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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북16산 (시계종주) 3구간 -한북정맥구간-

㉦정맥·지맥·기맥 記

by 운해 2006. 3. 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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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06년 01월 22(음력:2005년12월23) 날씨: 맑고 오후에 추워짐

 

산행지 : 강북168(시계종주 3구간) 축석령~울대고개  한북정맥 일부 구간-

 

산행자 : 산줄기 따라서 홀로아리랑

 

산행코스: 귀락터널~축석령~백석이고개~255봉갈림길~메루지~덕고개~막은고개~성황당고개~샘내고개~도락산갈림길~청엽굴고개~임꺽정봉~오산삼거리~작고개~호명산~한강봉~챌봉~울대고개

 

실제거리 29km ,산행거리: 33km(알바 3km어프로치 1km포함)  

 

산행시간: 10시간 33분

 

개요

 

강북16산의 3구간 출발점인 축석령은

백두 대간의 추가령에서 분정한북정맥이 복계산을 거쳐 운악산과 국사봉을 지나 오두산에서 맥을 다하는 13정맥의 하나로서 남쪽의 산줄기이며 남한의 최북단을 동서로 지나는 마루금 중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어야 했던 6.25전쟁의 격전지로서 우리에게 더욱 잘 알려진 곳이나 지금은 전쟁의 아픔을 잊고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연결하는 43번국도(4차선)가 지나고 있는 곳이다.

 

메루지의 원래 이름은 면우지는데 농사에 필요한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연못을 만든 자의 이름인 안면우의 이름을 따 면우지로 불리던 것이 메루지로 변천 하였다고 한다

 

백석이 고개는

예전에는 이 고개에 호랑이가 많아 고개를 넘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고개를 넘기위해  백 명의 사람이 모여서 넘었기 때문에 백씩이 고개라 불리던 이름이 세월이 지나면서 백석이 고개로 변천하였다는 설과 차돌과 마사토가 많아 고개를 넘기에 어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함.

 

덕 고개와 막은고개를 지나 성황당 고개에  우리나라 어느 곳에 가든지 마을마다 하나씩은 있는 성황당은 서낭신(토지와 부락을 지킨다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진 제단으로 지방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른데 전라도에서는 할미당이라고 하며 경상도에서는 천왕당 평안도에서는 국사당 중부지방에서는 성황당으로 불리는데 중국의 성황에서 유래 하였다고 하는 성황당은 분명치 않은 기록이며 우리 고유의 토속신앙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서낭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최근까지도 이어 져 왔으며 대표적인 형태는 성황당에 서낭신의 봉안처로 고갯마루에 있는 정자나무(神樹)에 돌무덤을 쌓거나 나무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갯마루나 마을의 초입과 사찰입구에 설치되어  우리나라 전역에서 발견되어 지는것을 보면 민간의 보편화된 신당이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별로 관심의 대상은 아니지만 영동지방과 영남지방에서는 동해안 별굿이나 강릉단오제 같은 큰 행사를 통하여 서낭굿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나, 고개를 넘나드는 길손들이 서낭당에 돌무덤에 돌맹이 올려(특히 우리네처럼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놓으며 다리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른들 따라 다니며 그 들의 행동이 알게 모르게 우리들에게 전해 져 내려온 관습이자 풍습이리라.(산행기에 뜬금없는 성황당 이야기냐고 하는 사람들  있을 수 있겠지만 등산길에도 연관된 것이니 이것 또 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성황당에 대하여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조용히 미소만 지으시기 바란다.

 

각설하고

수락지맥에서 시작하여 한북정맥의 일부 구간인 축석령에서 울대고개까지 80km구간에 유난히도 고개가 많은 것을 보면 서울을 원형으로 감싸고 도는 산맥의 줄기 때문이겠지만 면적 또한 넓기 때문일 것이고 장안에 모여 사는 백성들 또 한 많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은 추리 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수락지맥에서 시작하여 한북정맥의 일부 구간과 도봉지맥의 도봉산까지 원형으로 이어 지는 산 자락에는 자연의 신비를 연주하는 모든 동식물의 생명수인 물줄기가  곳곳에서 발원하여 산자락 구비구비 계곡을 따라 중량천(하천을 따라  의정부시와 상계동지역 그리고 한강과 중량천이 만나는 합수점까지의 드넓은 토지 위에 개간되었을 전.답을 상상 해 보라) 을 이루어 한강으로 합류한다.

