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_DAUM->
혼돈
2008년 2월16일 오류역에서부터 일주일의 혼돈은 시작 된다.
정맥을 하던 후배가 지방으로 출장을 가게 되어 언제 만나게 될 지 모르겠다는 미명아래 만나서 소주나 한 잔 하자는 전 날의 제안에 동의를 하게 되었다.
19시에 매표소앞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으나 30여분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주변을 서성이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훔쳐보는 줄거움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데 이 친구 19시를 훌쩍 넘겨 30여분이 다 되어서야 나타난다.
"형님 늦어서 죄송해요? 차가 워낙 많이 막혀서"
"됏 샴? 배 고프니까 우선 참새집 찾아야지"
"참! ㅎ선배님도 나오기로 했어요"
"그래! 그 친구 오랫만에 만나게 생겼네"
"먼저 자리잡고 있으면 그 쪽으로 오겠다고 했거든요"
"그럼 갑시다"
"곱창전골 어때요?형님!"
"그것도 좋은데 세꼬시집네나 가자구"
그렇게 하여 춘향집에서 파란많은 연주가 시작 된다.
24시간 영업하는 집이라 간혹 주문만 해 주면 쫒아낼 일 없는 이 집에 안주는 항상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고 여러가지로 받고 있던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리고자 얼마를 마셨는지 상 위에 가득한 소주병 바라보며 정신차리고 보니 아침 7시를 지나고 있다.
ㅎ후배는 언제 가 버린지도 모르고... 자고 있는 ㅇ후배 깨워서 사우나에 갈까 하는데 근처에 잘 하는 해장국집 있는데 아침부터 먹고 보잔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 도심의 화려한 네온~불 뒷쪽에는 또 다른 모습이 감추어져 있으니 얼마전까지 판자촌의 대명사로 불리던 난곡동과 흡사한 이곳의 허름한 학고방집 골목을 헤치는 우리들 모습도 회색빛 도시의 그 모습과 다름이 없다.
그가 좋아하는 선지해장국을 먹으면서 음식점옆 도로는 "예전에 하천이었던 것 같다"하니 주인장과 ㅇ후배 깜짝 놀란다. 이 동네를 잘 아느냐고.....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나에게 이러한 예언성 느낌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이 3년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나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했는데 몇 사람에게나 주어지는 특이한 현상인가 보다. ........................................................................................................................................... 후배들 만난답시고 어젯밤에 집을 나가 다음날 아침에야 핼쓱한 몰골을 하고 나타나는 남편을 좋아할 여편네 없겟지만 오늘따라 잔소리 더욱 심한데 육신은 천근이요, 만신창이 되어버린 마음은 만근이라....
마누라 잔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 감았다 지근거리는 머리 때문에 눈 떠 보니 월요일 새벽이다.
고양이 걸음하여 사무실에 나와 있는데 으시시 떨리기 시작하는 한기는 머리를 때리는 두통으로 옮겨져 고통의 서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딱! 걸렸구나! 열살 때부더 기억되기 시작한 계절적 편두통(평도선염)을 직감하고 병원에 들려 주사맞고 약 타고... 별반 소용없고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은데 머리를 두드리는 난타는 겉 잡을 수 없이 강해져 정신마져 혼미해 져 온다.
마누라에게 119불러 달라고 하니 편도 때문에 119부르는 사람 누가 있느냐고 투덜대기만 할 뿐! 요지부동..너 잘됐다.. 하는 표정이다. 얼마나 괘씸한지...
혼자서 119부르고.. 야단법석 끝에 응급실에 실려가니 의사양반들 악마와 같은 존재다. 머리가 그렇게 심하게 아프니 CT촬영부터 하잔다.
50년동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환절기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인데 내가 지 보다 더 잘아는데.. 막무가내로 촬영부터 하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승낙하는데 이 때문에 머리는 빠개지듯 야단법석이다.
그 후 진통제 맞고.. 또 맞고...
나은 줄 알았다. 구런데 대략 8시간정도 지나고 나니 또 시작이다. 동네병원 가서 사후를 설명하니 군말없이 주사놓아주는데... 여기서부터 의심이 가기 시작한다.
