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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3클럽 제4차 백두대간 첫 걸음! 참여記

㉥ 백두대간 記

by 운해 2009. 6. 15.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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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回想(2009년 06월12일~14일)


특별한 인연으로 설악에 간다.

말하자면 12일 인천을 출발~ 사당을 경유하여 진부령을 거쳐 속초에서 일박한 후 한계령을 경우 해 回歸하는 여정이다.


 -회상-

 

반 평생 넘게 살아오면서 산을 찾은 시간들 헤아릴 수 없고~~

그러한 인연의 끈은 마지막에 이렇게 꽃을 피웠다.

 

花無十日紅이라~

제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열흘가지 못한다고 언제갈지 모르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 하지만..

아름다운 그들과 함께 하였던 그 시간과 줄거움은 "一日紅"이 되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장거리산행문화의 개척자들 !

그들과의 인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언젠가 한국의산하에 올라온 글 중에서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산행기를 접한 적이 있었고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물 건너고 산 넘어가는 산행을 하면서

태극종주라 하여 이상한 생각을 했었다.(그래서 이러한 산행은 종주산행이 아닌 "일주산행"이라 해야 하는데 종주산행이라니? 하는 생각으로 백두대간란에 무수한

고수들 많으니 검증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의 댓글을 ?썻다가 시비의 대상이 될 것 같고 하여?  남들이 하는 산행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것도

우수운 일이라 10분도 안 되어 지워버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시간에 그 글을 본 사람들이 벌떼처럼 인신공격을 해 오는데 배겨낼 제간 없더라.

 

그 사건을 계기로 청계산선배로부터 배방장님 소개받고 백두동에서 첫 상견례를 가지게 되어 오늘날 까지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정작 글쓴이의 공격이 있어야 했으나 (그는 훗 날 나의 의견에 동조하여 22일의 연속종주 백두대간을 끝낸 "산러브짱"이다)제삼리와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실명과 다름없는 닉네임까지 넷상에  올려 인신공격을 당했으니 산태극~수태극을 모르는 자들의 오만이라~ 그들을 머리속에서 지워 버렸다

 

돌이켜 보면 나를 대신하여 논쟁을 벌였던 산짱친구에게 고맙다고 해야하나?

여기에서 만날 수 없는 것 또한 회한으로 남는다...


그러한 사건을 계기로 맺어 진 인연으로 제삼리주민들이 시작하는 백두대간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이 것은 순전히 自燦이다) 출정식에 참석하기로 한다.

세 번에 걸칠 나의 대간길은 35회로 진행 했는데 12구간도 아닌 11구간으로 한다고 하는 그 들이 보고 싶어지는 것 만은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이라~~

사브작 ~사브작 걸어왔던 그 길에서 내가 찾았던 마루금을 알려 시간단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첫 구간에 상면하니

 내(싫다는)치는 사람은 없더라~~

 

그들의 면면을 훔쳐보니 4차 길에 오르는 분도 있고~~

100km는 기본으로 하는 분들이라 널널산행을 하던 나로서는 딴 나라당에 와 있는 기분이었고~~

한계령 휴게소에서 부드러운 미소의 선희님 만나니  쬐금 마음이 열리더라~~

그렇게 진부령으로 갔다.

 

풍미식당에서 상견례 하고~

미시령 넘어 갈 시간 고려하려 10시에 출발 하기로 한 약속은 물거품 되어 산행길 시작 되었다..(이번 출정을 위하여 두 번의 답사와 함께 통과시간을

약속하였던 김00선배와의 10분간의 약속은 무참히 깨어졌으니(그 댓가는  몇 시간 후  한 시간이 넘게 계곡으로 돌아오게 하는 벌을 받았으니 자업자득이라~

어른 말 안 듣다가  애들이 혼~ 났다..ㅋㅋ) 어찌하겠는가? 내~마음 같지 않으니~~

 

옛날 성질머리 같으면 내 팽겨치고  집구석으로 왔을 것이지만 내 나이 몇 인고~~

잠시동안 돌이켜 보는 시간이었다.