 

물줄기 주변에 터전을 이루고 살아 온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음미하며 산줄기 따라 걸어가며 원시사회에서부터 농경사회를 거쳐 현재의 문명사회까지의 생활상을 스크린 지나가듯 상상 해 가며 하는 산행의 의미는 우리에게 또 다른 감흥을 가져다 줄 것이니 이것으로 산을 오르는 의미는 충분하다 하지 않을 것인가?

불곡산

좌측부터 369봉, 임꺽정봉,425봉,불곡산(470m)

 

조금 더 크게

도로는 오삼삼거리

 

참고로 고개에 대한 유래와 내막을 정리 해 보면

 

1.막은고개는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고개를 막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바로옆에 성황당고개가 있어 성황당고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음

 

2. 큰데미와 작은데미는 임란 때 왜군이 진지로 사용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

 

3.청엽굴 고개는  주변의 산들에 나무가 없이 모든산들이 벌거 벗어 황폐화 되었지만 청엽굴고개만은 수목이  우거져 고개가 푸른잎으로 뒤덮혀 푸르다 하여 청엽굴로 불렸다고 함.

 

4. 작고개는 고개가 양주지방의 다른 고개에 비해 작았기 때문에 작고개라 하였다고 함.

 

산행글

 

05시 30분 혼자서 의정부행 첫 차를 타기 위해 백운역으로 나서는 마음이 조금은 근심스럽기는 하지만(토요일 하려고 하였던 계획이 컨디션 난조로 일요일 산행으로 변경되었지만 아직도 썩 좋은 상태는 아닌지라) 이왕에 출발한 것이니 가는 데 까지 가 보자는 뚝심 하나로 05시57분 의정부북부행 전철을 탑니다.

 

의정부북부역에서 축석령까지 택시(일만원)를 이용하여 귀락터널 산행지에 도착하여 2구간 산행 때 확인하여 놓은 터널위를 들머리 잡아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진행도

08:17

수락지맥과 한북정맥이 만나는 귀락터널을 건너면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축석령

08:31분 축석령 검문소를 지나 우측 축석교회 옆 마을로를 따라갑니다.

정맥길은 축석교회 뒷편의 능선을 따라 진행 하여야 하지만 임도를 따라 오르는 것은 천은사에 들려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축석령의 유래

300년 전에 중병을 알고 있는 부친을 치료하기 위 해 돈을 빌리려 가는 아들이 이 고개를 넘을 때 호랑이가 길을 막고 있어 살려달라고 밤새도록 빌고 보니 호랑이가 아니고 바위였다고 하여 그 후부터 이 고개를 축석령이라고 하였다 함.

천은사 가는 도로와 나란히 하는 하천은 겨울의 운치를 만끽하게 해 줍니다.

폐타이어가 보관되어 있는 벙커 왼쪽의 등로를 택하여 마루금에 접어듭니다.

(직진은 천은사 가는 길입니다)

주민들의 운동시설이 되어 있는 넓다란 공터 옆 마당바위에서 수락산을 조망 해 봅니다.

좌로부터 퇴뫼산,불암산,수락산

백석이고개

09:10 헬기장이 있는 287봉을 내려 가는 등로는 암반지대라 로프구간을 내려서니 왼 쪽으로 돌탑과 오른쪽에 이정표가 설치되 있는데 이 곳에는 "어하고개"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어하고개는 천보산맥에 있는 고개를 말함이며 한북정맥에 관한 기록은 축석령에서 울대고개까지 진행하면서 한 곳에도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09:34분

 255~245~235봉을 차례로 지나고 천보산과 골프장 갈림길인  삼거리에서 천보산에 서 있는 탑만 확인한 채 로얄cc로 내려섭니다.

