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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북16산 (시계종주) 5구간 - 도봉지맥 - (終)

㉦정맥·지맥·기맥 記

by 운해 2006. 3. 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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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06년 02월 05(음력 :01 08) 날씨 : 맑음

 

산행지 : 강북16 8(시계종주)5구간 북악터널~응봉까지

 

산행자 : 운해의산방 회원님들과 신년산행으로

 

산행코스 : 국민대정문~북악터널~북악산(스카이웨이)~자하문~인왕산~사직터널

~남대문~남산~버티고개~응봉~큰매봉~응봉역

 

도상거리 : 15.5km .  산행시간 :08시간14분

 

개요 

 

도봉지맥의 마지막 구간인 5구간은

북악터널에서 시작하여 북악산, 인왕산, 남산, 원래는 하나의 봉으로 이루어 진 응봉의 마지막 봉인 큰 매봉에서 끝 맺음을 하는 산줄기이나 도심의 팽창과 개발로 절개되어 여러 개의 봉우리 형태로 남아 있는 응봉은 각 구청의 관할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게 불려지고 있어서 응봉의 주봉이라 할 수 있는 정상은 용산구에 의 해 대현산으로 불려지고(중구와 성동구에서는 매봉으로 불려지고 있음) 있고 성동구 관할의 봉우리들은 금호산. 해병대산, 대현배수지공원. 매봉공원. 응봉공원 등으로 불려지고 있다.

 

북악산(342m)

 성계가 무학대사에게 命하여 이씨 조선의 도읍터로 정 하고 경복궁(조선의 정궁)을 지을 때 풍수지리에 의해 현무(북쪽을 수호하는 거북이)로 보았고 인왕산을 우백호 낙산을 좌청룡 남산을 주작(공작)으로 하여 성벽을 쌓아 궁궐을 짓기로 결정할  무학대사는 북악산은 한 쪽으로 기울어 져 있는 모습이 안전성이 없어 보이는 산이라 하여 반대하고 궁궐을 인왕산 쪽에 짓기를 권유하였으나, 경복궁을 현재의 위치에 짓기를 강력히 주장하는 정도전의 청이 받아 드려져  경복궁 앞에 해태상을 세워 관악산의 화기를 피하는 것으로 타협하여 경복궁을 지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백악산(백색인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하였으며 경복궁은 이씨 조선이 들어선 이 후로 지금까지 개방된 적이 없었으나 4월 달부터 단계적으로 개방을 한다고 한다

 

경복궁의 서 쪽에 위치하고 있는 인왕산(338m)

 산 전체가 화강암 바위로 형성되어 암반이 노출되어 있는 특이한 산이며 주 능선을 따라 삼각산의 비봉방향과 자하문을 지나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성벽이 축조되어 있으며 도심으로는 남산을 지나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성벽과 곳 곳에 약수터가 있어 암반에서 흘러 나오는 약수물의 맛이 일품인 산이다.

 

인왕산은 근대에까지도 호랑이가 기승을 부리고 출몰하는 깊은 산으로 당시에는 백성들이 무서워 하였기에 궁궐에서 인원을 동원하여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록이 전해 져 오는 것을 보면 그 들의 터전을 빼앗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양육강식의 지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청계천의 발원지이기도 한 인왕산은 발원지가 자하문 근처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정주영회장의 자택(지금은 한보철강 정00회장이 임대하여 거주하고 있다는 하는데 맞는지?)의 샘터를 발원지로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부분의 물 줄기는 남서쪽으로 흘러가는 것이 순서이나 청계천은 산맥의 형태를 따라 동쪽으로 흘러가는 특이한 형상으로 이를 역수라 한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중량천과 만나 한강으로 합수되어 서해바다로 흘러간다.

