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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꿈! (화령재에서 갈령삼거리까지) -북진13구간-

㉥ 백두대간 記

by 운해 2007. 6. 1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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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7년 06월10일(음력04/25) 날씨: 맑음

  

산행지: 백두대간북진13구간 (화령재~갈령삼거리)

  

산행자 : 백두대간 종주대

  

산행코스: 화령재~봉황산~비재~못지~갈령삼거리~갈령

  

도상거리 :12.7km , 어프로티:1.2km, 산행거리:13.9km (포항셀파측정거리임)

  

산행시간 : 8시간12분

  

개요

  

오늘 우리는 백두대간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地域이라 할 수 있는 中化地溝帶( 백두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하고 상주시에 속한 6개면 중 모서면.모동면을 “중모현”이라 했고 , 화동.화남.화서.화북을 “화령현이라 했으니 상주목에 속한 중모현과 화령현을 합하여 ”중화지구“라고 하였다)를 벗어날 것이다.

  

추풍령에서 시작하여 화령재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논길과 밭길을 지나기도 하였고 때로는 용문산.국수봉. 윤지미산 등 나지막한 산(非山非野)들을 넘어 오면서 우리네 사는 모습과 한가로운 농촌풍경에 수채화를 그리듯 도심의 찌든 때를 벗겨내는 청량감을 얻었기에 이 구간에 대한 여운은 오랫동안 우리들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신라시대에는 “답달비군”(답달은 큰 산을 뜻한다)이라 하였고 통일신라 경덕왕 때 “화령군”으로 고쳐 부르다 고려시대 때 “현”으로 바꾸어 “상주목” 아래 두었던 화령은 고종32년 상주군 화령면으로 명명되어 현재(상주시 화령면)에 이르고 있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의 요충지로서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치열했던 화령재는 6.25전쟁까지 쉼 없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있었으며 전쟁의 흔적을 알리는 전적비와 공적비들이 석가여래상과 함께 서 있다.

  

화령재 고갯마루에 1990년도 건축 된 화령정은 고갯길의 내력과 화령의 역사를 기록한 편액을  걸어 두었는데 삼국시대부터 지명의 유래.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역사를 기록하여 이 곳을 지나는 길손에게 알리고 있다.

  

포란지세(봉황이 알을 품은형상)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에 의해 태봉산(胎封山)이라고도 불렀던 鳳凰山은 화령의 鎭山이며 황간으로 흐르는 송천의 發源地이며 봉황산 지나서 660봉에서 팔음지맥(길이55.5km)이 분지한다.(팔음산과 백화산을 거느리고 보성천과 초강이 함께한다)

  

봉황산과  못제(못봉)의 중간 지점인  500봉(암봉)에서 봉황산을 바라보면 봉황이 나르는 형상이라 하여 비조재(飛鳥) 또는 비조령(飛鳥嶺)이라 불렀던 비재를 횡단하여 못제로 오르는 길은  헬기장을 지나 암릉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의 지형은 험난하므로 안전 산행에 주의 해야할 구간이다.


비재에서 못제에 오르기까지 두 번의 오름과 내림을 반복하는 고된 산행 끝에 암릉인 500봉에 오르면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이곳에서 조망하는 대궐터산과 구병산의 풍경이 압권이다.

  

못제에 오르면 좌측으로 동관음을 지나 구봉산으로 내려서는 충북알프스가 분지하는 곳에 후백제 견훤의 전설이 서린 못제가 있으며 이곳에는 갈대가 자라고 있어 못(池)이라는 것을 입증 해 주고 있는 대간상의 유일한 습지이기도 하다.


견훤에 대한 못제의 전설은 산행 글에서 쓰기로 하고....

갈령삼거리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비교적 평탄한 길이나 갈령삼거리 안부에 오르는 구간은 암릉이라 좌회하여 갈령삼거리까지 쉽게 진행할 수 있다.


갈령삼거리에서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뒤로하고 여기서 분지하는 작약지맥을 따라 갈령에 내려서면 거대하게 다가서는 대궐터(두리봉)산 암릉의 웅장함에 놀라며 갈령에 도착하면 거대한 이정석이 반겨준다.

 

(작약지맥은 갈령삼거리에서 분지하여 남산과 작약산을 거느리고 태봉산까지 50.2km로 이안천과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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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도

 

산행글

 

화령재에서 시작하는 산행은 모처럼 줄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비교적 짧은 거리의 산행이기에 마음 껏 여유를 부리고 산행을 하여도 될 것이기에.....

