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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가와 함께하는 북한산3將臺

㉤ 일반산행 記

by 운해 2009. 1. 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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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8년 01월 04일(음력:08/12/09) 날씨:맑음

 

산행지: 삼각산 3장대

 

산행자: 북한산연가와 함께

 

산행코스: 산성입구~상운사~북문~상운사~노적봉~중흥사지~행궁터~남장대~보국문~동장대~태고사~산성입구(회귀)

 

산행거리:12.5km, 산행시간:6시간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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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북한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삼각산은 예로부터 인간의 사욕이 불러내는 치열한 각축장이요.

안식처였다.

 

삼각산을 지키기 위한 시대별 상황은 너무나 치열하여..

백제의 개로왕은 서기137년에 북한산에 성을 구축하였고

고구려의 광개토왕과 장수왕은 백제와의 전투에서 승리하자 백제가 구축한 성을 무너뜨리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삼국시대의 마지막 주인이었던 신라의 진흥왕은 친히 위봉에 올라 비(북한산성비)를 세워 북한산의 주인임을 만천하에 공표하였다.

(이 때가 진흥왕 즉위 16년,서기 555년이고.. 추사 김정희에 의해 발견 된 진흥왕 순수비는 국보3호로 지정되어

 국립박물관에 모셔져 있고 현재 위봉에 세워져 있는 순수비는 모조품이다)

 

진흥왕의 순수비는 경상남도 창녕과 함경남도 마운령. 황초령 등 네 곳에서 발견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한반도의 국경과 일치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수도를 개성으로 옮겨 관심권에서 멀어졌으나 조선시대에는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나라가 어수선한 시기에  인조가 왕위를 물려받아 기강을 바로잡아 갈 무렵,풍전등화와 같았던 조선의 약점을 놓치지 않았던 청나라는

병자호란을  이르켜 남한산성에서 조선을 굴복시키고  소현세자.봉림대군,인평대군의 삼형제와 예조판서인 김상헌 등을  볼모로 잡아가며

 조공을 받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속국을 강요하며  삼전도(지금의 송파구 삼전동)에서 군신(君臣)의 예를 갖추어 삼배의 예를 올리게 했으니

 우리역사에 있어 일제감점기와 더불어 가장 굴욕적이며 치욕스런 사건이며 "환향녀"와 "호로자식"등의 피해자들을 속출하게 하였다.

 

훗날 왕위에 오른 효종(인조의 둘째아들로 청나라에 끌러가 수난을 당하다 환국하여 북한산에 요새를 구축하였는데 규모는 방대하여

문14개 연못26개 우물이 99개였다)은  이러한 굴욕을 되풀이 않게 하기 위하여 북한산에다 요새를 만들고 이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14성문과

 3장대(將臺=요새를 방어하기 위한 전망이 좋은 곳에 설치한 진지)를 설치하였다.

 

3장대란 문수봉 아래의 남장대, 시단봉의 동장대. 노적봉의 북장대를 가리키고, 14성문은 북한산의 성곽에 설치한 출입문들을 일컫는 것으로 이는

한양의 성문에서 유래하여 문자만 바꾸어 놓은 것으로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남대문은 “대남문”으로 동대문은 “대동문”으로 서대문은 “대서문”등으로 바꾸어 역사의 흐름을 이어가게 하였다.

 

 

 

 산행로

 

구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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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글

 

오늘 걸어야 하는 길은 산줄기를 피하고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유적지와 군영을 설치하였던 3대(군영지휘소)를 답사하는 것으로

산행은  북한산연가와 함께 할 것이다.

 

이 길을 걸어가면서 맨 먼저 떠 올리는 것이 병자호란의 패배로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며 조국을 그리며 울부짖었을

 예조판서 김상헌의 詩 한 수가 당시의 처절함은 느끼게  한다.

 

“청나라”로 끌려가던 김상헌은 벽제에서 북한산을 향 해 이렇게 읊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산성입구 시인마을(구매표소)에서 만나게 되어 있는 약속시간(09:30)에 맞추기는 애초에 틀렸고..

중간 지점에서 합류 해 보기로 하여 사전 연락도 없이 나서보기로 하였다.

 

연신내지하철역에서 34번 버스로 바꿔타고 산성입구에 내리니 10시이다.

30분 늦었으니 열심히 따라가면 중성사지정도에서나 만나지 않을까? 하고 지류를 따라 열심히 오르다 목교 건너 좌측 보리사방향으로

오름 짓 시작하고 곧 이어 지류를 건너 상운사길 접어드니 흡족히 젖어오는 땀 내음에 윗 옷 벗어 베낭에 넣고 상운사에 도착!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이 길이기에 이왕 산001선배 만나 보기로  하고 북문에 오르니

단속원들 가지 못하게 하여 어쩔 수 없이 상운사로 백하여 백운대방향으로 산행로 잡고 시발크럽 지나고 여우굴 아래에서 노적봉으로

크레바스 하기로 한다. (시발크럽에서 정훈이형한테 예를 올리며 잘 있으라고...)

