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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북16산(시계종주)2구간 -수락지맥 -

㉦정맥·지맥·기맥 記

by 운해 2006. 3. 2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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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06 01 15 (음력2005 1216) 날씨: 흐림

 

산행지: 강북16 8 (시계종주 2구간) 수락지맥-

 

산행자 : 김정령.명옥. 운해

 

산행코스: 덕릉고개~도솔봉~수락산(정상)~608(홈통바위)~사기막능선~도정산~비루고개~400(수락지맥1.2능선갈림길)~용암산~축석령

 

도상거리:20km +어프로치)3km = 산행거리 23km , 산행시간 : 09시간

 

개요

 

수락지맥 2구간은 불암산과 수락산의 경계를 지어주는 덕릉고개에서 시작하여 민족상잔의 아픔을 시작하게 하였던 축석령 구간이다.

 

이 구간의 의미는 산맥의 중요성과 우리가 터전을 마련하고 살아가고 있는 자연환경(인문학적)의 의미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길목이라 생각한다.

 

서울을 지키는 동쪽방위를 남쪽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으로 이어가는 수락지맥의 산줄기는 수 많은 고개의 애환이 말 해 주듯이 우리의 삶과 역사의 수레바퀴에서 많은 신음을 해 왔기에 산행을 하면서 가슴에 와 닿은 느낌은 또 다른 것이었다.

 

이 구간은 다른 분들의 수락산 산행기에  많은 글이 소개 되어 있기에 평소에 본인이 줄겨 쓰는 산행 전란에  풍수지리의 역사와 이해의 내용으로 개요와 산행전의 준비를 대신하고자 함이니 어떠한 오해와 확대해석 없기를 바라며 다만, 한 개인이 산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자연의 섭리를 받아 드리고자 몸부림치는 처절함으로 이해 하기 바랄 뿐이다.

 

1. 風水地理의 歷史와 理解

 

風水地理는 自然과 人間과의 關係를 吉凶禍福으로 聯關지어 說明하는 傳統的인 地理理論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歷史

 

基本的 논리는 산줄기(地脈을 따라서 땅속을 돌아다닌다고 믿는 生氣)를 地上의 生命體와 연계하여 우리가 볼 수 없는 땅속의 生氣를 얻어 福을 얻고 禍를 피하자는 것으로 즉, 나라의 임금이 사는 宮闕과 절(寺刹) 家屋과 무덤()등 死後까지 總網羅하여 地上에서 判斷하는 理論이다.

 

風水地理의 歷史는 언제부터 民衆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 확실한 연대는 모르지만 中國東晉의 郭璞이 쓴 장경에 ( 죽은 사람은 생기에 의지하여야 하는데 그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에 닿으면 머문다. 그래서 바람과 물을 이용하여 얻는 법술을 풍수라 하였다)라는 기록에 처음 나타나는 것이 定說로 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보고 있다.

 

風水地理는 어머니가 자식을 낳고 키우는 本能을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땅()도 萬物을 生城생시키는 能動的 活力을 가졌다는 地母思想은 自然發生的으로 原始時代부터 이어 져 왔고 이러한 思想은 전국시대(인도문명은 천상북로와 천상남로의 두 줄기를 통하여 중국에 전파되었고 이 것은 또 다시 한반도를 통하여 일본까지 전하여 진다)에 양성화 되기 시작한  陰陽五行論과 어울려 具體的인 風水理論으로 體系化 되어가기 시작했고 漢나라 때에 와서 道敎의 設立과 더불어  發展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自生的으로 風水思想이 形性되었지만 中國과의 交流가 시작되면서 三國時代에는 中國으로터 風水地理가 傳來되었고 統一新羅에는 道詵이 唐나라의 이론을 수립하여 발전시켰으며, 高麗時代에는 조정과 민가에도 보급되었고 太祖王建은 訓要十條에도 風水地理에 관계내용을 담았다.

