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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의 꿈 ! 지기재에서~화령재까지 -북진 12구간-

㉥ 백두대간 記

by 운해 2007. 6. 1.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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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7년 05월26일(음력(04월10일) 날씨 : 맑음 그리고 바람

 

산행지: 백두대간 북진 11-2구간

 

산행자: 백두대간 종주대

 

산행코스: 지기재~신의터재~무지개산(우회)~윤지미산~화령재

 

산행거리:15km, 산행시간

 

개요

 

북진하는 마루금은 지기재에서 신의터재를 지나 윤지미산을 넘어 화령재에서 잠시 쉬었다가 봉황산으로 이어 갈 것이다.

 

이 구간 역시 특징은  없는 구간이나

지난 11구간에서 잠시 언급하였던  해발 250m ~ 500m의 고도를 유지하는 중화지구대로서 추풍령에서 시작하여 화령재까지

연속되는 55km의 구간에 속하는 곳이다.

 

중화지구대는 기후가 온화하고 과수농사가 잘 되는 고원으로 화령재에서 시작하여 추풍령에 이르는 구간에는 사과와 포도 등

 과수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으며 비교적 높은 고원을 형성하는 지역이지만 자연재해가 다른 곳에 비해 적은 편이다.

 

위에 언급한 내용을 구간별로 살펴보면

도적의 소굴이었던 적기재가 지기재로 불리고 있는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에서 시작하는 이 번 산행은 상주시 내서면 낙서리와

 화동면 이소리를 이어서 25번국도와 연결되는 신의터재를 건너가게 된다.

 

신의터재의 원래 지명은 임진왜란 전까지 "신은현"이라 불리다 일제시대에 "어산재"로 개명되었으나.1995년 문민정부 때

 "신의터재"란 새 이름을 가진 이 곳은  임란 때 의병장 김준신이 이 곳에서 의병을 모아 상주성에서 왜적을 도륙하고 장렬하게

 순절한 사실을 기리고자 "신의터재"라고  지명을 바꾸게 되었다는  내용을  이정석 뒷면에 새겨 길손에게  알리고 있다.

 

신의터재를 지나 북진하는 마루금은

 무지개산(산아래 폭포에 펼쳐지는 무지개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하여 "무지개산'이라 하였다) 초입에서

270도방향으로 꺽여지는 마루금은 숭덕지맥의 시작인 437.7봉으로 내 달린다.

 

437.3봉에서 소머리산으로 이어지는 숭덕지맥은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 봉황산에서 시작하여 무지개산과 숭덕산을 지나 영강으로 이어지는 49.9km의 산줄기를 

 "숭덕지맥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다

 

문헌과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지 않는 윤지미산에 오르면 비교적 넓다란 평지가 반겨주고  급경사로 이루어진 비탈을 오르느라

 수고한 산꾼들의 땀과 더위를 식혀주기에 충분한 소슬바람 불어주며 자연석으로 만들어 세운 앙증맞은 정상석이 재미를 더 해 준다.

 

예로부터 소머리산으로 불려오던 538봉이 윤지미산으로 언제부터 둔갑 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곳이라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사료되며 개인적인 시각에서 보는

 윤지미산에 대한 느낌은 "산행글"란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다만,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신산경표에서 봉황산을 숭덕지맥의 시작점으로 보았던 것은  숭덕지맥이 분기하는  무명봉(437.3봉)에

대한 설명을 자연스럽게 할 수 없었기에 봉황산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  무명봉(437.3)봉보다 높은 538봉( 이 것은

 분기점과는 떨어 져 있으나 윤지미산과 소머리산이 원래 하나의 산이었다면 산줄기로 이어지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을

"윤지미"산이라 칭한 것은 숭덕지맥의 상징적인 봉을 나타 내고자 하는 작명자의 고육지책으로 여겨진다.

 

윤지미의 뜻은

(사서삼경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允執乞中=인샌전반을 다안다.세상을 포용한다.세상을 두루 알아맞히다)라는

사자성어를 사용하여 윤지미산의 상징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아 작명자의 노고를 엿볼 수 있는데

 이 것은  삼백(쌀.누에.곳감.)의 고장 상주사람들의 인품과 학풍을 은연 중 자랑한 것으로 보인다.

