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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두대간의 꿈! 원방재에서 삽당령까지-북진30-1구간-

㉥ 백두대간 記

by 운해 2008. 4. 23. 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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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8년 04월19일(음력:3/14) 날씨: 맑음


산행지: 백두대간북진30-1구간(원방재~삽당령)


산행자: 이거종님.한산님.나


산행코스:부수베리~원방재~백복령~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

 

도상거리:23.5km, 어프로치:3;4km


산행거리 : 26.9km  산행시간 : 12시간50분

 

임계카스트르지대(점선 안쪽부분)

 

카스트르 지형에 대하여

석회암지역에 발달하는 특수한 침식(용해침식;용식)지형의 총칭. 명칭은 유고슬라비아 북서부 카르스트 지방에 가장 전형적으로 발달되어 있는 데서 연유한다. 용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지형은 특히 석회암지역에서 잘 나타난다.

 

 이것은 석회암의 주성분인 탄산칼슘이 탄산가스를 포함한 빗물이나 지하수에 용해되어 만들어지는 종유동(鍾乳洞)·돌리네·우발라·폴리에·카렌펠트 등의 특수한 지형을 말한다. 용식으로 인한 카르스트 지형은 석회암층이 얇거나, 한랭건조한 지역에서는 발달하기 어렵다.

 

적당한 강수량이 있는 지역에서는 비가 석회암 속의 갈라진 틈으로 침투하여 서서히 석회암을 용해하여 땅 속에 물의 통로를 종횡으로 만든다. 이때부터 카르스트 지형의 일련의 계통적인 용식과정을 거친 지형변화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카르스트 윤회(輪廻)라고 한다. -백과사전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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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이번 구간의 특징은 산경표에도 나타나듯이 백봉령과 삽당령을 제외하고는 문헌상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 만큼 밋밋한 산들의 연속으로 1000m의 산줄기를 이어가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구간 상 자병산과 석병산은 산계8경에 속하는 유명한 산들이지만 이 중에 자병산은

시멘트재료 채취로 형태 마저 없어진지 오래여서 금산의 철도자갈채취, 육십령의 규석채취장 등과 함께 백두대간 상 가장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한다.


1,자병산

강원도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백두대간 마루금을 경계로 자리 잡고 있는 자병산은 수병산, 괘병산,석병산 등과 함께 아름다운 산군을 형성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자병산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더 마음이 아플 지 모르겠다.


자병유화로 불리기도 하는 자병산(자주빛 병풍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운 산이란 뜻)은 기우제를 지내면서 생겨 난 말이며 가뭄 때 자병산 산자락에 있는 닭목병대(닭목대)에서 닭의 목을 잘라 피를 뿌리며 기우제를 지내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는 일화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러한 기우제는 80년대초 까지 이어 지다가 자병산이 헐리기 시작하면서 오랫 동안 전해 져 오던 풍습이 사라졌다고 한다.


“紫屛油花 또는 紫屛血花“란 닭의 피를 뿌릴 때 나타나는 모습이 ”혈화”처럼 보였기 때문에 기우제를 지낼 때 혈화(닭의 피꽃)가 피면 비가 내린 다는 설에서 나온 말이다.


2.석병산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 삽운령 동북쪽 줄기 상에 있는 큰산으로 “담정산“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이 산이 석병산이다.


이러한 표기는 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지지 등에도 나타나는데 석병산이란 이름을 기암괴석을이 바위처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돌 병풍처럼 보인다고 하여 자연스럽게 “석병(石屛)산”으로 불려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담정산이란 지명은 남대천이 발원하는 석병산과 두리봉 사이의 골짜기를 “담정골” 또는“담정계곡”으로 불리는 것은 구전으로 전해 져 온 것으로 보이며 담정골에는 고려에 대한 전설이  아래와 같이 전해 져 온다.

 

고려"우왕"은  전란을 피해 대관령 근처에 있는 제왕산에다  제왕산성을 쌓고 피난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 때 성 안에서 우왕을 모시던 유신들은 고려가 멸망하자 우왕의 위패를 보시고 담정골로 피신하여 석병산에 위패를 안치한 후 임금이 계신 곳이라는 의미로 담정골의 이름을 “단경동(壇京洞)”으로 개명하였다고 전해 져 온다.

 (참고:김윤우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

30-1구간 진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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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글

 

예기치 않은 문제로 인하여 대간의 마지막 구간들을 홀로 이어가기로 하였지만 오늘은 두타산부터 동행을 함께 시작한

한산님과 5월달부터 단독종주에 나서는 이거종님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한산님이야 천왕봉부터 함께 한 사이기에 설명이 필요없은 분이지만 10여년 가까이 이웃하며 지내 온 이거종님과의 산행은 처음이라 출발 전 부더 호기심이 대단한 것이었다.