 

또 한 朝鮮太祖 성계는 民衆에게까지 파고든 風水思想을 이용 해 무학대사로 하여금 漢陽에 궁궐터를 잡게 해  朝鮮建國의 安定를 도모하였고 日帝時代에는 우리 산줄기의 중요한 脈에 쇳물과 파이프를 박아서 民族의 氣를 말살시키려고 했던 日本의 만행과 現代에 와서는 정00스님이라는 자가 鄭鑑錄에 예시한 圖讖思想을 근거로 하여 정도령이 계룡산에 都邑地를 정하여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豫言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 했던 시절이 있었다.

 

2) 理解

 

풍수지리는 자연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기 시작한 사람들이 하늘의 변화(일기)와 땅의 지기를 조화롭게 다스려 가면서 편하게 평화스런 삶을 누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 하였다.

 

 

風水地理는 땅()과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죽(死者)은 자의 무덤까지도 중요시한 것을 보면 本質的으로 生氣의 感應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땅속에는 일정한 경로로 地氣가 흐르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땅의 지기(生氣)를 살아가면서 얻으며 죽어서는 땅속에서 지기를 직접 받아드리고 죽은 사람이 받아 드리는 生氣는 살아있는 사람이 받아드리는 것보다 더 크고 確實하여 後孫에게까지 그대로 이어 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것을 同氣感應 또는 親子感應이라 하여  땅 속의 시신이 吉氣에 感應하면 直系子孫이 福을 누리고 그렇지 않으면 子孫이 쇠미(衰微)한다고 믿었다.

 

 집터(家屋)를 잡을 때도 같은 論理를 적응하여 궁궐. 마을터 등을 잡는 陽氣風水. 사찰과 집터등을 잡는 陽宅風水.墓터를 잡는 陰宅風水등 3 가지로 구분 하였는데 이 것은 현장의 地勢가 넓고 좁은 차이에 대한 구분일 뿐 明堂의 차이에서는 구분이 없다.

 

풍수지리의 主目的은 명당(길기가 모여있는 점)을 찾는데 목적을 두었으며 明堂을 찾는데 사용하였던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산세의 地形에 따라 형국론. 간룔법. 장풍법. 정혈법.득수법.좌향론. 소주길흉론등의 원리를 적용하였는데 이와 같은 원리는 편의상으로 구분되었을 뿐, 명당자리를 찾는 데는 모든 原理를 綜合的으로 적용하였다.

 

전자에 열거한 7가지의 방법 중 집터와 묘 터를 잡을 때 사용하였던 방법론 중 장풍법(左靑龍.右白虎.前朱雀.後玄武)을 보면 풍수지리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혈(산세의 흐름이 남향인 경우 동쪽을 靑龍(), 서쪽을 白虎(호랑이), 남쪽을 朱雀(봉황) 북쪽을 玄武(거북이)로 보았다 (방위를 지키는 신성한 동물의 신)

 

이제 실전으로 들어가 서울의 산세를 살펴보면

1) 北岳山을 현무(景福宮이 세워지는 혈장(明堂)을 지키는 주산)로 보았고 ()

 

2)冠岳山을 주작(주작은 안산과 조산으로 나누어 지는데 안산은 주산과 조산의 가운데에 위치한 산으로서 밥상과 같이 낮게 솟아 있어야 한다)으로 보았고 ()

 

3) 仁王山을 우백호(주산(북악산)과 조산(관악산)을 수호하는 산)으로 보았고 (西) 

 

4) 낙산(예전에는 山이었으나 도심의 개발로 없어져 현재는 낙산공원으로 되어있음)을 좌청룡(동쪽에서 주산과 조산을 수호하는 산)으로 보았다 ()

(안산은 남산을 말함인데 무학대사가 이 곳에서 궁궐터를 最終的으로 확정하여 성계에게 보고하였다고 전해 져 오고 있다)

 

 3)도참사상

 

圖讖思想은 豫言을 믿는 思想 즉, 世運과 人事를 豫言하는 것을 믿는 사상을 도참사상이라 하며, 중국 朱나라 말 기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자 百姓들이 平和를 갈구하며 살길을 찾아 방황하게 되자 이러한 混亂의 틈에서 自然的으로 民衆의 欲求에 呼應하여 불같이 일어난 것이 도참사상이며 陰陽五行說과 天人感應設 그리고 風水地理說 등을 混合하여 天變地異를 현묘하게 설명한 것이 도참사상이다.

