.... 우리의 산행은 항상H/2km이하의 진행으로 되어 있기에 H/3km의 진행에 투덜 거리는 대원들의 원망을 들어야 했지만. 세차게 불어대는 북서풍과 영하15도의 혹한을 빠른 진행으로 커버를 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다.
백운산 오르는 비탈진 급사면은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 훔칠 장소하나 없이 세차게 불어대는 칼바람을 피해 중봉 마루턱에 서니 동녁에 또 오르는 여명이 대지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날이 밝아 오면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금남호남정맥의 시작점인 장안산의 위용은 구름으로 인하여 볼 수는 없지만 산세의 웅장함만은 호남은 가르고 충청도의 일부까지 이어지는 산맥의 꿈뜰거림을 감싸않은 백두대간의 8대종산이자 호남의 진산임을 느끼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중봉에 오른다.
중봉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따라 만나는 끝봉이다. 끝봉 너머에 손에 잡힐 듯 다가오는 지리산의 주능선은 하늘금이다. 하늘금 너머에 신선이 살고 있을까? 반야봉에 놀러갔다 돌아오지 않은 마고할멈 기다리는 천왕봉 산신님의 기다림이 주능선 길게 늘어뜨려 하소연 하는 것일까? 불암산아우가 항상 누어서 쉬고 싶다는 지리산의 하늘금을 오늘은 볼 수 없어 대원들에게 설명 해 주지 못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어떻게 할거나~~
백운산 헬리포트에서 바라보는 중봉이다. 사실 중봉과 백운봉을 100m사이를 두고 있어 가늠하기 힘들다.
백운산에서 동쪽으로 누어 있는 1157봉과 써래봉이다. 써래봉 줄기 따라 함양의 괘관산이 대진고속도로변에 있지만 오늘은 조망할 수 없다. 남덕유산에서 힘차게 뻗어 내리는 월봉산과 거망산 황석산의 조망은 물론이고 금원,기백도 볼 수 없게하는 하늘의 변덕을 원망 해 본들..... 아픔만 더 해질 뿐이다.....
1157봉줄기의 873봉 서래봉~대방령~원통재~괘관산으로 이어지는 백운산의 지능선이다.
백운산 정상. "수고하셧습니다" 한마디에 산꾼의 노고는 꿈 처럼 사라지고.. 사방으로 조망되는 멋 진 경관에 감탄사만 연발하게 만드는 백운산의 정상은 대간길에서 손 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망터이다. 다소곳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白雲山 정상석과 함께....
1157봉 너머에 몰려오는 구름떼는 금원산과 기백산의 산세 흐름과 같다.
덕운봉 가는 길에 되 돌아 보는 백운산 정상부
일명 영취산이라 불리는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이 시작되는 봉이다. 장수군지에는 장안산의 일부분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영취산이라 부르는 것은 무령고개가 갈라놓은 습관적인 산 이름 명칭을 붙이는 것에서 비롯 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것은 백두대간에서 분기되는 금남호남정맥의 시작점이 분기점에서 장안산으로 이어가면서 무령고개가 있어 두 개의 산으로 보이는 역활을 하기에 영취산이란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의견에는 본인도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나 말 많은 세상이라 더 이상은 언급은 피하고자 한다. ★ 전 사진에 넣은 금남호남정맥의 이니셜은 분기점에 대한 의식을 한 번 더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
조릿대 따라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무령고개로 가는 지름길이다. 무령고개에 내려서면 장안산으로 이어지는 금남호남정맥과 지지계곡을 따라 흐르는 백운천 논개의 생가가 있는 대곡리로 내려가는 중요한 기점이 있으며 대곡리방향 100m아래에 무령샘터가 있는데 이 샘터는 현대사에 많은 것을 시사 해 주고 있다. 그 중에 하나 백야전투사령관 백선엽장군의 저서 "실록지리산"에 나오는 빨치산여인 오양수와 국방군 김00대위의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이다. 51년 12월 빨치산 토벌대로 나선 백야전투사령부 26연대소속 김대위는 장안산에서 작전지휘를 하고 있다 무령고개에서 오양수라는 빨치산 여인을 만나게 되어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때 김대위의 나이 26세였고, 오여인은 20세의 꽃다운 나이었으나, 적으로 만나는 기이한 인연에 그 들이 나누었던 사랑은 모든이에게 심금을 울려주게 된다. 국방군에 쫓기며 오랜 도피생활을 해 오면서 낙오된 여인은 눈 밭에 쓰러져 사경을 헤메일 때 김대위에게 발견된다. 오여인은 안아 일으키던 김대위는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한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그 들의 사랑은 비극적으로 끝 나고 만다. 김대위의 지극정성으로 원기를 회복한 오여인은 김대위의 노력에 감명을 받아 그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들의 사랑은 빨치산은 빼돌렸다는 이유로 김대위가 방첩대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종말을 고하게 된다. 사상적인 의심을 받아 방첩대에 수감된 김대위에 대한 심문은 지독했고 , 빨치산으로 체포된 오여인 역시 고문에 시달렸지만 여인의 한 마디는 오직 김대위의 안위를 걱정하는 "그 분은 괜찮으시냐"였다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위의 안위를 걱정한 오여인은 심문병이 잠시 자리를 피한 사이 심문병의 칼빈총를 자신의 목에 겨누어 자살을 결핼함으로서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나게 되나.이러한 사실에 감명받은 송요찬장군의 사면으로 군에 복귀하여 중령으로 예편한 김대위의 삶은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보내는 삶을 마감한다. -위 내용은 백야전투사령관이었던 백선엽장군의 저서 "실록 지리산" 기록된 내용을 개인적으로 재 편집 해 보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무령샘은 빨치산의 접선장소로 사용되던 당시 그 들의 생명수 역할을 하였던 샘이다)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인 영취산이다. 지도상에 영취산은 표기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인의적인 명칭만은 확실 해 보이지만.... 이 것을 밝히는 것은 학자들의 할 일이지만 허접한 산꾼의 쓴소리도 때로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본다. ★ 여기는 남한의4대강 중 낙동강.섬진강. 금강이 나누어지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암릉에서 조망하는 덕운봉(왼쪽)
지나온 금남호남정맥 분기점(우측봉우리)와 헬리포터가 있는 좌측은 1086봉이다
갈참나무 숲길. 겨울과 가을이 공존하는 길목이다. 모처럼 밟아보는 낙엽의 속삭이는 소리는 바람소리에 실려 또 다른 화음을 연출한다.