(참고로 청계천의 길이는 3670m이고 최대폭은 84m라고 함)  

 

남산은

남산은 3.1운동 때 사용하던 봉화대가 유명하며 지금은 도심의 팽창으로 서울의 한 중앙에 있어

 산이라는 개념보다는 공원이란 명칭이 더 어울리는 남산공원은 독립운동가들의 비가 세워져 있어 우리에게 역사의 교훈을 주고 있으며 특히 안중근의사의 기념관과 어린이 회관 남산 식물원 등이 있다

 

이 밖에

응봉과 큰 매봉은 조선시대에 왕들의 사냥터로 이용 되었으며 큰매봉은 산세가 매를 닮았다고 하여 매봉이라고 하는데 하나로 되어 있던 산들이 도심개발로 인해 여러 개의 산으로 분리되어 응봉산,매봉산, 금호산.대현산 .해병대산 (엄밀하게 말하여 공원의 명칭이 되어있음) 등으로 불리고 있으나 예전에는 모든 공원들이 하나의 산 줄기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응봉으로 불리었다

 

산행전

 

북악산의 마루금을 밟기위해

조선왕조가 들어 선 이후로 백성들에게는 한 번도 입산이 하락되지 않았다는 북악산을

어떻게 오를 것인가!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강북16산1구간을 시작하는 때 부터였다.

 

여기저기 수소문 하여 입산할 수 있는 길을 알아 보지만 돌아 온  대답은

NO 다

 

한 가지 희망을 가진 것은

얼마 전 중아일보 기사에서 올 4월부터 북악산을 단계적으로 개방을 한 다는 기사를 보고

관계 기관에 민원신청 했으나 여기의 대답도 NO다.

 

산행전 날

이 문제로 고민하는 나에게 "모조건 진행하고 보는 거"라고 하면서 소주나 한 잔 하자고

연락 해 주는 선배의 청에 서울에 가서 거나하게 한 잔하고 전철을 타고 귀가를 하는데

도봉산으로  등산을 다녀오던 한 무리의 산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 눈에 보이기는 무늬는 좋지만 아직 초보의 딱지를 떼지 못하신 분들로 보이는데

이 분들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 재미 있어 여기에 몇 자 옮겨 보기로 한다.

 

"산에 다니시우"

"아! 예? 간혹 다니고 있습니다"

"어라, 산 친구시네. 간혹 가면 운동이 안 되니 일 주일에 한 번씩은 다녀야 합니다.

 그래 어느산에 다니시우?"

 

"아! 예?백두대간 하다가 요즘에 강북16산 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한 분이 거드는데..

 

" 백두대간은 맥주 체인점아녀? 조키 뭐.. 하는 체인점과 쌍벽을 이루는 곳인디 생맥주 좋아하시나벼?"

한다.

 

이럴 때 어떻게 답을 해야할지?

남감 해 져서

 "아!예?" 로

얼버무리고 나서

"잘 가세요"

 

인사로 마무리 하지만 씁씁 해 지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더라.

그래도 백두대간은 맥주체인점으로 알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순수한 분들이 있어서 세상은 살맛 나는 것 !

 

산행글

 

도심산행이고

산행거리가 짧은 지라 부평역 출발 시간을 07시30분으로 잡으니 아침에 준비하는 시간이 널널하여 모처럼 곰국에 아침을 해결하고 부평역에 나가니 12차까지 대간을 함께 하였고 현재 진행중인 무심선배님이

도착하시고 곧 이어 바람님 부천에서 월남님이 마지막으로 합류하여 국민대학교 근처의 산행 들머리인 북악터널로 향한다. (형제매표소에 입장료 지불한 것까지만 기록함)

 

언제나 그렇듯 시계산행에서 어려운 점은 절개 되어진 도로를 건너는 것과 통제구간을 우회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이라 오늘도 외외 없이 북악산 까지는 온 머리를 짜내어 씨름을 해야할 것이다.

 

본의 아니게 사격장을 통과하여 신분증 제시도 당하고 사진 촬영과 이 곳의 기록은 절대로 하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받고 군인들의 안내로 팔각정으로 향한다.