 

이상은 本人이 알고 있는 風水地理에 대한 見解를 披瀝한 것이므로 확대해석(종교적) 하지는 말기 바라며  學問的으로 접근하고 싶은 사람은 專門家들의 의견이나 풍수지리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기 바란다.

 

여기에 記述한 風水地理에 관한 본인의 짧은 所見은 산행을 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自然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山勢를 살펴보며 주변의 사찰이나 文化財들을 관찰할 때 建築物이 어느 방향을 택하여 建築 되었는지 또는 地形은 어떤지를 살펴볼 줄 안다면 山行의 재미는 배가 될 것이며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산 행 글

 

이른아침에 베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축제를 여는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주말이면 다람쥐 체바퀴 돌리듯 산으로 떠 나는 남편의 산중독에 투정 부리는 아내의 모습이 새색시같은 모습으로 떠 올려 지는 것은 미안함 때문이리라.....

 

산행날 아침 07시이면 기댜려주는 사람 없는데도...

 어김없이 부평역 풀랫홈에서 도착하여 자판기에 300원 지불하여 신고식 치루고 있으니  김정령님 동행하고 구로역에서 황명옥님 동행을 합니다.

 

 오랫만에 만나는 마음에 반갑기는 하지만 자연이 부르는데 어찌 반가움보다 더 할쏘냐 !

싶어서 먼저 가 창동역에서 기다리라 해 놓고 多不有時에서 의식을 치루니 날아갈 것 같은 상쾌한 기분으로 다음에 오는 전철을 타지만 성북역이 종착역이라 어쩔 수 없이 회기역에 내려서 의정부행 바꿔타고  창동역에 도착하니 추위에 떨며15분을 기다리고 있었 다는  두 양반에게 마음에도 없는 "미안합니다" 외치고 시내버스를 이용 해 덕릉고개에 도착하니 09시 10분입니다.

 

곧 바로 동물 이동로를 통과하여 두 여인네 앞 세우고 산행을 시작하니 뒷 짐지고 걷는 건방진 양반의 흉내 내는 모습인 듯 하여 선두로 복귀하여 도솔봉까지 단숨에 오르니 마음속에 겉 돌던 사기(나쁜기운)가 빠져 나갑니다.

 

수락지맥도

실제 진행구간도

 

사기막 능선에서 조망 해 보는 수락산 능선

(멀리  불암산이 조망됩니다)

09:33

이른 아침인지 아직은 등산객이 없습니다.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오르고...

첫 번째 만나는 철탑을 지나서 불암산을 조망할 수 있는 넓다란 바위에 오르면

이 것 만으로도 수락산 등정의 절반은 성공한 셈이지요!

10:03

 

540봉

수락산의 여근바위

수락산의 주능선

장군봉(일명; 하강바위)

추와 중심

동쪽의 주등로는 빙판으로 갈 수가 없네요.

오른 쪽 사면을 따라 우회를 하는데 오늘도 리지팀들에게 고마움 전합니다.

10:47

마루금 고집하다가 죽는 줄 알았네요..

청학동 방향은 빙판길이나 산행에 조심하여야 합니다.

사기막능선에서 조망 해 보는 불암산과 수락산

사기막능선

자네팔자도 만만치 않네 그려!

524봉

 

수락산(수락지맥)의 지능선

동막골 방향으로 지맥에서 분지되는 능선입니다.