 

이것도  대간길이 주는 福 이니~~

돌이켜 볼 시간을 마련 해 준 분들께 고마울 뿐이고~~

 

 진부령

 

진부리에서 온 지명이다.

이 고개가 생기기 전 까지 사람들은 진부리에서 흘리령을 넘고 흘리계곡을 따라 물굽이계곡을 통해 용대리로 갔었다.(역순)

수레를 이용하게 넓다란 길을 만든 이는 택당 "이식"이었으며 진부령이 개통 된 후 흘리령은 역사속의 길이 되었다.

"진부"는 조장~조쟁에서 변음된 것으로 간성과 인제사람들이 진부리에서 아침장을 열어 해산물과 곡식을 교환하는 아침場에서 유래 하였다.

 

진부령에서 미시령을 향해 출발하면서 생각은  온 통~

미시령 통과 뿐이라~~

 

그렇게 무거운 마음인데 첫 걸음 나서는 대원들은 왜? 그렇게 줄거운지~~

야속하기만 하고~~ 夢으로~~미시령을 향 해 노를 젖는다..(2009.06.13.06:50)

 

 

흘리령~

나는 흘리령을 찾기 위해  돌머리로 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번에도 3주 연속 이곳에 왔었고~~

 

다행히 흘리령에 대한 위치를 고문헌과 고지도~~

올 해 72세의 원주민인 최00노인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이 있어 그 위치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것을 인정 해 주고 첫 걸음을 밟아 주신 제삼리 주민들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 하고 싶다.

 

 

알프스 스키장!

부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으로~~

황폐하기 이를 데 없다.

 

투자자들의 의견이 모아 져 리노베이션 하기로 하였으나, 선정업체인  신성건설의 부도로 인하여 고통을 겪고 있다.

한 푼이라도 아껴 보겠다고 삼성을 택하지 않은 투자자들의 판단을 이해 하지만  개미들은 힘든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러한 상념속에 전사들을 떠나 보낸다..

 

미시령 통과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나의 고민과 함께!!

 

미시령에 도착!

000선배를 만난다.

지난 주 약속에 대한 캔슬에 내 자존심 내 팽겨지고 한 번 더 부탁 해 보지만!!

요지부동이다.~~

알아서 하란다~~~

 

할 말이 없고~`

기사님께 화암사나 가자고 한다.

 상봉의 동부능선

 황철봉의 동부능선

 가는 길에 울산바위

 

고지도에는 천주산으로 되어 있다.

 선명한 그림을 바라보니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생각대로 하면 되고~~~

 희망이다.

 무시무시한 부대가 있는 곳~

H.I.D

화암사 가는 길이다...

 수바위(秀巖)

 범상종의 조사 진표율사가 화암경을 설파하던 곳!

깊은 산골에 있어 공양이 어려웠는데 어느 날 밤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굴입구를 세 번 두드리면 쌀이 나온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더니

정말로 나오더라고....

 

그 때부터 빛날(華)는 벼(禾)로 바뀌어 오늘날 화암사가 되었다.

수바위 지명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주변의 산세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의 위엄이 빼어나 빼어날 秀를 썻다고 한다.

 화엄사 전경!

 

이상해의 부인 김영님의 정선아리랑 자락에~~

금강산 일만이천봉 팔만구암자 유정사 법당 뒤 칠성각에 모여 아들 딸 나 달라고~~

남한에 속한 금강산 자락 중 건봉사와 더 불어 유명한 사찰이다.

 

잼보리 대회 때 중창 하였고~~

지금은 ~~

 

천도제 지내려면 천만원 내란다......

 수바위에 올라 바라보는 신선대

 상봉과 신선봉..

지금 시간에 신선봉에 와 있을끼구만...

