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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산 진달래산행

㉤ 일반산행 記

by 운해 2009. 4. 12.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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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04월11일(음력03/11) 날씨; 맑음

 

산행지: 강화도 고려산

 

산행자: 산방회원님들과 함께

 

산행코스: 국화리(홍릉)~고려산~고인돌유적지~낙조봉~적석사~고촌

 

산행거리:6km 산행시간:5시간

고려산 전경사진(2004년10월31일촬영본)

 

개요

 

고려산은 마니산.혈구산.정족산.길상산.진강산 등과 함께 강화도의 6대 명산 중의 하나이다.

고려산은 한남정맥의 끝자락인 문수산과 연결되어  김포반도에 포함되었으나, 한강과 염하(鹽河)가 분류되면서

김포와 강화사이의 토사를 유출시키며 해협을 이루어 섬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산줄기는 문수산 아래 강화대교를 따라 잠룡을 하였다가 당산(당산곶대)을 솟구치고 견자산과 북산을 지나

 고려산으로 이어지며 계속하여 혈구산과 진강산을 지나 마니산을 연결한다.

 

고려산의 본래 지명은 오련산이었다.(오른쪽 사진은 인용하였음)

 

고구려 장수왕의 명을 받은 인도의 천축조사가 절터를 찾기위해 산정에 오르니 그 곳에 연못이 하나있고, 물위에 오색 빛 찬란한 연꽃이 피어있어 꽃을 따서 바람에 날리고 잎이 떨어지는 지점마다 절을 지으니 청련사.백련사.흑련사.적련(석)사 황련사 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 잎.

청색은 천축조사가 원하던 자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떨어지니 원통한 마음으로 암자를 짓고 “원통암”이 부르다 훗날 중축하여 훗 날에야 청련사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때부터 오련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정상에 있는 연못과 주변의 네 개의 연못을 합하여 오련지(五井)이라 하는데 정상부에 있는 연못은 군부대 시설물에 의해 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고 나머지는 연개소문이 군사들을 훈련시킬 때 말에게 물을 먹였다고 전해지고 있는 전설과 함께 현존하고 있다

 

오련산이 고려산으로 개명하게 된 것은 고려고종 때 몽고군과 잦은 전쟁을 피해 송악산과 마주보고 오련산을 주산으로 하여 강화도 관청리에 궁궐을 짓고 천도하면서 고려산으로 개명되었다.

 

진행도

 

산행글


봄이면

산으로 들로

꽃 놀이와 나물 캐러 간다는데...

 

우리도

고려산으로 진달래 놀이 가기로 한다.

 

이른 아침 동암역서 30여분 넘게 기다려 강화터미널행 버스를 타고 뛰뛰~~빵빵~~

강화에 도착하여 한산님 전화하니 김포는 지난 것 같은데 길이 막힌다고 하니...

 

천천히 오시라 하고 분식집에 들려 라면 한 그릇 시키고~~

주인장께 홍릉을 아느냐고? 물어보니...

 

청량리에 있는 홍릉을 말하냐?고 되 물어 오시는데...

아~예!로 선문답 해 드린 후 라면 먹을 때  한 무리의 사람들 몰려 오는데

어찌나 시끄럽던지 양계장에 들린 듯 하고....

 

터미널에 기다리면서 버스편 알아보니 국화리 가는 버스는 10시40분에 있고 다음은 13시라네..

우리 편 아직도 오지는 않고 택시편 물어보니 홍릉까지 6~7000원 나온다고...

 

버스타나 택시타나 매일 반이라 ...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도착하는 일행들과 함께 홍릉에 도착!

가파른 산행길 접어드는데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코스라 오르는 사람들 우리 뿐이고..

간혹 내려오는 팀 있고...참~한 부부가 우리를 앞 질러 간 것 같으네~~

 홍릉 가는 길 오른쪽에 있는 사당.

 

설명문이 없어 고종을 모시는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현판은 만녕재(萬寧齊)로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고종을 모시는 제각으로 보이기는 한다.

 홍릉가는 길 좌측은 물 흐르는 계곡이라 제법 졸졸거리고 언저리에 괭이눈과 개별꽃 남산제비.양지와 잔털제비꽃  반겨주고...

보라제비는 지천에 깔려 있네요~~

 홍릉

고려왕릉 중 21대 희종의 석릉(강도도 양도면에 위치하고 있음)과 더불어 남한에서 있는 두 기의 릉 중 하나이다.

(그 밖에 가릉과. 곤릉이 있지만 두 기가 더 있는데 곤릉은 고려 강종(재위 1211∼1213)의 부인인 원덕태후 유씨의 무덤이고

 가릉은 원종(元宗)(1259∼1274, 재위)의 왕비(王妃) 순경태후(順敬太后)의 능으로 왕릉에서는 제외 됐다)

 

고종은

고려의23대 왕으로 46년간 재위했지만 그의 집권기간 대 부분은 무인정권인 최충헌에 의해 지배당하고 공골군의 칩입에 의해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의 문화적 업적으로는 원나라의 칩입은 불심으로 막고자 만들었던 팔만대장경을 간행하고 유학을 권장하였다.

 

고종은 아들인 원종이 몽고와 강화(굴복)하고 개성으로 환도하는 해 승하하여 이 곳에 묻히게 되고 ...

세월은 흘러 이씨조선이 들어서니 그의 무덤은 돌 보는이 없다가 1961년에서야 고종릉으로 확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일까?