608봉

 

북쪽사면은 홈통바위를 타고 동막골로 향하는 방향이고

동쪾방향이 사기막능선을 이어서 축석령까지 이어지는 수락지맥입니다.

뚜렷하게 이어지는 수락지맥

앞에 보이는 철탑에서 우측의 등로를 따라 두 번째 철탑50m 전에서 좌측의 능선으로 이어가야 합니다.

첫 번째 철탑에서 곧 장 내려가도록 유혹에 빠지면  우리처럼 알바 합니다

아랫 쪽은 암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원암 방향의 암벽

어느 곳이나 암벽장으로 훌륭합니다.

12:20

사기막고개

사기막 마을로 넘어 가는 고개마루로서 이 곳에서 쉬어 가는 길손들의 애환이 서려 있기 시작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불려 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 됨.

 

숫돌고개에서 아래 사진에 나오는 의정부~퇴계원구간 신도로4차선 까지는 500m정도 되는 거리인데 점심을 먹기 위해 약간 우회하여 추어탕집에 가는데....이 집의 반찬과 직접 담구는 옥수수 막걸리(동동주)가 일품입니다.

13:39

숫돌고개(현재는 4차선 도로 인데 양쪽의 되 메임을 하여 동물 이동통로로 활용 되기를 바랍니다)

옛 날에는 이 곳에서 숫돌(낫이나 칼을 가는 재료의 돌)이 많이 난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 함.

 

※ 더 바란다면  산 줄기 이어가는 우리들한테 다리품 팔지 않게 도와 주는 대통령 나오면 내 한 표 줄끼다... ㅎㅎㅎ

13:55

박주고개

 

옛날 이 곳에 살던 어느 사람이 산이 무너지면서 쏟아 지는 돌을 받아다 이 곳에 쌓기 시작하면서 박주고개로 불리던 명칭이 세월이 지나면서 "주'가 "수로 발음이 바뀌면서 현재는 박수고개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박주고개에서 도정산 오르는 안부에 샘터가 있는데 이 곳에서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있어 박주고개에 대하여 물어 보았으나 30여명이 넘는 많은 인원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아는 분이 한 분도 없었습니다.

 

자기가 사는동네유래는 알고 살아야 하는데....

14:24

 

깃대봉에 오르지만,

산의 원 명칭이 도정산 이었다고 짐작케 하는 이 설명서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왕지사 정확한 명칭이 밝혀졌다면 산의 내력을 밝히는 비석 세워서 민족의정기 바로잡아 주기를 관계기관에 요청합니다.

 

참고로 이 코스는 학생들이 독도법과 지도정치를 배우고 숙달하기 위한 교육의 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하루빨리 흔적을 지워서 일제시대의 부끄러운 역사가 미래를 짊어지고 나아 갈 후배들에게 아픈 상처로 남아 있지 않기를 바랍니다.

도정산에서 비루고개까지 이어 지는 소나무 숲 낙엽길을 걷는 기분은 이쁘게 깔아 놓은 융단위를 걸어가는 제왕이 된 기분입니다.

유리온실

 

시간상 관찰하지는 못 했지만 규모가 상당이 큰 것으로 봐서는 개인 소유는 아닌 듯 합니다.

제2의 수락지맥의 주봉이라할 수 있는 소리봉입니다.

 

도정산 지나서 비루고개로 내려서기 전에 있는 수리봉에서 북동쪽 30도방향 건너쪽에 있는 봉입니다.

(참고로 수락1지맥과 2지맥은 400봉 갈림능선에서 용담천을 따라 양 뱡향 나란히 이어지는 쌍동이 능선입니다)

15;20

비루고개

 

북쪽의 경주최씨와 문화유씨의 합장묘가 있는 능선으로 접어들면 여러기의 묘를 지나 우측 사면의 잘 정돈 된 등로를 따르다보면 인가가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7부능선으로 계속하여 이어짐) 이 등로를 이용하여  주능선에 오르게 됩니다.