정말 뇌가 잘 못된 것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병원으로 가 보자. 8시간은 버틸 수 있으니 버스타고 시간은 충분하고 .. 가는 길에 예약하고...
전주에 도착 단층촬영하고 관촌에 들려 침도 맞고... 전북 임실군 관촌면소재지에 있는 한의원 (2대 째 운영하고 있는 곳인데 침술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인천으로 돌아오는데 이 때부터 머리통증은 없어 졋지만 말을 할 수가 없다. 입 안에서 뱅뱅 돌기만 할 뿐! 밖으로 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벙어리 냉가슴이 이런 것이구나!
뱀사골에 들기로 한다. 한의원에 들렸을 때 스트레스성 과로라고 했으니...
전주에서 후배들 만나 하룻밤 보내고 다음날 두타행님의자동차로 뱀사골에 도착한다.
가는 길에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소백산 칼바람은 애기바람에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지리산 종주길 나선 바위솔님과 산과스키님 소식도 궁금하고 .. 몸이 따라줘야 응원산행이라도 할텐데...
자동차가 멈추고 차에서 내리니 심마니능선이 반겨준다. 저 능선 중앙에 묘지가 하나 있는데 지리산에 머물 때 소주병 하나 가지고 올라가 가장자리 잔듸에 누워 별바라기 하곤 그랬는데...
오늘따라 유난히도 암울 해 보인다. 고로쇠 채취로 나무들이 몸살을 앓다보니 그 소리가 암울 해 보이게 했나보다.
우선 밥부터 먹고 보자는 두타행님의 의견에 식당에 들어 된장찌게 시켜 식사준비하고 있는데 다시는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하엿던 두 사람과 거짓말 같은 조우을 하게 된다.
심마니능선 초입 먹구름이 자운하다.(고로쇠채취로 나무들의 신음은 들려오고)
뱀사골 나는 이 곳에서 삼개월 동안 운둔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 곳에 머물게 된 인연은 북파공작원이었던 이종사촌 동생이 삶의 터전으로 생활하는 곳이라. 자연스럽게 이곳을 선택하여 상념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그 당시 나를 찾아주던 수 많은 사람들의 내면을 보게 되었다. 어떤 이는 나를 이용하여 숙식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었고... 어떤 이는 자기들끼리 눈이 맞아 내 곁을 떠난 이도 있었고 어떤 이는 나를 위해 가족들과 함께 뱀사골을 찾아 가족사랑의 정을 느끼게 해 주는 헌신적인 분도 있었다. 내 생애에 있어 잊지못 할 추억거리이다.
그 당시 이종동생은 토속주를 제조하여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형의 친구들이라 하면 바리바리 싸 주기에 바빳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멍 한 들뜨기에 지나지 않은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그 당시 인연들은 지금도 이어 져 죽은 후 육신덩어리 재가되어 바람에 흐날릴 때 까지 변함이 없겟지만 내 생애 있어서 가장 치욕스러운 한페이지를 장식해 준 자들을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
반갑지 않은 만남이라 오랫동안 여기에 머물며 마음을 추스리라 생각하고 내려왔던 마음은 어느 새 사라져 신속히 이 곳을 떠나고 싶은데 구실이 없더라...
쌍으로 오는 나쁜 기운을 뒤로 하고 핸폰을 타고 울리는 바위솔님의 목소리는 벽소령이란다. 화개재까지 마중을 나갈 수 있으리라 계획했던 나는 찬 공기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침에 마중은 포기하고 성삼재에서 픽업하는 것으로 정리되어 있었지만 한시라도 이 곳을 뜨고 싶은 마음은 밤 10시나 되어서야 도착하는 예상시간속에 묻혀 버린다.
잠시 후 다시 걸려 온 바위솔님의 전화는 성삼재까지 진행은 어려우니 음정으로 탈출하라는 대피소 직원의 말에"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느냐" 하는 것이다. 달갑지 않은 사람들과 도란 거리고 있는 두타행님 불러서 상의하니 음정으로 탈출이 최선이라는 의견에 일치를 보아 바위솔님께 전 하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세상을 살다보면 고민은 쌍으로 오는 것이라서...... 달갑지 않은 인연을 피해가는 구실과 명목이 동시에 성사되어 우리는 음정으로 향했다.
동서울~백무동운행 버스시간표!