이대장님과 통화시간을 근거로~~~11:30분

 칠선봉이 오버랩 되고~~

김선배를 어떻게 움직이나~~??

 장군봉도....

 태극팀들은 저기를 언제 쯤 통과할까?

내일 아침 10시경이 될 것이다.

 신선봉과 지능선

가운데 화암재 있으나, 원래 이름은 석파령이다.

돌무더기(너덜)가  파도처럼 춤 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로 대간령은 새이령의 이두문(향찰)이다.

사이령-새이령-샛령으로 되고 사이는 사이간(間)자를 써 간령으로 되었으나 용대리 창암에서 마장터 오름목에 있는 작은 새이령(小間領)과 구분하기 위해

큰大자를 붙여 대간령이 되었으므로 일본인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것은 억지이다.

 

수바위에 올라 ....

한참을 머물고~~

속초에서 오셨다는 1남2녀의 분들이 따라 주시는 소주잔에 알~~달~~딸~~

미시령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혹시나 하여 000선배님께 전화하니 기대를 저 버리지 않고~~

000으로 가고 있으니 미시령 가는 길목 불탄지역 근처에서 기다리란다.

 

역시!

헛 살지는 않했나 보다...

만고강산~~절로 나오고~~

 

이제부터는 이대장님과 교신만 남아 있고~~

그렇게 하여 길 가에 주차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빨리 픽업 해 가라고 호통전화 걸려오고.....

우리 기사님 신나게 달려서 꼬브랑길 오르니 길가에 18명의 천사 기다리고 있더라.....

 

그 후 용대리로 황태국에 맛 있는 점심과 동동주 한 잔!

띠리~링~벨 소리 타고 들려오는 구세주의 목소리...

그렇게 불~나게 황철봉으로 보냈다....

 

한 나절에 벌어진 기막힌 시간들의 조합이다.

의리는 그런 것이여!

000선배님께 고맞다는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속초로 이동하였다.

 

 

왜 냐고?

속초에서 할 일이 또 있으니까>>>

 

이제라도 고맙다고 인사 건넵니다.....00 外 시간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도와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속초로 다시 내려가는 길에 울산바위도 웃더라~~

 

점봉산을 향한 고뇌는 시작되었다.

 하늘은 맑고~~

그러나 비 온다고 했는데......

 홍이사~

오랫 만에 자네의 건물 바라만 보고 가네~~

김이사도 보고 싶고~~

 여기까지는 임무완수인데~~~

 창바위

아니구나~~용대리로 밥 먹으로 가면서 찍은 사진이로구나~~

 매바위

 미시령에서 바라보는 속초

 이승만 어른께서 친필하셨다지~~

 

미시파령이라 부르기도 하고..연수파령~미시령 등으로 부르며 택당 이식이

삼일간의 여정으로 이 길을 열었다고 역사는 전한다.

 

시 한수 읊고 가자...

 

五步一回顧(오보일회고)
十步一停留(십보일정류)
三朝上峻阪(삼조상준판)
三暮登上頭(삼모등상두)
巨石傷我足(거석상아족)
顚崖眩我眸(전애현아모)
大哉穹壤內(대재궁양내)
玆嶺誰與?(자령수여모)
回車與叱馭(회거여질어)
忠孝心所求(충효심소구)
何意携老母(하의휴노모)
乃反窮遐幽(내반궁하유)
餘生慕苟全(여생모구전)
絶跡甘遠投(절적감원투)
臨風發長歎(림풍발장탄)
吾道知是不(오도지시부)


다섯 걸음마다 한 번씩 뒤를 돌아보고,
열 발 걷고 나서 다시 멈춰 휴식하며.
삼일 동안 아침나절 험한 비탈 올라,
사흘 저녁에 정상에 우뚝 섰어라.
거대한 바위에 발도 다치고,
깎아지른 낭떠러지 눈이 아찔했나니.
굉대(宏大)하도다 미시령이여,
천지간에 그 무엇이 그대와 짝하리요.
수레를 돌렸거나 마부 꾸짖었거나,
모두가 충효심의 발로라 할 것인데.
노모를 모신 이 길 무엇 때문에,
깊은 골 뒤질 생각 거꾸로 한단 말가.
남은 인생 성명(性命)을 보전할 수만 있다면,
자취 끊고 먼 산골로 들어가도 좋으련만.
바람결에 날려 보내는 나의 장탄식(長歎息),
나의 이 길 과연 옳은 것인지. [택당집5권]

 설명 없음

 여기도..