 

주 능선에 오르면 광릉수목원의 이름에 걸 맞는 늘씬하게 자란 낙엽송 밭이 주능선 좌측으로 조성 되어 있고 우측의 안부에는 수락 1~2지맥 사이에 하천(용담천)이 흐르면서 물줄기 양 쪽으로 우리삶의 터전인 전답과 가옥들이 형성 되어 있습니다.

 

참고: 비루고개에 대한 유래는 확실하게 모르겠으며 다만, 의정부의 송산동과 남양주시 별내동으로 넘나 들던 고개라고 합니다

16:16

수락1~2구간(축석령에서 시작하여 용암산을 지나 이 곳(400고지의 무명봉임)은 삼각점을 기점으로 나누어져 1지맥은 불암산을 지나 아차산으로 2지맥은 퇴모산을 지나 퇴계원으로 이어갑니다.

16:41

북서쪽 330도방향으로 꺽여지는 마루금을 따라 5분여 내려서면 광릉수목원 외곽 임도를 만나는데 임도를 따라서 500m진행하여 좌측의 용암산으로 접어듭니다.

 

용암산 중턱에서부터는 맷돼지와의 전쟁이 시작되어 혼자서 하는 산행은 무리가 따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용암산 중턱에(비루고개에서부터는 등산객을 만나보지 못했으며 용암산부터는 맷돼지들이 지나간 흔적만 보일 뿐 사람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이상 야릇하게 생긴 바위가 있어서 나름대로 연구를 하여 보지만 이름을 붙이기에는 그럴 것 같아 지나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방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립니다.

 

반가운 마음에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 건네는데 들려오는 대답은 능선 왼쪽의 계곡으로 줄행랑 치는 맷돼지의 소리입니다.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말 이럴 때 쓰는가 봅니다.

 

지난 여름청 우중에  백두대간 설악산 구간에서 맷돼지와 조우한 이후로 아직도 이 놈들 생각하면 소름끼치는데 오늘 또 다시 만나게 되니 앞으로 진행할 일이 걱정입니다.(다시 만나지 말아야 하는데)

 

용암산 정상에 도착하니 군시설(통신물로추정)물로 보이는 구조물이 있고 좌측으로 껵여지는 상당히 된 비탈길의 내림에 후답자를 위한 표시기 하나 걸었습니다.

용안산 중턱에서 시작한 맷돼지의 흔적은 무림리마을 뒷산(3km구간)까지 이어 지며 곳곳에 파 헤쳐진 흔적이 쟁기로 논을 갈아놓은 듯 비여 있는 공간이 없습니다.

 

맷돼지의 흔적에 신경쓰면서 용암산의 가파른 비탈을 내려 오다보니 마루금을 이탈하여 묘가 있는 안부로 내려서게 됩니다. 되 돌아서 다시 마루금 찾아서 밟아가니 철탑이 나타나지만(철탑 뒤쪽200m쪽이 정상이며 의정부시와 포천군의 경계임)철탑의 안쪽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무림리2구 마을뒷산으로 마루금 따라갑니다.

 

뒷산을 넘으니 민가가 보이기 시작하지만 285봉은 저수지를 만들고 있는 뒷산으로 독도가 되어 뒷산으로 올라서 마을쪽으로 내려와 포장된 도로를 따라서.....

17:31

전주이씨 사당과 묘가 있는 이 곳에 당도합니다.

 

여기에서 계속하여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무림리1구 마을 뒷산의 마루금를 따라가기 위해 마을로 접어들어 뒷 쪽에 보이는  산으로  오르니 제주고씨 묘지를 시작으로 하여 공동묘지가 나타납니다.

 

공동묘지를 지나 쳐 마루금 따라 가니 능선의 왼쪽으로 귀락마을이 보이고 축석령에서는 유명한 집으로 소문나 있는 오리사냥집을 바라보며 능선을 따라서 내려오니 귀락마을 안내석이 보입니다.

 

여기에서  구도로를 따라 귀락마을석이 있는 삼거리를 지나서 축석령에 도착합니다..