골프장에 들어서니 라운딩하는 사람 몇 명 보이는데..

 

이 양반들이 나에게 하는말이 " 여기는 등산로가 아니라서 다니면 안된다"고 합니다.

어이도 없고 하지만 실랑이 하기 싫어 " 오늘 멋지게 알바트로스나 하세요" 하니 무슨뜻이냐고 동료에게 물어보는 것을 뒤로하고 솔밭 사이 포장도로를 따라서 진행을 합니다.

 

한북정맥 구간하는 분들이 이 곳에서 마루금 찾지 못하여 애로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어 마루금 따라 실선을 그어봤습니다.

 

 솔밭도로를 따라가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좌측으로 방향잡아 진행하여 5번홀을 횡단하면 숲으로 연결되는 마루금이 나옵니다.

 

 오리동(도로건넘)고개지나 다시  마루금에 들어서면 예전에는 우마차도 다녔을 법한 넓다란 길이 나오는데 이 길을 따라서 메루지방향으로 가다보면 갑자기 거대한 공사현장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공사현장을 양주외곽도로IC 공사장으로 생각 하였으나

막은고개까지 택지개발(9000세대)하는 거대한 현장입니다.

 

도로공사 때문에 절개된 곳을 건널 수 없어 공사중인 메인도로 방향으로 내려서 메루지 111.9봉으로 접근을 시도하였으나, 끝을 알 수 없게 공사현장에서 마루금을 찾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푸근한 날씨 때문에 땅이 녹아 신발에 달라 붙은 흙의 무게만 천근만근 나갑니다.

 

할 수 없이 이 구간 포기하고  350번도로에 당도하여 덕고개까지 진행하여 덕현초등학교 좌측벽을 따라  막은고개를 지나 공사중인 도로를 횡단하여 성황당 고개로 진입합니다.

 

불곡산

골프장에 내려서기 전에 잡아 봅니다.

 

09:51

오리동도로를 건너 만나는 초입의 마루금과

 

조림된 숲과 잡목으로 우거진 숲이 비교되는 곳입니다

 

09:58

도로공사와 택지개발현장!

10:45

막은고개 근처에 있는 유적발굴지

 

공사하다가 이런 유적지 발견되면 난감해 지겠지만

유적지 보전은 심사숙고 해야 할 문제입니다.

 

10:50

거대한 택지개발현장!

 

개발이라 하는  것!

 옳을 지 몰라도 한북정맥의 마루금은 보전 되 여야 할텐데.....

무 분별한 개발로 마루금 조차 없어져 버리는 것은 아닌 지

 힘 없는 백성은 그저 지켜만 볼  뿐입니다.

성황당고개고 이어지는 마루금

 

10:53

성황당고개

 

성황당의 위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순복음 교회가 있는 자리가 아닐까?

우문 해 보며 교회 건너편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마루금을 묵묵이 따라 갑니다.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재활용품 폐집장이 나오고  이 곳의 뒷쪽산으로 접어들어  봉우리 하나 넘으면 큰데미와 군부대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타납니다.

 

임도를 따라가다 보니 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는데 철조망 좌측은 큰데미 방향이라 오른쪽 철조망을 따라 1km정도 오르니 정상부 못미쳐 쉼터(벤취 놓여있음)가 있고  쉼터에서  철조망을 이탈하여 오른쪽 마루금 따라서 샘내고개로 향 합니다.

11:30

한송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한 지점 우측에는 아파트공사(자이아파트현장으로 보임)가 한창이고 묘지 건너편으로 조망되는 불곡산의 위용이 자태를 드러냅니다.

 

한송아파트와 상가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곧장 진행하여 철도를 건너서 횡단하니 공장들이 나타납니다.

11;57

빈터에 쳐 놓은 울타리를  통과하여 공장담벽을 따라서 진행하여 샘내고개에 도착합니다.