음정에서 꿈의 종주대 출정산행 하산로 였던 음정에 오니 감회가 남다르다. 임도를 따라 어프로치를 했던 그 때는 누구하나 불만을 터 뜨리는 사람들 없었는데... 대간 길 끝 점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우리팀의 목소리는 개인의 성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씁쓰레 해 지는 기분을 뒤로하고 임도를 따라 마중을 해 보기로 한다.
어지러운 머리는 걸음을 비뜰 거리게 하고 저 멀이 움직이는 두 점이 가까이 다가 와 도움을 청하는데... 곧 장 내려가면 정류장에 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대답하니 "고맙다" 답하고 "고생하셨습니다"하였더니 혹시! "운해님 아닙니까?" 한다.
비파님과 바랭이님.
가만히 보니 대구에 거주하시는 "비파님"과 "바랭이님"이다. 영남실크로드 92.5km을 48시간에 걸쳐 단 번에 주파 해 버린 고수다.
반가운 마음에 많은 이야기 나누고 싶지만 추운날씨에 체력이 고갈 되었을 그들과 더 많은 대화는 줄거움 보다는 고통이라 말을 아끼기로 하고 귀향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기로 한다.
대구에 가려면 함양까지는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버스가 있으면 먼저 타고 가시라 언질을 주고 조금 더 오르니 바위솔님과 산과스키님 비탈을 엎질러질 듯이 내려오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은 세찬 바람에 얼어 있는 것 같았고 추위와 배고품에 지쳐 힘 들어 보이게 한다.
산길에서 만나는 기쁨은 느껴본 자만의 것이라.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왜! 서울에 안 가본 사람이 서울에 사는 사람을 이기는 세상이니까!
바위솔님. 나. 산과스키님.
베냥을 트렁크에 넣고 대구에서 오신 두분을 태우기로 하니 정원초과지만 이러한 정원초과는 언제든지 환영이다. 이러한 생각은 초우에 지나지 않아 버스가 다니는 도로변에 도착하니 대구분들 버스를 타고 있다. 내려서 안부 전 할까 하다 기진한 그들이 편하게 가게 하는 것도 도움이라 생각하고 그저 마음속으로만 작별을 고한다. 먼 길 돌아서 곧 바로 버스를 탈 수 있은 그 들의 행운을 함께 기뻐하면서.
그후 우리는 두타행님의 차량을 이용 해 전주로 오는데 바위솔님 "왈" 만태님한테 전화하기로 했단다. 전화 넣었더니... 다음날 서울로 출장이라...
전주에 도착! 그 유명한 삼천동 막걸리집에서 뒷 풀이 하고 딸 아이와 스키장 약속 때문에 일찍 가야 한다는 산과스키님. 그리고 바위솔님 보내드리고....
산에서 만나 지금도 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구달이"아우가 덕소에서 번개타고 내려와 함께 나누는 뒷풀이는 아직고 어눌한 나에게 있어 줄거움의 연속이더라.
전주 콩나물 해장국 먹고 싶다는 구달이 아우를 위해 지리를 옮길 양 계산을 요청하니 벌써 첵크~아웃이다.
산과스키님의 한 것 같은데 . . . . 뭐가 이래??
두타행님과 함께..
그 후 구달이 아우 심야버스로 보내 드리고 후배의 기숙사방에서 쓸쓸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 06시 인천행 버스를 타고 귀향하는 7주일간의 긴 터널이었다. //////////////////////////////////////////////////////////////////////////////////////////////////////////////// 回想 뱀사골에 도착하기 전 부터 이상야릇 해 지는 기분을 딱 꼬집어서 무엇이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 누군가를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떠 올라서"아닐거야" 하며 머리를 흔들어 봤는데... 음영이 드리워진 썩 좋지많은 안 했던 그런 기운이 현실로 나타나게 되어 혼란스러웠다.
이곳으로 올 때는 며칠 쉬어 갈 생각이었는데 반갑지 않은 만남으로 뱀사골을 떠 나게 되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그 들과 만남은 "吳越同舟"였고 등산복 차림으로 고로쇠를 채취하러 떠 나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 한켠에는 "역시 산꾼은 아니였구나"하는 느낌 만이 왼 종일 머리속을 헤집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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