18:10분

 

날씨가 어두어지는 관계로 터널위의 마루금을 밟지는 못했지만 다음구간(축석령에서 울대고개까지의 한북정맥 일부구간)때 이어가기에 아쉬운 마음 달래고 들머리와 날머리 확인차(이 터널위에는 동물이 다닐 수 있도록 한북정맥의 마루금과 수락지맥의 마루금이 이어져 있어 덕릉고개의 동물이동로에 이어 수도권에서는 두 번째로 만나보는 줄거움이었음)터널위에 걸어 가는데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또 한 번 기철초풍하고 도망치 듯 내려 옵니다.

 

이 곳에까지 맷돼지의 흔적은 이어 져 있었고 무림마을 지날 때 어느분께서 맷돼지 때문에 산에 오르지 못 한다고 하는 말이 이제서야 실감이 납니다.

 

산행을 마감하고 축석령 도로변에  있는 오리농장주인에게 교통편 물어보니 귀락마을쪽에서 의정부행 마을버스가 있으며 의정부방향 2km전방에 도봉역까지 가는 서울좌석버스가 19시30분에 있다고 하네요

 

협의하여 아랫마을까지 걸어 내려가서 저녁을 먹고 서울행 버스를 타기로 하였지만, 막상 도착하고 보니 먹을만한 음식이 변변치 못 하여 지나가는 택시(의정부북부역까지 7500원)를 이용하였고 북부역 근처에서 의정부의 유명한 부대찌개에 소주한 잔 곁 드리고 전철을 이용 해 집에 도착하니 22시가 지나고 있습니다.

 

 

후기

 

 

축석령에 도착하여 1~2구간으로 나누어 진 수락지맥을 이어 오면서

 산 줄기 따라 왼 쪽의 서울시와 오른 쪽의 구리시와 남양주시 그리고 의정부시와 남양주시의 경계선과 도심개발의 형태(비록 일부의 지역이지만)를 관찰할 수 있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햇빛의 영향이 너무나 뚜렷한 서울방향의 양지와 같은 느낌과   구리시와 남양주시 그리고 포천의 일부 구간의  겨울잠을 자는 음지의 지형은 엄청 난 충격으로 나에게 다가 왔었다.

 

 지구의 자전에 따라서 음지가 양지 되는 봄이 오면 용암천계곡에 지천으로 피여 날 야생화와 나비의 향연 그리고 인간과 동물의 어울림이 우리를 반겨 줄 것이라 생각하며 걷는 오늘 산행길의 줄거움을 어디에 비유하랴! (더욱이 어여쁜 두 분 여성산님이 동행 해 주시니)

 

갈참나무숲과 소나무숲이 연이여 지는 이 능선은 누구에게도 공개하고 싶지 않은 비경의 연속이다.

(육산을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박주고개에서 시작하여 용암산에서 광릉수목원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산행을 권장 해 본다)

 

추신:

 

수락지맥은 축석령에서 시작하여 아차산을 거쳐 어린이대공원 후문으로 이어 져 중량천에서 그 맥을 다 하는 것으로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는 되어 있지만(이 부분 개인적으로 아차산부터 산행을 하엿기에 신산경표 著者이신 박성태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다) 도심 개발로 인하여 정확한 산줄기 찾기가 힘들것으로 예상되어 아차산에서 어린이대공으로 이어 지는 구간은 향토사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다음기회에 답사할 예정이다.

 

의문점?

 

1구간 산행 때 기록하였던 워커힐호텔 뒷 쪽 아차산성의 끝 머리에 해당하는 구리시와 서울시 경계선을 수락지맥의 마루금 끝 지점으로 보고 있는 분들(본인은 이 지점을 수락지맥의 끝지점으로 보고 있음)과 지속적인 토론을 하고 싶은 것 또 한 사실이다.

 

 

 

출처 : 운해의산방
글쓴이 : 운 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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