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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백두대간의 꿈! 삽당령에서 대관령까지 -북진 30-2구간-

㉥ 백두대간 記

by 운해 2008. 4. 24.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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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8년 04월 20일(음력:3월15일) 날씨: 맑음


산행지“백두대간 30~2구간(삽당령~대관령)


산행자; 이거종님.한산님.나


산행코스:삽당령~들미재~석두봉~화란봉~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산행거리:27km, 산행시간:13시간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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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삽당령에서 대관령으로 이어지는 이번 구간의 특징으로 닭목재와 고루포기산 그리고 능경봉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구간의 특징은 1000m가 넘는 고산지대의 하늘금을 그려 가지만 문헌 상 뚜렷하게 나타나는 산은 없지만 고려 우왕과 관련되어 있는 마루금으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 구간이다.

 

1석두봉과 닭목재

산정에 자리 잡은 돌들의 모양에 빛 대어 부르는 석두(石頭)봉과 화란봉(난초처럼 이쁜 봉우리란 뜻에서 유래한 지명)을 지나면 닭목이와 왕산골 사이에 위치한 닭목재에 이르게 된다.


 풍수지리가들은 “금계포란형”의 길지로 보았고 형세가 닭의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닭목재”로 부르는데 이두문자(鷄項嶺)로 전음 되지 않아 친근감이 더하는 곳이지만  당시에는 첩첩산중이었던 이곳까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2.고루포기산

닭목재를 지나서 된비알의 남사면을 따라 산정에 오르면 이름도 괴상한 “고루포기산에 도착하는데 산 아래 소은백이(所隱栢伊)라는 골(예전에는 화전민이 살던 곳이다)에서 유래되어 소(所소)의 훈을 ”곳”으로 보고 곳은백이산~고른포기산~골포기산~고루포기산으로 변음 된 것으로 추측된다(긴윤우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전문위원 글에서 인용)


3.능경봉

소우음(所于音)산에서 능정(能政)산 또는 능정봉으로 불리다 전음 된 현재의 능경봉은 아침에 떠 오르는 일출이 장관이라 “能政日出”이라 부르고 횡계팔경의 하나이다. (“강릉부지“에는 ”늦어산”으로 언급하고 있으나, 소우음산은 “발왕산”을 지칭하기도 한다)


능경봉 정상의 조망을 즐기고 대관령 가는 길 안부 가지줄기에 둥그렇게  솟아 있는 제왕산은 고려우왕에 관한 일화가 담겨 있는 제왕산성이 있는 곳이다.


4대관령

넘나들던 고개가 하도 험하여 “데굴데굴 구르는 고개“란  뜻에서 생겨나 “대굴령”이라 부르던 이 고개는 한자화 하면선 “大關嶺”으로 전음 되었다.


강원도의 영동과 영서(백두대간 마루금을 기준으로 하여 춘천~원주지방을 “영서”로 부르고 강릉~동해지방을 영동이라 부른다)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하였던 대관령은 조선 중종 때 “고형산”이란 사람이 사비를 들여 우마차가 다니도록 길을 넓혀 놓았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병자호란이 일어나 청나라 군대가 주문진으로 상륙하여 고형산이 넓힌 대관령 길을 이용하여 쉽게 한양을 침범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혼 줄이 난 인조가 크게 노하여 고형산의 묘를 파 부관참시 했다고 한다.


이 고개는 아들의 손을 잡고 한양으로 떠나면서 령상에 올라 오죽헌을 바라보며 언제 올지 모르는 친정집을 바라보며 홀어머니를 두고 떠 나는 마음에 한 없이 눈물 흘리는 신사임당의 애 타는 마음이 전해 져 오는 “울고 넘는 눈물고개”이이기도 하다.

 

진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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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글

 

임계에서 하룻 밤은 전 날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미흡했으나 산행에는 지장이 없을 정도의 충분한 수면을 하였다,

 

새벽4시에 기상하여 전날 밤 준비 해 두었던 식은밥 한 덩어리(이 곳에는 새벽에 영업을 하는 음식점이 없다)물에 말아 김치와 먹는 맛은 고역이지만 새벽에 산길을 나서는 우리에게 있어 어떠한 음식보다도 귀한 것이라.....

 

서울식당(033-562-6488)사장님의 차량으로 삽당령에 도착하여 곧 바로 산행 길 접어드나 처음부터 알바라..

 복수초

 중의무릇

 얼레지

 박새

 

※ 야생화를 한 곳에 나열한 것은 군락지를 공개하지 않기 위함이니 이해를 바랍니다.

 05:05

전 날 이곳에서 레드자켓들과 실랑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하기만 한 삽당령이정석을 뒤로 하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마루금에 첫 발을 올려 지역주민들 다니는 길로 20여터 진행하여 실개천이 흐르는 곳에 이르는순간!

 

 "이쪽인 것 같은데요?" 하는

 한산님의 외침에 되 돌아 와 마루금 따라 능선으로 오르기 시작하니 처음부터 알바라....