산성계곡에 꽁공 얼어있는 얼음이  겨울임을 느끼게 하네~~

 보호수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좌측으로

 상운사 오름길

 북산산성에 대한 설명문

 상운사 대웅전

 만경대와 노적봉 

 북문

단속반의 서슬퍼런 눈 빛에 주눅이 들어 상운사로 돌아오는 심정이란 벌레씹은 표정 되더라...

 기도터

 비박하기 좋을 듯

 대동사

목탁소리 청량하도다.

 시발크럽 지나서 여우굴 가기 전 우측으로 크레바스하여 노적봉 안부에 도착..

좌측은 위문 가는 길이고 우측는 용암문 가는 길.

 용암문 도착하고 북한산대피소까지 진행하여 고요님께 전화하니 대동문까지 진행하여 행궁터로 오라 하신다.

 잠시 후 다시 전화 오는데 여기서 중흥사지로 내려 오라고..

 의상능선

 중흥사지 삼거리 도착하니 우측으로 시산제 지내는 분들이 있어 연가팀인줄 알고 가까이 가 보니~~

 대동산악회가 시산제 지내고 있네~~

 

되 돌아 목교 건너서 10여분 동안 계류를 따라 올라가니 바위산님 기다리고 있어...

오랫만에 해후하고...

 행궁지 도착했는에 연가팀 어디로 숨었나 보다..

양지바른 어느 한 곳에 식사하고 있을 것이란 예감으로 햇볕 드는 곳 찾아 오르니 ...

40여명 가까운 대 인원이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식사하는데....

 

오랜만에 만남이라 인사 나누기 바쁘고....

따라주시는 술 한잔에 취하고~~

방가~방가~~

 

십시일반으로 나누어 주는 밥 공기에 오랫만에 느껴보는 아늑함이라..

나 보다 늦게 도착하는 갑장인 눈높이님 부부 참석하여 분위기는 더욱 더 화기애애 하도다..

 행궁터 설명문

 행궁터

 

대홍수 때 소실되어 현재는 초석만 남아 ~~

황성옛터의 노래가락 절로 떠 올리게 한다.

 3대 중 하나인 남장대에 오르나 주변이 협소하여

이 곳에  군영지휘소가 있었다는 것이 믿어지지는 않지만 여기서 조망되는 의상능선의 곡선미는 압권이라...

조금이라도 더 눈 도장 찍고자 자꾸만 처다보게 된다.

 삼각산과 도봉산도 한 눈에 들어오고~~

사진 남기기에 여념없는 시간 보내고 보국문으로 이동~~

 의상봉과 원효봉

 남장대에서 동쪽사면을 치고 오르니 보국문 나오는데....

마나님 걱정하시는 눈높이님 중흥사지로 가는 지름길 안내하고 대동문에 오르고 동장대로 이동한다.

북한산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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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연가"에 어느 듯 3대 카페지기가 탄생 되었다.

 

산001님에 의해 탄생한 연가는 그의 뜻이 헛되지 않아 2기 한국인님이 훌륭하게 2년간의 임수를 완수하였고..

 

언제나 말 없이 조용히 웃기만 하시는 멋진 신사!

고요님이 3대카페지기를 맏아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연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듯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줄겁기만 하다.

 

오랫 만에 만나는 고석철님. 허충령님. 눈높이님부부.진산님.산곰님 등

모두 나열할 수 없음에 이해을 부탁합니다.

 연리목

 아래설명문으로 ..

 

 뒷 쪽의 탑은 알겠는데..

앞에 것은 또 뭬야~~

 고려 원증국사 탑비

 탑비설명문

 ㄷ자 형태의 건축물!

오랫만에 보네~~

 의상봉

 용학사 것인지~~중흥사지 것인지~~

 접영

 불독이 잠자는 건가?

새해에  더욱 빗나리... 

 뒷 풀이장에서 의상봉을 바라보며.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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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상

노적봉에 올라 북장대에 오르지 못 한 아쉬움을 달랬다.

 

산001

그는 우리 곁을 떠 나고 없지만

그가 남겨 놓은 체온만은 아직도 유연하여 그 뜻 그대로 전해 져 오고 있음을 알았다.

 

2006년 봄에..

진달래 능선으로 산행을 함께 하면서 연가 탄생의 비밀과 함께

고뇌스러워 하며 말 없이 먼 산을 응시하던 그 모습 생생한데...

 

꿈 속에서나 만나 소주한 잔 나눌려나~~

보고 싶다..

 

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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