암릉을 우회하여 조릿대길 따라 내려서면 안부에서 우측으로 50m아래 식수를 구할 수 있어 이 곳에서 비박하는 사람들 많지만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곳이다. 쓰레기 버리지 말기 바라는 마음으로 식수터를 공개한다.
덕운봉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다.
조릿대길 키를 넘는 곳이 많은 구간이다. 덕태산의 산죽길과 왕시리봉 구간의 산죽이 유명하다.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깃대봉
깃대봉 오름길은 억새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장안산의 억새군락지와 쌍벽을 이루는 곳!
마루금따라 장수쪽 산줄기는 한 겨울이고... 서상쪽 산줄기는 가을이다. 계절의 변화는 순간적이라도 이렇듯 오묘한 것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한느 대간꾼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깃대봉 예전에는 이 곳에서 깃발을 흔들어 왜적의 친입을 알리곤 하였다는 곳인데 지금은 깃대봉의 이름에 걸맞게 3개의 깃대가 서 있다. 조망판과 함께.......
깃대봉 정상에서 내려서는 마루금은 백색의 천국이다. 순식간에 보여주는 상고대의 멋진 연출은 뒤 이어 기쁜 만남을 예고나 하듯이.....
깃대봉과 나란히 하는 삿갓봉(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이다. 헬기장 아래에서 우회한다. 원래 마루금은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 서지만 정상에서 3시방향으로 껵여지는 마루금 잊어버리고 직진으로 알바하는 사람들 많은 곳이기도 하다.
삿갓봉의 5부능선을 우회하여 마루금에 도착하면 깃대봉 샘터로 내려서게 되지만 이 또한 우회하는 길이며.. 이러한 우회길은 육십령에 도착할 때 까지 여러 곳이 있다.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다. 대덕산 샘터와 함께 대간꾼들의 생명수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지난 해 4월말경 이 곳을 넘어올 때 마셨던 느낌으로 바가지 가득 담은 물 한모금 마시고 나니 먼저 와 기다리고 계시는 만사태평님께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 있다고 하여 당신을 표현한 것으로 알았으나 뜻밖에도 두타행아우님이 아닌가!
지난 여름 3개월간 뱀사골에 머물 때 불암산아우님과 함께 13주를 방문 해 험난했던 여정을 함께 나누며 격려 해 주던 동생들이기에 여기까지 격려산행 나와 준 두타아우에게 고마운 마음 담아 눈길만 전할 뿐이다.
덕유산서봉 샘터를 뒤로하고 육십령으로 내려서는 마루금은 빙판길이라 조심!조심! 전망바위를 지나고 장수쪽 내림길로 하산을 시작한다.
산행을 마치고 다음에 가야할 들머리 확인하면서 대간꾼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할머니집에서 간단한 뒷 풀이와 두타행아우가 손수 제조 했다는 복분자주에 이은 막걸리 한 잔은 오늘 산행의 수고를 한 번에 덜어 준 산행이었다. 후기 개요에서 언급한 내용은 5구간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과 민초들의 애환을 인테넷자료와장수군지및 백야전투사령관이었던 백선엽장군의 "실록 지리산"에서 인용한 내용이며 산행글에 언급한 내용은 자료에 있었던 내용을 개인적은 정리 해 본 것이다. 이러한 글은 산행기와 관계가 없는 것이나. 역사를 알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식상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산에 대한 한 개인의 열정으로 이해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 산행은 나름대로 평소에 원하던 산행을 하였기에 줄거웠고 무엇보다 허접하게 알고 있는 나의 경험과 산줄기에 관한 설명에 귀 기우려주신 대원님들께 감사드리며 산행기를 정리한다. 줄거운 설날 가족의 행복과 행운이 함께 하시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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