 

산행 전날 밤

동암역에서 자정에 출발하기로 하여 이거종님의 사모님 운전으로 출발지인 부수베리 계곡까지 무사히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나, 지난 번 산행 때 "백두대간 꿈의 종주대"와 함께하기 위해 백복령까지 진행하지 못하고 원방재에서 산행을 종료하여 오늘이 오기까지 교통편 문제로 고민을 하였던 것에 대한 "사필귀정"인가 보다.

 

종주대에 합류하지 못 한 기막힌 사연을 뒤로하고 산행 들머리에 서기까지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지난 구간들의 애환과 대원님들과 우정에 대한 서정은 세월이 흘러 이해하게 되는 날까지 모두 덮어 두고자 하는 나의 심란한 머리속 회오리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동해시를 벗어나 백복령에 이르기까지 어지럽게 하였다.

 

백복령에 도착하기 전 정차되어 있는 두 대의 대형버스를 바라보며 의아하게 생각하였는데 백복령에 대장 방문하는 날이라 빨간모자 아저씨들 새벽부터 들머리를 지키고 있어 산행을 하지 못하고 차 안에서 대기중이었다고 후에 알게 되었다.

 

어둠속에 찾아 드는 부수베리 계곡은 갈미봉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청량한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겨 주지만 경방기간 동안에 죄인이 되어 산행을 해야하는 우리들  마음은 대간 길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의 "동변상린"일 것이다.

 

이기령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서 차단막이 설치된 곳까지 차량으로 이동하여 그 곳에서 이거종님 사모님과 헤여지고고 우리는 달 빛을 불빛삼아 원방재로 향하니 새벽을 알리는 4시를 지나고 있다.

 04:010

들머리까지 픽업을 해 주고 혼자서 인천까지 되 돌아가야 하는 사모님께서는 어떠한 생각을 하게될까?

이거종님 하는 말이 대간길 내내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니 나에게 있어 상상도 못 할 호사로다...

 04:30

이 곳에 도착하니 지난 번 산행 때 백복령까지 진행 하자던 한산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다음 부터 종주대와 합류함에 여기서 하산하자고 하였던 나의 주장에 묵묵히 따라주던 그의 모습을 처다보게 된다.

 

각설하고,한참의 오름짓에 백복령 중간지점에 이르렀을 때 반대편에서 넘어 오는 한 무리의 종주팀과 만나게 되는데 서울의 00회인데 서로가 정보를 주고 받으며 무사산행을 기원한다.

 05:45

987,2봉을 넘어서 안부에 이르니 동해에 떠 오르는 일출을 모처럼만에 만끽한다.

 987.2봉

 한산님과 이거종님.

 암반과 동거중인 진달래

 06:14

06:50

서냥당

 07:07

자병산과 42번 철탑이 있는 진행방향

 

832봉에 도착하니 동해바다님 부부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출발전 날 원방재를 지날 때 전화하였는데 여기까지 부부께서 마중을 나올 줄은....

정말로 몰랐었네~~~

 07:21

백복령에서 동해바다님 사모님은 동해로 돌아 가시고 동해바다님은 삽당령까지 동행 산행을 하기로 한다.

우리는 백복령을 지날 때 업드릴伏자를 택하였다(빨간자킷 때문에)

 

 

백복령

<택리지>는 “백봉령”이라 표기하였고,<신동국여지승람>에는 “희복현“으로 표기되어 있어 백복령이란 이름에 대해 의아심을 가지게 한다.


백복령의 복은 업드릴복(伏)자를 쓰고 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일제의 잔재라 하지만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복(福)의 오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지도상에 표기되는 白福嶺은 희복현(희복령)이 변음된 것으로 희복의 "희"자를 이두문자화 할 때 흰"白"자를 빌려와 이름 붙인 것이나 그 뜻이 맞지 아니하여  복이 많은 고개라 하여 "百服"으로 고쳐 부른 것으로 보인다.

  형체조차 찾을 수 없는 자병산을 지나 42번 철탑이 서 있는 마루금을 찾아든다.

 08:20

카스트르 지형이 시작되는 이 지점에서 아침식사.

 올 해 처음을 만나는 누룩뱀

 09:54

생계령

강릉 옥계면 산계리에서 정선 임계면 직원리를 넘나들던 고개를 생계령이라 하는데 “산계리”마을 이름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이는 생계령은 “산계령”의 전음으로 보이며 일부 지도상에 “쌍계령” 표기된 것은  "경음화“현상으로 보인다.

 

생계령 정상에는 주막집이 있어 길손들의 사랑방 역활을 했다지만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10:43

 오른쪽 상단이 석병산

 꽃밭에서 이거종님과 동해바다님.

 오늘 산행은 야생화 촬영과 때이른 이상기온으로 힘든 산행을 하게 되었다.