모처럼 유산객 되어 유유자적 하는 산행을 하면서 대원들과 깊이 있는 대화에 빠져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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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는 고정된 멤버에 새롭게 합류하신 산스키님과 한경희님이 함께하는 처녀산행은 서로가 서먹한 기분이겠지만

대간꾼들의 느낌이 그렇듯 머지않아 한 마음이 될 것이기에 다른  산행에서 볼 수 없는 하모니를 연출할 것으로 믿고 오늘도 자유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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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들머리

 

산행 들머리에 정차하니 먼저 와 기다리고 계시는 만사태평님 부부와 한산님 반갑게 해후한다.

신의터재에서 화령재까지 산행을 마치고 합류하는 한산님의 열정과 함께 갈수록 대간길 멀어지지만 오직 완주하겠다는 신념하나로 먼 길 마다않고

 손수 운전하여 참석하시는 두 분의 모습을 대할 때 마다 백두대간이 주는 마력이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하지만 두 분의 앞날에 무궁한 영광과

 행복이 있으리라........

 

들머리 옆 언저리에 하관을 하는 상주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극락왕생 빌어 드리고 잠시동안 산행에 대한 설명을 시발점으로 하여 오름짓 시작하니

 09시55분이다.

 

오늘 산행은 널널하게 7시간으로 예정되어 있고 모처럼 가을 하늘처럼 파란 세상이 봉황의 모든 것을 품어안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여겨

봉황산 산신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

 

 일기예보에 비 온다고 하니 하산 때까지만 참아 달라고....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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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9

전 날밤에 내린 비로 등로는 축축히 젖어 있고 나뭇잎 또 한 짙은 녹색으로 초대이지만 따갑게 내리쬐는 초 여름의 태양은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방울 훔쳐대기에 여념이 없게 만들어 버리고......

 

조림된 잣나무 숲과 소나무 숲의 피톤치드의 상쾌함을 느끼며 걸어가는 길에 오디열매 따 먹는 줄거움과

간혹 보여주는 야생화의 환한 미소는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정상을 우회하여 7부능선따라서 지능선에 오르면 등로는 왼쪽으로 껵여진다.

야간산행시 독도에 주의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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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9

산불감시초소에 도착하는데...

작년에 내려오면서 만나 뵈었던 할아버지 안 계시는 초소는 굳게 잠겨있고 사다리 또 한 치워져 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조망하는 왼쪽상단의 노음산과 중앙에 있는 윤지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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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터산

두리봉이 정상이나 이 곳의 호족이었던 아자개(견훤의 부친)의 성터가 있는 곳을 이지방 사람들은

 "대궐터산"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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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산과 팔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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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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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훤의 성터

현재는 극락정사가 있으며  시어동 계곡에 또 다른 견훤성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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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초입의 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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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3

봉황산은 정상부분이 봉황처럼 완만하게 생겼고 좌우 양 날개를 길게 펼친 형국이 봉황새를 닮았다고 하여 봉황산.

1300여년 전 봉황새가 이 산에 날라와 살았다고 하여 봉황산이라 한다.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은 송천은 구봉산에서 발원하여 화령과 중모현을 지나 황간현에 이른다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속리산은 봉우리가 아홉개 뾰쭉이 일어섰다 하여 구봉산이라 한다는 기록과 함께 고을 동쪽 43리에 또 다른 구봉산이 있다고 하였다.

조선광문회본 산경표에는 속리산,구봉산, 봉황산이 모두 함께 기록되어 있다.

-중략-

 

위 기록을 볼 때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이 틀리지 않으려면 구봉산을 봉황산으로 바꾸거나 구봉산이 봉황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산경표"는 봉황산과 구봉산을 별개의 산으로 다루고 있다.

또 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도 구봉(峯)산과 구봉(峰)산은 별개의 산이다.(구봉(峯)=봉황산,구봉(峰)=속리산)

 

위의 기록을 종합하여 볼 때 구봉(峯)산은 관기의  구병산일 가능성이 높으며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은 송천이 발원하는 봉황산을 구병산으로 착각한 것이다.

물줄기의 발원을 착각하는 일은 옛날에도 흔히 있었다,

 

구병산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가 보청천 상류의 골몰에 둘러쌓인 외단 봉우리에 지나지 않는다.

백두대간의 봉우리도 아니므로 숙제는 역시 "산경표'에도 남는다.

-김하돈님의 글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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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부터 형제봉.천황봉.칠형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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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음지맥이 분지하는 660봉과 구병산.

여기에서 (왼족) 송천이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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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음지맥 분지봉인 660봉(태봉)에서...

 

이 곳에서 시작하는 팔음지맥은 천택산.팔음사,천금산.영동터널을 지나 철봉산까지 55.5km이며

팔음산에서 분지하는 백화산과 주행봉은 화령의 주작산으로 봉황산과 남북으로 대칭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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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

곧게 뻗어 올린 갈참나무들이 청량감을 전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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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터산의 주능선

가운데 뾰쭉한 암릉을 왕관바위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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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

기묘하게 자란 나무의 애환이 느껴지듯...