 우리사람 갔다 해~~

 호시절 그립다....

 걷고~타고~~달리고~~~

 

설악동에서~~~

이 선배를 만나다....

 

그가 말한다

분소장 이취임식 있으나 너를 만났으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전국에서 온 소장들 소개시켜 준다고~~

 

나는 한 사람 아는 것으로 족한다.

한 분만 있으면 설악은 내 손에 있고~ 불 필요한 인연 만들기 싫고 ~~

여러사람 만나면 알고 있던 분에게 소홀 해 지고~~

그래서 호의를 무시하기로 하여 전화기 꺼 버렸다~~

 

그리고

속초에 있는 찜질방에 가면서 배방장 전화 해 보니 예쁜목소리 여자분이 받는데 전화기를 놓고 갔댄다.

합류하기로 하여 보니 줄~리님~

기사님 두 분과 함께 삽겹살로 저녁먹고 찜질방에 하룻 밤~

 

아침에 한계령으로 간다.

 


-회상-

 

형~만나서

설태팀 이야기 하고~~

대간팀 이야기 했다.....

 

비단길 깔아 두었으니 이제는  잠 자러 가야겠다.

 망대암봉 자락의 산수...

 한계령길

 칠형제봉

 함박꽃(북한의 국화)

 

한계령에 이르니 선두팀 도착하여 오뎅국물에 쓰디 쓴 독주로 추위를 이기고 있더라~~

두 시간여의 차이를 두고 후미틴 도착! 그리고  오색으로 이동~

(두 시간 동안 나는 한게삼거리에 다녀왔다=산꾼이 산에 왔으니 산길이라도 밟아 봐야지~뭐! 아니~그렇소?)

 

오색에서...

샤워하고~~

오색의 원조집이라는 토박이식당에서 백숙에 술 마시고 밥 먹고~~

 

그런데~~

이 선배는 여기까지 왠 일이람~~

나머지 이야기는 11팀만이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기에 생략하기로 한다.

 

그래도 이 선배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는 해야겠다.

 

 

내가 전화기 꺼 놓은 것은 형하고 있으면 김선배한테 미안하고~

김선배하고 있으면 형 한테 미안하고 해서 그랬다~~

내가 잘못해도 형은 이해 하잖아?

형 이니까???

 

형 만난 것 보다

조카 만난 것이 더 좋더라~뭐!

 

 새우는 적을 만나면 스스로 자신을 마취시킨다.

껍질을 벗기는데도 그대로 죽은 듯이 있는다~~~

세상은 그렇게 살아가야할 때가 있다.

 


-回歸-

 

돌아오는 길!

많이 막히더라...

 

오랫만에 퇴촌의 풍경도 접하고~~

길동에 내려 칼칼한 칼국수에 새우 한 마리....

 

십시일반으로 정리(아!인천까지 택시비도 그랬구나)

다음에는 주점에서 만나기로 하고(이 대장님이 소주한 잔 사준다고 했는데 절대 뇌물은 아니다 뭐~)

그냥~ 정으로~~

그렇게 집에 도착하여 SBS 찬란한 유산을 보았다~~~

 

제삼리 주민들과 함께 하였던 소중한 시간들 .....

영원히 간직 하겠습니다.

 

전사들이여!

천왕봉까지 무사히 가시길 바랍니다.

 

 세(로)울 縱~달릴 走

세워서 달려라~~하~하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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