 들머리

 05:43

862봉에 도착하다.(돌미골로 알바하기 쉽상이다)

 

들머리부터 시작하여 벌목선이 나타나는 대화실산 갈림길까지는 조릿대 구간으로 원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 없는 산행을 즐길 수 있으나 V자로 꺾여지는 이러한 곳에서는 알바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05:55

어제보다 멋진 일출이지만 잡목에 가려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은 지나 온 두리봉과 석병산의 뚜렷한 스카이라인의 아름다운 곡선을 앵글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06:19

방화선의 시작이다.

 

이 곳에서도 알바에 주의해야 할 곳이다.

왼쪽 상단으로 보이는 대화실산을 마루금을 착각을 하게 만드나 오른 쪽3시방향으로 꺽여지는 방화선을 따라야 한다.

방화산 따르는 길은 1km가가이 이어지나 방화선을 지나서부터는 외길이다.

 대용수동골을 따라서 옥녀봉과 우측상단에 고루포기산이 조망된다.

 낙뢰를 맞은 소나무.

이 구간에는 유난히 많은데 고루포기산 아래까지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루금은 벌목선 따라 이어 진다.

 석두봉.

이렇게라도 석두봉의 형체를 남겨 본다.

 

백두대간길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경관을 보지 못 하는 야간산행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그러나 주간 산행을 해도 이렇다.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에는 이렇게도 볼 수 없으니 야간산행이나 주간산행이나 우리에게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07:14

석두봉에 오른다.

오른 쪽에 제법 큼직한 바위가 있는데 산정에 있어 머리頭자를 빌려와 "석두봉"이라 이른다.

여기에 오를 때마다 생각나는 석두스님의 기행이 생각 나 헐~헐 하는 마음으로 호산스님의 글을 옮겨 보기로 한다.

 

호산스님의 글 중에서...

어느 날 은사스님께서 개울가에 쭈그리고 앉아 고무신을 닦는 모습이 이 행자가 보기에는 무척이나 죄송하고도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어떻게 하면 저 고무신을 매일 닦지 않아도 될까?” 그래서 고민 끝에 그 해답을 찾았다. 그리고는 은사스님에게 자랑스럽게 고하였다. “시님, 이제는요, 그 고무신을 애써 씻을 필요는 없걸랑요. 지가요 다 조치를 취해 놓았걸랑요.

 

” 은사스님이 요놈이 또 무슨 짓을 저질렀나 싶어 따라가 보니 정말로 고무신이 유난히도 반짝거리는 게 아닌가.

그래도 미심쩍어 가까이 가보니 아뿔싸 흰 고무신에 니스를 칠해 놓았던 것이다

석두봉을 넘어 화란봉 가는 길은 조릿대가 깔려진 융단길과 갈참나무와 어울어진 간혹 보여주는 아름드리 푸른솔의 곧음이 선비의 기상이라 평지로 이루어 진 이 곳에 오랫도록 머물고 싶은 시심을 이르키게 한다. 

 산죽길을 걸을 수 있는 행운이 대간길 내내 함께 하시길...

 자연은 서로가 공존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1006봉

석두봉 지나서 화란봉 초입까지 이어지는 마루금은 늪지대를 지나는 느낌 속 안락의 연속이었다.

 09:29

이 곳에서 때 늦은 시산제와 이거종님의 백두대간 출정식을 겸한 의례를 치룬다.

베냥속 가진 것 모두 꺼내 놓으니 돼지머리는 없으나 약밥으로 떡을 삼으니 나름대로 젯~상은 마련되고..

화란봉 남.녀 산신님 모셔오니 만사가 순조롭다.

 화란봉을 지나고 헬기장을 지나 오랜풍상 겪어 온 암반위 고목송 아래에서 추억에 남을  사진 남기며 바라보는 닭목재이다.

옥녀봉 아래 곡선(빨간선)을 그리는 부분이 닭벼슬 같아 닭목이로 불리는 이 곳은 풍수지리상 금계포란형으로 명당자리 많으나 고냉지 채소밭으로 묻혀 져 버렸다.

 

그래도 나 보다 먼저 가시는 분 있으면 누울자리 하나는 봐 줄 수 있으니 연락들 하고 가이소^^**

 피덕령을 사이에 둔 옥녀봉 반대 반향의 경작지

 아래는 천 길 낭떨어지라...

우리는 닭목재를 벗어 나 보리밭 사잇길을 걸었다.

 11:03

100미터 벗어 난 지점에 도착하여  민가에 들려 물 보충하고....

.......

 

농작물 재배 하시는 할마님께 혼나지만 우리들 심정 이해 하는 지 조~오기로 가면 된다고~~

감솨~~

 우리의 마음은 이렇게 파란데...

우여곡절 끝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산등성이에 올라 한 참을 지나는데 왱~왱~거리는 소리에...

새 가슴은 참새가 되어서....

 

(산불감시차량의 신호음은 왱~왱 이더라)

 목장길 따라 가는 임도에 도착하나 눈 동자는 360도회전을 해야하고...