 

윤지미산의 시원한 소슬바람에 땀 방울 식혀주고  200여미터의 급경사를 내려서면 화령재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시골길을 걷은 한가로움을 안겨주고  공사중인  상주~당진간 고속도로 터널 위를 지나 담소 나누며 임도따라 걷다가

오솔길 접어들어 25번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소리를 노래삼아 우측의 대궐터산과 정면의 봉황산을 조망하면서

화령재에 도착하면  1990년6월에 건립 된 화령정이 대간길에 수고한 당신을 반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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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도

 

산행글

 

백두대간 12회차인 오늘 산행은 모처럼 당일산행 하는 날이다.

소백산을 경방기간 이 전에  통과해야 일정 때문에 당일로 구간을 조정하여 떠 나는 오늘은 무박산행으로 길들여진 신체리듬이 

새벽잠 설치고 출발지로 떠 나는 발걸음으로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송내에서 사당역과 양재역을 경유하여 07시 화령으로 떠 나는 우리는 옥산 휴게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관기에서

 만사태평부부님과 전 날 지리산에서 낙서 지우고 만태님차에 합류하여 관기까지 동행하신 산사랑님과 조우하여

12구간 출발지인 지기재에 도착하니 10시30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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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낮 시간에 단체사진 남기고 산행신호 울리니 10:4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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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7

언제나 선두에서 묵묵히 산행을 진행하는 출발님과 그의 동료분(?)

 에베레스트의 꿈!   이루어 지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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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동마을 가는 길.

대나무밭도 지나고 가로수(이태리포플러)길을 걸어 가는 사람들.....

 우리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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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왕봉
옛 적에 도둑이 많아 적기재라고 하였던 지기재에 도둑이 있었다면..

은왕봉일까?

하는 생각에 실소를 머금어 본다.

 

모내기가 한 창이다.

 

금은골마을 우측으로 접어들어 진행되는 마루금은 곧 바고 조측으로 꺽여지며 산길로 접어드는 곳 곳에

찔레꽃향기 진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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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초

화산석과 같은 암릉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근처에서 바위솔의 군락도 보았다는데...

나에겐 그런 행운이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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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8

대간길에 농로가 있고...

農路따라 걸어가는 女心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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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풀

墓의 잔디 위에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한가롭게 피어 있는 야생화는 길 가는 나그네의 피로를 풀어준다. 

 

이 번 구간은 유난히도 묘지가 많다.

이 구간의 墓들은 합장하지 않고 대부분 雙墓로 되어 있다

 

墓의 문화는 지역마다 다르다.

서울.경기.전라도는 木棺으로,경상도는 石棺으로,충청권은 시신를 그대로 묻는 방식이다.

제주도는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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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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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분

신의터재에 내린다.

여기에서 쌍쌍으로 대간을 하는 분들과 인사 나누고...

각 각이 풀어헤친 점심메뉴는 뷔페를 연상 시킨다.

상추쌈에 청량고추 된 장에 푸~욱 찍어서 소주잔에 목축임은  최고였지만..

 

우리가  대간꾼은 맞는 겨~~?

하는 어떤 대원의 농담에 모두가 파안대소이다.

ㅎㅎㅎ

 

점심 후 배부른자의 포만을 만끽하며 12:50분부터  이어가기 시작한다.

가는 길에 알바는 필수이고...

 

-알바들의 행진-

 

선두로 출발한 사람들은 무지개산 들려보고 오라고 했더니만...

삼천포로 빠졌다가 뒤 따라 오느라 죽도록 고생하고...

쑥쓰러워 하는 모습들이라니....

쯧...쯧...쯧

 

누구 누구인지는 공개할 수 없지만...

세상사 다 그련겨..

일등이 꼴찌 되고..

꼴찌가 일등 되고..

 

그래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지...

일등이 맨 날 일등하면

꼴찌는 세상 사는 재미 없잖아..

사실은 일등이 더 그래...