목마른 짐승에게는 소중한 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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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

비재에서...

봉황산은 봉황이 날라가는 형국이라 하여 예전에는 이 곳을 비조(飛鳥)재. 또는 비조령(飛鳥嶺)이라 불리었으나

포장도로가  완공되면서 비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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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동계곡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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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과 660봉(팔음지맥분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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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4

510봉

비재에서 못제로 오르는 가파른 능선에서 455봉지나 두 번째로 만나는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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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산

못제에서 분지하여 서원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구봉산이라 하고 서원리에서 속리산구간(형제봉~천황봉~문장대~관음봉)을

 포함하여 상학봉까지 이어지는 43.9km를  충북알프스라 한다.

 

참고로 충북알프스는 보은군 부군수였던 정중환씨가 일본의 북알프스와 영남알프스에서 힌트를 얻어 독자적으로

 개발하여 이름붙인 것이라 하는데 개척자의 정신을 기리는 마음에서라도 충북알프스로 불려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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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3봉(동관음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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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4

못제가 있는 봉(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무명봉이다)

 

못제는 백두대간에서 유일한 고원습지로 600여평 정도로 장마철 외에는 물이 없으나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이 이 곳에서 목욕재배하고

 기를 받았다는 전설로 보아 과거에는 물이 풍부했던 것으로 보인다.

 

못제에는 견훤에 관한 전설이 있다.

# 상주에서 군사를 일으킨 견훤은 세력을 확장 해 나가는데 보은지방의 호족인 황충과 자주 충돌하게 되지만 매 번 패하는 황충은

 견훤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기 위래 부하를 파견해 염탐한 결과 견훤이 못제에서 목욕을 하고나면 힘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견훤이 지렁이의 자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황충은 못제에 소금300가마를 뿌려 견훤의 힘을 사라지게 하였다는 이야기다 #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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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나물

봉황산부터 동행하기 시작한 인천의 우산산악회 회원님들과 산행은 또 다른 기쁨이었고...

언젠가 그 들과 함께하는 산행길 기다려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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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

못제

충북알프스는 왼 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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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대난초의 꽃잎은 이미 지고 없어 동의나물이 대신하고 있다.

오른쪽은 연초록의 천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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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봉.

대궐터산의 주봉이다.

 

못제를 지나 시작되는 암릉지대는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제시 해 준다.

이 곳에 올라 조망 해 보는 산군의 꿈뜰거리는 스카이라인은 답답한 가슴을 열게하는 청량제이다.

 

절경에 취하고..

갈령삼거리 가는 마지막 봉을 남겨 둔 안부에 앉자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피날레는 다음구간을 위한 전초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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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2

갈령삼거리에 도착!

다음에 이어 가야할 형제봉의 위용이 대단하다.

 

오늘도 후미는 피할 수 없는데  이미 하산을 완료한 대원들...

전화소리에 하산길 바쁘지만  갈령가는 마사토길은  미그럽기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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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봉

하산길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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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금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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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

헬기장 아래 갈령이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대궐터산!

그 곳에 간 출발님 일행은 도착했을랑가??

 

그 것은 기우였다.

우리가 꼴찌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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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

하산종료.

갈령은 작약지맥이 지나는 곳으로 칡이 많아 갈령(葛嶺)이라 했다.

 

후기

 

지나온 길 되 집어보면

 

화령재의 출발과 함께..

전 날밤 내린 비는

 

산야를 깨끗하게 청소 해 주어

가는 발걸음 가벼웠고,,,

 

주인 없는 산불초소에서

꽃망울님의 황도는 이빨을 아리게 하는 빙수였으며

마루금에 자리펴고 나누어 먹는 점심식사의 줄거움과

만태님의 오미자 주!

 

달콜함과 함께

오감을 자극하는 향기에

 

 비재가는 길

봉황을 타고 나는 기분이었다.

 

못제 아래 암릉에서

사방을 조망하는 줄거움은 신선이 따로 있으랴 ...

 

갈령삼거리 안부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줄거움은

갈령에 내리는 순간까지 이어지는데..

 

갑자기

한바집의 걸죽한 막걸리가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갈령에 도착하여 장수로 떠 나는 만태님 내외분 배웅하고 가은으로 이동하여 음식점 찾으나 

오랜 옛 기억은 떠 오르지 않고..가야할 길 천리라 연풍으로 이동하여  삼겹살과 함께하는 뒷 풀이는 모두에게 줄거움이었다.

 

덧글:이화령 가는길에 우측으로 조망되는 주흘산과 옛 길을 따라서 이화령고개 넘어가는 낭만도

다음에 넘어야할 조령산의 앞 가림에 조금은 답답 해 지지만 서산을  넘어가는 석양을 따라 붉게 물들은 산야는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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