(우측에 주유소있음)

 

이 곳에서 점심을  먹여야 하기때문에 도로 건너편 마루금 확인 해 놓고 음식점을 찾기 시작하여 (밥 찾아 삼만리는 시작되었고)1km이상을 시내방향으로 내려가 순대국집에 들려 소주 반 병 곁드려 점심을 해결합니다.(  2km정도 아까운 발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쩝니까? 먹고는 살아야제)

 

여담: 산행자의 습관에 따라 음식물을 챙겨가는 것은 모두가 틀립니다. 베냥 가득 가지고 소풍가듯이 하는 분들도 있고 물병 하나 달랑들고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취향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장거리 산행을 하는 나의 입장은 베낭의 무게를 되도록이면 줄여야 하기에 나름대로 터득한 방법이 산행길에 음식점이 있다면 오늘처럼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13:09

끼니 때우느라 한 시간 가까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여 서둘러 마루금 따라 지 능선에 접어 드니

불곡산 정상이 살며시 머리를 내 밀어주는데 근사한 장면 놓칠 수 없어 한 컷 합니다.

13:15

144.2봉에 올라서 지나 온 한송아파트 뒤 마루금을 조망 해 봅니다.

많이도 걸어왔다는 생각을 하며(그러나 여기까지가 5분지2 입니다)

 

144.2봉을 지나 도락산으로 이어지는 임도를 만나 이 길을 따라서 도락산과 창엽굴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합니다.

 

13:34

안내도

 

창엽굴고개에 도착하니 유격장 나타나고 ..

좌측의 군부대 철조망 따라 가파른 사면을 따라 오르니 헬기장과 곧이어 369봉과 임꺽정봉에 오릅니다.

임꺽정봉 오르는 지능선의 헬기장에서 조망 해 보는 도락산

14:05

암릉지대와 저수지

지형이 북쪽사면이라 다져진 빙판길이  상당히 미끄럽습니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불곡산 정상과 덕계리 방향의 사면입니다.

 

369봉에 있는 괴석

임꺽정의 심볼일까?

임꺽정봉

로프구간은 상당히 난이도가 높습니다.

멀리 백운대까지 조망됩니다.

14:17

임꺽정봉의 괴석

369봉의 괴석이 남근석이라면 이 것은 여근석에 비유가 될까?

마루금에 벗어 나 있기 때문에 가 보지 못 하는 아쉬움은  단 거리 산행 나설 때 다시 오겠습니다.

그 때까지 안녕!

암릉으로 이루어진 마루금

오삼삼거리 뒷쪽으로 산성부터 이어지는 마루금이 뚜렷합니다.

 

14:46

이런 사진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좋은데..

여기를 통과하여 대교아파트 좌측 도로를 따르고 횡단보도를 건너 산성으로 접어듭니다.

15:04

공사중에 있는 정자 우측으로 마루금 이어 지는데 산성으로 오르는 사면은

경사도 70도에 가까운 비탈입니다.

15:16

산성에 오르니 사방을(동서남북) 석축으로 쌓은 성터의 출입구 흔적이 남아 있으며

중앙에는   성주무덤으로 추정되는 묘가 한 기 있는데 여지 껏 보지 못한 독특한 구조입니다.

 

묘는 봉분을  중심으로 하여 뒷 쪽으로 반달모양의 석축을 쌓았으며 봉분역시 석축으로 쌓아 봉분 

 정수리 부분에 "墓" 라고 써 놓았는데 아마도 우리 민족이 아닌 한족의 것으로 추정하여 봅니다.

(산성에 대한 유래나 묘의 형태등에 관하여 아시는 분께서는 자문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산성 동쪽방향의 석문에서 조망 해 보는 천보산 입니다.

 

산성의 정상을 중심점으로 하여 어느 곳으로  오르 든지 쉽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경사도가 심한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참고: 산성이 임진왜란 때 축조 된 기록으로 보아 명나라(1529)군이  축조한 성으로 보이는데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역사를 조명하는 차원에서도 이대로 방치만 할 것이 아니라 발굴을 통하여 재 조명되여 지기를 바랍니다)

 

15:53

호명산으로 착각하게 만든 첫 번째 철탑 바로 위에 있는 봉우리 입니다.