 

그래도 남들 흉내 내지 않은 당신들이 있어

세상 살 맛 나는 겨~~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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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 노랑의 고들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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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꽃 과 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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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7

앞고개에 서니 좌측으로 낙화담에서 흘러 내리는 하천과 아랫말과 샛터마을이 조망되고

모내기 철이라 모내기 하는 농부들의 일하는 모습 시야에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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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동쪽)으로 조망되는 산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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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나무가 있는 묘지 근처에서 찔레꽃 향기와 화려함을  디카에 담느라 여념이 없으시는 안나프르나 대장님!

산행경력 30년에 팝과 크래식 등 김광한에 견줄 실력과 지식으로 어떠한 음악장르도 막힘없이

풀어내는 연금술사 같은 안나대장님은  20대의 젊음으로 살아가신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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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8

대간길에 인삼밭!

행정지역으로 경상도 상주시에 속하는 화동면은 생활권과 언어는 충청도에 가깝다.

마루금이 갈라 놓은 금강과 낙동강 생활권은 이렇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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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땅비싸리 군락지를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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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

감나무로 식수되어 있는 곳!

우리의 중추역할을 하는 마루금에 이러한 평지가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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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닐하우스 뒷 쪽으로 윤지미산과 숭덕지맥의 분기점인 437.7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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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찔레 꽃은 흰색과 빨간색 두 종이라 하는데 노랫말에 "붉게 피는"의 뜻은?

작사자의 고향이 남쪽이고 그 쪽 지방에 피는 찔레는 붉은색이며 이 노래를 작사할 때  석양의 붉은 노을을 보고

노랫말을  지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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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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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

무지개산 갈림길

(산에서 교통정리하고 계시는 블랙오즈님 수고에 감사~~)

 

오른팔은 마루금방향이고 외팔방향은 무지개산 방향이다

마루금은 10방향으로 꺽여지지만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무지개산에 오르기를 권장 해 본다.

무지개산 정상에 서면 북쪽 방향 계곡(신데기못)을 조망할 수 있다.

 

무지개산 유래는  계곡의 폭포에서 피어 오르는 무지개가 아름다워 무지개산이라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서북방향으로 판곡저수지와 낙화암을 볼 수 있는데

낙화암은 판곡리 마을이 안산(주작)으로 하고 있는 백화산이 화성으로 화기가 강하여 그 기운을 누르고자 마을사람들이

 저수지를 만들었는데 상주의 의병장 김준신이 상주성 전투에서 왜적을 많이 죽이자 이를 보복하기 위해  

재침입한 왜적의 화를 피하기 위 해 마을아녀자들이  투신자살 하여 낙화암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무지개산을 뒤로 하고 북진하는 마루금은 숭덕지맥의 분지점임 437.7봉 오르기전 안부에서 잠시 쉬었다가

윤지미산까지 가파른 오름짓으로 이어 간다.

 

숭덕지맥의 분기점은 지명이나 사진으로 위치를 남길 수 없는 지형이기에 봉황산을 분기점으로 한 아래의 자료와 함께

개인의 사견임을 전제로 설명 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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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덕지맥에 관한 자료

(왼쪽은 신경준님의 산경표이고 오른쪽은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이다)

 

1.산경표에는 맨 아랫줄에 鳳凰山  露(노)陰山 東來 尙州 西 十里  天峯山...로 나열된다.

2.신산경표에는 봉황산~소머리산~우산재~국사봉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나열하고 숭덕지맥이라 표시한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지도는 박성태님의 남한 산경도에서 편집한 것이다.

지도 사용을 허락 해 주신 박성태님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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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형도에서 보면 상주시는 백두대간 437.7봉에서 시작하는 숭덕지맥과 백두대간의 일부구간(437.7봉~국사봉)과

국사봉에서 시작하는 기양지맥의 산줄기 안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보면 상주의 3대 명산이라고 하는 갑장산.노음산.천봉산은 세 개의 산줄기상에 있으며 젓줄은 병성천이다.

윗 자료와 국토지리원 지도상에도 표시되지 않은 윤지미산의 실체를 여기에서부터 풀어 보고자 한다.

 

왜! 윤지미산이라고 하였을까???

산경표와 신산경표에 숭덕지맥은 봉황산에서 시작하고 있다.