2리터의 물도 부족한  산행이었으니...

  꿩의 바람꽃

선괭이눈

 12:12

이 곳에는 좌표로 정리 된 이정표를 많이 볼 수 있다.

앞으로 산행은 좌표가 있는 지도를 이용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시멘트개발은  이렇게 주변의 계곡까지 무너뜨리고 있다

 석병산 안내판

 12:56

고병이재에 대한 유래는 숙제로 남겨 두었다.

후미를 기다리는 여유~ 

 청노루귀

 석병산 안부

 삼거리

여기서 석병산 정상은 3분거리

13:56

석병산 제1봉

 석병산 제2봉

 연꽃 모양의 제2봉

 석병산 줄기에 있는 기암

 정상아래

 1봉과 2봉

그리고 한산님  조망

 정상 아래

다른각도에서 조망

 두리봉

 일월문(일명:러브홀)

 

거대한 바위들이 석병처럼 펼쳐지는 곳에 둥그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떠 오르는 보름달이 일월문에 비추면 그 모습이 형용할 수 없는 장관을 연출하기에 "日月門"이라 한다.

석병산제3봉(정상)

 한산님의 앵글에 잡힌 우리들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 빨리 공개 하이소!

 15:09

주수천발원지

두리봉 오름길 안부

 화원

 15:28

정상에는 철제 평상과 벤취가 있어 우리는 낮잠을 ...


 

두리봉

두리뭉실 해 두리봉또는 두위봉(斗圍峯)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산줄기의 가지줄기에 범일국사가 창건한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사굴산문인 굴산사가  있다.

 16:07

 16:42

삽당령을 300미터 앞 두고..

 직벽에 가까운 나무계단길

 16:53

삽당령 옛길을 지나고..

 17:00

30-1구간 산행종료

 

산신각의 유래

고갯마루에 있는 국수당은 서냥신앙을 모태로 하는 서냥당과 산신당으로 정착되었고 영마루(고개)에 있는 서냥당(산신당)을 지나는 사람들은 침을 뱉아 주거나 돌을 줘 탑을 쌓으며 자신의 안녕을 빌었다.


이러한 풍습은 전국 어디에서나 전해 져 온 우리 고유의 미습이었며 산신당과 서냥당의 형태는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든 것이 대부분이나 영마루의 산신당은 쇠로 만든 당집을 지었다 (산신각에 모시는 산신과는 다르다)


강원도지방에는 산세가 험하였던 관계로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과 마씨부인을 보시는 산신당및 서냥당이 곳곳에 산재 해 있으며 대표적인 곳을 살펴보면 샛령(대간령) 한계령.삽당령.느릎령. 진고개. 미시령 등이 있다.

(국수당=서냥당=산신당)

삽당령

산경표에 삽당령으로 표기되어 있고 김정호의 대동지지 강릉산천조에 “삽운령” 또는 ‘목계령“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것에 대한 해석은 미루고자 하며 다만, 삼당령의 형세가 ”삼지창“처럼 세 가닥의 산줄기를 펼처져 있다고 하여 삽당령이라 한다.


그러나 김윤우교수는 강릉과 임계 사이 또는 동쪽의 석병산과 서쪽의 대화실산의 사이에 있다는 “사이”의 뜻을 우리말 “샅”으로 보고 이곳에 있는 산신당의 “당”이 합해 져 “샅당령”이라 한 것이  “삽당령”으로 변음된 것으로 본다.

(어느 것이 맞을 것인가? 하는 것은 더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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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삽당령에 내려서 어디로 가야하는 문제는 다음 날 산행 때문에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근무를 마치고 횟감을 준비하여 마중 나오신 동해바다님의 사모님과 함께 삽당령에 있는 간이매점에서 동동주 한 병 주문하여 목축임 하면서 결정하기를 다음 날 접근하기 쉬운 임계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임계에 도착하여 삼겹살구이로 유명하다는 서울식당(033-562-6488)에 들려 식사를 하게 되는데 소문난 집에 먹을 것 없다고 하지만 토종돼지로 구어 낸 삽겹살이 일품이라 평소에 1인분이면 족하던 내가 3인분에다 구수한 된장국에 밥한 공기 뚝딱 했으니 헛 소문은 아니더라...

 

이 곳이 고향인 한산님은 꿈의종주대가 이 곳을 지날 때 고향의 푸짐한 음식을 접대하겠다고 평소에도 말하곤 했는데 함께 하였던 대원님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긴 채 근처에 있는 모텔(30.000원)에서 하룻 밤 보내며 다음 날 산행을 준비 하였다.

 

추신: 새벽잠을 설치면서 백복령까지 와 주시고 세꼬시회까지  준비하여 날머리인 삽당령까지 마중 나와주신 동해바다님 사모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출처 : 운해의산방
글쓴이 : 운 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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