 

북악터널에서 북악산 구간은 사적으로 한국의 산하에 글을 처음으로 올리신 분과 통화하여 코스는 알고 있었으나 이 분의 닉네임도 공개하지 않기로 하며 다만 도움에 감사드리고자 한다.

 

아래 사진 중 북악산 팔각정에서 담아 온 보현봉과 삼각산의 비봉능선만 공개하기로 하며 사직공원까지 산행기록은 접기로 한다.

 

삼각산 전경

우측의 제일 높은 보현봉과 02위의 형제봉으로 도봉지맥의 마루금은 이어지집니다.

남산에서 조망하는 서울시 전경

지난 3.1절 남산 나들이 길에 촬영 한 것임.

박성태님의 신산경표 지도와 위성사진으로

 5구간으로 나누어 진행한 아차산에서 응봉까지 강북16산 102km의 진행도!

5구간 진행도

한 장에다 편집한 것임.

진행지도

북악터널

08:48분 형제매표소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09:54분

매표소에서 팔각정까지 진행코스는 기록하지 않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군부대 초소에서 신원조사하고 일절 공개하지 않기로 하였기에 팔각정에서부터

 산행기록을 정리합니다.

 

혼자서 진행하는 답사길에 동행 해 주신 산방의 백두대간 종주팀에게 감사 드립니다.

북악산 팔각정에서 조망 해 보는 보현봉의 웅장한 모습

10시33분

자하문 지나서 조망하는 북악산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형태가 뚜렷합니다.

 

자하문 촬영을 끝으로 인왕산구간도 사진이 없습니다.

창의문

10시43분 우리에게는 자하문이란 명칭이 더 친숙하지만 김신조의 청화대 진입루트로 유명하지요.

 

창의문

조선왕조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태조4년부터 도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다.

도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과 그 사이에 4개의 작은문을 만들었는데 성곽의 길이는 당시

영조 척으로 59500척(약17km)였다고 한다.

 

창의문은 성곽의 서북부에 위치하여 고양. 양주방면으로 통하는 관문으로 일명.

자하문이라고고 한다.

 

그러나 태종16년에 이 길로 통행하면 왕조에 불리하다는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폐문 되었다가

 중조 원년에 다시 열였다고 한다.

 

인조반정때는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안으로 들어 갔으며 임란 때 불타 버렸던 문루는

 영조 때 재건하고 1958년에 보수 하였다 한다.

 

근대에는 북한의 사주를 받은 김신조 일당이 이 문을 통하여 청화대로 진입을 시도할 때 

긴급사항을 전달받고 출동한  당시 종로경찰서장이 순직한 곳이기도 하다.

북악산에서 이어지는 성곽은 인왕산을 지나고 남대문을 지나서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성곽의 유래.

사직터널까지 이어져 오는 뚜렷한 성곽은 복원되어 있지만 여기서 부터 남산까지는

 복원이 불가능하게 교회와 학교의 건물들이 마루금(성곽)위 자리잡고 있어 성곽을

축조할 때 사용 되었던 축석의 일부분만 담장을 설치하면서 함께 사용한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을 뿐이다.

12시32분

인왕산의 끝 자락에서 사직터널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위치에(북악스카이웨이와 연결되는 도로변)서

초병을 서고 있는 군인의 도움으로 성곽의 외벽을 따라 진행하여 (강북삼성병원쪽으로 마루금은 이어져 있으나) 진행 미숙으로 광화문 쪽으로 좌회되어 대한축구협회가 있는 경희궁로를 따라 정동 mbc의 마루금에 접어 들기 전 만나는 흥국생명의 조각물.

 

 너 왜!

 알바하고 다니느냐고. 혼을 내는 듯 합니다.

흥화문

 

조선시대 궁궐 경희궁의 정문이다.