울찰한 숲으로 뒤 덮혀 있던 고려산은 80년대 일어난 산불에 의하여 고려산의 남사면이 잿빛으로 변하고 그자리에는

진달래군락지로 변하여 봄이면 두견화로 붉게 물 들이고 가을이면 은빛의 억새밭 출렁이게 하니 군주의 한을 풀지 못했던 고종의 짓눌린

한을 쏟아내듯 군중들을 불어 들인다.


☞ 고종(高宗)(1192-1259)은 강종(康宗)의 맏아들로 이름은 철이다. 1212년(강종 1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어머니는 원덕태후 유씨(元德太后 柳氏)이고, 비는 제21대 희종(熙宗)의 딸인 안혜태후(安惠太后)이다.

1213년 즉위하여 1259년 69세로 사망할 때까지 46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재위하였다. (문화재청자료인용)

 선괭이눈

 

홍릉을 지나고 계곡을 따라 가파른 북사면을 치고 오르면 헐떡이는 숨소리 쉬어가라고 소나무가지 늘어진 산자락 반겨주고....

고려산 서사면을 따라 트래버스하면 청련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라.

 

여기에는 음식물 냄새와 매말라 버린 땅위에 사람들 발자국 옮길 때 마다  일어나는 뿌연먼지는 코끝을 맹맹하게 해 준다.

사람들 징~허게 많습디다...

 

후다닥 자리를 떠 정상에 괴물처럼 서 있는 시설물 피해 남사면따라 돌아가니 정상으로 가는 세멘트포잘길 만나는데

고려산진달래축제가 시작되어서인지 저자거리 서고 지짐이 붙이는 소리 요란하여 여기가 시장인지 산행지인지 헷갈리게 하더이다.

 헬기장에서 일행들 만나고..

달마가 서쪽으로 간 까닥?은 모르지만 우리도 서쪽 길 낙조봉 가는 길 따라 가는데

오고가는 사람들 발걸음 별로 가볍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데 ....

 

아마도 절반 쯤 개화한 진달래를 탓 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제법 붉은색 보여주니 지난 주 다녀 간 분들보다는 행운아들이여~~

어제는 비 내렸으니 이번 주에는 절정에 이를 듯.

다시 가 볼꺼나???

 잘 한것인지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불나면 잘 탈 것이여!

 배고파!

빨리들 오시오!

 오랫만에 갓더니 나무들은 잘라 버리고 ....

나무숲에 가려있던 진달래들 속살을 들어 내놓고 제법 뽐 내고 있는데...

꽃 들이 이쁘지가 않아서 나무숲 우거졌을 때가 더 좋은 것 같아..

 현재에 있는 군락지만으로도 충분한데...

 요념은 잘 피었다.

 생강나무도 멋있고,,

 

여기에서 점심 먹었다.

처음으로 참석하신 멜로디님 베낭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먹거리 기가 막히게 맜있었지만..

고추튀김이 제일로 ㅎㅎ...

 

두릎도 맛 있었고...

 식사 후 이동 중 볼썽사나운 모습 또 보게 된다.

1남2녀가 돼지김치찌게 끓이는데.....

 

지금이 어느땐가?

말라있는 나뭇 잎 비비기만 하여도 불 난다는 사월인데...

 

제발 위험한 곳에서 불장난들 하지 마이소!

 좋지요.

 이 넘도 다 피어났네~~

 고인골 유적지 가는 길에서

 정상부

 6번 째 대간 중이신 정병훈 하문자 선배님 표시기.

언제 여기까지 다녀 가셨는지...

 

지금은 국수봉 지나서 가고 계신다고 연락 주셨네요..

저도 조만간 뒤따라 갑니다^^**

 낙조봉에서조망하는 적벽

 내가저수지

 혈구산과 고천마을

 적석사

 미녀목

 종루

 적석사 사적비

 

처음에는 적련사로 불렸으나 자주 일어난느 산불로 인하여 적석사로 개명 했다고 한다.

사적비에는 몰공칩입 대 임금이 이 곳으로 피난하여 머물렀다고 적고 있다.

 

여기를 끝으로 꽃 놀이 종료하고 마을길 따라 걸어 가는데 한산님 전화가 온다.

지나는 차량 히치하여 고비고개 아래에 있는 산자락님 친구분집 찾아가고 있는데 빨리 오라고 하니 함께 걸어가고 계시는

스콜라님 미인계를 써 볼꺼나~~

 

그렇게 하여 트럭도 얻어타고~~테라칸도 얻어나고 해서 고비고개 넘어가니 일행들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 합류하여

산자락님 친구분집에 도착하니 잔듸밭으로 곱게 단장되어 있는 한켠에다 따님 부부가 한상 차려놓았는데...

진수성찬이라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하고~~

 전원주택

 냇 가에 발 담그라니 대한민국 엄마들 쑥 뜯기에 정신있고~없고..

 산자락님의 친구분이시고..

두 분의 초대에 의해 모처럼 야외에서 즐기는 파티는 오래도록 기억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참으로 줄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전원생활을 즐기시는 선배님의 인품을 대변하는 듯~

정원에 심어놓은 소나무향기에 진하게 배어나오는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행 후

 

강화터미날까지 태워다 주는 딸님의 차를 이용하고

서울팀 보내 드리고 부평행 버스타고 오는 길에

 

전국의 산꾼 50여명이 모여서 불수사도북을 하고 있는 J3클럽에서 전화 오는데

가야할지~~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도끼 눈 무서워 결국에는

포기하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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