 

16:05

호명산에 도착하여 모처럼 확인할 수 있는 안내판에 고마움 느꼈지만

미움으로 변하기 까지는 한 시간이었습니다.

 

참고:호명산은 예전에 호랑이가 울어대는 산이라 하여 호명산으로 명칭 지어졌다고 합니다.

 

16:36

호명산을 지나서 마루금 따라 내려가다 보면 홍복산과  한강봉으로 나누어지는 갈림길 안부사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착각(호명산과 안부에 설치 된 안내판의 불쾌한 느낌은 산행을 끝내고 2일이 지났음에도 지워지지 않은 것은 아직도 공부 더 하라는 마이너님의 호통으로 들립니다)을 하여 한 시간이 넘는 알바를 합니다.

 

나의 변은 이렇습니다

호명산 정상과 한강봉과 홍복산 그리고 수련원(교회의 기도원으로 생각되어짐)으로 교차되는 사거리 안부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과 정상석은 한마음 산악회라는 리본을 사용하는 단체에서 설치 해 놓은 것 같은데 이왕에 설치할 것이라면 한강봉방향의 화살표도 설치하였으면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보며 (이기주의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습니다)으로 내려가는 사거리가 나오는데 유독 한강봉 방향의 화살표는 없습니다.

 

한강봉 방향의 길은 넓게 되어 있지만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로 착각하게 될 정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서 독도를 하지 않고 안내판과 한마음산악회 표시기따라 가다보면 1km전방에 있는 홍복산에 이르게 됩니다.

 

홍복산 정상 아래 7부능선 안부에서 정상으로 곧 바로 치고 오르니 지뢰밭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안내판을 만나서 안부까지 오던길 기억에 되 살리며 되 돌아 내려오는데 혹시나 하는 생각에 뒷 머리 곤두서고 ...

 

안부에 도착하여 베낭에 남아 있는 소주 한 모금 마시며 안도의 한숨 내쉬어 보지만 갈길이 바쁜지라 지체할 수 없어  7부능선 따라서 걸려 있는 한마음산악회 리본따라 7부능선 따라 우회하니 갈수록 삼천포라 망연자실 않을 수 없습니다.

 

나침판 꺼내기 싫고 산길을 무시하고 길 따라 생각없이 걸어갔던 벌이다 생각하여 지도정치 해 보니 남으로 가야 할 사람이 동쪽으로 진행하였으니 어찌할 것인가!

 

고민에 빠져 곧바로 하산하고 다음에 다시할까 하다가 시간을 보니 빠르게 서두르면 울대고개까지 19시까지는 도착할 것 같아 되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견물생심"이요 "조석인다변"이라 했던가!

되 돌아가는 길 좌측의 등로가 보여 지름길인가 생각하여 이 곳으로 좌회하여 진행하니 지도에도 없는 헬기장 나타나(헬기장에서 내려가는 길은 좋았음) 곧장 내려가도 아무도 보는 사람 없으니 울대고개로 하산하였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유혹을 느껴보지만 내 육신덩어리에 죄 짓는 것 같아  반성하며

 "아직도 허물을 벗지 못하는 욕심의 탓이로다"

 

중얼거리고  백하여 지명에는 고개라고만 기록되어 있는 곳에 도착하니 한적한 고개를

넘나 드는 자동차 한 두대 지나가고 집으로 향하는 원주민을 만나 인사를 나눕니다.

17:02

죽도록 알바하고 나서 너무나 아름답고 놓치기 싫은 장면이 있어 한 컷 했는데(헬기장에서)  공룡보다 더 큰 이빨을 닮은 도봉산의 주능선의 아름다움에 현실에 처한 입지를 잃어 버리고 마지막에 남아 있는 소주 단숨에 드리키고 껄..껄..껄 웃어 봅니다.

17:24

해는 서산에 지고 ...

알바구간 되 돌아서 이름없는 고개에 도착하여 한강봉 오르는 길목에  터전 이루고 살아가는 분께 이 곳의 위치가 어디냐고(고개이름을) 물어보나  본인도 모른다고 하니 해는 저물어 가고 갈길 바쁜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합니다.