 11:58

직진하면 목장이지만 마루금은 왼 쪽의 산비탈로 이어진다.

 955.6봉

 

우리는 7부능선으로 나 있는 목장길 따라 트래버스하였다.

 목장의 이름은 모르겟고~~~

 지나 온 목장 오는 길과 닭목골

 12:20

목장이 끝나는 지점에는 산불의 흔적으로 고사목이 된 소나무들이 서 있다.

 닭목골 가는 갈림길...

마루금은 왼쪽으로 이어지며 여기서부터 헷갈리게 하는 안내판들이 등장한다.

 가는 길에 하늘에 그어지는 하이얀선도 담아 보고..

 13:01분 왼쪽 이정표를 지나  13:30분 오른 쪽 이정표를 지난다.

 

여기가 헷 갈리는 부분이다.

여기서 말하는 왕산이 어디인지 지도상에도 표기되어 있지 않아 혼란스럽다.

더욱 웃기는 일은 해발 표기도 100여미터이상 차이가 나며 거리 상 표시도 틀리고 얼마 전 백두대간 지형도들 상업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고00하는 지도에도 등고선 표시가 잘못되어 있어 모두가 바로 잡아야 할 것 들이다.

 14:16

 왕산제2쉼터 이정표가 있는 철탑의자에서 휴식을 취한 후 고루포기산 오르는 첫 번째 철탑을 향 해 오르기 시작하는 너덜길의 된 비알은 참으로 힘든 오름길이었다.

 

철탑을 지나서 방화선 따라 고루포기산 정상에 도착하여 주인 잘못만나 고생하는  베낭을 눕혀놓고....

사방을 조망하니 신선인들 띠로 있는가!!!

 삼각점은 한참을 지난 후 발견하고...

 정상표지석도 한산님이 걸어 두어 보이기 시작하고...

 돌탑도 보이기 시작하였다.

 15:11

횡계치에 도착한다.

 15:25

  전망봉에서 조망하는 대관령.

 횡계

 왕산골삼거리

 

금강산으로 들던 마의태자가 잠시 머물던 곳이라 하여 왕산골이라 한다.

 15:50

능경봉 가는 마지막 안부

 행운의 돌탑 가는 길

 행운의돌탑!

우리는 여기에서 돌탑을 쌓았다.

......................................................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이거종님이 물어 온다.

 

대간길 떠 나는 후배를 위 해 한 마디 해 달라고....

 

나는 말했다.

이기와 사욕(심)을 버리고 묵묵히 걸어 가라고...

 

그 것이 찾고 자 하는 것이라고....

...

 17:06

하산 길이 걱정이다.

 

제왕산 갈림 길에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

마음에 걸리고....

 18:08

다행히 청춘남녀의 데이트차량만이 반겨주고...

고려의 우왕께서 마시던 물에 목축임하며 한 병 담아다 식구들과 나누어 마시니 .....

 

헐헐..

대간길에 드시는분들 마다 천하명산의 약수 혼자 드시지 말고 가족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기 바랍니다.

 포장길 따르면 삼천포라...

 우물터50여키로 지나서 우측의 비포장 길 따라야 대관령에 갈 수 있슴.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풍력발전기와 함께 좌측의 대관령 도로준공기념탑.

 18:42

마루금은 직진으로 이어 지지만 대 부분 옛 휴게소방향으로 하산한다.

이렇게 이 틀간의 산행은 마무리 되나 여기에도 어김없이 빨간자켓 아저씨들 계시나 아무런 말씀 없으시다.

우리들 손에 들려 있는 쓰레기 봉투 때문인가?

 

"아전인수"를 뒤로하고 강릉까지 가는 것이 문제인데 지나 가던 봉고차를 한산님이 히치한다.

 초막골 지나 이 곳까지 이동하고....

다음은 콜택시(강릉터미널까지(10.000)하여 21시 강남터미널행 고속버스 예매 해 놓고 버섯찌게에 뒷 풀이라..

서울로  오는 길은 고속버스의 난폭운전에 잠 못이루는 시간이었으나 터미널 맞은 편에서 출발하는 부평행 9500번 버스 타고

올림픽도로를 달리고 택시로 집까지 골인하니 새벽 01시가 넘은 것으로 기억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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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화원에 들어 마루금을 밟아 온 기분을 나열하는 것은!

 

천국으로의 초대에 하찮은 글 솜씨로 먹물을 끼얻는 것 같아 생략 하기로 한다.

 

다만

불철주야 산불예방을 하시는 분들의 노고를 무시하고 도둑고양이 담 넘어 가듯이 숨박꼭질 하고 다녀온 것에 대한

죄송함을 남긴다.

 

그러나

산나물이나 약초 등을 채취하지 않으며 순수한 대간을 목적으로 산행을 하는 분들에게는

 자유스럽게 아름다운 우리강산을 다녀올 수 있게 하는 행정당국의 배려있는 정책을 기대 해 본다.

 

끝으로

화원길에 동행 해 주신 이거종님과 한산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 운해의산방
글쓴이 : 운 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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