지금처럼 고도와 거리를 명확하게 구분 지울 수 없었던 당시에 분기점에 대한 지명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이름이 있는 산이나 고개를 분기점의 표시로 나타 내였던 것으로 보인다.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분기점 역시  명확한 지명도 없이 주화산이라 부르고 있다.

이제 개인적으로 의문은 풀리기 시작한다.

 

437.7봉에서 분지되는 숭덕지맥을 봉황산에서 시작하는 것은  거리가 너무멀다.

무지개산 역시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고 ...

가장 근거리에 있은 것은 윤지미산으로 불리고 있는 538봉 뿐이다.

437.7봉에 지명하자니 이 산은 원래 소머리산의 끝 부분이다.

그렇다면 538봉에 지명을 부여하면 437.7봉은 자연적으로 538봉에 포함된다.

멋 진 발상이다.

 

이제는 작명하는 일만 남았다.

상주는 고도이고 신라시대에는 경주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이중환도 팔음지에서 조선인재의 절반은 경상도에 있고 경상도 인재의 절반은 상주와 선산에 있다고 하였다.

경상도의 지명도 경주와 상주의 첫머리 글자를 조합하여 "경상도"라 하였다.

그렇다면 걸 맞은 지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였을 것이다.

 

작명하고자 하는 좋은 지명은 다른 산들이 모두 가지고 있으니 경전에 나오는 말로 지어봐!

사서삼경 대학편에 윤집걸중(允執乞中)이란 말이 있지...

인생전반을 알고...

세상을 품을 수 있으니

모든 것을 알아 맞힐 수 있다?

 

그런데 산 이름으로 복잡하잖아..

축약 시켜서 윤집산으로 하자(뜻만 전달되면 되니까..)

이렇게 하여 윤집산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윤집산이 윤지미산으로 둔갑된 것은 자음탈락....

윤집 - 윤지 - 윤지미 - 윤지미산..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개인의 생각이므로 확대 해석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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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선배님이 나에게 남겨주신 보석보다 더 귀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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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

윤지미산의 정상석과 백두장군님의 독특한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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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미산

 

여기서 김지미버전 하나 소개한다

 

어느 날

나훈아와 함께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며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지미가 나훈아의 발을 만지며 "누구 발이게?"라고  물었다.

"훈아씨~ 발" 김지미가 답했다.

 

이번에는

 나훈아가 김지미의 발을 만지며 "누구 발이게?" 라고 물었다

"지미씨~발" 나훈아가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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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래 덩쿨 열매 익어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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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미산

소슬바람에 흐르는 땀을 식히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 윤지미산을 뒤로하고 내려서는 비탈길은 어찌나 가파른지

결코 만만한 산이 아니라는 것은 안부에 도착하여야 알게 된다...

 

왼 쪽 상단의 봉이 숭덕지맥이 분지되는 437.7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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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

밭으로 개간되어 절개 되어진 마루금에 다시 접어들어 한적한 산행은 계속되지만 또 다시 나타나는 임도는

이 곳이 대간길인가? 하는 마지막 "중화지구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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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도따라 진행하다보면 2008년 완공목표인 당진~상주간 고속도로건설이 한창이다.

터널위를 지나는 마루금은 절개되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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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터산

화령재를 코 앞에 두고 선명하게 다가서는 대궐터산은 아지개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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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산
  봉황이 알을 품는 산이라고 하는 참으로 명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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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5

화령재에 도착하니 선두팀은 박수로 맞이 해 준다.

모두들 수고하였습니다.

 

후기

 

언제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곳!

대간길이다.

 

이번 구간은 밋밋한 길을 이어가는 대간길 중 가장 볼 것 없는 길이었지만 나름대로

묘미를 가시고 있는 산이다.

 

무엇보다도 묘지가 가장 많은 곳이다.

묘지가 많다는 것은 마을 가깝게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고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좋다는 것이다.

 

오는 길에

작년에 남진을 할 때 도움을 받았던 상주~당진간 고속도로 현장에 있는

 함바집(공사장 음식점)이 그대로 있어 그 때 그 사장님 !!!

선뜻 나를 알아보신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여기서 뒷 풀이를 겸하는 두부김치에  막걸리 한 잔의 추억!

대원들 모두에게 오랫 동안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번 산행 글

정리하며 함께 한 대원님들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 하기를 바란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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