(광해군 9년 경희궁을 창건할 때 세운 대궐의 문이다)

이화여고 야외무대

 

다시 마루금 찾아 드니 창덕여중학교가 버티고 있는데

정문으로 들어가 이화여고쪽의 후문을 찾았으나

 담벽으로 막혀 있어 되 돌아 나와 이화여고에 도착합니다.

 

한 참 식사중에 있는 담당자에게 사정설명하고 학교를 통과할 수 있느냐?

 물어보니 평일에는 안 되지만 오늘은 일요일이고 하니 허락하겠다고 합니다.

 

감사한 마음 전하고 이화여고을 통과하는데

 (예전에는 이화고녀 .경기고녀. 평양고녀 등 중국식 표현으로 불렸음)

 100년 전통의 명문답게 고풍스러운 교정이 평안함을 안겨 주지만 ,

 

산꾼의 마음이란게  오솔길도 좋으니 마루금만은 남겨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13시03

중앙 조인스닷컴을 지나고 남대문을 통과하여 남산을 앞에 두고 힐튼  건너편 음식점에서 

설농탕에 점심을 해결한 후 37년전 수학여행으로 왔었던 남산의 어린이회관을 회상 해 보며

식물원에서 원예를 감상 해 봅니다.

자연의 그 것만은 못 하지만 화사한 색깔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줍니다.

망측 스럽기도 하지만

배 고품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어쩔 수 없나봐요?

14시34분

타워에 올라가 보자는 일행의 요구에 입장권을 구입하려고 줄을 서고 보니 1인당 7,000원이랍니다.

참고로 식사를 포함한 1인의 요금이 37.000원이라니 이 것은 선진국 맞지요?

 

오르는 것!

포기 하였습니다.

위성사진으로 보는 서울의 산수

풍수에 문외한 인 내가 보아도 경복궁의 자리에 집 짓고 싶네요?

 

참고: 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빠지지 않아야 할 부분이 종묘와 사직이라 하는데

종묘는 왕들의 영정과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사직은 토지와 곡식에 제사 지낸 곳이라 한다

 

※자세한 사항은 문헌을 참고바람

14시58분

남산을 내려 와 버티고개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小門이 초석에 

 기록만 되어 있습니다.

타워호텔 뒷 쪽으로 마루금은 이어져 있으나 약수동 방향에서 절개 되어 있기 때문에

한남동으로 이어 지는 도로를 따라서 진행하여 남산아파트 3동 옆의 테니스장 입구를

 들머리 하여 응봉에 오르기 시작 합니다.

 

응봉의 정상은 용산구와 중구,

성동구의 세 개의 區가 나누어 지는 곳인데 각 구에서 부르는 명칭이 다릅니다.

 

용산구와 중구는 대현산이라 부르고 성동구는 매봉산이라 부르는데

원래는 "응봉"인 하나의 산이 도심 개발로 절개 되어 여려개의 봉으로 나누어지다 보니

구 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것은 하나로 정리 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이는데

각 구마다 양보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응봉에서 큰 매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에 중구와 성동구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區의 특성을 살려서 공원화 하였는데 중구에서 세워 놓은 안내판과 성동구에서 세워 놓은

안내판이 판이합니다.

 

성동구의 안내판에는 중구지역의 상세도가 보이지 않고 반대로 중구지역의 상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행정구역을 배려하는 양보심이 중요할 때라 생각합니다.

 

더 이상 論 하다가는 시비의 대상이 될 것같아 여기에서 접고...

박성태님의 산경표와 진행지도에 표시 되어 있는 응봉의 정상에서 나침판으로 확인하니

 북위30도 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져 있습니다.

 

마루금을 따라서

산책을 나온 중구의 구민과 성동구의 구민들과 함께 큰 매봉을 향 해 산행을 진행 합니다.