 

여기에서  어느 방향으로 하산 하던 지 간에  문제는 없을 것이나 다음 구간 이어가는데 이 곳을 찾아오기는 힘들 것이니 울대고개까지 진행하는게 어떻겠소?

 

결론 내려 전주이씨묘를 지나고 한강봉을 항 해 오르기 시작하니 서산에 저 물어 가는 해가 어서오라 손짓을 합니다.

 

참고: 한강봉은 정상에 오르면 한강이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챌봉은  채를 치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채봉이라 하였는데 채가 챌로 변화하여 챌봉이 되었다고 함

 

17:37

한강봉 정상을 앞에 두고 우회하는 등로를 따라서 한강봉의 정상과 꾀꼬리봉 그리고 챌봉의 위치를 어둠때문에 확인하여 보지도  못하고  여기가 "챌봉일꺼야 " 넋두리 해 가며 봉우리 몇 개를 넘어 턱까지 차오른 숨 고르며  427봉에 오르니 산자락 아래의 계곡으로 별로 아름답지 못 한 네온의 불빛이 반겨 줍니다.

 

(대 부분이 향략지대로 내려와 보니 모텔과 기타 유사업종이 이상한 냄새(홍야~홍야)를 자아내고 있음)

18:22

427봉은  오르는 것과 내려가는 사면이 얼마나 가파른 지 밤인데도  △ 닮았습니다.

어찌하여 포장도로 나타 나는데  아마도 여기가 천주교 공동묘지인 듯 합니다.

 

S도로를 직진하여 마루금 밟아서 굷이 굷이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낙엽 쌓인 길을 따라 내려가니 절개 된 도로벽 때문에 곧 장 도로에 내려 서지 못하고 좌측으로 진행하는데 진혁진님 표지기에 안도하며 00(기억하지못함)레스토랑 뒷 쪽 장작패는 곳으로 하산을 완료하니 18시 50분을 지나고 있습니다.

 

버스정류장까지 1km를 "내좀 살려둬"하고 아우성 치는  무릎에게 조금만 참아달라 애원하며 정류장에 도착하여 시간을 보니 19시10분입니다.

 

30분에 출발하는 의정부행 시내버스를 이용하여 의정부역 근처의 음식점에서 소주한 잔에 저녁 해결하고  전철타고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입니다.

 

후기

 

혼자서 하는 산행이라 조금은 외로웠던 산행이었다.

하지만 마음 껏 걸을 수 있어 좋았고 계획 하였던 강북16산 시계종주 5구간 중 가장 긴  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기분 또한 up 되었다.(알바할 때는 화도 나기는 했지만)

 

한북정맥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한남정맥의 그 것과 같은 심정이다 .

곳 곳이 절개되어 앞으로는 지도상에만 남아 있게 될 (특히 메루지 111.8봉 주변의 택지개발과 도로건설로 없어질 마루금의 상처는 누가 치유 해 줄것인가?

 

얼마 전 우리는 일제36년 치하에서 조선민족의 맥을 끊어 놓기 위해 중요한 산맥에 쇳물을 부었다느니 철근을 밝아 놓았다느니 하면서 법석을 떨며 철거를 하였던 적이 있다.

 

그런데 현재는 어떤가?

개발이라는 명분에 산 줄기를 잘라서 도로를 만들고 산 줄기 따라서 철탑을 세워 자연파괴의 극치를 보여주는 위정자들의 행위는 일본의 그 것과 무엇이 다른 가 물어 보고 싶다.

 

개발의 논리에 어쩔 수 없는 절개를 하여야 한다면 터널이나 육교를 설치하여 원 상태를 유지하여 맥을 이어주는 행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나만의 욕심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다.

 

이미 절개되어 있는 곳도 터널형태로 복원되어 동물들이 마음놓고 다닐 수 있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번 산행을 정리하여 본다.

 

추신: 강북 16산 이어가기에 자료와 격려를 주시는 신산경표 저자이신 박성태님과 그 밖에 산우님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출처 : 운해의산방
글쓴이 : 운 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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