동호대교에서 약수동으로 이어 가는 금호터널(금호산으로 부르고 있음)을 지나고

 

해병대부대가 있는( 해병대산으로 불림) 공원화 되어 있는 봉우리를 지나 대현중학교에서

논골사거리를 향 해 걸어가는 우리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는 주민들의 표정이 재미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우리는 도심공원에 등산복 자랑하는 사람들로 보였을수도)

남산아파트3동 옆 테니스장 입구를 이용하여 응봉에 오릅니다.

 

한남대교에서 서울로 들어서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고개(버티고개)로 왼쪽은

동국대와 장충체육관 방향이고 오른쪽은 약수동으로 진입되는 삼거리입니다

좀작나무

15시22분

응봉 정상에서 금호동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좌측은 중구요.

우측은 성동구입니다.

지나 온 남산

  

16시07분

대현배수지를 지나 논골 사거리를 건너서 벽산아파트 옆길을 이용하여 큰 매봉에 오릅니다.

큰 매봉에는 마을 주민들을 위한 배트민턴장이 조성되어 있으나 관리되지 않아 쓰레기천국입니다.

 

큰 매봉에서 우측으로 (서쪽방향)으로 진행 하여야 했으나  무학여고방향

극동아파트쪽으로 내려가 다시 되 돌아서 팔각정이 있는 응봉에 오르기 시작합니다.

응봉으로 오르는 돌게단

 

봄이면 개나리 천국이 되는 이 곳을 응봉이라 부르는 것은 응봉의 정상과

이어져 있는 산줄기이나 도심개발로 절개되어 여러개의 봉우리로 나누어 져 있기에

 응봉에서 분리 된 산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가 하나의 산이기에

응봉으로 부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16시34분

팔각정이 있는 도봉지맥의 마지막 마루금을 밟으며 102km에 달한 강북16산의 5구간

산행의 종지부를 찍습니다.

17시02분

응봉역에 도착한 시간입니다.

성동구청 홈피에서 인용함

 

응봉은 현재 이러한 지형으로 변화 되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 있는 것은 용산구와 중구 그리고 성동구에서  각기 다르게 부르고 있는

 현재의 명칭은 이 곳의 역사와 지리를 모르는 분들에게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이며

 

세월이 지나고 나면  우리 후손들은 옛지명은(물론 문헌에는 남아있겠지만) 잊어버리고

지금의 명칭을 사용하겠지요?

 

산행후기

 

2006년 01월08일부터

아차산을 시작으로 하여 응봉까지 102km(GPS트랙측정거리)를 5구간으로 나누어 진행 해 온

강북16산 시계종주 (본인이 임의로 정한 명칭이므로 착오 없기바람)를 무사히 마친 지금의 기분은 홀가분함 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것 같다.

 

그 것은 아마도 민족의 유산으로 남아 있어야 할 성벽의 훼손과 도심의 개발로 무차별하게 잘려지고 파괴 되어진 아름다운 산들의 신음이 곳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은 환청에서 헤여 나오지 못 하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마루금의 형태가 아직도 남아 있어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성동구와 중구의 경계선의 마루금 처럼 공원형태라도 복구되어 마루금의 맥이 후손들에게 까지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서울 근교의 산을 오르면서 안개속에 감추어져 간혹 실선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산군들의 마루금이 

이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 돌았었는데 어느 날 마루금을 긋고(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 접하게 되었음) 1구간 산행을 떠날 때  흥분되었던 감정은 오랫 동안 지속 될 것이다.

 

개인의 계획에 맞는 산행을 하느라 5구간으로 나누어 진행 하였던 강북16산행은 각 자의 능력에 맞게 코스를 조절하여 산행을 한 다면 등산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추어진 이 곳에서 우리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암벽.리지.워킹산행 등)

 

끝으로 1~구간과 마지막 구간에 동행하여 주신 분들과 서울 도심구간 마루금을 긋는데  도움 주신 전대식님에게 감사 드리며 강북16산의 산행기록을 정리한다.

 

 

출처 : 운해의산방
글쓴이 : 운 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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